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Please report if you find any blank chapters. If you want the novel you're following to be updated, please let us know in the comments section.

EP.93

       당가는 은원을 잊지 않는다.

         

       그 말이 무림에서 유명해진 것은 그들의 독한 성정 때문이었다.

         

       그들은 오대세가라는 이름이 붙기 전부터 원한과 은혜를 중요시했다. 원한은 두 배, 세 배로 갚아야 직성이 풀렸으며 은혜 또한 자신의 마음이 편해질 때까지 해야만 했다.

         

       그런 그들의 성정으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당패다. 그것은 금, 은, 동 세 가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은혜를 베푼 이에게 건네준다.

         

       이 패를 지니고 당가의 문을 두드린 이는 은인으로 대접받는다. 각각의 패에 따라 그 정도가 달라지기는 하나, 가장 낮은 등급의 동패만 가져가도 아주 융숭한 대접을 받고 돌아갈 수 있다고 전해진다.

         

       ‘대체 이 자가 어떻게 당금패를?’

         

       동패와 은패는 뜸하다 싶을 때면 한 번씩 지니고 찾아오는 이들이 있다. 무림행을 나선 당가의 방계 혈족들이 은혜를 입고 건네준 개수가 적지 않았기에.

         

       허나, 금패는 다르다. 애초에 몇 안 되는 직계 혈족에게만 수여되며, 그들에게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커다란 은혜를 입혀야만 얻을 수 있으므로.

         

       은과 원의 가치를 아주 세밀하게 따지는 당가 혈족의 특성상, 그들의 품에서 금패를 꺼내들게 만든 이는 당가의 역사를 뒤져보아도 채 열이 되지 않았다.

         

       요컨대, 평생 당가의 식솔로 살아가면서 한 번을 볼까 말까한 물건이라는 것이다.

         

       “어라, 고개가 빳빳하네.”

         

       백우진이 넌지시 읊조리자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당금패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던 경비 무사들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허리를 숙였다.

         

       “다, 당가의 은인을 뵙습니다!”

         

       깍듯하다 못해 비굴하다 느껴질 정도의 인사. 허나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다.

         

       앞으로 그 두 사람의 운명은 눈앞의 사내에게 달려 있는 것과 다름없게 되었으니 지금은 자존심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문 열어.”

       “예, 옛!”

         

       꼬나쥐고 있는 창도 옆으로 던져놓고 달려간 이들이 대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그러자 지난번에 보았던 백일조장 당호근이 비딱하게 서서 불퉁한 시선으로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당금패는 어디서 나신 거요.”

         

       그의 물음에 백우진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당금패 가져온 사람은 그런 거 일일이 다 설명해야 하냐?”

         

       다짜고짜 훅 들어온 반말에 위계질서를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당호근의 얼굴이 분노로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이노옴! 감히 반말을…!”

         

       백우진은 별말 없이 당금패를 쥔 손을 주욱 내밀었다.

         

       “치게?”

       “으으읏…!”

         

       그는 속으로 분을 삭였다. 그가 당금패를 쥐고 있는 이상 자신에게 위해를 가할 정도의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 어떤 식으로도 건드릴 수가 없다.

         

       당금패를 쥔 이는 가문의 은인으로 삼아야 한다. 그것이 당가에 전해져 내려오는 율법이다.

         

       은원을 그 무엇보다 소중히 하는 당가에서 이를 어긴다면 그 미래는 불 보듯 뻔했다.

         

       순식간에 꼬리를 내린 그를 보며 백우진이 선심 쓴다는 듯, 어깨를 두드리며 말해주었다.

         

       “걱정 마, 아주 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받았으니까.”

         

       완전히 아랫사람 대하는 듯한 태도에 다시 한번 혈압이 치솟았지만, 가까스로 참아냈다.

         

       “원래 있던 객당에서 그대로 머물 거야. 혹시 내 이름으로 서찰 같은 거 오면 바로 가져다 주고.”

       “예, 알겠습니다!”

         

       제대로 각이 잡혀 소리치는 경비 무사들.

         

       백우진은 그중 왼쪽에 있는 이를 빤히 쳐다보다가 이내 당호근을 향해 넌지시 말을 건넸다.

         

       “저 왼쪽 녀석 말이야.”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경비 무사의 얼굴에서 땀이 주르륵 흐르기 시작했다.

         

       백우진은 그를 향해 걱정 말라는 듯 자애롭게 웃어주었다. 그 넉넉하고 여유로운 미소에 경비 무사의 얼굴에 가득 차오른 긴장이 완화될 즈음이었다.

         

       “저놈 저거 아주 싸가지가 없어. 당가 무사라기엔 예절 교육이며, 무력도 아주 모자란 것 같아.”

       “그으… 렇습니까.”

         

       살기등등한 당호근의 두 눈이 이미 사색이 되어버린 경비 무사에게로 향했다.

         

       ‘잘 걸렸다, 이 새끼!’

         

       그에게는 제물이 필요했다. 이 끓어오르는 화를 잠재워줄 수 있는 제물이. 그리고 지금 그 제물을 찾았다.

         

       “그럼 난 갈 테니까 다들 수고해!”

         

       아침에 했던 다짐을 지키는 데에 성공한 백우진이 희희낙락한 걸음으로 멀어져갔다.

         

       당가는 은원을 잊지 않는다고 했던가.

         

       백우진 또한 마찬가지였다.

         

         

       * * *

         

         

       “그놈이 당금패를 들고 당당히 들어왔다…?”

       “그, 그렇습니다.”

         

       당금패를 가진 이가 나타났다는 소식과 그로 인한 대문 앞에서의 작은 소란에 대한 이야기가 당연신에게 빠짐없이 전해졌다.

         

       당가 역사 속에서도 몇 없다는 당금패의 주인이 되었다라.

         

       “그 아이가 내준 것이겠지.”

       “아마도 그렇겠지요….”

         

       당금패를 지닌 직계 중에서는 오직 당선영만이 그를 알고 있으니 다른 선택지는 생각도 할 수가 없다.

         

       “선영이는 지금 어디에 있나.”

       “심처에 있습니다.”

       “당장 가주전으로 오라 이르게.”

       “예.”

         

       고개 숙인 총관이 밖으로 나서고 잠시 후.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들어오거라.”

         

       문을 열고 들어온 당선영이 제법 당찬 걸음으로 그의 앞에 섰다.

         

       “앉거라.”

         

       말없이 다소곳하게 앉은 그녀를 바라보던 당연신이 다짜고짜 물었다.

         

       “네가 당금패를 녀석에게 주었느냐.”

       “네.”

         

       그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당금패가 그리도 하찮은 물건이더냐. 네가 좋아한다고 아무렇게나 줄 정도로 말이다.”

         

       노기를 띤 음성에도 그녀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차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또한 당금패에 담긴 당가의 역사를 알고 있어요.”

         

       아래쪽으로 향해 있던 그녀의 시선이 당연신의 두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단언컨대, 저는 당금패를 함부로 주지 않았어요.”

       “허.”

         

       한 치의 흔들림 없는 대답에 오히려 당연신이 당황하고 말았다.

         

       “네가 그 녀석에게 목숨을 빚지기라도 했느냐?”

       “네. 백 공자가 제 목숨을 한 번 구해주었어요.”

       “뭐라?”

         

       당선영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를 돕기 위해 따라나선 조별 과제에서 태백호를 만나 죽을 뻔했던 일들에 대해.

         

       이를 조용히 듣고 있던 당연신이 이야기가 모두 끝난 후에 반문했다.

         

       “허나, 그것은 결국 녀석을 도우려다 벌어진 일이 아니더냐.”

         

       가볍게 물고 늘어지는 말에 당선영이 눈을 치켜세우며 대답했다.

         

       “당가는 은원을 잊지 않는다.”

       “…….”

         

       일의 발단이야 어떻든 그가 목숨을 구해준 것은 사실이다. 당가는 그 은혜를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짚어내자, 당연신은 입을 꾹 닫았다.

         

       “그래, 알았다. 이만 돌아가거라.”

         

       당선영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은인을 뵙고 오도록 허락해주세요. 당금패를 건넨 장본인이 얼굴도 내비치지 않는다면 그만한 무례가 또 어디 있겠어요.”

         

       들어주기 싫은데 하나 같이 맞는 말들 뿐이다. 당연신은 쿡쿡 쑤시기 시작한 관자놀이를 살짝 누르며 손을 내저었다.

         

       “마음대로 하거라.”

       “그럼 이만 실례하겠어요.”

         

       마지막까지 기품을 잃지 않고 세련된 동작으로 인사를 올린 후 가주전을 나선 당선영은 느긋한 걸음으로 복도를 거닐었다.

         

       한 걸음, 두 걸음.

         

       가주전에서 멀어질수록 그녀의 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여유와 기품이 넘쳐 흐르던 얼굴에는 다급함만이 감돌았다.

         

       끝에 다다라서는 거의 뛰다시피 하여 객당에 도착한 그녀는 일언반구 말도 없이 장지문을 열어젖혔다.

         

       그곳에는 술을 얼마나 마신 건지 얼굴이 붉게 물든 백우진이 이쪽을 향해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여기는 웬…, 윽.”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달려든 그녀가 백우진을 온몸으로 끌어안았다.

         

       얼굴에 닿은 풍만한 가슴 너머로 들판을 내달리는 말처럼 거칠게 뛰고 있는 심장 소리가 전해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뭐가 그리도 무섭고 두려운지, 온몸을 잘게 떨고 있었다.

         

       “진정해.”

         

       무슨 일이냐고 묻기 전에 그녀를 안정시키는 게 우선이었다.

         

       백우진은 무방비하게 드러난 그녀의 등을 쓸어내리며 안도감을 느끼게끔 만들어주었다.

         

       손길이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는지,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는 안정을 되찾았다.

         

       품에서 벗어난 그녀는 여전히 무언가 고뇌하고 있는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적어도 떨고 있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내 말이라면….”

         

       그녀가 마른 침을 삼키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버지가…, 아버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말.”

         

       당선영과 연구실에 갔던 날, 백우진은 말했다. 어쩌면 당연신이 무언가에 조종당하고 있거나, 어떤 약에 중독되어 있거나, 다른 사람으로 바꿔치기 되었을 가능성도 희박하지만 있을 수 있다고.

         

       그때는 그럴 리가 없다고, 그저 작은 하나의 가능성일 뿐이라고 치부했다.

         

       “이곳에 오기 전에 가주전에 다녀왔어. 예상대로 당금패에 대해 물어보셨지.”

         

       이에 대해서는 말을 맞춰두었다.

         

       실제로 있는 일이기도 했으니 책잡힐 만한 부분을 없었을 터.

         

       “그런데 아버지가…, 그런 말을 하셨어.”

         

       어차피 백우진을 돕기 위해 떠난 것이었으니 굳이 당금패를 주지 않아도 되지 않았느냐는.

         

       그 말을 들은 순간, 그녀는 무언가를 머리에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휩싸였다.

         

       “저번에 말했었지. 아버지는…, 내가 실험체가 된 순간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응.”

         

       그녀는 떨리는 손 위에 반대쪽 손을 얹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다섯 살 무렵에 은패를 지닌 이가 찾아왔었어. 그 주인공은…, 마두였지.”

         

       마두.

         

       양민, 무인 할 것 없이 제 눈에 거슬리면 모조리 죽이고 보는 악인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것 때문에 잠깐 소란이 일었어. 은패를 지니고 오긴 했지만, 거액의 현상금까지 걸린 마두를 손님으로 대접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다. 치열한 전투에 얼떨결에 휘말리게 된 마두가 당가의 혈족을 공격해오는 이들을 모두 죽인 것이다. 전후 사정이야 어쨌든 그는 혈족을 살린 셈이 되었고, 그는 자신이 지니고 있던 패들 중 가장 높은 은패를 그에게 건넸다.

         

       그리고 그 마두가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나타난 것이다.

         

       “마두는 결국 손님으로 받아들여졌어. 그를 손님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 이들 중에는 아버지도 계셨지.”

         

       당시의 그는 대다수의 의욕을 잃은 상태였다. 가주전에 틀어박힌 채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은원만큼은 확실히 따져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그때는 아주 가끔이지만, 내가 머무는 처소에도 들르시던 때였어. 나는 아버지에게 여쭸었지. 왜 마두를 은인으로 대접해야 하냐고 말이야.”

         

       그때 아버지가 뭐라고 하셨는지 아니?

         

       “대접한 이후에 우리의 손으로 죽이는 한이 있어도 은원은 해소해야 한다, 였어.”

         

       당선영의 눈이 지나간 과거를 쫓는 듯, 몽롱하게 변했다.

         

       “그때의 아버지는 처음으로…, 무기력한 눈에서 또렷한 의지를 내비치고 계셨어.”

         

       과거에서 현재로 돌아온 그녀가 백우진을 응시했다.

         

       “내 착각일지도 몰라.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생각이 바뀌신 걸 수도 있겠지.”

         

       오히려 이쪽이 더 타당성 있다. 그가 의욕 없이 살아온 세월만 무려 십수 년이다. 은원에 대한 생각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은원에 대한 생각쯤이야 몇 번이고 바뀌고 바뀌었을 시간 아닌가.

         

       “그런데…, 내 감이 자꾸만 외치고 있어.”

         

       그녀가 슬픈 눈으로 백우진을 바라보며 말을 마쳤다.

         

       “어쩌면…, 어쩌면 방금 만난 사람이 내 아버지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십수 년간 보아왔던 아비가 진짜가 아니라 가짜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신빙성 있는 말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이, 그녀를 사무친 슬픔 속으로 밀어 넣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휴,,, 한글 2022에 다크 모드가 있어서 밤에 글 쓰는게 정말 편해졌는데,

    문장 전체에 줄이 그어졌다가 다시 써야 사라지기도 하고, 띄어쓰기가 애매한 부분에 그어질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수용 가능한 부분은 수정하고, 나머지 부분은 제가 줄곧 써왔던 느낌대로 써볼 생각입니다.

    오타나 띄어쓰기 잘못된 부분 말씀해주시면 수정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고생 많으셨고, 저는 내일 찾아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_ _)

    다음화 보기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