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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3

    <93 – 마음의 양식>

     

    학창시절 가장 무서운 문제는 어떤 문제인가.

    정답이 2개인지 3개인지도 알려주지 않는 ‘정답을 모두 고르시오’ 유형의 복수정답문제?

    당당하게 출제범위 바깥에서 출제되는 교수님 머리를 깡깡 내리치고 싶은 문제?

    나, 오크노디는 확신한다.

    가장 무서운 문제는 그런 것이 아니라 문제지 뒤에 정답이 달려있지 않은 문제라고!

     

    ‘980기 2학년 계약사기꾼 벨로카시오.’

     

    이 사람이 벌이는 짓은 초보라면 눈물이 쏙 빠질 만큼 위험하지만 다회차를 거치며 공략법을 습득한 플레이어에게는 그리 위협적이지 않다.

    학생회를 어떤 식으로 움직일지도 알 수 있고, 때로는 불씨를 튀게 만들어서 다른 위험한 학생들과 싸움을 붙일 수도 있다.

     

    ‘해결책을 하나도 아니고 다섯 가지는 알고 있지!’

     

    근데 이쪽은 다르다.

     

    “계약서의 품목이 보통 다양한 게 아니군요.”

    “그래도 어떤 물자가 어느 강의에 필요한지는 대충 가늠이 되네요. 서귀연의 인맥을 이용하면 비슷한 일을 저희도 할 수 있겠어요.”

    “귀족아가씨의 저력이 대단하시군요. 문제는 독점을 노릴 강의입니다만, 저희가 고르기에 따라서 특정강의 수강생들의 성적을 간접적으로 조작할 수도….”

     

    아카디아와 지젤.

    다회차를 하면서도 한 번도 보지 못한 조합.

    지젤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캐릭터의 등장.

    이것이 다재무능의 아이콘이어야 할 아카디아와 맞물리며 다재다능의 시너지를 내려고 한다.

    논의하는 사항을 봐서는 아카데미에 조만간 새로운 악성향 흑막콤비가 탄생할 것 같았다.

     

    “주말 낮부터 두 분이 뭐하세요?”

     

    빼꼼.

    창문턱 위에서 고개를 내밀고 묻자 지젤과 아카디아가 그 즉시 테이블 앞으로 손을 뻗으며 계획서와 펜을 와장창 밑으로 쓸어버렸다.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습니다.”

    “에에. 거짓말.”

    “착한아이는 이럴 때 ‘와! 스트레칭을 하고 계셨구나!’라고 대답하는 겁니다.”

    “와! 스트레칭을 하고 계셨구나!”

    “잘했습니다.”

     

    꼭 밤일을 하다가 들킨 부모님이 아이한테 레슬링 놀이를 하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참 보기 짠해지는 모습이다.

    필사적으로 무마하려 애쓰는 모습이 보기 딱해서 그냥 한 번 넘어가준다.

     

    “디. 오늘은 해변에 모래성을 지으러 안 가시나요?”

    “자이언트 킹크랩 출몰주의보가 떴어요.”

     

    자이언트 킹크랩은 집게로 철검도 잘라.

    아카디아도 이건 아니다 싶었는지 다른 장소를 추천했다.

     

    “날이 좋은데 등산을 하러 가는 건 어떤가요?”

    “썬크림이 없어요.”

     

    이런 날에 산타고 다니면 피부 다 타!

    햇볕을 피해 실내에 있던 아카디아로서는 할 말이 없을 이야기였다.

     

    “그럼 학교 어딘가에 도서관이 있다는 소문은 들리지만 아무도 도서관에 도달한 적이 없다는 이야기가 들리는데, 도서관을 찾아보시는 건 어떤가요?”

    “왜 자꾸 저를 다른 데로 보내려고 하세요? 제가 여기 있으면 불편해요?”

     

    시무룩한 척 시늉을 하자 아카디아가 헉 하고 가슴 앞에 두 손을 모으며 안절부절 못했다.

     

    “아니에요, 디. 제가 어찌 디를 불편해하겠어요. 다만 지금은 비밀스러운 사업 이야기를 하느라 때가 좋지 않답니다.”

    “저도 사업 할 줄 알아요!”

    “그래요? 그럼 간단한 문제를 낼 테니 맞춰보세요. 이걸 맞추면 저희 이야기를 옆에서 듣는 것을 허락해드릴게요.”

     

    <아카디아의 시험 이벤트>

    아카디아는 사업에도 일가견이 있습니다.

    그녀의 시험을 통과하면 큰 이권을 차지할 기회가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좋아요!”

    “우선 디가 좋아하는 다과시장에 직접 뛰어들기로 결심했다고 가정해봐요.”

    “저는 초코맛 테디베어 쿠키가 좋아요!”

    “후훗. 그래요. 초코맛 테디베어 쿠키를 만들고 싶지만 너무 조금 만들면 매진이 되어서 손님들이 실망하고, 너무 많이 만들면 남는 쿠키가 많겠죠?”

    “남는 건 제가 다 먹을래요!”

    “그러면 기존에 근처 상권을 장악한 제과점에서 디의 가게는 하루 종일 장사를 해도 쿠키가 남을 정도로 장사가 안 되는 가게라며 음해를 할 거예요.”

    “때려눕히면 되는 거죠?”

    “그것보다 좋은 방법이 있어요.”

     

    아카디아는 어른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경쟁사의 매출액과 주력상품, 고객연령층과 매출이 가장 높은 시간대를 분석하고 해당 연령대와 해당 시간대를 노려 이벤트를 여는 것이죠.”

     

    고객 연령대 별 주 이용시간, 인기상품 및 평균 매출액을 표로 만들어 숫자를 잔뜩 채워 넣은 아카디아가 펜을 빙글 돌려 거꾸로 내밀었다.

     

    “여기서 최저의 투자로 최대의 이익을 얻으려면 어떤 연령층과 어떤 시간, 어떤 상품을 노리고 점유율 빼앗기 경쟁에 들어가야 할지 500자 내외로 적어보세요.”

     

    너무 본격적이잖아.

    펜을 쥐고 입가에 물며 한참을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답을 적었다.

     

    (>﹏<。)o尸

     

    “…이게 뭔가요?”

    “기권이요….”

    “미안해요. 어려운 문제로 괴롭게 해서. 디에게는 아직 이른 얘기였죠?”

     

    [아카디아의 시험 돌발이벤트 수행에 실패했습니다.]

    [아카디아의 사업에 동업자로 참여할 수 없습니다.]

     

    답을 외우고 따라하는 일이라면 몰라도 진짜로 쌩으로 문제를 푸는 지능을 요구하는 문제는 맞출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런 두뇌파 고인물도 현실세상 어딘가에 있기는 하겠지만 나는 대체로 몸으로 때우던 육체파였다고.

     

    “아참. 별관에 가면 이사벨이랑 손오천씨가 있을 겁니다.”

    “둘은 거기서 뭐하는데요?”

    “먼저 시험에 탈락하고 우울하고 있습니다.”

    “…”

     

    패잔병집합소냐고.

     

     

    * *

     

     

    “너도냐?”

    “넹.”

     

    결국 왔다.

    패잔병집합소에.

     

    “머리 굴리는 놈들은 이래서 안 돼. 지들 전문분야만 나오면 사람 무시하고 말이야.”

     

    손오천씨는 힘쓰는 일 나올 때마다 사람 무시했잖아요. 한 소리 하려다가 같은 패잔병끼리 갈궈서 뭐하나 싶어서 일침을 참았다.

     

    “이사벨은 분하지 않아요?”

    “딱히? 그런 거 신경 쓰면 머리만 아파. 탐험단에서도 고문자 해독하는 샌님 따로 있고, 녹슨갑옷 입은 좀비 뛰쳐나오면 잡는 칼잡이 따로 있고 그래.”

    “이사벨은 뭐했었어요?”

    “탐험대장님 전속보조.”

    “우와.”

     

    대장보조면 차세대 에이스 같은 느낌인가?

    손오천도 이사벨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밥 해주는 친절한 녀석이라고만 생각했더니 의외로 재주가 있었구나?”

    “…저녁밥은 안 해줄 거야.”

    “으하하. 농담이다, 농담.”

    “난 농담 아니야.”

    “…내가 잘못했다! 제발 용서해줘!”

     

    난폭한 행동으로 종종 벌점을 받는 손오천은 포인트가 아무리 많아도 안심할 수 없는 처지다.

     

    “아무튼 주말이라 모처럼 시간도 남는데, 같이 도서관이나 찾으러 다니지 않을래?”

    “이사벨도 그거 찾아다녀요?”

    “다음 주부터 심상치 않은 양의 과제가 쏟아질 거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그때 가서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도서관을 찾아 헤맬 여유는 없겠다 싶어서.”

     

    그렇기는 하지.

     

    “이사벨은 과정이 중요한 타입인가요, 결과가 중요한 타입인가요?”

    “갑자기? 굳이 하나만 고르자면 결과가 중요하지.”

    “정말요? 탐험단이면 보물을 찾아 모험을 떠나며 동료들과 함께 시련과 역경을 이겨내는 과정이 더 중요한 줄 알았는데요.”

    “그 고생 끝에 보물이 먼저 털려있으면 우리 굶어.”

    “아하.”

     

    먹고사니즘은 중대사항이지.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돈도 못 벌어서 도감작도 못하면 얼마나 불쌍하겠어.

    무엇보다 이곳은 몬스터가 실존하는 세계.

    마을 밖에 나오면 앞산에 독침 쏘는 고블린이 살고 그런 괴물새끼들과 자연에서 생존경쟁을 벌이느라 야생동물들의 체급도 최소 한 사이즈씩 업 됐다.

    민간인은 다른 마을에 놀러 다니기도 힘들고, 먹고 사는 음식은 같은 동네의 늘 먹던 음식뿐이다.

     

    ‘그러니 돼지 한 마리 잡아다 도축하면 마을에서 축제가 열리거나 주점에서 남의 술값까지 대신 내주는 골든벨이라도 울린 것처럼 환호하지.’

     

    먹고 살기 힘든 시대에 과정의 아름다움은 없다.

    그러니 결과부터 전해주기로 결심했다.

     

    “도서관이요.”

    “응.”

    “본관 1층 구석 매점아저씨한테 책 주문하면 빌려주세요.”

    “응??”

    “그럼 굳이 도서관 안 찾아다녀도 돼요.”

    “아니아니아니. 잠깐만.”

     

    이사벨이 휘청거리며 벽을 짚었다.

     

    “매점에서 책을 왜 빌려줘?”

    “매점에 양식코너가 있잖아요.”

    “매점에 그런 게 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책은 마음의 양식!”

    “…진짜로? 그거 때문에?”

    “못 믿겠으면 가보시던가요.”

     

    알려줘도 그러네.

     

     

    * *

     

     

    “하루당 1p네. 기한 내로 책을 반납하면 포인트는 도로 돌려주고, 기한을 넘기면 그때는 하루당 10배의 포인트를 차감하니 꼭 제때 반납하게.”

     

    이사벨은 손에 들린 전공서적을 들고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마나보드 위에 음식을 올리면 자동으로 조리되는 양식 밀키트 음식을 파는 매점.

    자리를 잡고 함박스테이크 밀키트나 새우리조또 밀키트를 먹는 학생들 사이로 책을 들고 어색하게 지나가는 그녀에게 학생들은 관심도 주지 않았다.

     

    “어때요? 감쪽같죠?”

    “…누구 아이디어에서 나온 대여방식인지는 몰라도 도서관 찾는 게 완전 헛수고라는 건 알겠네.”

    “그래도 여기서 빌릴 수 있는 책은 ‘메뉴이름’을 정확히 하는 책뿐이에요. 매점에서 그거 주세요 그거, 같은 소리 하면 욕이나 안 먹으면 다행이잖아요?”

     

    하지만 교수가 내는 과제용 책을 빌리는 것뿐이라면 여기만 이용해도 뽕을 뽑고도 남겠다.

    이사벨은 오크노디 덕분에 다음주의 고비를 편하게 넘길 수 있게 되었다며 안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의문을 감추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크노디는 이런 걸 어떻게 알았어?”

    “메뉴판에 있는 거 포인트로 낼 수 있는 만큼 하나씩 전부 다 달라고 하니까 엄청 많은 책을 받은 적이 있었거든요…”

    “…있을법하네.”

     

    오크노디는 처음 먹는 음식을 좋아하니까.

     

    “빌린 책은?”

    “화가 나서 종이를 씹어 먹었다가 벌금 냈어요.”

    “으하하핳! 쥐방울 녀석, 앞으로는 염소라고 불러야겠구나.”

     

    옆에 있던 손오천이 대폭소를 했다.

    이사벨도 웃음을 참느라 슬픈 생각을 떠올리려고 안간힘을 써야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마음의 “양식”

    팬아트 게시판에 acornno님이 그려주신 오크통에 숨은 커여운 오크노디 팬아트가 올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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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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