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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3

        

       집단 무의식.

       분석 심리학의 창시자이자 당대에 이름을 떨쳤던 마법사, 카를 융의 개념이다.

         

       카를 융은 상징학, 신화학, 연금술 등의 체계화된 학문을 통해 주술을 마법의 위치로 끌어내리기를 원했다. 체계화되지 않은 주술의 한 분야를 마법으로 만들고 널리 세상에 퍼뜨려 모두가 이롭게 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는 영혼과 관련된 주술에 큰 관심을 보였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마법적, 심리학적 지식을 이용해 영혼의 비밀을 풀기를 원했고, 혼과 백으로 영혼을 나누는 동양사상에서 벗어나 서구 자체의 독자적인 영혼 분류 체계를 확립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시도는 실패.

       영혼을 연구하기를 원했지만 정작 밝혀진 것은 정신에 관한 것이었다.

         

       아니마, 아니무스.

       페르소나.

       그림자.

       …

         

       하지만 그의 연구는 완전히 헛된 것은 아니었다.

       하나만큼은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집단 무의식.

         

       인류가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무의식 특징.

       만물의 공감이요, 인류 정신의 뿌리라고 불리는 개념이 그것이었다.

         

       이 집단 무의식은 얼핏 정신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나 안으로 파고들면 인간의 영혼이 가진 고유 성질에 관한 것도 포함이 되어있었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유전자와도 관련이 있는 것이었다.

         

       육체.

       영혼.

       정신.

         

       그 세 가지를 온전히 품은 인간들끼리 공유하고 있는 무의식적 경향.

       초월종도, 악령도, 악귀도.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저장소였다.

         

       “짜잔! 보물창고랍니다!”

         

       그리고 지금 그 저장소에, 두 명이 발을 들였다.

         

       “으! 느낌이 이상해요…. 온몸이 끈적거리는 것 같아요….”

         

       엘라는 허공에서 떨어지자마자 자신의 몸을 살펴보며 앓는 소리를 냈다.

       온몸에 점액이 달라붙는 듯한 느낌은 도저히 참을 수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건 꿈이고 네가 느낀 것은 착각이라 말하는 것처럼 그녀의 몸에는 그 어떠한 흔적도 남지 않았다. 끈적한 액체가 묻어 있긴커녕, 도리어 방금 목욕이라도 하고 나온 것처럼 온몸이 뽀송뽀송했다.

         

       여자는 인상을 찌푸리며 몸서리치는 엘라를 보며 배시시 웃었다.

         

       “본드로 목욕했다고 생각하세요~”

         

       그녀는 약을 올리듯 그렇게 말하며 엘라를 일으켜주었다.

         

       “와….”

         

       자리에서 일어난 엘라는 보이는 풍경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 완전, 완전. 꿈이네요….”

         

       꿈이라고밖에 보이지 않는 구조물이 가득한 풍경.

         

       거꾸로 서 있는 피라미드.

       뿌리로 걸어 다니며 가지에서 불을 뿜고 다니는 거대한 나무.

       떼를 지어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펭귄.

       수십 미터의 몸체로 뒹굴뒹굴 구르며 모든 것을 박살 내고 다니는 하프물범.

         

       혼란 그 자체였다.

         

       게다가 풍경만 이상한 게 아니었다.

       여자가 엘라의 손을 잡고 문으로 보이는 것만 통과하면 풍경이 휙휙 바뀌었기 때문이다.

         

       황량한 사막이 갑자기 얼음을 뿜어내는 화산지대로 바뀌고.

       거대한 운석이 유유히 여행하는 우주의 풍경으로 바뀌기도 했고.

       도시 크기의 뱀의 몸통 위에 서 있기도 했다.

         

       현실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을법한.

       말 그대로 몽환적인 풍경들.

         

       “어때요? 멋지죠?”

         

       여자는 가슴을 앞으로 쭉 펴며 엘라에게 물었다.

         

       칭찬이 필요하다, 반응이 필요하다.

         

       그렇게 온몸으로 주장하는 듯한 자세였다.

         

       “네, 네에…. 대단해요.”

         

       엘라가 떨떠름하게 그렇게 말하자, 여자는 화난 듯 양손으로 엘라의 얼굴을 붙잡고 말했다.

         

       “더 영혼을 담아서 말해줘용.”

         

       그 간곡한 부탁에 엘라는 외쳤다.

         

       “대단해요!”

       “더!”

       “엄청 대단해요!”

       “더!”

       “완전 엄청나요! 언니 최고!”

       “그래요! 그거예요!”

         

       반강제로 엘라에게 칭찬을 들은 여자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요! 여기가 얼마나 대단하고, 멋진 곳인데요! 아주 가끔밖에 못 왔지만, 제 삶의 낙이었답니다~”

       “삶의 낙이었…다구요?”

       “네에. 제가 눈이 있었나요, 귀가 있었나요? 오직 제 오락거리는 우리 이쁜 동생이 꾸는 꿈을 훔쳐보는 거랑~ 제 꿈에서 돌아다니는 것밖에 없었답니다. 아, 동생의 꿈이 재미없었다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뭔가 색다른 오락거리도 필요하잖아요~”

         

       엘라는 여자의 말을 천천히 듣고 있다가 무언가 걸리는 게 있었다.

         

       “제 꿈을 봤다고요?”

       “네에~어찌어찌 되더라고요.”

       “잠, 잠깐만요. 그. 혹시…?”

       “부끄러운 꿈 같은 건 제 기억 속에만 묻어둘게요! 약속!”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요!”

         

       엘라는 항의의 의미로 여자의 양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하지만 여자는 엘라의 온 힘을 다한 흔들기에도 뿌리 깊은 나무처럼 미동도 없이 선 채 그녀가 힘이 빠질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힘이 빠진 엘라가 손을 내려놓자, 항의 같은 것은 없었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어갔다.

         

       “그래도 꿈의 세계가 워낙 넓은지라 지루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한 번도 보지 못한 연못이 있는 게 아니겠어요? 그리고 그런 연못을 발견하면 당연히 뛰어들어야 하는 것이 상식이죠!”

       “그건 상식이 아니에요!”

       “새로운 콘텐츠는 참을 수가 없어요~ 이건 상식이에요. 아시겠어요?”

         

       상식?

       상식이란 뭘까?

         

       엘라는 여자의 당연하다는 듯한 말에 머리가 혼란스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미지를 찾아 떠나는 모험가처럼 연못으로 들어갔더니, 세상에! 수많은 사람의 무의식 파편이 모여 만들어진 장소가 있지 뭐에요? 난생처음 보는 광경과 처음 습득하는 정보가 가득한 공간. 완전 보물창고 같죠~?”

       “네에….”

       “그런 반응을 보이면 안 돼요! 완전 대단한 곳이라니까요~ 여기 여행하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데요~” 

       “그, 래요?”

       “으음. 가이드처럼 설명을 해주고 싶은데. 그래야 추억이 될텐데! 깰 때까지 시간이 얼마 안남은 것 같은데 이 언니는 너무 답답해요~!”

         

       이 장소의 대단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엘라가 답답한 듯 여자는 몇 번이고 엘라에게 설명했다. 하지만 아무리 설명을 해도 이해를 못 하자, 여자는 도움을 요청하듯 엘라의 뒤편에 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저는 설명을 잘 못 하겠어요~ 할아버지가 설명 좀 해주세용!”

       “네? 할아버지요?”

         

       그 말에 엘라가 고개를 돌려보자, 거기에는 정말 할아버지가 있었다.

         

       2m가 넘어 보이는 거대한 키.

       고목을 연상케 하는 빼빼 마르고 볼품없어 보이는 신체와 오직 국부 부위만을 천을 휘감는 것으로 가린 알몸이나 다름없는 몸.

       배꼽까지 닿는 기다란 하얀 수염과 밀어버린 듯 반질반질한 머리.

         

       기인이라는 느낌이 드는 노인이었다.

         

       “귀여운 아이들이구나.”

         

       노인은 바다를 보는 듯한 깊은 눈동자로 둘을 쳐다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더니 뿌드득거리는 소리와 함께 허리를 굽혔다.

         

       “하나는 자격이 있고, 하나는 자격이 있는 자와 동반을 했구나.”

         

       그는 살짝 긴장한 듯 여자의 손을 꼭 잡은 엘라를 보았다.

         

       “귀여운 아이야. 나는 설명을 하지 않을 것이다. 설명한다고 한들 이해를 하지 못할 것이고, 이해한다고 한들 이곳에 올 일이 없을 것이며, 이곳에 올 일이 있다면 이미 이해를 한 상태일 것이기 때문이다. 진리라는 것은 형체가 없는 것 그 자체인 것과 같아 규정하려 하면 그 순간부터 진리가 아니게 되기 때문이다.”

       “네, 네?”

       “오직 스스로 깨달아 품는 것이 진리라. 형체가 없다고 하면 형체가 없는 것이 될 뿐 지혜도 지식도 아니게 되니 이는 진리가 아니고, 규정하는 순간 형체를 이루며 진리에는 멀어지게 되니. 하여 나는 너에게 그 어떠한 것도 설명하지 않을 것이다. 오직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얻는 것만이 유일한 진리의 길이라.”

         

       여자는 뜬구름을 잡는 듯한 노인의 말에 애교를 부리며 다시 부탁했다.

         

       “그래도 설명해주세용~”

       “안된다. 물에 사는 것이 뭍에 사는 것에 설명한들 이해를 못 하듯, 숨을 쉬는 것이 숨을 쉬지 않는 것의 다름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듯. 지금 내가 무어라 말한들 저 아이에게는 왜곡된 지혜가 되고, 다른 지식이 될 것이니라. 이는 물고기에게 만트라를 읊어주는 것과 같은 것이니 나는 설명을 하지 않으리라.”

       “그럼, 아! 이거 드릴게용~ 해주세요!”

         

       여자는 노인에게 책을 내밀었다.

         

       『 인류 집단 무의식 네트워크(표면) 1회 접속권 – 사용 완료 – 』

         

       “이거 다른 분들도 받으면 좋아하던데~ 고행에 도움이 된다면서요? 이거 받고 해주세용!”

       

       노인은 책과 여자를 번갈아 보다가 고민하듯 수염을 쓰다듬더니 책을 받아들었다. 책은 노인의 손에 들리자 커다란 불꽃으로 변해 노인의 손을 태웠고, 노인의 피부를 타고 흐르며 그의 입속으로 쏙 들어갔다. 하지만 노인은 그런 것이 익숙한 듯 숨을 크게 들이쉬며 제 몸으로 들어오는 불꽃을 모조리 삼키고는,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잠시 눈을 감고 주언을 외우기 시작했다.

       불꽃이 감겼던 손에는 108개의 구슬로 만든 묵주가 있었는데, 묵주의 알 하나하나가 전부 불꽃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오-옴 부흐 부바하 스바하(ॐ भूर्भुवः॒ स्वः).”

         

       타아앗 사비투우울 브와아렌—야아아암—

         

       노인의 입에서 늘어지듯 주언이 흘러나왔다.

       불꽃을 공기로 억누르는 듯 무겁고 거대한 느낌의 소리였다.

         

       “바르고 데와스야 디이이이마히(भर्गो देवस्य धीमहि).”

         

       디요 요 나흐 프라조다야아-트(धियो॒ यो नः॑ प्रचो॒दया॑त्)

         

       옴(ॐ).

       오옴(ॐ).

       오오오옴(ॐ)——-

         

       노인은 몸을 떨며 가야트리 만트라의 낭송을 끝마쳤다.

         

       “귀여운 아이야. 너에게 귀한 것을 받았으니 너의 청을 들어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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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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