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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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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제 몸을 아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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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노아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그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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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흑마법사 미아의 실험실에서 잔혹한 실험을 당했다는 건 노아만 자세히 알지, 다른 아이들은 리안이 어떤 실험을 당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다들 리안이 자기희생적인 면모가 굉장히 강하다는 걸 부정하는 사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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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만큼 리안은 일상에서도 제 몸을 함부로 할 때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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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끓는 물의 온도를 측정하겠다고 냅다 손가락을 펄펄 끓는 물에 집어넣은 적도 있었고, 조리를 하던 중 몸에 상처가 생겨도 그러려니 하고 넘기는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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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과 놀다가 몸을 다쳐도 말하지 않고 꾹 참다가 발견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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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항상 맑게 웃고 있었지만, 속이 썩어 뭉그러져 버린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다들 웃으면서 3년을 보낼 수 있었던 건 리안이 아이들에게 오빠이자 형이었고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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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빠니까, 형이니까, 아버지니까, 가족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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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까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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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안일한 마음을 가진 이들에게 배가 뻥 뚫린 리안이 돌아왔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 당장이라도 끊어질 것 같은 숨결, 차갑게 식어가는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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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없던 아이가 부모의 눈물을 보고 충격을 받는 것처럼, 아이들은 크게 충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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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대 죽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그들의 “어른”이, 소중한 “가족”이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인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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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깨어나지 않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그들의 불안감을 계속해서 치솟았고,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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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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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가 리안의 발목에 족쇄를 채우는 걸 막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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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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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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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침대에 축 늘어져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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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랑 싸워버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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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이걸 싸웠다고 보는 게 맞을지 모르겠다. 싸웠다기보단… 혼났다는 쪽이 더 맞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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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 많이 난 거 같던데…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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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히 노아에게 화가 나진 않았다. 항상 이성적이던 노아를 그 정도로 분노하고 걱정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미안할 뿐이었다. 한편으론 기분이 좋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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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걱정 받으니까 뭔가 간질간질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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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말을 노아가 들으면 뚝배기가 깨질지도 모르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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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그 세계에선 웬만한 일이 아닌 이상 걱정을 받기 힘들기 때문이다. 뭔가 소중하게 생각해주는 것 같아 조금 들뜬다고 하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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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으로 예쁘게 썰어질지도 모르니까 절대 말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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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없는 생각을 정리한 후, 노아와 화해할 방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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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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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이 전부 꺼진 어두운 방안, 노아는 무릎을 세워 그 위에 이마를 올려놓은 채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가슴을 압박하는 마도구와 붕대까지 풀어둔 상태라 가슴이 허벅지를 짓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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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또 동굴이가 됐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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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노아에게 줄리아나가 날아와 말을 걸었다. 노아는 머리 위에 이불을 덮어쓴 채 탁하게 가라앉은 눈동자를 들어 줄리아나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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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승님. 제가 잘하고 있는 걸까요?”
    [ 왜? 리안을 지키지 못해서 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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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곡을 쿡 찌르는 말에 노아가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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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만약 네가 본관을 내버려 두고 별관으로 달려갔으면, 본관에 있던 녀석들 대다수가 몰살 당했을 거야. ]
    “하지만…결국은 지키지 못했어요.”
    [ 살아있잖아. 이제라도 지키면 돼. ]
    “이번이 처음이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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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 높여 소리치곤, 본인이 더 놀라 눈동자를 파르르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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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질러서 죄송해요.”
    [ 아니야. 속에 숨겨놓는 것보단 속 시원하게 말하는 게 낫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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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리아나가 노아의 옆에 앉아 고갯짓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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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음 편하게 말해. 누구누구 씨처럼 힘들 때마다 숨겨놓지 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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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리아나가 말하는 누구누구 씨는 리안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상처가 생겨도, 힘이 들어도 숨기기만 해서 속 터지게 하는 리안같은 행동을 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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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말에 노아는 결국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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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지금까지 모두를 지키기 위해서, 리안을 지키기 위해 강해지려고 노력했어요.”
    [ 응, 열심히 했지. 잘하기도 했고. ]
    “하지만 -.. 정말 중요한 순간에는 항상 리안을 도와주지 못했어요. 그가 위험에 처할 때마다 저는…”
    [ 몇 번이나 말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
    “하지만 제가 더 빨리 몬스터를 쓰러뜨렸다면 리안을.. 리안을 지키러 달려갈 수 있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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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이어 ‘만약에’라는 가정이 물밑 듯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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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약에 내가 적을 더 빨리 알아차렸더라면.
    만약에 리안을 본관에서 지내게 했다면.
    만약에 본관을 더 잘 숨겨뒀더라면.
    .
    .
    ​
    그런 말들이 자신을 상처입힐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멈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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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리아나는 절망과 울음으로 물든 노아의 얼굴을 보며 그녀의 행동이 ‘자해’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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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를 지키지 못한 자신을 몇 번이고 상처 내고 있는 것이다. 마치 벌을 주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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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렇다면 해결법은 하나네. ]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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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상하지 못한 ‘해결법’이라는 말에 노아가 고개를 휙 돌려 줄리아나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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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가 말했잖아. 조금만 더 빨리 몬스터를 해치우고 리안을 찾아갔으면 괜찮았을 거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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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줄리아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허공에 둥둥 떠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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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럼 해결법은 간단하지. 더욱더 강해지면 돼. ]
    “더…강해져?”
    [ 그래. ]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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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입술을 꾹 깨문 채 고개를 숙였다. 노아는 2년 전부터 벽에 가로막혀 성장이 멈춘 상태였다. 그런 그녀에게 ‘더 강해지면 되지!’라는 말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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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리어 그녀를 더욱 절망에 빠뜨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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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벽에 가로막혀서 그러지? ]
    “…!”
    [ 해결 방법이 있어. ]
    “방법이..있어요?”
    [ 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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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리아나는 진지한 얼굴로 노아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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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지만.. 목숨을 걸어야 해. ]
    “상관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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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펄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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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는 덮고 있던 이불을 옆으로 치워버린 후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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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강해질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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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하여 리안을 지켜줄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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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좋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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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리아나가 제 본체가 묶여있는 책을 노아의 앞에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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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촤르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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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겪었던 시련을 이겨낸다면 넌 더욱 강해질 수 있을 거야. 대신.. 죽을 수도 있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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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에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와 방 안을 채우기 시작했다.
    ​
    ​
    [ 안에서 얼마의 시간이 흐르든 외부 시간은 거의 흐르지 않아. 그러니까 조바심 내지 말고 차근차근 나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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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걱정이 섞인 줄리아나의 말에 노아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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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마워요. 스승님.”
    [ 무사히 돌아오기나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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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한 빛무리에 삼켜진 노아는 몸을 비틀거리더니 그대로 침대에 쓰러져 누워버렸다. 그녀의 정신만이 시련으로 넘어간 탓이다.
    ​
    ​
    [ ‘노아 넌 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야 해.’ ]
    ​
    ​
    절망에 발이 묶여 발걸음을 멈춘 순간, 노아는 자기 손으로 벽을 만들어 그곳에 갇혀 영원히 헤매다 쓰러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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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줄리아나는 과거 그런 천재들을 수없이 봐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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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족쇄를 부숴버리고 더 높이 날아올라 그러면…’ ]
    ​
    ​
    줄리아나가 돌연 음흉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
    ​
    [ 걱정되고 신경 쓰이는 남자를 곁에 꽁꽁 묶어두는 법을 알려줄게. ]
    ​
    ​
    줄리아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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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식은 언제가 좋으려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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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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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아가 막 시련에 들어갈 그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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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그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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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걸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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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안은 제 발목에 달린 족쇄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발목에 족쇄까지 채워뒀음에도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도구로 리안을 반쯤 감시하고 있기에 굳이 옆에 붙어있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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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장 큰 이유는 난리가 난 본부의 뒤처리를 위해 모두가 자리를 비운 탓이 컸다. 제스와 아이리스는 리안의 부탁으로 아이들을 돌봐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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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마 세 시간 뒤쯤에 찾아오지 않을까 싶었다. 리안은 그 전에 노아를 만나 사과를 건네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지만, 족쇄에 발목이 잡혀있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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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걸 풀어야 사과를 하러 가든 말든 할 텐데…”
    ​
    ​
    리안은 머릿속에 발목을 ‘또각!’하고 잘라낸 후 다시 붙이는 상상을 해봤다가, 피범벅인 침대 때문에 족쇄가 두 개가 되어버리는 엔딩이 떠올라 실행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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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외에도 괴이한 해결법이 많았지만, 실행으로 옮기면 난리가 날 것 같아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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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쩌지? 노아가 오길 기다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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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 생각하며 침대를 뒹굴자 잘그락거리는 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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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똑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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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때 누군가가 리안의 방을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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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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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난 마음으로 그리 외치자.
    ​
    ​
    끼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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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이 천천히 열리고 로브를 푹 눌러쓴 누군가가 느릿하게 안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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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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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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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간 ‘적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상대는 수상한 기운을 물씬 풍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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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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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간은 쉰 듯하지만 높은 톤의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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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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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놀라면 말이 없어진다고. 리안이 딱 그런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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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닷!
    ​
    ​
    수상한 이는 순식간에 리안의 침대 옆으로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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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펄럭, 그 반동으로 로브의 후드가 뒤로 휙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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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피아?”
    “아아, 리안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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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당황한 얼굴로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은 피아를 바라보았다. 피아는 거기서 끝내지 않고 그대로 상체를 앞으로 푹 숙여 ‘도게자’라고 불리는 자세로 몸을 납작 엎드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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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는 무려 개그 주민을 혼란에 빠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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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오늘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3

개그 주민을 혼란에 빠뜨리는 법 : 진짜 광기로 기선제압을 하자!

노아랑 피아가 헷갈리시는 분들이 많아서, 피아의 이름을 바꿀까 합니다.
(미아까지 나오면 기억상실 마법에 걸릴 수 있기에, 미아는 거의 등장시키지 않을 예정입니다. 등장하더라도 설명을 붙일 예정)

뭘로 바꿀지 고민중!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리안은 제 몸을 아끼지 않는다.

이는 노아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그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생각이었다.

리안이 흑마법사 미아의 실험실에서 잔혹한 실험을 당했다는 건 노아만 자세히 알지, 다른 아이들은 리안이 어떤 실험을 당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다들 리안이 자기희생적인 면모가 굉장히 강하다는 걸 부정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만큼 리안은 일상에서도 제 몸을 함부로 할 때가 많았다.

끓는 물의 온도를 측정하겠다고 냅다 손가락을 펄펄 끓는 물에 집어넣은 적도 있었고, 조리를 하던 중 몸에 상처가 생겨도 그러려니 하고 넘기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들과 놀다가 몸을 다쳐도 말하지 않고 꾹 참다가 발견되기도 했다.

그는 항상 맑게 웃고 있었지만, 속이 썩어 뭉그러져 버린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다들 웃으면서 3년을 보낼 수 있었던 건 리안이 아이들에게 오빠이자 형이었고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오빠니까, 형이니까, 아버지니까, 가족이니까.

그러니까 괜찮겠지.

그런 안일한 마음을 가진 이들에게 배가 뻥 뚫린 리안이 돌아왔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 당장이라도 끊어질 것 같은 숨결, 차갑게 식어가는 몸.

철없던 아이가 부모의 눈물을 보고 충격을 받는 것처럼, 아이들은 크게 충격을 받았다.

절대 죽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그들의 “어른”이, 소중한 “가족”이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인지한 것이다.

리안이 깨어나지 않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그들의 불안감을 계속해서 치솟았고, 결국…

철컹.

노아가 리안의 발목에 족쇄를 채우는 걸 막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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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휴…”

나는 침대에 축 늘어져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노아랑 싸워버렸어…’

솔직히 이걸 싸웠다고 보는 게 맞을지 모르겠다. 싸웠다기보단… 혼났다는 쪽이 더 맞을 거다.

‘화 많이 난 거 같던데…어쩌지?’

딱히 노아에게 화가 나진 않았다. 항상 이성적이던 노아를 그 정도로 분노하고 걱정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미안할 뿐이었다. 한편으론 기분이 좋기도 했다.

‘그래도 걱정 받으니까 뭔가 간질간질하네.’

이 말을 노아가 들으면 뚝배기가 깨질지도 모르지만,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개그 세계에선 웬만한 일이 아닌 이상 걱정을 받기 힘들기 때문이다. 뭔가 소중하게 생각해주는 것 같아 조금 들뜬다고 하면 -…

‘검으로 예쁘게 썰어질지도 모르니까 절대 말하지 말자.’

실없는 생각을 정리한 후, 노아와 화해할 방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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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전부 꺼진 어두운 방안, 노아는 무릎을 세워 그 위에 이마를 올려놓은 채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가슴을 압박하는 마도구와 붕대까지 풀어둔 상태라 가슴이 허벅지를 짓눌렀다.

[ 왜 또 동굴이가 됐어? ]

그런 노아에게 줄리아나가 날아와 말을 걸었다. 노아는 머리 위에 이불을 덮어쓴 채 탁하게 가라앉은 눈동자를 들어 줄리아나를 바라보았다.

“…스승님. 제가 잘하고 있는 걸까요?”

[ 왜? 리안을 지키지 못해서 그래? ]

정곡을 쿡 찌르는 말에 노아가 입을 다물었다.

[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만약 네가 본관을 내버려 두고 별관으로 달려갔으면, 본관에 있던 녀석들 대다수가 몰살 당했을 거야. ]

“하지만…결국은 지키지 못했어요.”

[ 살아있잖아. 이제라도 지키면 돼. ]

“이번이 처음이 아니잖아요!”

노아는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 높여 소리치곤, 본인이 더 놀라 눈동자를 파르르 떨었다.

“…소리질러서 죄송해요.”

[ 아니야. 속에 숨겨놓는 것보단 속 시원하게 말하는 게 낫지. ]

줄리아나가 노아의 옆에 앉아 고갯짓을 했다.

[ 마음 편하게 말해. 누구누구 씨처럼 힘들 때마다 숨겨놓지 말고. ]

줄리아나가 말하는 누구누구 씨는 리안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상처가 생겨도, 힘이 들어도 숨기기만 해서 속 터지게 하는 리안같은 행동을 하지 말라는 말이었다.

그 말에 노아는 결국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전, 지금까지 모두를 지키기 위해서, 리안을 지키기 위해 강해지려고 노력했어요.”

[ 응, 열심히 했지. 잘하기도 했고. ]

“하지만 -.. 정말 중요한 순간에는 항상 리안을 도와주지 못했어요. 그가 위험에 처할 때마다 저는…”

[ 몇 번이나 말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

“하지만 제가 더 빨리 몬스터를 쓰러뜨렸다면 리안을.. 리안을 지키러 달려갈 수 있었을 거예요.”

뒤이어 ‘만약에’라는 가정이 물밑 듯이 밀려왔다.

만약에 내가 적을 더 빨리 알아차렸더라면.

만약에 리안을 본관에서 지내게 했다면.

만약에 본관을 더 잘 숨겨뒀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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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말들이 자신을 상처입힐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멈출 수 없었다.

줄리아나는 절망과 울음으로 물든 노아의 얼굴을 보며 그녀의 행동이 ‘자해’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를 지키지 못한 자신을 몇 번이고 상처 내고 있는 것이다. 마치 벌을 주듯이.

[ 그렇다면 해결법은 하나네. ]

“예..?”

예상하지 못한 ‘해결법’이라는 말에 노아가 고개를 휙 돌려 줄리아나를 바라보았다.

[ 네가 말했잖아. 조금만 더 빨리 몬스터를 해치우고 리안을 찾아갔으면 괜찮았을 거라고. ]

줄리아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허공에 둥둥 떠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 그럼 해결법은 간단하지. 더욱더 강해지면 돼. ]

“더…강해져?”

[ 그래. ]

“하지만…”

노아는 입술을 꾹 깨문 채 고개를 숙였다. 노아는 2년 전부터 벽에 가로막혀 성장이 멈춘 상태였다. 그런 그녀에게 ‘더 강해지면 되지!’라는 말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도리어 그녀를 더욱 절망에 빠뜨릴 뿐이었다.

[ 벽에 가로막혀서 그러지? ]

“…!”

[ 해결 방법이 있어. ]

“방법이..있어요?”

[ 그래. ]

줄리아나는 진지한 얼굴로 노아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 하지만.. 목숨을 걸어야 해. ]

“상관없어요.”

펄럭!

노아는 덮고 있던 이불을 옆으로 치워버린 후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더 강해질 수만 있다면.”

그리하여 리안을 지켜줄 수만 있다면.

[ …좋아. ]

줄리아나가 제 본체가 묶여있는 책을 노아의 앞에 내려놓았다.

촤르르륵!

[ 내가 겪었던 시련을 이겨낸다면 넌 더욱 강해질 수 있을 거야. 대신.. 죽을 수도 있겠지. ]

책에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와 방 안을 채우기 시작했다.

[ 안에서 얼마의 시간이 흐르든 외부 시간은 거의 흐르지 않아. 그러니까 조바심 내지 말고 차근차근 나아가. ]

걱정이 섞인 줄리아나의 말에 노아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스승님.”

[ 무사히 돌아오기나 해. ]

환한 빛무리에 삼켜진 노아는 몸을 비틀거리더니 그대로 침대에 쓰러져 누워버렸다. 그녀의 정신만이 시련으로 넘어간 탓이다.

[ ‘노아 넌 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야 해.’ ]

절망에 발이 묶여 발걸음을 멈춘 순간, 노아는 자기 손으로 벽을 만들어 그곳에 갇혀 영원히 헤매다 쓰러질 것이다.

줄리아나는 과거 그런 천재들을 수없이 봐왔었다.

[ ‘너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족쇄를 부숴버리고 더 높이 날아올라 그러면…’ ]

줄리아나가 돌연 음흉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 걱정되고 신경 쓰이는 남자를 곁에 꽁꽁 묶어두는 법을 알려줄게. ]

줄리아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말했다.

[ 식은 언제가 좋으려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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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가 막 시련에 들어갈 그 시점.

잘그락.

“이걸 어쩌지?”

리안은 제 발목에 달린 족쇄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발목에 족쇄까지 채워뒀음에도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도구로 리안을 반쯤 감시하고 있기에 굳이 옆에 붙어있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이유는 난리가 난 본부의 뒤처리를 위해 모두가 자리를 비운 탓이 컸다. 제스와 아이리스는 리안의 부탁으로 아이들을 돌봐주고 있었다.

아마 세 시간 뒤쯤에 찾아오지 않을까 싶었다. 리안은 그 전에 노아를 만나 사과를 건네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지만, 족쇄에 발목이 잡혀있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이걸 풀어야 사과를 하러 가든 말든 할 텐데…”

리안은 머릿속에 발목을 ‘또각!’하고 잘라낸 후 다시 붙이는 상상을 해봤다가, 피범벅인 침대 때문에 족쇄가 두 개가 되어버리는 엔딩이 떠올라 실행하지 못했다.

그 외에도 괴이한 해결법이 많았지만, 실행으로 옮기면 난리가 날 것 같아 그만두었다.

‘어쩌지? 노아가 오길 기다릴까?’

그리 생각하며 침대를 뒹굴자 잘그락거리는 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똑똑.

그때 누군가가 리안의 방을 찾아왔다.

“들어와!”

신난 마음으로 그리 외치자.

끼이익…

문이 천천히 열리고 로브를 푹 눌러쓴 누군가가 느릿하게 안으로 들어왔다.

탁.

‘…누구지?’

순간 ‘적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상대는 수상한 기운을 물씬 풍겼다.

“아아…”

약간은 쉰 듯하지만 높은 톤의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안님!”

“…?!”

너무 놀라면 말이 없어진다고. 리안이 딱 그런 상태였다.

타닷!

수상한 이는 순식간에 리안의 침대 옆으로 달려왔다.

펄럭, 그 반동으로 로브의 후드가 뒤로 휙 넘어갔다.

“어? 피아?”

“아아, 리안님!”

리안은 당황한 얼굴로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은 피아를 바라보았다. 피아는 거기서 끝내지 않고 그대로 상체를 앞으로 푹 숙여 ‘도게자’라고 불리는 자세로 몸을 납작 엎드렸다.

“…?”

피아는 무려 개그 주민을 혼란에 빠뜨렸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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