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93

       식사를 마친 뒤 거점을 중심으로 수색을 시작했다. 노는 거 같아 보여도 크래프트 각하의 속마음은 꽤 진지하니까.

         

       벽을 샅샅이 살피고 세월 때문에 무너진 천장을 뛰어 올라가 살폈다.

         

       지도가 빠르게 작성됐다. 양피지가 덧칠되며 구역들이 하나씩 조사됐다.

         

       “헛! 이 문장은!”

         

       파스텔은 새로운 신성어를 읽으며 경악했다.

         

       “무슨 내용이길래요?”

       “전방에 위층 계단이 있대!”

         

       놀라운 사실!

         

       앨시어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바로 앞의 그 전방을 가리켰다. 계단이 보였다.

         

       “계단은 여기서도 그냥 보이잖아.”

       “허억, 정말 그렇네!”

         

       두 번 놀람!

         

       “적힌 내용들이 꽤 친절하네요.”

       “이건 도움이 안 되지만.”

       “인심이 중요한 거예요, 벨라몬트.”

         

       아마 신이 만들었을 유적은 멜리사의 말대로 친절했다. 신성어만 할 줄 안다면 말이다.

         

       파스텔은 다른 벽면에 적힌 신성어를 읽었다.

         

       “헛! 이 문장은!”

         

       깜짝 놀라며 외쳤다.

         

       “전방에 골렘 있음!”

         

       서둘러 쳐다보자 이번엔 계단과 다르게 골렘이 바로 보이지 않았다. 텅 빈 일자 통로뿐이다. 숨어 있는 건가?

         

       “골렘이요?”

         

       멜리사가 난감해했다.

         

       “성능이 어떨진 모르겠지만 좁은 공간에서 상대하긴 난감하네요.”

       “마법사는 골렘 친구가 어렵나?”

         

       탄환으로 치명상을 준다는 인상이긴 하다. 자동소총으로 사람을 죽이는 건 쉬워도 돌을 부수는 건 어렵겠지.

         

       “거리나 시간이 충분하다면 모를까 이런 곳에선 곤란하죠.”

         

       헤에.

         

       “내가 잡을게.”

         

       앨시어가 슬쩍 나섰다.

         

       “골렘은 상대하기 매우 쉬우니까.”

         

       은발 소녀의 손에 쥔 돌멩이가 가볍게 으스러졌다. 자연 지물에 큰 영향을 주게 되는 준기사급의 경지였다.

         

       “준기사급이면 골렘 부수기가 손쉽긴 하겠죠. 벨라몬트 당신을 부러워할 일은 없을 줄 알았지만 그것만은 부럽네요.”

         

       둘이 대화하는 동안 파스텔은 씩씩하게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테러범을 잡았던 덕에 자신감 뿜뿜 상태였다.

         

       “골렘 친구! 아카데미의 위대한 권력자 파스텔이 상대해 줄게!”

       “내가 잡을-”

         

       돌연 코앞의 벽면에 인공적인 균열이 갔다. 가로세로 선이 그어지고 사각형의 무수한 돌 파편으로 나뉘었다.

         

       돌 파편은 들썩이더니 검은 핵을 중심으로 부유했다. 골렘의 형상이 모습을 갖춰갔다.

         

       “우와악!”

         

       파스텔은 입이 벌어졌다. 골렘의 동공에 붉은빛이 번뜩였다. 앨시어가 서둘러 달려왔다.

         

       “크래프트! 뒤로-!”

       “우와아악!”

         

       파스텔은 혼비백산하며 몸을 회전했다. 하얀 옷자락이 휘날리고 돌려차기가 검은 핵을 가린 골렘의 손을 가격했다. 충격파가 일었다.

         

       바위 손이 폭발하듯 부서졌다. 돌 파편에 검은 핵이 휩쓸리고 박살 났다. 붉은 동공이 빛을 잃었다. 돌무더기가 지면으로 쏟아졌다.

         

       “어…….”

         

       앨시어가 달려오다 말고 걸음을 멈췄다. 벙찐 표정으로 쳐다봤다.

         

       “으아아.”

         

       파스텔은 덜덜 떨며 뒷걸음질 쳤다.

         

       “그, 그렇다고 기습을 바란 건 아니었다구.”

         

       벽으로 위장하는 건 너무 하잖아!

         

       숨을 내쉬며 놀란 심장을 진정시켰다.

         

       “들숨, 날숨, 들숨, 날숨.”

         

       휴우.

         

       진정되는 기분.

         

       『들숨이라면서 말을 하면 어떡하나. 말을 하면 들이쉬는 숨이 아니라 내뱉는 숨이 된다.』

         

       허억, 그렇네.

         

       악마님 혹시 천재인가?

         

       파스텔은 악마님이 가르쳐 준 대로 다시 했다.

         

       “날숨, 날숨, 날숨, 날숨.”

         

       오류를 고치니 더 진정되는 기분.

         

       『……흠.』

         

       앨시어가 다가왔다. 골렘 잔해를 멍하게 내려보더니 돌덩어리를 걷어차 놓고 멀쩡한 파스텔의 발을 쳐다봤다.

         

       “어떻게 부순 거야?”

         

       준기사급 경지도 안 닿은 일반인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혼란스러움이었다.

         

       오잉.

         

       마석 섭취를 하면 몸이 튼튼해져서 그래! 라고 대답하면 마왕마왕적으로 곤란해지겠지.

         

       파스텔은 대신 엄지를 치켜세웠다.

         

       “크래프트 가문의 비전!”

         

       비전이라 비밀임.

         

       앨시어가 납득했다.

         

       “하긴. 경지를 숨기는 것도 크래프트 가문의 비전인가.”

       “아, 그랬던 건가요.”

         

       멜리사가 덩달아 납득했다.

         

       “처음 만났을 때에 비해 실력 상승이 너무 가팔라 다소 이해하기 어려웠거든요. 안정적인 권력을 잡은 뒤 실력을 제대로 드러내는 거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요.”

       “그전에는 황실의 눈길도 고려해야 했을 테니.”

       “그렇죠.”

         

       두 군벌이 주고받으며 결론 냈다.

         

       바보바보 파스텔은 멍해졌다.

         

       왜 나만 빼고 얘기해.

         

       골렘을 지나쳐 다시 이동했다. 양피지에 지도가 계속해서 그려지며 빼곡해졌다. 하지만 교단은커녕 기사단도 보이지 않았다.

         

       “이 정도 규모라면 기사단도 저희처럼 거점을 만들어 놓고 유적을 정리 중일 거예요. 2층 계단이 있었으니 이미 올라가지 않았을까요?”

       “그래애? 유적 분위기도 어느 정도 파악한 거 같으니 우리도 속도를 올려 2층으로 갈까?”

       “급하지 않다면 거점에서 안정적이게 휴식하고 내일 움직이자.”

       “응응! 그러자!”

         

       자연 샘물이 있는 비밀 공간으로 돌아왔다.

         

       파스텔은 다시 받게 된 육포 수프를 묘하게 내려봤다.

         

       맛은 있지만…….

         

       『정 불만이면 직접 하면 된다.』

         

       으에.

         

       그 정도 불만은 아니고요.

         

       그냥, 배가 든든해지고 혀가 즐거워지는 진수성찬을 누가 차려줬으면 좋겠다~는 아주 소소한 바람(응응!)이 있다고 할까요.

         

       『무슨 생각하는지 표정에 다 보이는군. 어쩌다 이런 욕심 많은 애가 된 건지 모르겠어. 흠. 설마 내가 잘못한 건가.』

         

       헛.

         

       자아 성찰에 들어간 보호자 같은 말을 갑자기 하시면 조금 무서워지는데요.

         

       설마 교육 방식을 바꾸겠다는 불필요한 다짐을 한다거나 하실 생각은 아니죠?

         

       반대!

         

       완전 반대!

         

       결사 반대!

         

       멜리사가 다가왔다.

         

       “더 드실래요?”

       “앗. 응!”

         

       파스텔은 육포 수프를 두 컵 들이켰다. 포만감이 빵빵하게 차올랐다. 후끈한 온기가 몸 안을 채웠다.

         

       서늘한 가을에 마시는 따끈한 수프.

         

       후아후아.

         

       “겨울이었으면 더 좋았겠어.”

       “도중마다 흡혈박쥐를 처리하느라 조사가 느려지긴 했죠. 아마 겨울이었다면 박쥐가 동면에 들었을 텐데요.”

         

       그런 의미로 한 얘기가 아니지만.

         

       멍하게 포만감을 즐겼다.

         

       “저기 파스텔.”

       “응.”

         

       멜리사가 어쩐지 머뭇거렸다.

         

       설마 육포 수프는 좀 아니라고 생각했던 예의 없는 마음이 들킨 건 아니겠지.

         

       그건 아니고 다른 이유였다.

         

       “친구, 많으시죠?”

       “으에?”

         

       파스텔은 당혹스러워졌다.

         

       “내가 그런 질문을 받을 만큼 인기가 부족해 보여?”

         

       인생 잘못 산 기분.

         

       친구 100명 사귀기 프로젝트를 시작해야 하는 걸까.

         

       “아름답고 귀여운 당신이 그럴 리가요.”

         

       멜리사가 서둘러 손사래 쳤다.

         

       “그게 아니고요.”

         

       손가락이 금색 머리카락을 꼬았다.

         

       “친구를 잘 사귀는 비법이 궁금해서요.”

         

       오잉.

         

       친구 안테나가 찌릿찌릿 울렸다.

         

       이것은 친해지고 싶은 친구가 있는데 혼자 다가가긴 망설여져서 인기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마음.

         

       허억, 완전 재밌겠다!

         

       파스텔은 총명해진 눈빛으로 멜리사를 관찰했다. 멜리사가 어쩐지 누군가를 힐끔거렸다. 혼자 벌써 침낭에 들어가 누운 은발 소녀였다.

         

       경쟁 군벌을 보는 시선과는 사뭇 다른 망설임.

         

       이것은 이것은!

         

       싸우며 정이 들었다 관계!

       “나만 믿어!”

         

       파스텔은 멜리사와 팔짱을 끼고 벌떡 일어났다. 멜리사가 얼결에 일어났다.

         

       “네? 무엇을요?”

       “친구친구!”

         

       척척 걸어갔다.

         

       침낭 옆에 당도하자 얼굴만 빼꼼 드러난 앨시어가 멍하게 올려봤다. 은색 눈동자가 잠기운에 가물가물했다.

         

       크게 의욕은 없던 앨시어가 웬일로 다음날 하자는 의견을 다 제시하나 했더니 그냥 본인이 졸렸던 거구나.

         

       “앨시어! 앨시어! 벌써 자?”

         

       그런 것인 거야?

         

       앨시어가 중얼거렸다.

         

       “응…….”

       “안 자는구나!”

         

       잘 됐다!

         

       파스텔은 해맑게 웃으며 팔짱을 끌어당겼다. 당황하며 등 뒤에 숨던 멜리사가 근력을 못 버티고 나와졌다.

         

       “있지 있지! 멜리사가 멜리사가!”

         

       완전 완전 좋은 소식!

         

       “멜리사가 너와 친하게 지내고 싶대!”

         

       파스텔은 양볼을 감쌌다.

         

       “말하고 싶었는데 말하지 못한 부끄부끄 멜리사야.”

         

       멜리사가 경악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입술이 달달 떨렸다.

         

       “다, 다, 당신…….”

         

       네 마음 잘 알고 있어!

         

       비슷한 군벌 가문의 또래 친구를 보고 친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안 들 리 없지!

         

       하지만 여태 가문의 관습 때문에 적대만 하다가 인기인 파스텔을 본받아 솔직해지기로 한 거야!

         

       멜리사 대신 몸을 비비 꼬았다.

         

       “부끄부끄.”

         

       멜리사의 얼굴이 단번에 새빨개졌다. 푸른 눈동자가 덜덜 떨리더니 눈물이 살짝 핑 돌았다.

         

       멜리사가 서둘러 앨시어를 내려봤다.

         

       “뭐, 뭔가 오해가 있어요. 방금 말은 흘려들으세요. 애초에 저희가 친해질 만큼 가문에 얽힌 원한이 가볍진 않잖아요.”

         

       손가락이 앨시어를 삿대질했다.

         

       “70년 전 당신네가 크래프트의 이간질에 넘어가 우리를 배신한 과거는 잘 기억하고 있어요. 그때 당신들이 배신만 안 했다면 지금쯤 제국의 판도는 확연히 달라졌겠죠. 이런 상황에 친구 같은 건 될 수 없다고요.”

         

       허억.

         

       그렇게 깊은 원한이.

         

       그런데 이건 이간질한 크래프트가 가장 나쁜…….

         

       파스텔은 생각하다가 눈을 굴렸다.

         

       방금 멜리사가 흘려들으라고 했으니 흘려듣기로 했다.

         

       으에.

         

       대신 앨시어를 내려봤다.

         

       침낭 속 앨시어는 충격받은 표정이었다. 은색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우리 이미 친구 아니야……?”

         

       여태 북부 산맥에서 제대로 된 또래 친구 하나 없이 지내다가 그래도 비슷한 군벌 집안이라고 간혹 만난 멜리사가 유일한 절친인 줄 알고 지냈는데 여태 친구 하나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표정이었다.

         

       “네?”

         

       멜리사가 기막혀했다.

         

       “도대체 그게 어떻게 친구 사이인가요?”

         

       허억.

         

       친구 0명 선언.

         

       “그렇구나…….”

         

       앨시어가 멍하게 천장을 올려봤다.

         

       가문엔 암살 위협을 당하고 친구는 하나도 없는 인생에 회한을 느끼는 얼굴이 되더니, 픽 졸도했다.

         

       꽤꼬닥.

         

       “앨시어……!”

         

       비명이 나왔다.

       

       앨시어가 사회적으로 죽었어!

         

       으아아!

         

       나쁜 멜리사아!

         

         

         

         

         

       

       

    다음화 보기


           


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