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93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으로 가는 길.

    발걸음은 평소보다 훨씬 가벼웠지만, 손은 무거웠다.

    루크에게 건네 줄 선물 탓이다.

    ‘분명 엄청 좋아하겠지.’

     

    예르나는 루크가 선물을 받으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기대되는 마음에 상상하는 것을 상상하며 기분이 좋아졌다.

    경쾌하게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며 외친다.

    “루, 언니왔어!”

    그러면 안쪽에서는 그런 그녀를 반기는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언제나 같은 일상처럼.

    “예르나, 오늘은 평소보다 훨씬 더 늦었군. 요즘 너무 늦는게 아닌가.”

    조금 졸린 건지, 눈가를 비비는 루크.

    예르나는 그런 루크가 입고 있는 의상에 가장 먼저 눈이 갔다.

    평소에 입던 것 같은 잠옷과는 조금 다른, 원피스형태의 잠옷이었다.

    싫어하는 것 같아서 안 입을 줄 알았는데, 그래도 사 놓으니까 입기는 입는구나.

    ‘귀여워.’

    이 말은 물론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귀엽다는 말을 싫어하는데 귀엽다고 하면 또 집에서 안 입을 테니까.

    “그 잠옷은 처음 입는 것 같은데, 어때? 편해?”

    “아, 이것 말인가.”

    루크는 문득 자신이 입은 의상의 치맛단을 꼬집어 올리며 말했다.

    “확실히, 꼬리가 난 이후로는 이 형태가 편하기는 하더군.”

    “그렇지?”

    꼬리가 난 수인들은 보통 치마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꼬리의 시작지점을 잡아주는 형태가 필수 불가결한 바지보다, 자연스럽게 놔두는 형태의 치마가 훨씬 편한 것이 사실이니까.

    “그나저나, 그 손에 들고 있는 건 뭔가?”

    루크는 문득 예르나의 한 손에 쥐여진 무언가에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뭔가 싶어서 피곤을 무찌르면서 마력시를 부릅떠보니 마력이 모이는 형태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상자 안에 있는 것이라 제대로 확인할 수는 없겠지만, 그 마력의 흐름으로 루크는 그것이 대충 ‘마도기기’일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었다.

    “아, 이거? 언니의 선물이야.”

    예르나는 씨익 웃으며 거실의 테이블 위에 상자를 조심스럽게 올렸다.

    루크는 그런 예르나를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올려다보며 설명을 요구했다.

    “루가 갖고 싶어했던 거.”

    “내가 갖고 싶어하는 거라고?”

    갖고싶어하던 물건이라니, 짐작가는건 없었다. 애초에, 예르나에게 뭔가 갖고싶다고 이야기한 적은 거의 없었으니까.

    특히, 마도기기같이 값비싼 물건은 단 한번도.

    “응. 열어봐.”

    “음…….”

    루크는 예르나의 권유에 포장을 풀어보았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웬만한 책 정도 크기의 직사각형의 물체였다.

    한눈에 무엇이라고 판단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설계에 루크는 마력시를 켜고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문득 이 구조를 과거에 한번 본적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건 설마…….”

    루크의 기대감 섞인 목소리에, 예르나는 당당하고 또렷하게 대답해주었다.

    “컴퓨터야. 정확히는 랩톱이지만.”

    “랩톱(Laptop)?”

    루크는 그것을 되새김하듯이 중얼거려보았다.

    현대의 컴퓨터를 휴대가 간편하도록 구조를 조정한 물건인가?

    말 그대로, 무릎(lap)에 올려 두더라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가볍고 또한 작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컴퓨터로서 작동할 수 있는 것인지, 마석과 마나더스트를 결합해 놓은 듯한 마력공급책에 더불어, 극도로 최적화시킨 마력회로의 경로는, 회로의 압축률이 어마어마한 수준에 달했단 사실을 말해주었다.

    “……확실히, 이건 내가 갖고 싶었던 거로군.”

    루크는 더 이상 자신의 마도기기에 대한 지식과 상식을 믿을 수가 없어지고 말았다.

    분명 더욱이 발전할 수 없는 형태일 것이라고 생각하면, 언제든지 또 다른 방식으로 발전하고 발달한 무언가가 튀어나오니, 그런 상식을 가질 수가 없게 되고 만 것이다.

    도저히 뭐라고 말을 해야할지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그 침묵이 점점 길어지다 보니, 예르나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 맘에 안들어? 루는 자주 숲이랑 집을 이동하니까. 데스크톱보다는 랩톱이 좋을 것 같아서……. 별로면 바꿔올까?”

    “아, 아닐세! 그저……. 이런 걸 선물로 받을 거라고는 정말이지 상상도 못 했던지라…….”

    루크는 떨리는 손으로 이마를 문지르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이것은 그저 환상속에 존재하는 물건인게 아닌가?”

    “꿈 아니야. 현실이야.”

    “…….”

    동그래진 눈이 너무나 귀여워서 예르나는 무심결에 머리를 쓰다듬었다.

    예르나가 그렇게 루크의 자다가 일어나서 그런지 뻗친 머리를 정돈하고있으니, 루크는 고개를 숙이고는 중얼거렸다.

    “예르나, 이 은혜를 대체 어떻게 갚아야할지…….”

    “그냥, 언제나 평소처럼만 있어줘. 언제나 밝고, 활기차게 살아가겠다고. 그거면 충분해.”

    ———-

    “끄아아악!”

    고통에 찬 울부짖음.

    그것은 마치 심장을 저며내는 듯 섬뜩한 외침이었으나 별로 대수롭지않은 일이라는 것처럼 아무런 감흥도 없는 사람들.

    그들은 소년의 발악에도 아랑곳않고 여전히 무언가를 계속해서 주사하는 중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어느정도 감흥은 있었다. 그것이 인도적인 차원의 감정이 아니었음에, 소년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것이 문제이지만.

    “쓸데없이 발악하지 마라, D-3.”

    “으으윽, 그극!”

    고통에 몸부림쳐봐도 온몸이 구속된 상태이기에, 벗어날 수 없는 무력감이 소년의 몸에 파고든다.

    그 무력감만큼이나, 정체를 알 수 없는 약물도 그의 몸 속으로 주입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소년을 무심하게 쳐다보는 한 눈동자.

    그는 소년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는 전혀 상관 없다는 듯 모니터의 그래프를 확인하며 살짝 감탄했다.

    “확실히 신체붕괴가 미뤄지는군. 이대로라면 곧 이식부작용을 어느정도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당초 한달로 예상했던게 이 실험체의 수명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꽤 버텨주고 있지 않은가?

    역시 약물의 효과는 대단하군. 

    감탄스러울 정도다.

    “효과가 예상보다 더 탁월하군요.”

    “운이 좋군. 원래는 한달만에 죽을 것이었는데.”

    그는 여전히 고통스러워하는 소년을 향해 중얼거렸다.

    “과연 너는 죽을때까지 얼마나 걸릴까.”

    비웃음섞인 말투였다.

    ———

    노트북의 사용 설명서는 거의 완벽하게 숙지했다.

    그러니까, 어떻게 마나더스트를 교환하는지, 어떻게 다른 주변기기들을 연결할 수 있고, 어떻게 평소에 컴퓨터를 관리해야 하는지 등을 읽어내리며 루크가 얼마나 들떴을지는 쉽게 상상하지 못하리라.

    짐작할 수 있도록 예시를 들자면, 자고 일어났는데도 여전히 테이블 위에 존재하는 컴퓨터의 존재에 루크는 정녕 그것이 꿈이 아니었노라며 환희에 젖어 기쁨의 비명을 지를 정도였다고 할 수 있겠다.

    그렇게, 루크는 컴퓨터가 존재하는 삶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루크는 랩탑을 열어 전원을 켜고, 수인용 이어폰을 귀에 맞췄다.

    “음, 딱 맞는군. 그래.”

    다행히 이어폰은 루크의 귀에 딱 맞았다. 착용감도 좋았고, 일전에 마르코의 이어폰을 사용했을 때처럼 귀 안쪽으로 들어가버릴 염려 없이, 귀 바깥에 고리처럼 잡아주는 부분이 있어서 더욱 안심할 수 있는 형태였다.

    파이는 루크에게 묻듯이 소리를 냈다.

    -괜찮아?

    “조금 간지럽긴 하지만, 익숙해지면 괜찮아지겠구나.”

    간지러운것은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리라. 

    뭐, 수인용 속옷을 처음 입었을때 느꼈던 감각과 비슷하다. 

    금방 적응하겠지.

    추가로 가정용 수정구슬까지 연결을 마친 루크는, 시루드가 문자로 알려준대로 컴퓨터를 조작했다.

    파이는 루크가 수정구슬을 조작하는 모습이 불만스러웠는지 몇번 불퉁한 소리를 내기도 했지만, 루크는 그저 정령의 귀여운 투정으로 받아넘겼다.

    어차피 조금 음악을 연주하거나 흥얼거려주면 파이는 금방 화를 풀어내곤 하니까.

    루크는 문득, 컴퓨터로 재생하는 음악은 파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졌다.

    루크는 텔레파시 네트워크에 컴퓨터를 연결시킨 뒤, 검색창을 띄워 아무런 노래 영상을 틀었다.

    그리고…….

    -……!!

    “으앗!”

    음량이 조절되지 않았던 이어폰은 루크의 귀로 최대출력의 음량을 때려넣었고, 루크는 기겁하며 이어폰을 떼어냈다.

    “하마터면 귀가 멀어버릴 뻔 했군…….”

    루크는 먹먹한 귀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그러고 있으니 파이가 뽀르르 날아와서 머리 위에 툭, 앉아서는 말했다.

    익숙한 음율이다.

    -괜찮아?

    “파이, 그건 그래서 물어본 거였느냐…….”

    어떻게인지는 몰라도, 파이는 루크에게 경고를 해주려고 했던 모양이다.

    그러고보면, 예지나 예언도 정령사의 특기중 하나였던가, 물질계의 존재하면서도 시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는것은 정령의 특징이니 말이다.

    “다음번엔 조금 더 자세히 말해주거라…….”

    -……?

    파이는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을 뿐이지만.

    아무튼, 귀의 상태가 나아지자 루크는 음량을 조절했다.

    적당한 음량으로 들으니 꽤 감미로운 음성인것을 알 수 있었다만, 파이에겐 별로 감흥이 없는 모양이다.

    머리 위에 누워있는 파이는 그저 심드렁하게 따분함을 표출하고 있었으니까.

    컴퓨터로 연산되어 출력된 음성이나 음율엔 연주자의 감정이 실려있지 않다고 판단하는걸까?

    ‘음, 귀찮군.’

    솔직히, 컴퓨터로 노래를 재생시켜놓으면 더이상 자신은 다른 연주를 하지 않아도 되는게 아닌가 하는 꾀가 떠올랐던 것인데…….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오히려 파이는 그런 ‘가짜 연주’에 자극받았는지, 얼른 첼로를 켜라는 듯이 화를 내는 중이었다. 

    이 세상엔 생각처럼 쉬운일이 없는 모양이다.

    “그래, 그래. 좀 기다리거라. 오늘 점심즈음에 가볍게 연주해줄 터이니…….”

    루크는 한숨을 쉬며 컴퓨터를 조작했다.

    컴퓨터의 성능은 만족스러웠다.

    소형화된 회로가 PC방의 그것만큼 엄청난 연산력을 보여줄 수야 없겠지만, 연구소의 그것과 비교해서는 크게 떨어지는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것으로 ‘슈퍼 매직 리그’를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군.”

    루크는 다시 컴퓨터를 조작해 슈퍼 매직 리그를 검색해 설치했다.

    “언제보아도 네트워크라는건 정말 놀라운 물건이야.”

    앉은 자리에서 얼마나 다양한 정보든, 얼마나 많은 정보든, 모조리 알아낼 수 있다는게 얼마나 매력적인가. 그럼에도 정작 자신에게 ‘중요한’ 정보는 결국 알 수가 없었지만, 그래도 웬만한 정보는 모두 이 네트워크 안에서 구할 수 있었으니까.

    뭐, 그런 대단한 기술로 지금 한다는 것은 고작 고양이사진 확인하는 거지만, 그래도 그게 어딘가.

    과거나 지금이나 고양이의 생김새는 크게 달라진게 없다. 

    여전히 귀엽다는 뜻이다.

    “음, 드디어 설치가 끝난 모양이로군. 어디…….”

    루크는 능숙하게 시루드가 알려준 계정을 입력했다.

    그리고 게임에 접속하자 펼쳐진 환상에 루크는 상당히 당황했다.

    “뭐지? 이게 내가 하던 게임이 맞나?”

    환상의 질이……. 너무나 나빴다.

    풀과 나무는 도저히 풀과 나무인지 모르겠고, 사람은 대충 뭉뚱그려져서 사람인지 불가사리에 그림을 그려놓은것인지 모를 모습으로 돌아다니는 중인데다, 환상의 갱신이 늦어 중간중간 끊어진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

    역시 성능이 조금 부족한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최고옵으로 하다가 최저옵으로 하면 적응 안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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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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