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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3

       “베니! 선물이에요!”

       

       “넌 무슨 바퀴벌레 물어오는 고양이 같은 거야?! 필요없어!”

       

       기껏 코볼트 머리를 잘라 왔더니 질색하며 싫어하는 베니.

       

       너무해라.

       

       조금 우울해진 목소리로 베니의 그림자를 향해 물었다.

       

       “너라도 먹을래?”

       

       ——————!

       

       말로 형언하기 힘든 괴상한 소리를 내며 몸을 완전히 끄집어내는 그림자 괴물.

       

       녀석의 몸에 달린 무수히 많은 입이 쩍 벌어지며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다.

       

       “얍!”

       

       그중 가장 가까운 쪽에 코볼트의 머리를 던졌다.

       

       콰직!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우물거리는 아가리. 머리를 두어 번 씹고 그대로 삼켜버린 녀석이 살랑살랑 촉수를 흔들었다.

       

       아무래도 내 선물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히히. 좋아해 줘서 다행이에요.”

       

       스윽 손을 내밀자 기다렸다는 듯이 머리…로 추정되는 부분을 내미는 그림자.

       

       부드러움과 물컹함. 그리고 묘한 이질감이 느껴지는 표면을 마구 쓰다듬어 주었다.

       

       크르릉.

       

       10초 정도 어루만져 주자, 만족한 녀석이 살벌한 목소리로 귀여운 울음소리를 내뱉으며 다시 그림자 속으로 사라진다.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베니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세상에. 내 말은 뒤지게 안 듣는데 어째서 요나 네 말은 잘 듣는 거야?!”

       

       “남자 좋아하나 보죠. 베니도 그렇잖아요?”

       

       “나, 난 이 정도는 아니야!”

       

       “그럼 난자 좋아하시나요?”

       

       “개소리하지 마.”

       

       농담 좀 했을 뿐인데 정색하며 부정하는 베니.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해는 된다. 지구로 치면 작은 여자애가 혹시 정자 좋아하세요? 라고 물어보는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생각만 해도 아찔하네.

       

       의식의 흐름대로 내뱉은 말이긴 하나, 이런 건 좀 주의해야겠다.

       

       “미안해요. 그나저나 제가 싸우는 모습을 한번 보고 싶다고 했죠? 어땠나요 베니?”

       

       “야, 이….”

       

       베니가 어이없어하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마법은 하나도 안 쓰고 싸워놓고 어땠냐고 물으면 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어? 물론 잘 싸우긴 했지만 말이야!”

       

       “앗.”

       

       생각해 보니 그러네. 베니는 내가 실전에서 어떻게 마법을 쓰는지 보고, 수업 방침을 정하러 따라온 것이다.

       

       그런데 조금 전의 나는 마법은 하나도 없이 권능과 순수 몸놀림만으로 코볼트의 모가지를 딴 거고.

       

       “마법 쓴다는 걸 깜빡했네요. 요즘 들어서 쓸 일이 없었거든요.”

       

       “응. 그래 보였어. 아까 말했잖아? 잘 싸우긴 한다고. 내가 보기에 요나 너는 이미 너만의 스타일이 잡혔어. 심지어 꽤 완성도가 높고. 어중간한 마법으로는 방해만 될 텐데…무슨 마법을 익혔다고 했지?”

       

       “네? 아, 미약한 불꽃이요.”

       

       “기초 마법이네. 한번 보여줄 수 있어?”

       

       “물론이죠.”

       

       빈손을 내밀며 마력을 끌어모았다. 순식간에 주입된 지식에 따라 순식간에 정렬되는 마나.

       

       아직 익숙치 않은 그 이능이 내 심상에 따라 타오르기 시작한다. 좀 큼직한 성냥불 크기였지만.

       

       “미약한 불꽃.”

       

       화르륵.

       

       “오. 아무리 기초 마법이라지만, 이건 좀 놀라운데? 구성이 깔끔하잖아. 최고로 효율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가장 교과서적인 건 사실이야. 누가 보면 신화시대의 마법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고풍스럽네. 오랜 명문가의 자제들도 너한테는 한 수 접고 들어가야겠는걸?”

       

       “아하하….”

       

       신화시대의 생존자인 사랑의 여신이 가챠를 통해 내려준 마법이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그나저나 좀 신기하긴 하네. 마법은 보편화 되었다고는 하나, 어찌됐건 기적의 파편 아닌가.

       

       지금은 죽은 마법의 신의 권능인데 어째서 권능 카테고리가 아닌 마법이라는 별도 카테고리를 달고 뽑혔던 걸까.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베니가 만족스런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시전 속도도 빠르고, 영창 없이 시동어만으로 사용하는 것도 괜찮았어. 마력 흐름도 안정적이니 격하게 움직이며 사용하는 것도 문제없겠지. 응. 마법 자체는 잘 배웠네.”

       

       “감, 사합니다?”

       

       발을 동동 구르거나, 씩씩대는 어린애 같은 모습만 보다가 이렇게 마법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니 전문가라는 게 확 느껴진다.

       

       얼떨떨하게 고개를 꾸벅이고 있자니, 솜털 보송보송한 턱을 어루만지며 혼자 중얼거리는 베니.

       

       “이 정도면 꽤 재능 있는 거 아닌가? 거기에 조금 전의 그 은신도, 몸놀림도 절대 2층 수준이 아니었고. 심지어 사랑의 여신의….”

       

       한참을 혼자 웅얼거리던 베니가 뒤늦게 정신을 차린 듯 퍼뜩 고개를 들며 말했다.

       

       “아무튼 잘했어. 그럼 이제 다음 마법을 보여줘.”

       

       “없는데용?”

       

       “……뭐?”

       

       “아니 정말로 없어요. 쓸 줄 아는 마법은 이게 전부예요.”

       

       “기초 마법 꼴랑 하나가 할 줄 아는 마법의 전부라고? 아니, 마법 배우다가 중간에 납치라도 당했어? 기초 마법은 4대 원소 마법에 라이트까지가 한 세트잖아!”

       

       “그렇게 말씀하셔도 정말로 이게 전부인 걸요.”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적이고 있자니, 어째서인지 조금 착잡해 보이는 표정의 리디아가 다가와 베니의 어깨를 두드렸다.

       

       “베니.”

       

       “응? 갑자기 뭐야 리디아.”

       

       “모르는 걸 가르쳐주면 돼. 그러라고 있는 게 스승.”

       

       “뭐어?! 내가 마법을 조금 봐준다고는 했지만 스승이 되어준다는 말은 안 했거든? …하지만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알겠어. 아까 고아라고 했던가? 정식으로 마법을 배울 기회가 없었던 건가 보네. 다른 기초 마법은 내가 알려줄게.”

       

       “정말요?”

       

       “응. 기초 마법이랑 3서클까지는 돈만 내면 마탑에서 마법서를 살 수 있고, 더 큰 돈을 내면 교습까지 받을 수 있으니까.”

       

       “그 이상을 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마탑에 들어가야지. 내가 그래서 중위계 이상의 서클 마법을 못 써.” 

       

       “……네?”

       

       마탑이 마법을 독점하려는 담합 집단이라는 설정이 있긴 한데, 그게 이런 식으로 구현된 건가.

       

       어이가 없어 되묻자, 왜 마탑에 안 들어갔냐는 식으로 알아들은 걸까. 베니가 한숨을 푸욱 내쉬며 말을 이었다.

       

       “마탑 늙은이들 비위 맞춰주기도 힘들고, 어디 속해있는 게 나랑 안 맞기도 하고, 무엇보다 내 연구 결과를 날로 먹으려 한단 말이지. 내가 아쉬운 게 없는데 숙이고 들어갈 필요는 없잖아?”

       

       “그거야 동의하는데…베니는 고위 모험가 아닌가요? 고위 모험가 파티의 마법사는 4서클, 진짜 실력 있는 사람은 5서클 마법을 펑펑 날려댄다고 들었거든요.”

       

       “맞는 말이야. 근데 마법이 서클 마법만 있는 건 아니잖아.”

       

       “네? 그런 건가요?”

       

       내가 마법이라는 게 존재하고, 본래 권능이었으나 지금은 재능만 있으면 누구나 익힐 수 있다는 설정을 짜긴 했지만….

       

       구체적인 마법 시스템까지 생각해 두진 않았다. 그런 건 쓰다 보면 얼마든 바뀌는 거라 미리 정해둘 필요가 없거든.

       

       그래서 더 궁금하다. 설정의 공백을 이 세상은…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채워 넣은 걸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베니의 말을 기다렸다.

       

       “응. 마탑이 서클 체계를 사용하니, 다들 서클 마법이 전부인 줄 아는데…사실 서클 마법이 진짜 근본 없는 마법 체계거든?”

       

       세상에. 판타지에서 마법은 서클로 구분하는 게 국룰 아니었단 말인가.

       

       그런 부분까지 명시해 설정하진 않았지만, 내 무의식이 반영된 결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어진 베니의 설명을 듣고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 마법은 기적의 영역이었어. 하지만 마법의 신이 죽고 그 힘은 모두의 것이 됐지. 마나 감응력, 상상력, 연산 능력, 의지력 등등…재능만 있으면 누구나 마법을 쓸 수 있는 시대가 온 거야.”

       

       “네. 마법의 신이 죽기 직전에 발동한 최후의 마법이 자신의 권능을 대륙에 새겨 넣는 거라고 했었죠.”

       

       “맞아. 덕분에 아직까지 마법은 이어져 내려오고 있지만…기적이 아닌 기술에 가까운 형태가 되고 말았어.”

       

       기적이 아닌 기술. 그 말이 어쩐지 가시처럼 뇌리에 박혔다.

       

       “기적과 기술의 차이를 알아?”

       

       “…잘 모르겠네요.”

       

       “이것저것 복잡하긴 한데, 간단히 설명하면 이해의 차이야. 기적은 이해하려 들지 않아. 그저 받아들이고, 믿으며, 소망하는 거지. 그렇기에 가장 순수한 형태지만 선택받은 일부만 누릴 수 있는 힘이야.”

       

       “말 그대로 기적이네요.”

       

       “반면 기술은 달라. 원리를 이해하고, 자신의 손에서 재현하려 들거든. 결과물이 일정하고, 숙련되면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완전히 이론이 정립되기만 하면 훨씬 많은 이들이 누릴 수 있지만…거기에 신비는 없어. 틀을 넘어서진 못한다는 소리지.”

       

       기적은 간절한 마음과 의지에 반응해 훨씬 강력한 마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기술로서의 마법은 그게 불가능하다. 수식처럼 재료를 밀어 넣으면 정해진 결괏값이 나올 뿐.

       

       “서클이 바로 그 틀이고, 수식이야. 서클 덕분에 마법사의 수가 늘어나고 일반인들도 그 수혜를 누릴 수 있게 된 건 사실이지만…내가 원하는 건 그 너머에 있거든.”

       

       정해진 결과 그 이상.

       

       베니가 무엇을 바라는지는 안다. 직접 말하지 않았나. 자신과 동화된 그림자 괴물을 떼어내고 싶다고.

       

       세상에 불을 일으키는 마법은 있어도, 자신과 동화된 괴물을 분리하는 마법은 존재하지 않으니 비서클 마법에 몰두하는 것도 이해는 된다.

       

       조금 전에 말한 것처럼 단순히 마탑에 숙이고 들어가는 게 싫어서 그런 것도 있는 듯 하지만.

       

       눈을 반짝이며 베니를 향해 한 걸음 다가갔다.

       

       “베니. 그럼 베니는 무슨 마법을 쓰시나요? 서클 마법이 아니라는 건 제가 흔히 떠올리는 종류의 마법이 아니라는 소리죠?”

       

       “…뭐어. 어차피 한 번쯤은 보여줄 생각이었으니까 너무 보채지 마. 그보다 지금은 네가 먼저야.”

       

       “저용?”

       

       “응. 이번에는 제대로 마법을 사용해서 싸워봐. 위력이 부족한 건 알아. 마법만으로 쓰러뜨리라는 말은 안 할게. 그냥 어떤 식으로 전투에 마법을 쓰는지가 보고 싶을 뿐이니, 무리할 필요는 없어.”

       

       “으음. 알겠어요. 다음 몬스터는 그래볼게요.”

       

       고개를 끄덕이고는 미궁 탐사를 재개했다.

       

       

       

       

       ***

       

       

       

       시각이 퇴화해 탁하게 물든 눈동자와, 그 안쪽의 뇌를 갓 구워 따끈따끈한 코볼트 대가리.

       

       그 주둥이 부분을 들고 쪼르르 달려갔다.

       

       “짠! 선물이에요!”

       

       “아잇! 왜 자꾸 대가리를 잘라 오는 거야! 필요 없다니까!”

       

       “무슨 소리예요. 베니 선물이 아니라 그림자 선물인데.”

       

       “……?”

       

       “어휴. 그거 자의식 과잉이에요. 누가 마법사 아니랄까 봐.”

       

       “끄아앙!”

       

       혀를 쯧쯧 차자, 베니가 위협적으로 울부짖으며 발을 콩콩 굴렀다.

       

       새끼 고양이 수준의 위협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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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cha Addict in a Matriarchal World

Gacha Addict in a Matriarchal World

남녀역전 세계의 가챠 중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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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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