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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3

    야영지가 소란스럽게 들썩이는 사이, 단원들이 길어온 물을 머리에 뿌린다.

     

    나는 온 몸에 묻은 피를 씻어냈다.

     

    짙은 철냄새에서 해방되기 시작했다.

     

    밤새 싸운터라 이곳저곳 피가 굳어 달라붙어 있었다.

     

     

    나는 찌뿌둥한 몸을 움직여, 몸을 구석구석 닦아내었다.

     

     

    그러며 나름의 평화를 즐긴다. 싸움 뒤에 오는 이 차분한 분위기가 때로는 마음에 들었다.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차가운 공기가 불어와 열기 가득했던 몸을 물과 함께 식혀주었다.

     

    시원했다.

     

    기분도 좋았다.

     

     

     

    “베르그.”

     

     

    그렇게 몸을 씻던중, 익숙한 목소리가 뒤에서부터 울려왔다.

     

    돌아보니 아담 형이 그곳에 서 있었다.

     

     

    “…”

     

    나는 잠시 형에게 눈길을 주다, 내 몸에 물을 끼얹었다.

     

    어떤 말부터 해야하는지 알수가 없었다.

     

     

    형이 긴 한숨을 내쉰다.

     

    “…멋대로 행동해도 된다고는 했지만…이건 좀 과한거 아니냐?”

     

     

    나는 피식 웃었다.

     

    형도 내 웃음에 끝내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부단장들을 전부 밟아놓으면 어떻게 해. 상대가 연합해서 우리를 공격하면 어떻게하려고.”

     

    “미안.”

     

    이내 형이 현실적인 이야기를 꺼내자, 나는 사과를 건넸다.

     

     

    하지만 형은 끝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사과까지는 필요 없고.”

     

    “…”

     

    -툭.

     

     

    나는 물바가지를 내려놓으며, 준비해두었던 천으로 물기를 닦아내기 시작했다.

     

     

    형이 근처에 있던 바위에 앉으며 내게 물었다.

     

    “…다친 곳은?”

     

    “크게는 없어.”

     

    이빨이 빠졌다거나, 뼈가 부러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얼굴 이곳저곳에 난 상처와, 팔뚝 등에 긁힌 상처들이 전부다.

     

     

    나는 벗어두었던 아르윈의 세계수잎을 목에 걸었다.

     

    그녀의 세계수잎은 확실히 예전보다 상태가 좋았다.

     

    내 얼굴에 미소를 거는 하나의 사실이었다.

     

     

     

    그러는 동안 또 형이 말했다.

     

    “때로는 너한테 괜히 싸움을 알려줬나 싶기도 하다.”

     

    “…”

     

    “자꾸 다쳐오니까 마음이 편하질 않아.”

     

    “가르쳐줬으니까 덜 다쳐오는거지.”

     

    “…배웠으니까 더 싸우는건 아니고?”

     

     

    아담 형의 후회에는 나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를 말로 이길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러니 상황을 무마하기 위한 말을 내뱉었다.

     

     

    “어차피 늦었어. 다 배웠잖아.”

     

    형이 웃었다.

     

    “그래. 그건 그렇네.”

     

     

     

    나는 옷을 챙겨입으며 머리를 뒤로 넘겼다.

     

    피로 젖은 옷은 옆에 던져둔다.

     

     

    상황이 마무리되는 듯 하자, 형이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서 좀 쉬고 있어. 졸릴텐데.”

     

    “회담은?”

     

    “네가 그 꼴을 만들어뒀는데 열리겠냐.”

     

    “…”

     

    “…오후 늦게 시작하기로 했어. 다들 수습할 시간은 줘야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내가 형에게 다가서자, 형은 약하게 내 뒤통수를 때렸다.

     

    -팍.

     

    “좀 걱정 좀 가지 않게 해라.”

     

    나는 대답 없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고맙다, 베르그.”

     

    “…”

     

    아담 형은 진중한 표정을 지으며 끝내 말했다.

     

     

     

    “덕분에 회담이 편해질 것 같아.”

     

    “…”

     

    “뒷배도 있고, 명분도 생겼으니…이제는 올라서야지.”

     

    나도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걸 노리고 했던 짓은 아니었지만…잘 풀려 다행이었다.

     

     

    ****

     

     

    야영지에서 울려퍼지는 환호성에 나는 손사래를 쳤다.

     

    귀가 울려 아플 지경이다.

     

     

    “부단장, 진짜 미친거 아닙니까? 어떻게 그 세 명을 다 밟을 생각을 해요!”

     

    “다들 부단장한테 겁 집어삼키는거 봤냐? 하긴, 나라도 무서웠겠다.”

     

    “속 시원하다 진짜. 우리가 좀 유명해졌다고 기싸움 펼치는거 꼴보기 싫었는데.”

     

    “부단장 잘 싸우는건 알았지만, 저 정도일거라는 생각도 못했네. 우두머리 조는 항상 보던 일인가?”

     

     

    나는 결국 몰려든 단원들에게 말했다.

     

    “이제 다들 돌아가서 쉬어. 싸움 구경하느라 쉬지도 못했을텐데. 나도 쉴거니까 조용히 해주고.”

     

     

    그 말에 하나 둘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에도 소리를 내는건 멈추지 않는다.

     

    흥분을 가라앉히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듯.

     

     

    나는 그런 그들을 내버려두고 내 숙소안으로 들어섰다.

     

     

    아르윈과 네르의 모습을 발견한다.

     

    눈이 퉁퉁 부은 네르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

     

    아까와는 달리 표정을 푹 찌푸리며 내게 다가왔다.

     

    손에는 수 많은 의료도구가 쥐어져 있었다.

     

     

    네르는 내 상처투성이의 얼굴을 보며 입술을 꽉 깨문다.

     

     

    “베르그, 일단 여기 앉아.”

     

     

    나는 그런 그녀를 거부했다.

     

    “됐어. 다 내버려 두어도 나아.”

     

    “하, 하지만…”

    “괜찮다니까.” 

    빈말은 아니었다. 지금 이 자잘한 상처들에 붕대를 묶는 게 더 유난이었다. 불필요하게 불편할 것 같기도 했고.

     

     

    “나는 좀 쉴래. 너희도 잠은 설친 것 같은데…누워서 쉬어.”

     

     

    우리의 숙소는 하나의 커다란 공간이었지만, 중간의 기다란 천막이 구역을 나누고 있었다.

     

    한 구역에는 큰 침상이, 다른 구역에는 작은 침상이 놓여있었다.

     

    나는 익숙하게 큰 침상에 몸을 눕혔다.

     

    웃통을 벗어던지며 쉴 준비를 했다.

     

    몸을 격하게 움직이고 와서 그런지 더 포근함이 느껴진다.

     

    조금만 집중하면 잠들 수 있을 듯 했다.

     

     

     

    “…?”

     

    하지만 그렇게 누워있음에도 아내들 누구하나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지 않자, 나는 눈을 떴다.

     

     

    앞에서는 네르와 아르윈이 눈빛을 교환하며 굳은 듯 서 있었다.

     

     

    “…왜 그러고 있어? 쉬자니까.”

     

     

    아르윈과 네르는 말이 없었다.

     

    내가 물었다.

     

    “혹시 안졸려?”

     

    아르윈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쉬고 싶어요. 저도 이제 긴장이 풀려서…”

     

     

    그럴수록 그들이 저러고 있는 이유를 알수가 없었다.

     

    “그럼 쉬자.”

     

    “…”

     

    “와서 누워, 아르윈.”

     

    아르윈에게 굳어있던 네르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오늘은 아르윈과 함께 자는 날이었다.

     

    문득 이 교착 상황이 마음에 걸려 내가 물었다.

     

     

    “…혹시 내가 다쳐서 그래? 내가 혼자 잘까?”

     

    아르윈이 급히 손을 저었다.

     

    “아니요, 그런거 아니었어요.”

     

    “…”

     

     

    그러더니 그녀가 설명했다.

     

    “잠시…아침이 되니 순서가 어떻게 되나 헷갈려서…”

     

     

    그러더니 아르윈은 침대를 올랐다.

     

    네르는 그런 우리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양팔 가득한 의료도구가 눈에 밟힌다.

     

     

    아르윈이 침대에 올라, 내 옆에 눕고 나서야 네르는 시선을 옮겼다.

     

     

    “…잘 자, 베르그.”

     

    그리고는 말한다.

     

     

    “…그래. 너도 쉬어.”

     

    네르는 이내 천막을 들추며, 제 침상으로 향했다.

     

     

    아르윈은 옆에 누워있다 내게 속삭이듯 말해온다.

     

    “…베르그?”

     

    “응.”

     

    “…아프지는 않아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딱히.”

     

    그러더니 표정을 찌푸리며 조용히 불만을 토로했다.

     

    “…제가 싸우지 말라고 했잖아요.”

     

    나는 그런 그녀의 말에 큭큭 웃었다.

     

    “…웃지 말고요.”

     

    “그래. 미안해.”

     

    “그러다 큰일 나면 어떻게 하시려고…”

     

     

    그 순간, 아르윈의 손이 내 손등을 덮었다.

     

    “…”

     

    입을 달싹이던 그녀가 말했다.

     

    “…앞으로 걱정 좀 안하게 해줘요.”

     

    아르윈이 말했다.

     

    아담 형과 똑같은 말을 해온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노력해볼게.”

     

     

    ****

     

     

     

    아르윈은 잠들어버린 베르그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쓸었다.

     

    그녀는 아직도 베르그가 모든 부단장을 눕히고 다가오던 순간을 잊지 못했다.

     

     

    피투성이가 된채, 모두의 환호를 업고 다가오던 베르그.

     

    “…”

     

     

    …그 순간 단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베르그라는 존재가, 너무도 아름답게 보였다.

     

     

    이해할 수 없기에 더 그래 보이는 걸지도 몰랐다.

     

    그는 제 아내들을 위해서 몸을 혹사시키는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매 순간 제 사람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희생해서라도 그는 주위를 우선시 했다.

     

     

    엘프인 그녀로서는 인족인 베르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미 가진 인생도 짧을텐데, 어떻게 그렇게나 스스로를 희생할 수 있는걸까.

     

    이게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오히려 그래서 그런걸까.

     

    일년 내내 피는 꽃보다, 하루만 피는 꽃이 아름답듯.

     

     

    베르그도 끝이 있는 존재이기에, 이렇게나 정열적으로 삶을 사는 그가 아름다워보이는 걸까.

     

    아르윈은 절대로 고르지 못할 선택지를, 그는 매번 당연하다는 듯 고르고 있었다.

     

    그 차이에 그가 더 대단해보이기도 했다.

     

     

    ‘…앞으로도 지켜줄게.’

     

    잊지 못할 한 하루가 아르윈의 기억에서 되살아난다.

     

    반지를 끼워주며 베르그는 그렇게 약속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단 한번도, 그 약속을 지키지 않은적이 없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네르가 눈물을 흘리자마자, 곧장 행동을 했던 베르그였다.

     

     

    “…….”

     

    아르윈은 터져버린 베르그의 입술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부드럽고 따스한 감촉.

     

     

    …베르그의 아름다움에 감화되는 동시에…이렇게 난 상처들이 그녀의 마음을 답답하게 한다.

     

    그가 다쳐오니까 화도 난다. 찬란한 꽃에 상처가 난듯한 느낌.

     

     

    또한, 네르를 위로하던 베르그의 모습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돌아오자마자 자신이 아닌, 네르를 보던 그가 생생하다.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던 그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네르의 속마음도 모르고.’

     

     

    아르윈이 속으로 생각한다.

     

    그녀가 배신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네르와 친해지기 위해 온 힘을 다하던 베르그였다.

     

    네르는 그의 마음을 받아줄 생각이 없을것이었다.

     

    감동해 눈물을 흘리더라도, 마음을 주는 일은 없을 것이었다.

     

    그런 그녀를 위해 이렇게 상처투성이가 되는 베르그가 안쓰러웠다.

     

    보답받지 못할 걸 위해 노력하는 그가 불쌍했다.

     

    앞으로도 그런 네르를 위해 베르그는 이렇게 아파야하는 걸까.

     

     

    “…바보.”

     

     

    아르윈은 그렇게 속삭이며, 끝내 그의 손을 잡았다.

     

    이전에 스탁핀에서 그랬듯, 손가락을 밀어넣어 깍지를 낀다.

     

    베르그가 남들 앞에서 자신에게 자주 해주었던 애정표현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베르그는 네르에게 아까운 사람이었다.

     

     

    “…”

     

    그러니 어쩌면 그도…상처받지 않을 선에서. 네르에 대한 작은 진실을 알아야하는 걸지도 몰랐다.

     

     

    그래야지만 네르를 위해 이런 무모한 짓을 벌이지 않을 듯 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취향입니다님! 5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ㅋㅋㅋ기뻐해주신것 같아 저도 뿌듯합니다.

    좌커님! 10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좌커님ㅋㅋㅋㅋ ㅠ 잔인하게 매번 연참했을때ㅋㅋ 후원을 보고 웃었네요. 하지만 정말 매번 너무 큰 후원금이라… 어우 이제는 정말 충분히 받은것 같습니다.ㅋㅋㅋ 앞으로도 기회가 날때는 연참할테니 기다려주세요. 후원 감사합니다. 힘낼게요.

    lusticky님! 5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ㅎㅎ. 연참해야하는 순간이라 저도 느껴서요. 그래도 독자님들이 기뻐하시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아이디54님! 1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후원 감사드립니다. 이번에도 메시지가 없군요…ㅋㅋㅋ. 온갖 좋은 말을 제게 보내주셨다 생각하겠습니다. 백지수표처럼요.

    vesta님! 5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그러게요. 왜다시악녀의 조회수를 넘었네요. 이게 다 vesta님 처럼 저를 꾸준히 응원해주시고 따라와주신 독자님들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와 몰랐는데 그 광고로 처음 오셨군요. 뭔가 뿌듯하네요. 또 새로운 사실을 배워갑니다.

    _307님! 4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ㅋㅋㅋㅋ아니…점심값 빼면서까지 저한테 후원하실 필요는 없는데… 감사합니다. 제 점심값으로 할게요.

    e삼승님! 1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e삼승님도 저를 꾸준히 응원해주신 분들 중 한분이시죠.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힘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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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IW 섞일 수 없는 이종족 아내들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Polygamy is abolished.

We don’t have to force ourselves to live together any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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