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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3

       내가 카자르의 설명을 듣기론 영혼 결속의 위험성은 말도 안 되게 크다고 했다.

         

       이제는 금지된 시전자와 대상의 영혼을 결속시켜 영원을 노래하는 마법.

         

       죽음을 맞이해도 영혼은 함께하며, 다시 태어나도 결속으로 인해 이어지게 된다고.

         

       혼과 혼을 연결해 생을 공유한다고.

         

       삶과 죽음을 초월한 저주에 가깝다고 한다.

         

       ‘이건 나에게도, 프란체에게도 좋지 않아.’

         

       한 번 쓰면 되돌릴 수 없는 마법이다. 언제 어떻게 무슨 일이 있어 후회할 줄 알고 이런 마법을 사용하겠나.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공녀님.”

       “왜?”

         

       불러도 마법서에서 눈을 떼지 않는구나.

         

       “카자르에게 듣기론 그 마법서에는 위험한 마법들로 가득하다고 합니다. 저는 그다지 추천하지 않습니다.”

         

       이건 사실이다. 온갖 위험한 마법이 있다. 내 몸에 새겨진 시간과 공간의 마법진도 밝혀내지 않았나.

         

       단순히 영혼 결속이 두려워서 만류하는 게 아니다.

         

       “위험한 마법이 있어도 내가 안 쓰면 되잖아? 그냥 세상에 이런 마법도 있구나. 하고 넘어가면 그만이지.”

         

       그것도 맞긴 한 데…….

         

       ‘거기에 영혼 결속이 있다고!’

         

       눈앞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린다. 식은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해 머리끝으로 떨어졌다.

         

       “응? 왜 그러니? 안색이 안 좋은데.”

       “아, 아닙니다.”

       “식은땀도 흐르잖아.”

       “제가 머리에 열이 많습니다.”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프란체.

         

       “그러니…?”

       “예. 조금 더워서 그렇습니다.”

       “그런 거라면야…….”

         

       안 되겠다. 도저히 나는 프란체에게서 저 마법서를 떼어낼 방법이 없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녀님, 잠시 카자르를 만나고 오겠습니다.”

       “카자르? 왜? 지금쯤 자고 있을 텐데.”

       “아, 요즘 검사를 못 해서요.”

       “아…….”

         

       프란체는 고개를 주억이며 “그래, 다녀오렴.”하고 다시 룬어 해독에 몰두했다.

         

       “…….”

         

       큰일이다. 아무리 전에 위험한 영혼 결속을 더이상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어도 막상 눈앞에 있다면 다를 것이다.

         

       나는 서둘러 위층으로 올라갔다. 1층과는 다르게 넓은 거실을 중앙에 두고 곳곳에 배치된 4개의 방이 있다.

         

       ‘어디가 카자르 방이지?’

         

       일단 계단을 올라와서 바로 보이는 문을 열었다. 덜컥.

         

       “응?”

         

       라데아와 라이아가 넓은 침대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자고 있다. 긴 이동으로 피곤했던 모양.

         

       ‘아니, 근데 지금 이게 중요한 게 아니야.’

         

       나는 다시 문을 닫고 모든 방문을 열어봤다. 창고로 쓰이는 방이 있었고, 아무것도 없는 방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방.

         

       덜컥.

         

       카자르가 있었다.

         

       1인용 침대와 어질러진 책상. 그리고 벽에 붙어있는 여러 마법진들. 저걸 어디에 쓰는 건지는 모르겠다마는.

         

       “카자르, 큰일이다.”

       “…….”

         

       지금 내 심정도 모르고 혼자 곤히 잠들어있다. 아니, 아픈 건 알겠는데 지금 그런 걸 봐줄 여유가 없다고…….

         

       “카자르!”

         

       나는 카자르의 귓가에 대고 최대한 목소리를 줄여서 소리쳤다.

         

       “으음…….”

       “카자르, 진짜 큰일이야. 잠깐만 일어나 봐.”

         

       인상을 잔뜩 찡그린 채 부스스한 모습으로 일어나는 카자르. 비비적거리더니 눈을 얕게 뜨고 나를 올려다본다.

         

       “…뭐예요, 무슨 일인데요?”

       “공녀님이 고대 마법서를 읽고 계신다.”

       “뭐요?”

       “어떻게 한 건지 모르겠는데, 룬어를 해독하고 계신다.”

         

       아까까지만 해도 자다 일어나서 정신이 없던 카자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공녀님이 룬어를 해독하신다고요?”

       “그래. 당장 1층에서 네가 쓰던 안경까지 쓰고 해독하고 계신다고.”

       “아니, 그걸 어떻게? 상당한 난이도의 룬어들만 모여있는데?”

         

       그건 나도 의문이다. 저 룬어는 처음 봤을 때 쳐다보기만 해도 어지러운 수준의 난이도를 가지고 있었다.

         

       비록 안경의 도움을 받아 새어 나오는 마력을 차단했다 하더라도 룬어 해독은 쉽지 않다.

         

       “이런, 이거 생각보다 큰일이에요. 당장 공녀님의 해독 수준을 알아야 해요.”

         

       카자르는 관자를 짓누르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여러 갈래로 퍼진 백색의 머리카락.

         

       “부축 좀 해주실래요? 아직도 움직이기가 힘들어서.”

       “시간이 그렇게 지났는데 부작용이 남아있어?”

       “네… 제가 원체 마력이 많아서 흐름이 꼬이면 회복도 오래 걸리거든요.”

         

       정말 큰일 날 뻔했네. 잘못했으면 그대로 죽었다는 거 아닌가. 큰 결심을 하고 프란체를 감쌌던 거였군.

         

       “고맙다.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는데 공녀님을 구해줘서…….”

       “뭘 인제 와서. 됐어요. 제 제자인데 스승이 구해야죠.”

         

       이 기특한 녀석…….

         

       나는 감동의 눈물을 머금고 한쪽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카자르를 부축해 방을 나왔다.

         

       “계단은 내려가기 힘들어 보이네요.”

       “걱정 마.”

         

       수평 들기로 카자르를 안았다.

         

       “이, 이게 뭐 하는…?”

         

       전혀 예상치도 못했다는 듯 목소리에 당혹스러움이 그대로 묻어나왔다.

         

       “뭘 이런 거 가지고. 빨리 가지.”

         

       나는 카자르의 머리를 좀 더 품 안으로 넣고 계단을 내려갔다. 소리를 듣고 눈치챈 프란체가 뒤돌아봤다.

         

       “아, 검사는 끝났…….”

         

       말의 끝을 맺지 못하고 그대로 경직된 프란체.

         

       “지금 둘이 뭐 하는 거니?”

       “보다시피 안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왜 안고 있냐니까?”

       “내려가고 싶은데 힘이 없답니다.”

       “…….”

         

       프란체는 눈을 끔뻑이며 앞머리를 쓸어넘겼다.

         

       “후. 나는 환자한테 뭐 하는 거람.”

         

       그리 말하곤 자리에서 일어나 안경을 벗었다.

         

       “카자르한테 무슨 일 있었니?”

       “예. 공녀님께 말씀드릴 게 있다고…….”

         

       나는 카자르를 내려주고 어깨를 잡아 부축했다.

         

       “공녀님, 혹시 그 책 해독하고 계셨어요?”

        “응, 이거? 하고 있었어. 왜?”

       “그거 해독하시면 안 돼요.”

         

       카자르는 내게 부축받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여기 있는 마법들은 엄청나게 위험해요. 이 세상에서 금기로 불리는 마법들만 있어요.”

       “그냥 룬어 공부하는 겸 보는 것도 안 되는 수준이니? 대체 무슨 마법이 있길래?”

       “마법의 금기란 금기들은 다 있어요. 잘못하면 대역죄로 잡혀가는 마법도 있어요.”

         

       나름 침착하게 대처하고 있는 카자르.

         

       “금기라, 그러면 혹시 영혼 결속도 있겠네?”

         

       쿵! 잔잔한 호수에 커다란 무게추를 떨어트린 것처럼 나와 카자르의 눈이 동시에 휘둥그레졌다.

         

       나는 뻣뻣한 목을 움직여 카자르를 바라봤다. 얘도 전혀 예상 못 한 듯 입만 뻐끔거렸다.

         

       “뭐야, 그냥 물어본 건데 진짜 있어?”

       “아, 아니요. 아직도 그 마법을 포기 못 하셨나 해서 놀란 것뿐이에요.”

         

       그래, 대처 잘했다.

         

       “저 좀 테이블까지 옮겨주실래요?”

       “아, 그래.”

         

       나는 카자르를 부축해 테이블까지 데려다줬다. 그녀는 의자에 털썩, 앉으며 크게 한숨을 내리 쉬었다.

         

       “후우. 그래요. 어디까지 해독하셨나 볼까요?”

       “여기 38페이지까지 해독했어.”

         

       얼굴이 잔뜩 굳어버린 카자르. 눈가에 그늘이 졌다.

         

       “왜 그러니? 문제라도 있는 거야?”

       “아니에요. 잠시 책 좀 줘보실래요?”

         

       프란체에게 마법서를 건네받은 카자르는 팔락, 페이지를 넘기며 중반부를 펼쳤다.

         

       “여기 이것도 해독하실 수 있으세요?”

       “으음. 해보긴 할게.”

         

       눈썹을 좁힌 채 눈이 빠지도록 룬어를 해독하는 프란체. 카자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으으, 이건 너무 어려워서 못하겠네.”

       “그래요? 어떤 식으로요?”

       “마력의 흐름을 읽을 수가 없구나.”

         

       뒤로 갈수록 읽을 수 없는 건가. 하긴, 프란체는 룬어를 배운지 얼마 안 됐으니.

         

       “룬어를 배우신지 얼마나 되셨어요?”

       “아직 한 달도 안 지났지.”

       “으흠…….”

         

       턱에 손을 짚고 천천히 고개를 주억이는 카자르.

         

       “다른 룬어들이 담긴 마법서도 많으니 너무 읽기 힘드시면 도중에 그만두셔도 돼요. 그 마법서는 난이도가 너무 높거든요.”

         

       뭐야, 읽게 둬도 되는 거야?

         

       “그러니? 그래. 할 수 있을 때까진 해보지 뭐.”

         

       싱긋 웃으며 천천히 고개를 주억이는 프란체. 카자르가 말했다.

         

       “저 좀 다시 부축해주세요. 침대에 좀 더 누워야겠어요.”

       “아, 그래.”

         

       나는 다시 카자르를 수평 들기로 안았다. 이 모습을 본 프란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

         

       우리를 지그시 응시하는 프란체.

         

       “공녀님?”

       “…응?”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세요?”

       “아니, 아니야.”

         

       프란체는 별안간 고개를 휘젓더니 “올라가 봐.”하곤 룬어 해석에 몰두했다.

         

       나는 카자르를 데리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고, 침대에 그녀를 눕혀주고 이불까지 덮어줬다. 그리고 의자를 끌어와 옆에 앉았다.

         

       “공녀님이 룬어 해독을 하게 둬도 괜찮은 거야?”

       “중반부를 보여드렸는데 전혀 해독을 못 하시는 거 보면 괜찮아요.”

         

       카자르는 갑자기 움직여서 머리가 지끈거리는 듯 미간을 주무르며 말을 이었다.

         

       “영혼 결속의 마법은 상당히 후반부에 있어요. 지금 공녀님의 수준으로는 절대 해독이 불가능하죠. 초반부만 조금 해독하시다가 다른 책으로 갈아타실 거예요.”

         

       그거 다행이군. 하긴, 영혼 결속 마법이 간단한 룬어로 되어있을 리 없지.

         

       “그래도 다행이네. 나는 저 마법서 해독하시는 거 보고 식겁했다.”

         

       카자르는 이런 내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사람이 한순간에 이렇게 초췌해질 수가 있네요.”

       “네가 그 상황이 되어 봐. 진짜 정신이 아찔해진다니까.”

         

       정말로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프란체가 싫은 건 아니지만, 영혼 결속은 다른 얘기다.

         

       삶과 죽음을 초월해 영원을 함께하는 마법이 정상일 리 없잖나.

         

       “아무튼. 별일 없을 테니 이제 나가보세요. 저는 눈 좀 붙이려니까.”

       “아, 그래. 갑자기 깨워서 미안하다…….”

         

       나는 멋쩍게 웃으며 방문을 닫고 나왔다. 아픈 사람 저렇게 깨워서 하는 것도 많이 실례지.

         

       ‘근데 진짜 너무 급했다고.’

         

       이 정도는 카자르도 이해해줄 거다.

         

       심란했던 마음이 안정된 나는 다시 1층으로 내려가 프란체의 앞에 앉았다.

         

       “공녀님.”

       “응?”

       “곧 회담이 있습니다”

       

        프란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회담? 무슨 회담?”

         

       아직 모르는 듯하다. 그때면 당사자인 프란체도 참여해야 하는 거로 알고 있는데.

         

       “데카르트 공작가와 황실의 회담입니다. 이번 모옥의 암살 시도 건에 대해서 얘기를 나눈다고 하더군요. 제가 사하라로 가는 건 그 이후입니다.”

         

       그때 있을 회담에서 내 이름을 이용해 협상으로 받을 건 ‘페델리안 사자 패’.

         

       모든 형사, 민사 책임을 면책해주고 반역을 꾀해도 한 번은 봐주는 황실에서 내릴 수 있는 최고의 포상.

         

       이게 목적이다.

         

       “처음 듣는 얘기네. 아마 공작님이랑 소 공작님만 가시지 않을까?”

       “아니요. 당사자인 공녀님도 가실 겁니다. 공작님께 여쭤보니 저도 간다고 하더군요.”

         

       프란체의 눈이 광활해지고 입이 크게 벌어졌다.

         

       “너도 간다고? 공작가와 황실의 회담인데?”

       “그렇습니다. 제가 부탁드린 게 있거든요.”

       “공작님이 들어주신 거니?”

       “맞습니다.”

         

       완전 의외라는 듯 동공이 크게 팽창된 프란체.

         

       “그런 자리에 너를 데려가다니, 공작님도 별일이시네.”

         

       당연히 내가 모옥을 직접 제거할 예정이니까. 이게 데카르트 공작가에도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겠지.

         

       무려 진 바렌베르크를 제어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으니까.

         

       “그때 제가 협상을 하기로 했습니다.”

       “…협상을 하기로 했다고?”

       “예. 공녀님에게 갈 특혜입니다.”

         

       프란체가 “그게 뭔데?”하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건 그 자리에서 보시지요.”

       “뭐야, 먼저 말 꺼내놓고 궁금하게 만드네.”

         

       나는 싱긋 웃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다만, 놀라지는 말아주세요.”

         

       내가 떠나기 전, 너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다 하고 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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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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