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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3

       게임적 허용이라는 것은 가끔 스토리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자면,

        

       분명 컷신 시작할 때는 분명히 무기를 손에 쥐고 있지 않았다가, 이상하게 전투에 들어가면 허공에서 무기를 꺼낸다는 것.

        

       문제는 거기에 어떤 설정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다못해 허리에 검집이라도 차고 다녔다면 거기서 꺼냈다는 것을 인지하기라도 할 텐데, 그런 것도 없이 그냥 검 그 자체를 허리춤에서 툭 꺼내버린다.

        

       뭐 4차원 주머니나 그런 설정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 게임에서 나오는 캐릭터들에게 무기는 언제나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고, 그건 복장에 따라 제한되지 않는다. 장소가 어디건, 입고 있는 옷이 교복이건, 드레스건, 수영복이건.

        

       ……심지어 바니걸의 복장을 하고 있건.

        

       그렇다. 그 앨리스마저 막상 전투에 들어가니 아무렇지도 않게 무기를 꺼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햇수로 10년간 이 세상에 살면서 면밀히 관찰해본 결과, 그게 현실에서도 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무기를 꺼내려면 당연히 무기를 챙겨야 한다. 무기가 크면 당연히 숨길 수도 없다. 특히 앨리스가 쓰는 양손검 같은 것은 절대로 품에 넣어서 숨길 수 있는 무기가 아니니까.

        

       내 리볼버도 그랬고.

        

       조금 작은 총, 그러니까 예를 들자면 미아 크로우필드 방 침대 밑에 숨겨져 있던 데린저 같은 것을 구해볼까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바니걸 복장에 넣을 곳이 있지는 않았다.

        

       아직 바니걸 복장을 구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 속옷만 입은 채 종이로 비슷한 크기를 만들어 가슴 사이에 끼워보기도 했는데, 엄청 불편한 것은 둘째치고 애초에 그냥 눈에 보였다.

        

       이렇게 말하기는 민망하지만, 가슴 크기가 빈말로도 작다고 할 수 없는 나였는데도 그랬다. 앨리스도 겉보기로는 비슷한 크기이니 이 사이에 무슨 무기를 숨기기에는 여러모로 곤란했다.

        

       바니걸 복장의 꼬리에 뭔가 숨겨볼 수 있지 않을까 고민도 해봤는데, 그런 곳에 뭔가 숨겼다가 실수로라도 발사되면 내 골반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아서 일단 보류했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고 하더라도 기왕이면 끔찍한 일은 당하고 싶지 않다.

        

       ……게다가 바니걸 복장이면 백 퍼센트 누가 내 몸을 더듬을 텐데, 그러면 당연히 꼬리에 숨겨진 것도 들통날 가능성이 크다. 그냥 서 있어도 무게 때문에 아래로 축 처질 거고.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내가 내린 결론은 딱 한 가지였다.

        

       바니걸 복장이 되기 전에 상황을 정리한다.

        

       애초에 잠입한 성당 기사에 대한 정보만 확실하게 빼낼 수 있다면 그걸로 성공인 임무가 아니겠는가.

        

       게다가 성당 기사가 어디 있는지도 이미 파악했고.

        

       ……누가 봐도 손님을 상대한 뒤 일을 끝내고 식당에 앉아있는 모습이던 그 초록 머리 여자.

        

       그 여자가 바로 성당 기사였다.

        

       *

        

       벨라도 아마 알고 있겠지.

        

       게임에서도 법국이 결코 만만하게 나오지는 않지만, 황제는 그보다 더 위를 보고 있는 인물로 나오니까.

        

       예언서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예언서에만 의지하지 않고 직접 정보를 캐내어 조합하는 인물인지라, 오히려 법국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기까지 했다. 뭐, 게임에서 나오는 법국은 별로 호감 가는 세력은 아니라 별다른 감정은 들지 않았지만.

        

       황제도 아마, 성당 기사가 여기 잠입해 있다는 것과 별개로 ‘누가’ 잠입했는지까지 특정하고 벨라를 보냈을 것이다. 원작에서도 그랬으니까.

        

       밤늦게 카지노 근처를 여자 혼자 돌아다닌다고 하면 그 말만 두고 생각했을 때 조금 위험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아무래도 이곳을 만들 때 라스베이거스를 모티브로 했기 때문인지, 오히려 이 주변의 치안은 다른 지역보다 우월했다.

        

       한밤중에도 주변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고, 드문드문 돌아다니는 기사들이 눈에 띄었다. 그뿐만 아니라 사복을 입은 인물 중에도 분명히 이 영지의 병사들이 섞여 있을 것이다.

        

       관광지에서 관광객이 짐을 도둑맞는 것만큼 관광지 입장에서 손해 보는 일이 없다. 그 돈이 엉뚱한 인물들, 그러니까 범죄자의 손에 들어가 버리고, 관광객들은 돈을 쓰지 못하고, 좋지 않은 소문까지 퍼져버리니까.

        

       이곳에서 일하는 급사들은 별다른 보호를 받지 못하지만, ‘관광객’이라는 기준을 두고 봤을 때 영지 수준에서 굉장히 제대로 된 보호를 받을 수 있다. 그래야 다음에 또 올 거고.

        

       그러니, 그냥 관광객처럼 가볍게 차려입은 내가 누군가에게 해를 당할 일은 없었다.

        

       환하게 밝혀진 호텔에서 나와, 역시 불이 꺼지지 않는 대로를 지나 카지노 앞까지 가는 와중에도 거리에는 관광객들이 넘실거렸다. 연인들이, 혹은 술에 취한 사람들이 왁자지껄 떠들면서 잠들지 않는 도시를 즐기고 있었다.

        

       옆에 바니걸이나 웨이트리스를 끼고 있는 사람도 있었고, 심지어 몇몇 중년 여성들은 옆에 잘 생기고 키 큰 젊은 남성들을 끼고 있기도 했다.

        

       소돔과 고모라……라고 하기에는 그렇게까지 선을 넘어버린 것 같은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사실 20세기 극 초반에서 따온 세계관 기준으로는 성적으로 굉장히 문란하고 타락한 분위기인 것은 확실하다.

        

       미미하게 알코올 냄새가 느껴지는 거리를 지나서 카지노 앞까지 갔다.

        

       입구 양쪽에 서 있는 검은 정장을 입고 중절모를 쓴 인물들은 나를 흘끗 쳐다보기만 할 뿐 딱히 내 앞을 가로막지는 않았다. 아마도 내가 여성이고, 또 손님인 것으로 본 거겠지. 온갖 돈 많은 인간들이 모여드는 곳이니 젊은 여성 혼자 다니는 인물들도 많을 것이다.

        

       게다가 나는 총을 들고 오지도 않았다. 날고 기는 사람들 기준으로 보기에도 그렇게 위험해보이지는 않았겠지.

        

       나는 망설이지 않고 카지노에 들어갔다.

        

       휘황찬란한 황금빛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화려하네.

        

       게임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더 화려했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지. 개발 능력의 한계로 그래픽이 그렇게까지 좋지는 못했던 게임이니까.

        

       그래도 얼핏 보이는 카지노의 구조는 게임에서 봤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그렇다면 아마 그 성당 기사가 있는 곳도 비슷한 곳일 거다.

        

       나는 곧장 계단을 찾아 올라갔다. 창문도 없고 시계도 없는 화려한 건물 내부에 사람들이 북적였다. 세상에는 돈 많은 인간들이 이렇게 많은 걸까. 하긴 이곳의 명성은 제국 내에서만 유명한 것은 아니었으니 전 세계의 부자들이 몰려든다고 생각하면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이런 곳에서 바니걸이 하는 일은 별거 없다. 손님들 사이를 다니면서 술이니 음료니 하는 것들을 나누어주고, 팁을 받아 챙기는 것.

        

       팁이 주로 들어가는 곳은 가슴 사이였다.

        

       “…….”

        

       다시 생각하니까 아찔하네.

        

       나는 걸음을 조금 더 서둘러 2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눈에 띄는 초록 머리를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아까 아침에 봤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표정이었다. 얼굴에 환한 미소를 장착하고, 가슴에 반짝이 가루라도 뿌렸는지 진짜로 반짝반짝 빛나는 피부를 손님들에게 자랑하듯 내보이고 있었다. 단발로 자른 머리카락이 찰랑여서 건강해 보였다.

        

       “어머, 감사해요!”

        

       엉덩이를 뒤로 빼고 슬쩍 가슴을 앞으로 내민 채 아양을 떠는 그 여자를 보고 나는 다시 한번 정신이 아득해질 뻔했다.

        

       그러니까, 내가 저런 복장을 하고 이 안을 돌아다닐 뻔했다는 말이지?

        

       ……얼른 정보나 캐내고 끝내버리자.

        

       나는 직선으로 걸어서 그 여자가 있는 곳으로 갔다.

        

       헬렐레 취한 남자가 가슴에 끼워주는 팁을 받고 허리를 펴던 그 여자와 내 눈이 마주쳤다.

        

       아주 잠깐, 여자의 얼굴에는 놀란 기색이 퍼져나갔다. 그리고 이내 장난스럽게 씩 웃어 보였다.

        

       그 웃음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 대화도 나누지 않고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뭐 때문에 여기까지 왔는데.

        

       “손님, 죄송하지만 제가 독실한 여신교라서요. 동성애를 부정하지는 않겠지만 여자 손님은 받지 않습니다.”

        

       내가 눈을 피하지 않고 곧장 다가가자, 여자는 통통 튀는 말투로 그렇게 말했다.

        

       아마 내 정체 같은 것은 이미 알고 있었을 거다. 벨부르에서 교황 대리로 왔던 인물한테 그렇게 불손하게 대했으니까. 게다가 가지고 있던 계획도 박살 내버렸고.

        

       경계령이라면 이미 한참 전에 내려왔을 것이다.

        

       “…….”

        

       나는 말없이 바지 주머니에서 수표 한 장을 적당히 꺼내 들었다. 그리고 30파운드라고 쓰여있는 그 반으로 접힌 수표를 그대로 여자 가슴에 쿡 찔러넣었다.

        

       물론 손가락이 가슴에 닿지 않도록 조심해서.

        

       ……닿아도 상관없기는 할 것 같긴 한데, 뭐랄까, 조금 그렇잖아.

        

       “…….”

        

       그리고 자기 가슴 사이에 갑자기 훅 들어온 수표를 보고, 그 초록 머리 여자는 눈을 몇 번 깜빡인 뒤, 다시 나를 보면서 활짝 웃었다. 하지만 눈가를 덮은 가면 속의 눈동자는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음, 하지만 이렇게까지 받았으니까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 지나갈 수는 없겠네요! 어디 조용한 곳으로 갈까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보고, 그 여자가 즐겁다는 듯 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나는 두말없이 그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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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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