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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3

       

       

       “아르테, 일어나봐. 아르테.”

       

       “쌔액···. 쌔액···.”

       

       “···아르테? 아르테?”

       

       

       들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 나를 깨우고 싶어 하는 목소리였다.

       

       졸려 죽겠는데 자는데 사람을 깨우고 그래.

       

       짜증이 치솟아 몸을 뒤척였더니 목소리가 사라져 기분이 좋아졌다.

       

       딱딱하지만 따뜻하고 부드러운 베개가 내게 안정감을 가져다주었다.

       

       만족감에 미소를 띠며 안는 베개를 찾아 주변을 더듬거렸지만, 내 손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이상하다. 분명히 주변에 있어야 할 텐데.

       

       

       “말을 걸면 어떡해요?! 그럴 때는 조용히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는 거예요!”

       

       “···그래도 슬슬 다리 아픈데.”

       

       “사랑하는 님을 위해 그런 것도 못 해요?!”

       

       “사랑이고 자시고, 벌써 네 시간 째야.”

       

       “쉿. 깨겠어.”

       

       

       있어야 할 베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당황하던 찰나 다시금 들려오는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또다시 항의의 표시로 몸을 뒤척이려던 찰나. 목소리의 내용에 의문을 가진 나는 잠깐 멈칫했다.

       

       ···다리?

       

       어라. 그러고 보니 내 집에 이런 딱딱한 베개가 있었던가.

       

       없었을 텐데?

       

       

       “···다행히 깨지는 않았네. 좀 자게 내버려 둬, 유시우. 피곤해 보이잖아.”

       

       “알았어, 알았어. 그냥 어제의 일에 관련해서 조금 묻고 싶었을 뿐이야.”

       

       “그건 나중에 해도 괜찮으니까. 일단 더 자게 내버려 두자고. 정말 피곤했던 모양이니까.”

       

       

       더 자게 내버려 두자는 아멜리아의 목소리에 도로시와 시우가 수긍했다.

       

       하지만 이미 늦어버렸는걸.

       

       내 잠은 달아난 지 오래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더 자고 싶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도대체 내가 왜 이 세 명 사이에서 자고 있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자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각해보기로 했다.

       

       으음, 어디 보자.

       

       밤에 잠이 오질 않아서 결국 밤을 새웠고.

       

       아카데미에 등교하지 않을 수는 없어서 억지로 일어나 집을 나섰지.

       

       휘청거리고 있자니 하율과 라이라가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고 있었던 것도 기억났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아카데미에 도착하자 무언가 대화를 나누던 유시우와 아멜리아를 발견했었지.

       

       유시우를 보자마자 내가 무슨 생각을 했었던 것 같은데.

       

       잠을 자지 못했던 건 온기가 없었기 때문이었지.

       

       그리고 어제 유시우의 품에 안겨있었을 때는 분명히 따뜻했어.

       

       분명 그런 생각을 했었고, 그리고···.

       

       얼굴이 천천히 달아오르기 시작하는 게 느껴졌다.

       

       모든 게 기억나버렸다. 내가 왜 여기서 자고 있는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전부.

       

       미, 미, 미친 거 아냐···?!

       

       지금 머리에 베고 있는 거, 분명 다리라고 했었지.

       

       아멜리아와 도로시의 다리는 아니다. 그 둘은 이렇게 딱딱할 리가 없으니까.

       

       그렇다면 남은 건 한 사람.

       

       다리가 아프다며 불평을 내뱉던 사람. 그 사람뿐이다.

       

       

       “잘 자네.”

       

       “밤을 새웠다고 했잖아. 그야 잘 자겠지.”

       

       “그런가? 그래도 다행이야. 아르테가 멀쩡한 것 같아서.”

       

       

       내가 깨어났다고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선생님들마저 내가 자는지 깨어있는지 판단하기 힘들어하니까.

       

       이런 상황에는 참 편하단 말이지.

       

       

       “그런데, 정말 사실인가요? 그 이야기.”

       

       “믿기 힘들면 믿지 않아도 괜찮아. 터무니없는 이야기라는 건 우리도 잘 알고 있으니까.”

       

       “아뇨. 믿을게요. 이런 이야기로 장난을 칠 사람들은 아니라고 믿고 있으니까요.”

       

       “그거 고맙네.”

       

       

       작게 한숨을 내쉰 도로시가 중얼거렸다.

       

       

       “아르테 양이 사실 아라크네의 일원이며, 아카데미에서 여러 사건을 벌여왔다. 믿기 힘든 이야기예요.”

       

       “믿기 힘들면 지금이라도 듣지 않은 척해도 괜찮아.”

       

       “아뇨, 믿어요. 확실하게.”

       

       “왜 그렇게 확신하는 거야?”

       

       “봤거든요. 아르테 양이 사람을 죽이는걸.”

       

       “···뭐?”

       

       

       순간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킬 뻔했다.

       

       ···봤다고? 내가 사람을 죽이는걸? 언제?

       

       

       “기억나시나요, 시우 군. 그 위버멘쉬의 용. 바람을 다루던 그 사람이요.”

       

       “···그래. 평생 잊을 수 없을걸.”

       

       “저도 그래요. 왜냐하면 그 사람, 제 눈앞에서 죽었으니까.”

       

       

       도로시의 말에 그제야 깨달았다.

       

       성장의 기미도 보이지 않던 유시우가 어째서 그 용을 그토록 밀어붙였는지.

       

       어째서 한 번의 공격 이후에 쓰러지듯 기절해버렸는지.

       

       도로시의 강화를 받았었구나.

       

       어떻게? 어디에서?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이미 한참 전에 지나가 버린 일이니까.

       

       

       “아르테는 그 사람을 순식간에 죽여버렸어요. 완벽한 기습이었죠.”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는 걸까.

       

       도로시의 목소리가 살짝 떨려왔다.

       

       

       “저는 그때 나올 수 없었어요. 사람이 죽는 모습을 처음 보기도 했고, 두려웠으니까.”

       

       “···그거, 죽인 사람은 불명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불명이죠. 아르테가 밝히지 않았으니까요. 아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에요. 아르테는 환희에 차 있었어요.”

       

       “환희?”

       

       “네.”

       

       

       도로시는 자신이 보았던 기억을 다시 한번 되짚어보고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은 환희였다.

       

       

       “인형 주제에, 너는 건드리면 안 될 사람을 건드렸다.”

       

       “···그건.”

       

       “아르테가 한 말이에요. 인형 주제에 사람을 건드리다니. 뭐 그런 이야기였죠.”

       

       

       시우와 아멜리아는 깨달았다.

       

       어째서 도로시가 자신들의 말을 믿었는지.

       

       이미 직접 보았던 거다.

       

       아르테가 인형과 사람 운운하던 모습을.

       

       

       “···그런데 도로시. 그걸 왜 이야기하지 않은 거야?”

       

       “네?”

       

       “지금껏 너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는 듯 지내왔잖아. 아르테와도 친하게 지냈고.”

       

       

       그래. 나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도로시가 그 모습을 보았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어.

       

       평소와 같이,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는 듯 평소와 같이 행동했으니까.

       

       

       “그걸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다···.”

       

       “사람을 죽였다. 물론 잘못된 일이죠. 하지만 친구를 죽이려던 빌런을 죽인 것마저 잘못되었을까요?”

       

       

       도로시는 언제나처럼 우리를 대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소와 같이.

       

       하지만 그녀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때로는 친구의 치부를 덮어주는 것도 중요한 법이랍니다.”

       

       “···그래, 그랬구나.”

       

       

       이제는 완전히 잠이 달아난 채로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도로시도, 아멜리아도, 유시우도 모두 나를 믿고 있었다.

       

       나를 친구라고 여겨주며 내가 한 행동을 정당화하고, 나를 믿어주고 있어.

       

       그런 사람들을 믿지 못하는 건 오직 나 한 명뿐이다.

       

       시우를 제외한 나머지는 오직 인형일 뿐이라며 스스로를 자위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르테 양을 도와주기 위한 열쇠는 당신이에요, 시우 군.”

       

       “···나?”

       

       “네. 당신밖에 없어요. 아르테 양이 인간이라고 여기는 건.”

       

       

       거기까지 들켜버렸구나.

       

       아멜리아처럼 확실한 캐릭터성이 없다고 여겨 그저 평범한 서브히로인이라고 여겼는데.

       

       

       “인형 주제에 인간을 공격했다. 아르테 양은 그렇게 말했거든요. 즉, 아르테 양은 세상 사람을 모두 인형으로 바라보고 있어요. 당신을 제외하고.”

       

       “···.”

       

       “그렇게까지 생각하게 된 이유까지는 모르겠네요. 그녀가 말하는 사람과 인형의 경계도 모르겠고.”

       

       “나도 그래. 거기까지는 파악하지 못했어.”

       

       “만약 그녀가 더 이상 죄를 저지르는 걸 막고 싶다면, 다른 사람들을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해야 할 거예요. 힘들겠지만.”

       

       

       그래야만 사람을 상처입히는 것을 주저하게 될 테니까요.

       

       도로시는 그렇게 말하고는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너, 눈썰미 좋다?”

       

       “마법사니까요. 이 정도의 통찰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아, 그거. 그냥 주문 같은 거 아니었어?”

       

       “주문 맞아요. 그냥 기분만 조금 내는 거죠. ···그래도, 약간 마법사처럼 보이지 않았나요?”

       

       “그래요, 마법사님.”

       

       “헤헤.”

       

       

       그들은 나를 생각해주고 있었다.

       

       도로시도, 아멜리아도. 나를 친구라고 여기며 나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알고 있어. 모를 리가 없지.

       

       이 정도로 나를 생각해주는 친구는 이 세계로 납치당하기 전에도 없었으니까.

       

       이 짧은 시간 사이에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이 이렇게 많아졌다는 게 신기할 지경이야.

       

       ···하지만 믿을 수 없었다.

       

       그야, 언제 배신할지 모르잖아.

       

       만약 작가님이 저 두 명의 설정을 바꿔버린다면?

       

       소설의 전개를 위해 새로운 악의 세력을 등장시키고, 사실 도로시가 조직의 스파이였다는 설정을 넣어버린다면?

       

       지금 이 대화마저도 거짓말이 되어버린다.

       

       나를 생각해주던 도로시의 걱정들이, 우리를 속이기 위해 하는 연기가 되어버려.

       

       그렇기에 믿을 수 없다. 그렇기에 마음을 닫는다.

       

       굳게 닫은 빗장 사이로 파고들기 위해 달려드는 감정을 억누른다.

       

       오직 믿을 수 있는 사람은 한 명.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

       

       작가님의 개변이 통하지 않는 시우뿐이다.

       

       아멜리아와 도로시는 친구다. 하지만 언제까지일까.

       

       작가님은 마음 내키는 대로 설정을 바꿔대지.

       

       아예 세계의 기본 설정을 바꿔버리기도 했어.

       

       평범한 아카데미가 있는 세상을 500년 전 게이트가 열렸던 세상으로 바꿔버렸지.

       

       언제 아멜리아와 도로시도 가벼운 마음으로 설정이 바뀔지 몰라.

       

       빗장을 파고들기 위해 문을 두드리던 감정을 모두 억눌렀다.

       

       역시 믿을 수 있는 존재는 단 한 사람.

       

       시우밖에 없었다.

       

       잠꼬대를 하는 척 시우의 품 쪽으로 약간 파고들었다.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요즘 글이 평소보다 잘 써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의욕을 되찾은 기분

    역시 답은 로맨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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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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