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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3

       

       

       

       

       “쫓기고 있다고요?”

       

       레온의 말을 들은 실비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레온은 실비아가 ‘쫓기고 있다’는 말에 놀란 거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실비아가 놀란 건 다른 이유에서였다.

       

       ‘아니, 쫓기고 있단 걸 알고 있었단 말이야?’

       

       실비아가 레온과 아르 옆에 딱 붙어서 지내는 것도.

       아침마다 수련을 몇 시간은 하는 것처럼 말해 놓고 사실 수련은 짧고 굵게 마친 후 혹시라도 위협이 닥칠까 캐머해릴 내부를 순찰하는 것도.

       전부 레온을 마왕의 끄나풀로부터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설마 레온 본인이 자기가 쫓기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을 줄이야.

       

       ‘혹시 그래서 그간 수련도 열심히 하고 마법도 연습하고, 아르가 마법을 사용할 환경도 만들어 주려고 분주하게 움직인 건가?’

       

       어쩐지.

       

       실비아가 레온에게 시킨 훈련은 보통 정신력으로는 제대로 이행하기 어려운 훈련들이었다. 

       

       아무리 레온이 재능이 있다고 하지만 실비아가 객관적으로 볼 때 이렇게까지 빨리 4성 수준에 오를 정도의 재능은 아니었다.

       

       레온의 재능으로 이렇게 빨리 4성에 오르려면 그야말로 피땀 나는 노력을 해야 가능한 수준.

       

       게다가 보통 재능이 있는 사람들은 자기 재능을 믿고 저렇게까지 열심히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제야 레온 씨의 그 필사적인 수련이 이해가 되네.’

       

       그렇다면 이제는 또 그 다음이 궁금해졌다. 

       

       ‘레온 씨는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그냥 단순히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고, 그들이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는 것까지?

       

       아니면 그 쫓는 자들이 마왕의 끄나풀들이며, 그들이 마신의 부활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카르사유의 후손, 최후의 은룡을 노리고 있다는 것까지?

       

       ‘일단 레온 씨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실비아는 레온의 이야기를 경청하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일단 여관으로 돌아가죠. 이런 데서 할 이야기는 아니라.”

       “좋아요.”

       

       오는 길에 약간의 간식거리를 사 가지고 여관으로 돌아온 레온은 거실 탁자 앞에 앉았다. 

       

       식탁 위에는 사 온 과자 몇 개를 까서 놓고, 그 앞에 아르를 앉혀 놓았다. 

       

       “쀼우!”

       

       아르는 얼른 작은 과자 두 개를 한 번에 집어 입에 넣고 양 볼이 불룩해진 채 우물우물 씹었다. 

       

       반죽에 치즈를 섞어 구운 치즈 비스킷의 고소한 맛이 마음에 드는 듯, 꼬리가 연신 탁자를 두드렸다.

       

       “쀼우움.”

       

       아르가 맛있게 과자를 먹는 동안, 레온은 반대편에 앉은 실비아에게 설명을 해 주었다. 

       

       “아르를 만나기 직전에, 저는 작은 마을에서 살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기괴한 가면을 쓴 놈들이 나타나서 불을 지르고, 마을 사람들을 한 사람도 남김없이 죽이려 했죠. 저는 가까스로 살아 나와서….”

       

       레온은 대륙 동부에서 서부로 한 번에 텔레포트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 녀석들이 마왕의 추종자들이라는 이야기는 빼 놓은 채 최대한 매끄럽게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그런 이야기를 해 봐야 실비아가 믿지도 않을 거고, 자세하게 이야기를 하려면 아르가 드래곤이라는 사실까지 털어놔야 앞뒤가 맞기 때문이었다. 

       

       레온은 놈들이 아르 때문에 자신을 죽이려 한다고 얘기하는 대신 그저 놈들이 그 마을에 있던 사람들을 왜인지 전부 죽이려 했고, 놈들은 아직까지도 자신을 쫓고 있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그렇게 도망치는 도중에 홀로 떨어져 있는 작은 해츨링을 주웠고, 이렇게 함께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실비아는 조금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이렇게나 오래 도망쳐 왔으면 이제는 놈들도 포기하지 않았을까요? 애초에 레온 씨 혼자 남았는데 굳이 끝까지 찾아 다닐 이유는 없잖아요. 너무 비효율적이기도 하고요.”

       

       레온은 마치 그 질문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 대답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렇긴 하지만, 이미 놈들은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해 온 놈들이에요. 놈들은 자신들이 섬기는 신 같은 존재의 명령이라며 마을 사람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죽이려 했습니다.”

       “사이비 놈들은 종잡을 수 없는 면이 있긴 하죠. 신의 명령이라면 어떤 짓이든 할 놈들이니까요.”

       “맞아요. 그때 저를 죽이려던 놈들이 ‘하무트 님’이라는 말을 했었는데…. 아무래도 하무트라는 자기들 신을 섬기는 모양이에요. 그리고….”

       

       레온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방금 죽었던 시프 길드 우두머리가 마지막에 했던 말이…. 아무래도 ‘하무트 님’이었던 것 같았어요.”

       “세상에 맙소사.”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쀼, 쀼우?”

       

       비스킷을 먹느라 반쯤 한 귀로 듣고 있던 아르도 레온의 말에 놀란 듯 챱챱 오물거리던 입을 멈추고 귀를 쫑긋 세웠다. 

       

       “그래서 아까 표정이 그렇게 안 좋으셨던 거군요.”

       “맞아요. 원래는 캐머해릴에 더 머무르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빨리 이곳을 뜨는 편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레온은 조금 망설이더니 입을 열었다. 

       

       “실비아 씨.”

       “네?”

       

       레온은 실비아의 아름다운 녹색빛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피해망상이라고 생각하셔도 좋아요. 말도 안 되는 소리란 것도 알아요. 저는 놈들이 상부에서 수집하라고 명령했던 정보가 바로 제 위치에 대한 정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

       

       실비아가 침묵하자 레온이 말을 이었다. 

       

       “앞으로도 아마 저는 놈들에게서 도망쳐 다니겠죠. 놈들에게 맞설 힘을 갖추기 전까지는요. 하지만 그런 저를 계속 따라다니시면 필요 이상으로 장소를 많이 옮겨야 할 수도 있고, 결정적으로 실비아 씨까지 위험해질 수도 있어요.”

       “…….”

       “그러니까…. 실비아 씨는 여기서 저희랑 헤어지는 게 나을 거예요. 그동안 수련도 봐 주시고 여러 가지 감사한 일들이 많았는데 이렇게 갑자기 털어놓게 되어서 죄송해요. 그간 숨긴 것도 죄송하고요.”

       

       탁자로 시선을 떨군 레온의 얼굴은 조금 착잡해 보였다. 

       

       “쀼, 쀼우….”

       

       아르가 옆에서 ‘이제 온니 못 보는 고야?’ 라며 슬픈 쀼 소리를 냈다.

       좋아하는 비스킷도 먹다 말고 접시에 떨어뜨린 채였다.

       레온은 아르의 축 처진 꼬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미안, 아르야. 하지만 어쩔 수 없어. 나도 이렇게 빨리 하무트교가 움직일 줄은 몰랐으니까.”

       

       말 그대로, 하무트교의 움직임은 상상 이상으로 빨랐다. 

       

       ‘벌써 대륙 서부까지 조사하러 나섰을 줄이야.’

       

       레온이 알기로 하무트교는 대륙 동부에서만 활동하던 비밀 조직.

       

       그래서 대륙 서부로 오게 된 이상 놈들이 대륙 동부를 다 뒤지는 데에는 시간이 꽤나 오래 걸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설마 대륙 서부의 시프 길드가 하무트교 소속이었을 줄은….’

       

       「레키온 사가」를 게임으로 플레이했던 시절에는 하무트교가 단순히 동부의 작은 사이비 집단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이젠 그렇지 않다는 걸 알지. 그 하무트가 실존하며, 마신을 부활시키려는 마왕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까.’

       

       마왕 산하의 집단이라면 시프 길드 같은 어둠의 조직을 가지고 있는 것도 이해가 된다. 

       

       ‘레키온 사가를 할 때 하무트교가 그냥 작은 사이비 집단처럼 보였던 건, 아마 나를 죽인다는 목표를 이미 달성한 뒤 숨어 지냈기 때문이었겠지.’

       

       주인공 레키온이 나중에 하무트교를 처단해 주긴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도 뿌리를 뽑은 게 아니라 꼬리 자르기에 당한 것일 가능성이 높았다.

       

       마왕들은 인간 영웅, 주인공 레키온의 등장에 잠시 숨어서 레키온이 수명을 다할 때까지 기다렸을 테니까. 

       

       ‘후우…. 레키온이 이럴 때 나서서 하무트교 박멸 프로젝트를 시작해 주기라도 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게임 스토리 상 레키온이 하무트교를 처단하기까지는 아직 한참 시간이 남았다. 

       

       지금 레키온에게 하무트교는 ‘바냐스 마을을 습격했던 사이비 집단’ 정도의 이미지일 테니까. 

       

       잊지는 않고 있더라도, 당장 어떤 조치를 적극적으로 취하려고 하지는 않을 거다. 

       

       ‘그러니 지금은 내 힘만으로 어떻게든 살아 남아야 돼.’

       

       이 위험한 일에 실비아까지 끌어들일 수는 없다. 

       

       애초에 이 정도까지 말했으면 실비아도 레온과 함께할 생각은 진즉에 접었을 터.

       

       ‘실비아 씨도 지금 아마 어이가 없을 거야.’

       

       갑자기 멀쩡히 같이 다니던 파티원이 시프 길드원을 잡아 놓고 ‘무, 트, 님….’ 한마디 했다고 시프 길드 상부에서 내린 명령이 자기를 찾으라는 명령일 거라고 말하며 급히 도시를 떠나야겠다고 말을 하다니.

       

       이건 누가 봐도 그냥 피해망상증 환자 아닌가. 

       

       지금까지 실비아가 레온을 얼마나 좋게 보고 있었든 간에, 이번 일로 같이 다니려는 생각도 싹 사라졌을 것이다. 

       

       “아직 캐머해릴에서 해야 될 일이 조금 남아서, 떠나는 건 3일 후 정도가 될 것 같아요. 여관 대관도 딱 그날까지니, 연장은 따로 안 할게요. 그때 서로 갈 길을 가는 걸로 해요.”

       

       결심을 굳힌 나는 최대한 담담하게 말했다.

       

       “…….”

       

       그리고, 여태 대답이 없는 실비아의 눈을 바라보았다. 

       

       “실비아 씨…?”

       

       실비아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싫은데요?”

       “네?”

       

       레온이 벙찐 표정을 하자 실비아가 말했다. 

       

       “쫓기고 있는 거라면, 오히려 더 같이 다녀야죠. 저 없이 혼자 수련해서 더 높은 경지로 가실 수 있겠어요?”

       “그건….”

       

       솔직히 지금까지의 성장 속도도 기적에 가깝다. 

       그리고 그건 「이해」, 「습득」 특성 덕도 있지만 무엇보다 잘 가르쳐 준 실비아의 덕이 컸다. 

       

       “제가 같이 다니면서 단검술도 더 알려 드리고, 여차하면 지켜 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하지만….”

       “지금까지 저랑 이렇게 같이 살면서 할 거 다 해 놓고, 저 버리고 가시게요?”

       “누,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어요!”

       

       나는 빙글거리는 실비아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실비아 씨까지 위험할 수 있다니까요?”

       “괜찮아요.”

       “…왜 그렇게까지 하시는 건데요?”

       “좋아하니까요.”

       

       일순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실비아가 환한 미소를 짓자, 다시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레온 씨도, 아르도. 좋아하니까 지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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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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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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