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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3

       “부국장님, 경매가 시작됐어요.”

        “동향은 어떻지?”

        “유래 없을 정도의 인파가 시스테인 파크에 붐비고 있어요. 암표 가격은 전 회차 대비 여섯 배는 뛰었고요.”

        “정체를 위장하고 티켓을 구한 이들까지 포함하면 악의의 층에 버금갈 정도로 많은 학파가 참여한 게 분명해요.”

       

        샬롯과 엔의 보고가 끝나자 시스테인 파크 제 2 보호소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겉으로는 미아 보호소로 위장하고 있지만 실상은 치안부의 거점이었다.

        그것을 증명하듯 캐비넷 안에는 낡은 창 한 자루가 들어 있었다.

        클락의 범죄행위에 대한 유일한 증거품을 바라본 첸돌은 지끈거리기 시작한 눈두덩이를 매만졌다.

       

        “악의의 층이라…… 하, 그럼 사실상 전부로군.”

       

        이 사태가 어째서 이렇게까지 크게 번졌는지 어이가 없을 지경.

        비록 세계선을 붕괴시켰다는 혐의를 받고 있긴 하지만, 분명 해주학파라는 죄목으로 잡아넣은 클락이었다.

        출신 말고는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은 잡범 중의 잡범이란 뜻이다.

       

        그러나 단 7일만에 미궁의 악마를 풀어 B동을 초토화시키고.

        지상으로 나와 가두행진을 통해 대학원생들의 왕으로 떠받들어지는 지금.

        그의 존재는 어느새 마탑의 존폐를 위협하는 거대한 악 취급을 받고 있었다.

       

        “그중 실제로 경매에 참여하려는 의지가 있는 이들은?”

        “저희가 확인한 바로 직접 제안을 던진 쪽은 둘뿐이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더 많겠죠. 마법사란 한 줌의 지식을 얻기 위해서라면 악마에게 영혼을 팔 수도 있는 자들이니까.”

       

        단순한 호기심에 구경 차 온 이들이 대부분이겠지만 개중에는 진지하게 클락을 영입하려는 학파들도 있었다.

        다수의 마법사들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하기 시작한 그의 존재는 분명 일단 취해두는 것만으로 쓸모가 있었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클락을 놓치게 되면 이후에는 행적이 묘연해진다는 것.

        마탑에는 아직도 수많은 미개척지역이 즐비해 있고, 익명으로 참여하는 경매에 낙찰자를 추적하는 일은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었다.

       

        “죄송해요, 전부 저희 탓이에요.”

        “그놈을 가만히 놔두는 게 아니었는데…….”

        “아니, 애초에 대형 학파들의 압력에 굴복한 내 잘못이다.”

       

        말끝을 흐리는 쌍둥이의 눈에 무력감이 차올랐다.

        허나 그녀들의 잘못이 아님을 첸돌은 알았다.

        만약 클락이 30층을 붕괴시켰다는 혐의를 입증할 수 있었다면 처음부터 B동에 입소시켜 경매에 나갈 수 없는 신분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창끝에 묻은 마력이 수상하긴 하지만 여죄를 확정짓기에는 부족했다.

       

        그 사이 대학원에서 사악한 술수를 통해 범접할 수 없는 존재로 자라난 클락에게 완벽하게 패배한 것이었다.

       

        “녀석이 평범하게 경매에 나갈 거란 생각을 버렸어야 했어.”

       

        경매가 시작된 이상 더는 막을 방법이 없었다.

        유일한 단서라곤 그에게서 압수한 한 자루의 창 뿐.

        치안부의 손에서 보란 듯 빠져나가기 직전의 클락을 어떻게든 잡고 싶었던 세 사람이 머리를 쥐어짜내던 순간.

        문이 열리며 두 명의 여자가 들어왔다.

       

        “저, 실례합니다.”

        “죄송하지만 지금 이곳은 운영 중이지 않습니다.”

        “미아를 맡기시려면 와플 가게 뒤편에 제 1 보호소가 있으니 그쪽으로 가주시겠어요?”

       

        신성학파의 신의를 입은 여인과 눈을 감고 있는 작은 소녀를 본 샬롯과 엔은 능숙하게 대처했다.

        오늘만 해도 몇 차례인가 똑같은 아이가 맡겨져 왔기 때문이었다.

       

        “어머니 어머니, 여기가 맞아요.”

        “정말인가요 릴리아?”

        “네, 하늘에 계신 자애로우신 분께서 제 기청에 답하신 바에 따르면…….”

       

        그러나 두 사람 중 아이로 보이는 쪽이 캐비넷에 들어있는 낡은 창을 가리키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사악한 존재의 피를 닦아내는 것만이 심연의 절대자가 어둠 속으로 영원히 자취를 감추는 것을 막을 수 있어요.”

       

        그녀의 눈에는 신성학파의 순혈 마법사만이 가지고 있는 ‘영원한 영광’이 깃들어 있었다.

       

       

       

        *

       

        경매가 시작되자 직원 하나가 내려와 우리를 차례로 호명했다.

        바로 위층에서는 경매사가 대학원생들의 이력을 소개하며 분위기를 띄우고 있었다.

        철창 안에 있는 대학원생들은 언제 자신의 이름이 불려올까 긴장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 다음 순서는 점성학파 출신의 4위계 마법사입니다. 죄목은 ‘공연음란죄’인데 좀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네요. 치안대에 적발될 당시 변신 마법으로 수인인 상태여서 훈방조치로 끝날 뻔했지만 상습범이라는 증언이 들어와 A동에 수감되었다 합니다.

       

        — 단순한 학업 스트레스겠죠, 하하. 지금은 교화 프로그램에서 좋은 친구들을 사귀며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자, 20골드부터 시작합니다…… 말씀드린 순간 25골드! 아, 또 다시 27골드 나왔습니다!

       

        평소였다면 나 역시 귀나 후비며 언제 내 차례가 오나 따분하게 기다리고 있었겠지만…….

       

        의외로 바쁜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크흑, 왕이시여…… 빌어먹게 신세 많이 졌습니다!!!”

        “다음부터는 제가 알려드린 곳에서만 욕구를 풀도록 하세요. 그간 즐거웠습니다 다니엘.”

       

        바닥에 머리를 박은 대학원생을 일으켜 위치노트 한 권과 2층에 있는 비밀 통로의 지도를 건네주었다.

        그는 끝까지 내게 감사를 표하며 화려한 무대 위로 올라갔다.

        수인 게시판에 있는 ‘좋은 친구들’도 소개시켜줬으니 이전보다 잘 지내겠지.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이 들었던 이들을 차례로 배웅하고 나니 이제 나를 포함해 남은 이들이 몇 없었다.

       

        처음 여기 올 때만 하더라도 흉악한 범죄자들 사이에서 벌벌 떨지나 않을까 걱정했는데.

        알고 보니 다들 순박한 친구들이어서 나름 즐겁게 지낼 수 있었던 것 같다.

       

        — 주ㄷ닥이 ㅈㅔ일 ㅇㅏㄱ질ㅇㅣ라ㅅㅓ 그ㄹㅐ

       

        고장난 핑계로 일주일동안 쉬었으면서 시급은 따박따박 받아갔던 너만 할까.

        여기서 나가면 살살이에게 일감을 몰아줄 새로운 기능을 갤러리에 추가할 것이다.

        한동안 두발 뻗고 자고 있을 마리엘도 전보다 두 배로 괴롭혀야지.

       

        애꿎은 파딱들에게 피의 복수를 다짐하던 도중, 드디어 내 차례가 찾아왔다.

        직원이 다가와 대학원생들의 논문 필사본으로 이루어진 계단 아래에 무릎을 꿇고, 옥좌에 앉은 나를 향해 지금 올라가야 한다고 말했다.

        부랴부랴 짐을 챙기자 때마침 경매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조금 전까지 쿵쿵대던 위층의 진동이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 드디어 이번 경매의 하이라이트입니다. 감히 이곳에 앉아계신 숙녀분들 중 이 자를 직접 보기 위해 걸음하신 분들이 제법 계실거라 단언합니다!

       

        — 제국의 더러운 이면에 언제나 이름을 올렸다는 극악무도한 범죄자들, 훗날 검은별이라 불리는 대륙 최악의 범죄 집단의 탄생의 한 획을 그은 해주학파 출신의 대학원생!

       

        — 마탑 역사에 전무후무한 시련의 붕괴를 초래하고, 지금껏 두 발로 걸어나온 자가 없다는 지하 미궁의 B동을 맨손으로 올라온 극악무도한 괴물!

       

        — 그를 붙잡기 위해 투입된 예산과 인원만 해도 어지간한 대형 학파에 버금갈 정도! 그 걸음이 닫는 곳마다 절규와 비명이 터지며 한 손에는 인간의 가죽을 무두질한 마도서를, 다른 한 손에는 자신을 따르는 노예들의 목줄을 굳게 움켜쥔 자!!

         

        — 정체불명의 저주술사가 지금 모습을 드러냅니다!!!

       

        뭔가 소개가 이상한데?

        나 말고 오늘 경매에 나오는 해주학파 출신 마법사가 더 있었나?

       

        “저기…… 저 말고 다른 사람 부르는 것 같은데요?”

        “아아아아뇨, 높으신 분을 일컫는게 맞습니다……!!”

       

        아직도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직원에게 말을 걸었지만 그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빨리 올라가야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아무래도 사람을 착각한 것 같은데, 나름 이름있는 경매의 진행이 이런 식이라니.

       

        하는 수 없이 나는 가면을 쓰고 어두운 계단 위로 올랐다.

        쨍한 조명에 눈에 직격으로 꽂히며 경매가 진행되는 무대의 모습이 드러났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강의실보다 몇 배는 화려한 장식을 두른 인식저해마법이 둘러진 수많은 좌석들이었다.

       

        “진짜 나왔어……!”

        “세상에, 저게 그……?”

       

        입찰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이쪽에서는 보이지 않았기에 다소 걱정이었다.

        주최측의 실수로 이름은 모르는 다른 흉악범 대신 올라왔기에 모르고 지나쳐버릴 수도 있었다.

       

        “저주다! 저주를 쓰려나 봐!”

        “저 정도 되는 저주술사에게 마장을 안 뺏어도 되는 건가?”

       

        나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살살이를 흔들자, 이곳저곳에서 탄식과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동시에 예민한 청각이 객석에서 익숙한 목소리들을 가려냈다.

       

        “흐암, 여기 메뉴판 하나만 가져다 주겠나?”

       

        왼쪽 출구 근처에서 하품을 하는 아녜스.

        마법제 때 먹지 못했던 팝콘을 주문하고 있다.

        해주학파에 낙찰된다면 사실상 경매 수수료만 내고 자유의 몸이 되는 것이었다.

        별도의 수속도 필요하지 않아 처음부터 내가 노린 작전이기도 했다.

       

        “마차가 준비되는대로 우린 위로 올라가지.”

        “너무 이목을 많이 끈 것 같으니 최대한 조용히 빠져나간다”

       

        오른쪽의 맨 뒷좌석에서 수근거리는 칼레이도스의 마법사들.

        상층에서 주로 활약하던 실력자들인지 공략대나 시련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내게 그렇게 호의적이진 않지만 저들을 에게 낙찰받는다면 그 수수료마저도 아낄 수 있었다.

        메릴린은 나를 좋게 보고 있으니 어느 정도는 믿을만 했다.

       

        “쓰자. 응, 무조건 쓰자…….”

       

        마지막으로 일어서서 손을 뻗으면 목덜미라도 잡을 정도로 가장 가까운 앞줄에 앉은 시엔.

        좀 상태가 이상해 보이는데다 얘한테는 빚을 지면 말 그대로 잡혀살 것 같다.

        근데 장막 아래로 슬쩍 드러나는 연분홍빛이 도는 복사뼈를 보면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여러모로 고심하던 와중 경매사가 마이크를 잡고 입찰이 시작되었다.

       

        “자, 그럼 지금부터 입찰을 시작하겠습니다! 시작가는 똑같이 20골드부터…….”

        “이백만 골드.”

        “네?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 들은 것 같은데 다시 한 번만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그리고 끝은 순식간에 찾아왔다.

       

        “이백만 골드에요.”

        “꺄아아악!! 비나 너 미쳤어!!?”

       

        좌석 정 가운데서 크리스티나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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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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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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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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