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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3

       *

         

         

         토너먼트는 백성들을 위한 축제가 아니다. 엄밀히 따지자면, 귀족들을 위한 사교회의 발전형이라 보아야 마땅했다.

         

         참가자 전원이 귀족이며, 그들이 건재함을 과시하기 위한 자리이며, 그 목적이 왕실혼. 즉 왕혈의 수혈에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러므로, 토너먼트가 진행되는 이 닷새 간 프리첸카야의 모든 대귀족들은 매일같이 사재를 풀어 연회를 열었다.

         

         

         오, 경. 어제 경의 결투는 정말 웅장했네!

         

         아이고, 과찬이십니다. 각하. 제 사소한 무공이 어찌 공자의 것에 비하겠습니까? 이미 경하드립니다.

         

         껄껄, 이 사람도 참! 내 아들놈이 뭐 사소한 재주가 있다 한들 그것이 무얼 대수로운 일이라고. 다 전하의 은혜 아래에서 충절의 마음을 갈고 닦은 탓 아니겠는가?

         

         참으로 그렇습니다. 하하!

         

         

         만취한 대귀족과 귀족가의 자제들이 서로에게 덕담을 쏟아 부으며, 동시에 우승자가 왕녀와 혼인한 후 계파가 어떻게 분화될 것인가를 눈치로 경쟁할 때.

         

         이 연회의 호스트, 셰레티프 공작은 가장 불쾌한 사람 중 하나였다.

         

         

         “아직도 오지 않았다 하더냐?”

         “예, 각하.”

         

         

         시종이 낮게 고개를 숙였다. 셰레티프 공작은 보이지 않게 주먹을 꽉 움켜쥐며 분기를 삭혔다.

         

         제 아무리 삼공작 중 말석이라 평가 받는다 하더라도, 그는 공작이다. 이 나라의 가장 존귀한 귀족이며, 또한 이제 가장 부유한 귀족이다.

         

         각 국경부 군부를 지휘하는 다른 공작들과 달리 그의 영지, 옐랴빈스크는 크라실로프 남동부에 펼쳐져 있다. 지난 전화에 직접 노출되지 않고, 틸레스에서 이어지는 대양무역을 중계하는 교통의 요지란 의미였다.

         

         그로 말미암은 막대한 금력, 중앙 귀족으로서의 권위, 프리첸카야 내 귀족 사교회에서 가지는 독보적인 입지.

         

         그 모든 것들을 무시한 채로, 오늘 결투의 당사자 둘 모두가 그의 연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건 모욕이었다.

         

         

         “엘프야 그렇다 치고, 그 천것의 상태가 그리 위중하다더냐?”

         “왕녀 전하께서 직접 간호를 요청했다고는 들었습니다만…. 아무래도 왕녀 전하의 친전인지라 정보를 얻기가 어렵습니다.”

         “쯧, 편집증적인 것.”

         

         

         방첩사령부와 왕녀의 관계가 아무리 냉각되어 가고 있다지만, 그녀는 여전히 프리첸카야 최고의 첩보집단을 보유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녀가 직접 통솔하는 자리에서 정보를 빼돌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것이 못내 불편해서, 셰레티프 공작은 혀를 찼다.

         

         

         “사제는 거절했고 초청장은 답신조차 하지 않았다라….”

         “오늘 준비는 그럼 어찌할까요?”

         “남겨둬라. ‘손님’들에겐 사례를 부족함 없이 하고.”

         “예, 각하.”

         

         

         시종은 깊게 고개를 조아리며 물러섰다. 공작은 톡톡, 테이블을 두드리며 시름에 잠겼다.

         

         

         ‘놈의 부상이 예상보다 심하다면….’

         

         

         그렇다면 문제가 없다. 하지만 단순한 과로나 피로, 대수롭지 않은 정도의 부상만을 입고 정양 중인 것이라면.

         

         오늘 안에 놈을 처리해야 했다. 결승까지 이틀. 그 시간 안에 회복한다면 놈의 우승을 저지할 방법이 없다.

         

         그의 모자란 아들놈이나, 그 상대로 나온 또 다른 모자란 귀족 놈이 과연 코엔울프를 상대로 그렇게 싸울 수 있겠는가.

         

         아니다. 아닐 것이다. 아무리 관대하게 생각해보려 해도, 코엔울프를 상대로 그 정도의 분투를 끌어낸 실력은 ‘진짜’다.

         

         그러니 그 천 것은 오늘 안에 죽여야 했다.

         

         어찌한다.

         

         왕녀가 지키는 병원을 강제로 돌파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섣불리 암살을 시도하려 드는건 잠잠해진 사자를 도발하는 짓이나 다름없었다.

         

         명심해야 한다. 최근의 실책으로 왕녀의 권위가 아무리 실추되었다 하더라도, 그리고 왕녀의 친위세력들이 서서히 이반하기 시작했다 하더라도.

         

         엘리자베타 키릴로브나 크라실로프, 철혈의 리자. 그녀는 하룻밤 사이에 제 아비를 유폐하고 오라비의 세력을 축출해낸 맹수다.

         

         그녀가 자신을 매물로 내놓은 극단적인 상황은 다시 오지 않을 기회다. 그녀를 섣불리 도발해선 안 된다. 귀족들의 전투는 무력과 실행력보다 명분이 더 중요하지 않던가.

         

         

         “각하, 각하!”

         

         

         시름에 잠긴 공작에게 시종이 다급히 달려왔다.

         

         

         “뭔가?”

         “와, 왔습니다!”

         “누가?”

         “예레모프 경입니다. 지금 저택 앞에 도착했다 합니다!!”

         “혼자? 혼자 왔다더냐?”

         “예? 예! 다른 동행인은 없었던 걸로….”

         “하!”

         

         

         공작은 들고 있던 잔을 내려놓으며 크게 웃었다.

         

         그래, 왕녀의 품에서 보호를 받던 녀석이 왕세자파의 연회에 홀로 왔다라.

         

         이래서 용병 출신 천출들을 귀히 써선 안 되는 것이외다, 전하.

         

         공작은 비릿하게 웃었다.

         

         

         “사냥개가 어찌 고기 냄새를 참겠느냐. 굶주린 것들일수록 더 탐욕스러운 법이지.”

         

         

         빈자와 약자를 정의롭다 여기는 머저리들이 있다. 그들은 틀렸다. 굶주린 이들일수록 더욱 치열하고, 비열하게 먹잇감을 탐하는 법이다.

         

         용병 출신 북방귀족의 삼남, 계승권 없이 떠돌아다니는 용병 따위에게 충의를 바래선 안 됐다. 자고로 계획이란, 그것이 얼마나 정교한가보다 그것을 실행할 이들이 얼마나 믿을 수 있느냐부터 성패가 갈리기 때문이다.

         

         왕녀는 차라리, 왕세자파의 젊은 귀족 중 하나를 매수했어야 했다. 능력 하나만 믿고 나대는 방랑기사가 아니라.

         

         

         “안내해라. 내 직접 환대해주지.”

         

         

         아끼는 사냥개가 다른 집에 꼬리를 흔들러 떠났다가, 목만 돌아왔을 때에 과연. 왕녀는 어떤 표정을 지을 것인가.

        ‘

         쥐고 있던 마지막 명분마저 놓친 뒤에 귀족과 혼인을 맺게 된다면, 왕혈의 권리는 결코 다시는 크라실로프에게 미소 지어주지 않을 것이다.

         

         

        *

         

         

         처음 에델플라트 코엔울프의 출전 등록이 완료되었을 때, 이반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훈련 받은 요원인 탓이다.

         

         자고로 훈련받은 요원은 작전 중 비상 상황에 당황하지 않는 법이다. 당혹감이란 오판으로 이어지는 첫 번째 단추 같은 것이니까.

         

         그러므로 이반은 작전 목표를 변경했다. 이건 다소 과감한, 그리고 섬세한 양동 작전이 되어야 한다.

         

         

         “어서 오시게나! 회신이 없어 크게 심려하고 있었네. 몸은 괜찮은가? 경기장에서 실신하지 않았나!”

         “평소와 같습니다.”

         

         

         이반은 성대하게 팔을 벌려 그를 맞이하는 공작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의 몸을 한차례 훑은 공작은 이내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그를 다독였다.

         

         

         “과연 크라실로프의 사내답군. 투구를 벗고 보니 이리 헌양한 것을, 그간 얼굴 한 번 비추지 않아 참 섭섭했네.”

         “그렇군요.”

         “….”

         

         

         에델플라트 코엔울프는 반드시 결승까지 진출할 것이다. 대진표를 어디에 어떻게 배치하더라도 그녀와 마주하는 것을 피할 수는 없다.

         

         그녀가 패배하면 오히려 그것이 더 큰 변수다. 그녀를 꺾을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도 파악하지 못했다는 의미이므로.

         

         그러니, 이반은 에델과의 일전을 이미 가정하고 있었다. 승리가 아니라, 결투 자체를.

         

         

         “자, 어서 가세나. 다들 크게 놀라겠군. 오늘의 주연이 도착했으니! 경의 분투는 정말이지, 아국의 큰 영광과 다름 없었네!”

         “예.”

         

         

         그렇다면 에델과 어떤 시점에 마주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가.

         

         그건 4강이다. 준결승. 패배하든 승리하든 상관없이 4강에서 부딪치는 편이 가장 좋았다.

         

         결승에서 에델과 싸우게 된다면 반왕녀파 귀족들을 한데 몰아 물리치라는 작전 목표 자체에 달성이 어려워지는 까닭이다.

         

         그러나 만일 대진표상, 준결승에서 마주할 구도가 만들어진다면….

         

         

         ‘자연스럽게, 다른 4강전 대진표엔 반왕녀파 귀족들이 결집한다.’

         

         

         그와 에델의 싸움에서 그가 승리하든 패배하든 상대측은 반드시 이반에게 접촉해올 것이다.

         

         싸움이 화려하고 격렬할수록 더욱 더. 몸값이 치솟은 이반을 회유하려 들거나, 암살하려 들겠지. 귀족들의 눈에 그는 명백한 왕녀파 기사니까.

         

         설령 에델이 우승한다 하더라도 상관 없었다. 에델플라트 코엔울프는 결코 왕녀와 혼인할 수 없을 테니까. 귀족원 전원이 거품을 물고, 연합왕국의 다른 국가들 또한 반대할 것이 뻔했다.

         

         칼리온-크라실로프의 혈연 동맹은 그 정도의 파급력이 있을 테니까. 내륙에 묶여 있는 불곰과 해상의 지배자가 연합하게 된다면 연합왕국 최강대국이 되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다.

         

         

         ‘에델과 내가 4강에서 붙도록 대진표를 짜두면, 반대측엔 반드시.’

         

         

         셰레티프 공작의 아들과 옐치노포프 백작. 그 둘이 올라온다. 살아남은 왕세자파 중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두 대귀족은 새로운 정치권력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왕녀와의 혼인이 필요할 테니까.

         

         에델이 승리한다면 이들 둘 중 하나가 왕녀와의 혼인을 요구할 것이다.

         

         에델이 패배한다면, 이들 둘은 결승에 진출한 이반을 제거하려 시도할 것이다.

         

         무엇이 되었든 상관없었다. 경쟁 관계였던 저 두 대귀족이 손을 잡는 순간이 필요했을 뿐이니.

         

         그러니까, 에델과의 결투는 과정에 불과했다. 승패 따윈 상관 없는 종류의.

         

         단지 그 결투 끝에 이반이 움직일 여력이 있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반은 제 발로 걸어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외투를 받아가겠습니다. 예레모프 경.”

         “음.”

         

         

         이반은 외투를 벗어 시종에게 건넸다. 허리에 빗겨 찬 장검 한 자루와 함께.

         

         셰레티프 공작은 이반의 가벼운 차림을 빠르게 훑었다. 응접실에 있는 검사장치는 잠잠했다. 저 사내는 지금 완전히 무장을 해제한 상태다.

         

         공작은 빠르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경이 이해해주게나. 늙은이들의 노파심을 어쩔 수 없지 않겠나.”

         “상관없습니다.”

         

         

         시종은 공손히 연회장으로 이어지는 문을 열었다.

         

         대귀족다운 화려한 살롱이 눈 앞에 펼쳐졌다.

         

         대리석을 아낌없이 쏟아부은 가구들과 금자수를 박아 넣은 붉은 벨벳 커튼, 거대한 샹들리에엔 황금과 진주로 복잡한 눈꽃 형태 조각이 박혀 있었다.

         

         시종들이 들고 다니는 술과 다과 중에 이반이 알아볼 수 있는 것들이 없었다. 틸레스 산 와인과 각종 핑거스넥들이 바쁘게 돌아다녔다.

         

         

         “자, 이렇게 소개할 자리가 생겨 정말 영광이라네. 오늘 토너먼트의 주연이 이 자리에 도착했다네! 모두들, 승자에게 찬사를!”

         “와아아아!!”

         

         

         박수 소리가 연회장에 메아리친다. 악단은 예의바르게도 공작이 입을 연 순간 연주를 잠시 멈췄다.

         

         이반은 고가의 드레스와 수트로 몸을 감고 있는 프리첸카야의 대귀족들을 천천히 훑었다.

         

         그의 곁에 선 공작이 따듯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이 노구가 보낸 포션은 도움이 되었는가?”

         “예.”

         “잘 됐군. 구하기 쉽지 않은 물건이었다네.”

         

         

         그랬겠지.

         

         포션엔 아마도 검출이 불가능한 종류의 약물이 섞여 있었을 것이다. 섬세한 준비였겠지만, 공작이 알지 못한 점이 하나 있다면.

         

         이반은 결코 힐링 포션을 제 손으로 마시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차라리 부상을 감수할 테니까.

         

         

         “아, 이쪽은 옐치노포프 백작일세. 이름은 들어 보았나? 결선에서 자네의 다음 상대가 될 사람이라네.”

         “과찬이십니다, 각하. 보리스 경은 저로써도 감당하기 어려운 기사가 아닙니까.”

         “내 아들놈이 사소한 재주가 하나 있긴 해도 어찌 경에게 대적하겠나? 미리 축하하네. 하하!”

         

         

         옐치노포프 백작은 따듯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뻗어왔다. 이반은 무표정하게 그의 손을 마주잡았다.

         

         단단한 근육 아래에선 힘있는 마력이 맥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경의 무용은 내 감명 깊게 보았네. 궁금한 것이 하나 있는데… 예레모프 자작의 아들이라고?”

         “예.”

         “자작의 아들이 이제 막 스물이 넘었다고 들었는데, 생각보다 더 나이가 있군. 경은.”

         

         

         옐치노포프 백작은 손아귀에 힘을 주며 물었다.

         

         

         “경은 누구인가?”

         “옐치노포프 백작, 지금 그게 무슨 무례인가?”

         “여기까지 와서 더 무슨 예의를 차리려 하십니까, 각하. 이 시간까지 기다린 것 자체가 이 천것 하나 때문이었을 텐데요.”

         

         

         옐치노포프는 비릿하게 웃으며 손을 까딱였다.

         

         앉아 있던 귀족들 중 절반 가량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악공들은 악기를 내려놓고, 시종들은 천천히 벽가에 물러서 커튼을 쳤다.

         

         

         “쓸데 없는 허례허식은 그만두지요. 그건 천한 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성질이 급하군.”

         “제가 각하와 이 자리에서 웃으며 술잔을 나누는 것도 퍽 우스운 일 아닙니까.”

         

         

         옐치노포프의 말에 셰레티프 공작은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물러섰다.

         

         이반이 서 있던 자리를 중심으로 바닥에 보라색 마력선이 깔리기 시작했다. 시선을 올려보니, 2층 테라스에 마법사들이 저마다 주문을 얽고 있었다.

         

         샹들리에를 중심으로 시종들이 무기를 꺼내 쥔다. 칼날이 샹들리에 아래에서 새파랗게 번들거렸다.

         

         토너먼트에 참가했었던 귀족들 중 대부분은 이미 무장을 마친 상태였다. 눈 앞의 옐치노포프 백작 또한, 시종이 건넨 장검 한 자루를 움켜쥐고 있었다.

         

         

         “저 자의 얼굴은 내가 뭉개겠소!! 내 아들놈이 저 자에게 당한 것이 있으니!”

         

         

         저 멀리 앉아 있던 덩치 큰 중년 사내가 거칠게 소리쳤다. 이름이 뭐였더라. 아, 투르게예프 백작. 그랬지.

         

         그가 토너먼트에서 무너트린 상대 중 하나였나보다. 잘 된 일이다.

         

         이반은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귀족들의 얼굴을 훑을 때 마다 그들의 이름과 계파가 떠오른다. 목표 대상의 인적사항은 빠짐 없이 외워둔 탓이다.

         

         대강 목표로 잡았던 귀족들 중 거의 전원이 이 자리에 있다.

         

         왕세자파 출신의, 귀족원에 빌붙은 대귀족들 대부분이 이 자리에 있다.

         

         

         “겁에 질렸나? 말이 없어졌군. 응?”

         

         

         평소라면. 귀족들을 하나하나 처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귀족들은 머저리들이 아니니까. 천천히 숙청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귀족들이 감지하는 순간 내전이 터질 것이다.

         

         그러니까, 보기 좋게 대귀족들이 모두 모여 있는 상황에서.

         

         하필이면 ‘왕실 주관 토너먼트의 결승 진출 예정자’를 암살하려 든다는 명분마저 확보된 상황에서.

         

         

         “지금이라도 우리에게 무릎 꿇고 빌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 정도의 머리도 굴러가지 않나? 왕녀가 그대에게 무엇을 제공했지? 그 탕녀가 다리라도 벌렸느냐? 응?”

         

         

         이 자리의 누구도 이반이 살아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이들은 감히 공공연히 왕실모독을 입에 담으면서도 웃음을 터트렸다.

         

         이반의 침묵에 귀족들의 언사가 점점 더 격해진다. 천한 것과 붙어 먹은 왕녀. 천 년 크라실로프의 망조. 왕녀의 애첩.

         

         

         “내가 경을 대신해 왕녀 전하의 옆자리를 뜨끈하게 덥혀줄 테니 경은 걱정 말고 눈을 감으시게나.”

         

         

         옐치노포프 백작은 비릿하게 웃으며 이반의 손을 놓았다.

         

         검을 쥔 손을 천천히 들어 올리며 과시하듯 흔들었다. 그 또한 결승까지 올라갈 정도의 실력자인 탓이다.

         

         상대의 상태를 파악하는 것은 기본 중 기본이다. 이반의 상태는 분명히 정상이라 할 수 없었다. 마력의 흔적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과부하된 상황이다.

         

         거기에 저 늙은이, 셰레티프 공작의 독까지 먹었다면. 이 정도의 준비는 과도하다고 볼 수도 있을 지경이었다.

         

         

         “타겟 다섯. 이층 테라스.”

         “뭐?”

         

         

         이반은 느리게 손을 올려 귓볼 뒤를 꾹 눌렀다.

         

         

        -타겟 확인.

         

         “광원 제거.”

         

        -실시.

         

         

        -타앙—!!

         

         

         총성이 울렸다. 초인이라면 그것이 수십 개의 총성을 동일한 순간에 발포한 탓에 겹쳐 들린 것이라는 것쯤은 파악했을 것이다.

         

         총성과 동시에 커튼이 크게 들썩였다. 살롱을 밝히던 조명 전체가 한순간에, 동시에 깨져 나갔다.

         

         윽, 하는 신음이 이어졌다. 귀가 밝은 이들은 그것이 2층 테라스에서 들렸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이반은 발 밑에서 꿈틀거리던 마법진이 해체되는 것을 느끼며 손을 뻗었다.

         

         

        -휘익!!

         

         

         사선 감지와 함께 날아든 물건이 이반의 손에 잡혔다.

         

         동시에, 옐치노포프 백작의 검이 그의 머리를 향해 떨어졌다. 그는 초인답게, 총성에 당황하지 않고 눈 앞의 이반을 신속하게 공격해왔다.

         

         

        -카앙!!

         

         

         불똥이 튀었다. 이반은 손아귀에 붙잡힌 도끼를 한바퀴 돌려 검을 흘려내고는 앞으로 걸었다.

         

         어둠 속에서 인기척이 이어진다.

         

         

         “이게 무슨! 위병! 위병!!”

         

         

         이 저택은 공작이 직접 키운 병력으로 철통 같은 보호를 받고 있었다. 급습이 있다 한들, 설령 상대가 군대를 끌고 짓쳐들었다 하더라도 사전에 감지하지 못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셰레티프 공작은 어둠 속에서 비틀거리며 주위를 훑었다.

         

         

        -철컥.

         

         

         탄환에 깨진 창, 찢어진 커튼 사이에서 무거운 금속뭉치의 마찰음이 들렸다.

         

         이반은 당혹감 속에서 어물거리는 셰레티프 공작과, 이를 꾹 깨물고 검을 들고 있는 옐치포프 백작을 향해 도끼를 들어 올렸다.

         

         

         “귀관의 충성은 어디로 향하나.”

         

         

         동시에, 살롱의 깨진 창문들 사이에서,

         

         테라스의 난간 위에서.

         

         앉아 있던 귀족들의 뒤에서, 무장하고 있던 시종들 사이에서.

         

         방첩사령부의 요원들이 병기를 겨누며 나타났다.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핸즈업 NYPD 프리즈!

    *

    휴재.. 죄송합니다.. 컨디션이 아직 회복이 덜 되었었나 봐요!

    그래서 일단 쓴대로 꾹 눌러 담긴 했습니다. 주말에도 올라가요!!

    좋은 주말 되세요!

    *

    다음화 보기


           


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30 Years Have Passed Since the Prologue

프롤로그에서 30년이 흘렀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got transmigrated into a game I’ve never seen before. I thought it was a top-notch RPG and spent 30 years on it. I retired as a war hero and planned to spend my remaining time leisurely. But it turns out, it was an academy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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