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이 그곳인가?”
“맞습니다.”
“소문대로 외진 산속이군.”
기사와 마법사들.
그 선두에 베하인 백작이 서 있었다.
“공작께서 심히 관심을 기울이고 계신다. 평민으로 알려졌다 하나, 모두 예의를 갖추도록.”
“명을 받듭니다!”
제국의 재무를 총괄하는 하르멘스 공작.
크리스라는 자에 대해 관심이 깊었다.
미래를 알 수 있고 각종 행운을 몰고 다니는 사람.
제국의 부를 한층 더 키워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베하인 백작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실패와 성공을 미리 알 수 있다는 것은 손실을 어마어마하게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니까.
크리스라는 자가 가진 잠재력은 무궁무진했다.
생각에 빠진 백작에게 마법사의 음성이 들려왔다.
“앞쪽에 거대한 마법이 펼쳐져 있습니다!”
“마법이라 하였느냐?”
마법사의 이마에서 땀이 쏟아져 나왔다.
느껴지는 마법의 수준이 굉장했기 때문이다.
“원래는 제가 눈치챌 수 없을 만큼 고난도의 마법입니다.”
“헌데, 어찌 알았다는 것이냐?”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 같습니다. 의도가 있는 듯합니다.”
실제로 느껴지는 마법의 분위기가 그러했다.
함부로 접근할 곳이 아니니 알아서 돌아가라는 듯 펼쳐진 마법.
하지만 이것을 어떻게 백작에게 그대로 보고할 수 있겠는가.
다행히도 그들은 곧 표지판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 마법사, 정령사, 기사 출입 금지. ]
“허어, 우리의 출입을 금한다는군.”
백작의 말에 곁을 지키던 기사가 빠르게 대답했다.
“백작님께서 가지 못할 길은 없습니다.”
아부성이 짙은 발언.
백작은 되려 화를 낼 뿐이었다.
“그대는 제정신인 것이 확실한가?”
“죄송합니다…!”
“파라몬님과 클로셀님께서 함께 한다고 알려져 있거늘…쯧쯧.”
백작이 한심하다는 듯 기사를 째려봤다.
수준 높은 마법이 펼처져 있다면 그것을 누가 시전한 것인지는 명백하지 않은가.
아스테르 클로셀.
해제할 수도 없는 마법이었거니와 해제해서도 안 되는 마법이었다.
그 두 사람의 눈 밖에 난다는 것이 보통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돌아간다.”
“하오나, 공작님의 명령은 어찌하실 생각입니까?”
“공작께서도 이해하실 것이다.”
안절부절못하는 기사.
하지만 백작의 입에서 나온 말에 금방 안정을 찾았다.
“제국의 귀족중에 두 분의 은혜를 입지 않은 사람이 있더냐?”
“없습니다.”
“두 분께서 오르고자 하였다면, 지금의 공작가는 클라우스와 아스테르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아는 사람은 전부 아는 사실이었다.
그들이 자신들의 몫을 희생하였기에 지금의 평화가 찾아왔다는 것을.
욕심을 내려놓은 진정한 영웅이 바로 그들이었다.
“두 분이 거절하신다면 돌아가는 것이 예의다.”
이윽고, 백작일행이 방향을 돌려 산길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돌아가는 길은 금방이었을 것이다.
중간에 그들이 만나기 시작한 행렬이 아니었다면.
“베하인 백작님을 뵙습니다!”
“그대는 기욜프 상단의 상단주 였던가?”
“기억해주시니 영광입니다.”
상단의 행렬을 살피던 백작이 상단주를 내려다봤다.
“크리스라는 자를 찾는 것인가?”
“그것을 어찌…?”
“그렇다면 돌아가라. 어차피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상단주의 안색이 안 좋아졌다.
백작 정도의 인물이 돌아가라고 한다면 돌아가야 했다.
귀족의 명을 어길 수는 없는 노릇이니.
길을 내려가던 백작은 기욜프 상단 말고도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마탑 소속의 마법사와 정령사.
경지가 높아 함부로 할 수 없는 이들까지.
심지어는 평민들도 끼어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백작의 기사 한 명이 부리나케 달려 나왔다.
“제국 내에 소문이 빠르게 퍼지고 있습니다. 그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아스테르 백작을 만나봐야겠군.”
***
제국의 국경까지는 워프마법을 이용했다.
하지만 이곳에서부터는 걸어가는 것이 좋을 듯싶었다.
점괘상으로는 그게 더 이득이었으니까.
드잔트까지 따라오는 바람에 북적해진 일행.
방울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다나?
그건 그렇고….
“루나님, 따라 해 보시겠습니까?”
“꺄륵!”
“알.루.어.드!”
“아우아우!”
“훌륭하십니다!”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다.
내 등 뒤에 따라붙어서 하루 종일 하는 말이 저거라니.
큰 충격을 받은 알루어드가 루나에게 이름을 알려주겠다며 저러고 있었다.
“제 이름은 알루어드입니다.”
루나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조!”
“종이 아니라, 알루어드입니다.”
“꺄륵.”
알루어드가 종이라고 불리게 된 계기는 간단하다.
지난번에 산 정상에 올랐을 때 교황아저씨가 한 말 때문이었다.
‘교황후보로 키웠더니, 도령의 종이 되었구나.’라며, 우스갯소리로 했던 말.
실제로 종을 치고 다녔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루나에게는 확실하게 ‘종’이라고 각인된 모양이지만.
“흐음…”
생각하며 걷던 나는 걸음을 멈춰 세웠다.
“왜 그러는가?”
“아이고, 내 팔자야…”
망신살이 단단히 뻗쳐 있는 남자 아이였다.
10살쯤 되었을까?
패가망신의 기운은 저 아이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아이의 부모때문에 생긴 것이다.
“부모를 다 잃었나 보네.”
부모의 업이 아이에게 고스란히 내려온 형국.
대충보니 집안에 아픈 사람도 있어 보였다.
“남일 같지가 않단 말이지.”
10살의 나이는 부모 없는 설움을 감당하기가 힘든 나이다.
집안에 아픈 사람이 있다면 더더욱.
“야, 알루어드.”
“예?”
“너 치료는 좀 하냐?”
“어디 가서 꿇리지 않을 정도는 됩니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망신살만 걷어내주면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을 아이.
힘들겠지만 타고난 성정이 약하지 않은 아이라 잘 헤쳐 나가지 싶었다.
“따라와봐.”
“옙!”
걸음을 옮겨 다가가니 아이의 얼굴에 의문이 생겨났다.
갑자기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거니 그럴 수도 있으리라.
“너 동생이 아프지?”
“….?”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몇 년 지났네?”
“크리스님, 그런 식으로 말하면 누구나 다 이상하게 봅니다.”
아이의 얼굴에 경계의 빛이 어리기 시작했다.
나는 알루어드의 등을 툭 치며 말했다.
“이놈이 신관이거든? 동생을 치료해 줄 수 있을 거야.”
“….”
“그것만 해결하면 살기가 한결 수월해 질 걸?”
슬금슬금 뒷걸음 질을 치던 아이가 알루어드의 복장을 보고는 조용히 말했다.
“아버지께서 모르는 사람의 도움은 함부로 받으면 안 된다고 했어요.”
“교육 잘 받았네.”
세상에 나쁜 사람이 많으니 그러는 편이 좋을 것이다.
우리 둘을 살피던 아이가 업혀 있는 루나를 보고는 표정이 풀어졌다.
“하얀 머리에 아기…?”
“음?”
“아저씨 혹시 이름이 크리스예요?”
이놈이 어떻게 내 이름을 알고 있을까?
분명히 또 소문이니 뭔지를 들은 것 같았다.
자꾸만 이상하게 소문이 퍼지고 있었으니까.
아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냥 비슷한 사람인가?”
아이의 경계를 풀 수 있다면 소문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나 맞는데?”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아이가 웃음을 흘렸다.
피식 –
“….?”
“기사님들 보다 체격이 크고 목소리도 엄청 멋있다고 그랬어요.”
“나 맞다니까?”
아이가 허리에 손을 올리며 한마디를 쏘아 붙였다.
“제가 어리다고 이런 거에 속을 줄 알아요?”
“진짜 맞는데?”
“그리고…”
이어지는 말에 알루어드마저 웃음을 터뜨렸다.
“크리스님은 그런 말투 안 써요.”
“풉…”
“나 크리스 맞다니까?”
이제는 슬슬 억울해지려고 한다.
“어휴, 이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아이 하나 구해 준다 치고 도와줘야지.
“어쨌든, 이놈이 신관이니까 데리고 가 봐. 일리아 교단 알지? 거기서 온 놈이야.”
“…저도 신관님 복장은 알아요.”
“알면 잘됐네.”
“… 전 돈이 없어요. 신관님에게 치료를 받으면 비싸다고…”
찌릿.
힘을 주어 알루어드를 째려봤다.
교단에서 얼마나 해 처먹었으면 아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는 말인가.
“너희 완전 개판이었구나?”
“아우…?”
“몇몇 신관들이 그랬을 뿐! 지금은 다릅니다!”
아이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높으신 신관일수록 가격이 비싸다고 들었어요…”
찌릿 –
“요,요즘은 그렇지 않단다! 신성력을 쓰는데 대가는 필요가 없어!”
계속 째려보고 있으니 알루어드가 아이를 달래기 시작했다.
“얼른 가보는 게 어떻겠니? 같이 가자꾸나.”
아이를 따라가는 알루어드.
그래도 처음 봤을때보다 훨씬 인간적이게 변했다.
‘나 성기사요’하고 갑옷을 껴입었을때 보다, 지금이 더 신관 답다고 해야 할까.
다시 돌아오니, 영감님들이 느끼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훌륭하군.”
“자네의 힘에 걸맞은 인성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네.”
낯간지러운 말이었지만,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내 몸주신이 어떤 신령님이신데….
신령님 부터가 아이가 다 클때까지 보호해주시는 분인데, 내가 그런 성향을 띄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인간치고는 그럴싸한 놈이군.”
클로셀 영감이 턱짓으로 앞을 가리켰다.
“저곳을 지나서 조금 더 가면 하르프 왕국의 국경일세.”
알고 있다.
안 그러고 서야 이렇게 삐딱한 기운이 느껴질리가 없으니까.
“국운이 기울었네, 기울었어. 벌써 팔자 꼬이는 게 보이네…”
그때, 기사와 병사들이 거리를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군.”
“제국의 국경이 소란스럽다니, 흔치 않은 일일세.”
이윽고, 흥미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거리의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말들이었다.
“오크가 국경을 넘고 있는걸 발견했다는군.”
“저번에도 있었지 않은가?”
오크가 나타났다면 당연히 가 봐야 하지 않겠는가.
영감님들 역시 같은 생각인 것 같았다.
“가시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