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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4

   EP.94

     

   탑의 5층.

   포탈을 통과한 서세영이 처음으로 마주한 장소는 벽난로가 있는 아늑한 통나무 집 내부였다.

     

   -서세영 씨 오랜만입니다!

     

   그리고 눈을 뜨자마자 그녀에게 다가오는 것은 다름 아닌 토끼.

   튜토리얼에서부터 꾸준히 봐 왔던 녀석이라 그런지 이제는 꽤 익숙해진 존재였다.

     

   ‘여긴 어디지…?’

     

   지금껏 탑을 오르며 꾸준히 느껴지던 긴장감이 서서히 흩어져갔다.

   마치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외국의 가정집처럼, 집 안에는 따뜻한 카펫 위로 갖가지 선물 상자, 데코레이션과 함께 편안해 보이는 의자가 정돈되어 있었다.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여기는 5층에 오르기 전에 휴식을 취하는 일종의 쉼터입니다! 다른 분들이 올라오기 전까지 푹 쉬시면서 체력을 보충하시면 됩니다요!

     

   그저 편안함과 안락함으로 점철된 오로지 휴식을 위한 장소.

   게다가 의자에 앉자마자 털이 복슬복슬한 이족보행 토끼 한 마리가 수발까지 다 들어 주기 시작하니, 근래 겪은 모든 이벤트 중, 가장 나른해지는 상황이 아닐까 싶었다.

     

   -필요한 게 있으시다면 말씀하십쇼! 푹신푹신한 소파? 안락한 흔들의자? 과일이나 음식, 음료도 준비해드릴 수 있으니 언제든!

     

   토끼가 과장된 몸짓을 하며 그녀의 앞을 알짱거린다.

   도우미라는 놈의 정체를 알고 있기에 편안하지만은 않을 뿐, 서세영이 놈을 몰랐다면 이 갸륵한 호의를 그저 편안히 받았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수많은 어려움과 시련을 계단 삼아, 차근차근 탑을 오르던 플레이어였다.

   도우미라는 작자들이 성좌의 심부름을 받아 사람들을 굴리는 앞잡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이상, 마음을 편히 가질 수만은 없었다.

     

   “……무슨 의도야?”

     

   서세영이 토끼에게 넌지시 물음을 던졌다.

   도우미가 플레이어인 그녀에게 이런 호의를 보인다는 것은 놈도 분명히 원하는 것이 있다는 의미.

     

   하지만 토끼는 서세영의 물음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의도는 없습니다! 아니, 의도가 있다면 제 나름대로 화신에 대한 존경의 의미를 표하고 싶다는 걸까요?

     

   화신이라는 단어.

   녀석의 말에 서세영은 순간 4층에서 그녀가 받았던 임무 내용이 스쳐 지나갔다.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임무… 그리고 분명 보상은……’

     

   성좌와의 계약.

     

   토끼가 그녀를 ‘화신’이라 부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튜토리얼부터 계속해서 언급되면 성좌라는 존재들.

     

   도우미들이 계속해서 떠들어대고 메시지로도 자주 언급되었던 성좌와의 계약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도대체 성좌라는 것들이 뭐라고……’

     

   그들은 코인이라는 재화로 플레이어들을 성장시켰다.

   마치 게임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게이머들처럼 임무를 주고 그들을 계속해서 지켜봤다.

     

   서세영이 처음 성좌들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은 그녀에게 신에 가까운 절대자들이었다.

   머나먼 곳에서 플레이어들을 지켜보며 멸망을 놀이마냥 즐기는 자들.

     

   ‘그래서 알 수 없었어.’

     

   그들이 이런 죽음의 게임을 개최하는 이유.

   그리고 그들에게도 가치가 분명한 코인이라는 재화를 사용해 플레이어들을 성장시키는 이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존재들이 전지하지도, 전능하지도 않은 애매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사실은 그녀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 주었다.

     

   ‘누군가가 타인을 성장시키는 데에는 많은 이유가 필요하지 않지.’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훗날 성장해 그들의 힘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

   그녀가 살아온 세상에서도 그것이 그리 낯선 시스템은 아니었다.

     

   국가에서 전도유망한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해 국가의 인재로 키운다는 개념.

   하지만 그것은 성좌들의 이득이지, 도우미인 토끼가 서세영이 화신이 된 것을 반가워할 만한 이유가 되지는 않았다.

     

   “너…… 내가 성좌 계약을 하면 뭔가 얻는 게 있나 보네?”

     

   서세영의 말에 토끼가 뜨끔하더니 이내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정곡을 찔린 듯한 표정. 잠시 고민에 빠진 토끼는 본인의 턱을 만지작거리다가 가볍게 입을 열었다.

     

   -뭐 굳이 숨길 필요는 없는 것 같으니 솔직하게 말할 게요! 플레이어 분들이 계약을 많이 할수록 저의 격이 올라가거든요?

     

   토끼가 언제 꺼내 든 것인지 모를 마술 모자를 눌러쓰며 의미심장하게 그녀를 돌아봤다.

   튜토리얼의 시작 때, 처음 등장했던 그 느낌. 하지만 녀석의 입에서 나온 말은 한없이 가벼웠다.

     

   -그럼 저도 성좌가 될 수 있습죠! 이참에 저도 도우미 때려치우고 떵떵거리면서 놀고먹고 싶어요!

     

   -사실 기대 하나도 안 했거든요! 성좌가 되려면 시간이 엄청 많이 필요하기도 하고, 하필 받은 좌표가 무능력자뿐인 지구라……

     

   -아, 제가 지구를 욕하려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힘이 없는 여러분들이 급성장을 해줘서 격이 급격하게 올랐습니다!

     

   운이 좋아서 한꺼번에 많은 격을 쌓았다는 토끼.

   정확히는 김시인이라는 예상외의 존재 덕분이었겠지만 토끼는 운도 실력이고 결국 살아남은 자가 승자라며 지구를 추켜세웠다.

     

   플레이어들이 성장하고 성좌와 계약을 하면 도우미가 성좌가 된다.

   3층에서의 대화를 들으며 어느 정도 예상을 하긴 했으나 도우미의 입으로 직접 전해 들으니 괜히 기분이 언짢아지는 서세영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대화는 지금부터,

   서세영은 그녀가 궁금했던 물음 하나를 토끼에게 던졌다.

     

   “그럼 우리는?”

     

   -네?

     

   “성좌들은 화신이라는 힘을 얻어서 좋고, 도우미는 성좌의 자격을 얻을 수 있어서 좋다? 그럼 지금까지 고생해온 우리한테는 뭐가 떨어지는데?”

     

   -어어……

     

   서세영의 물음에 토끼는 당황했다.

     

   성좌와의 계약을 하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격을 아득히 뛰어넘어 버리는 것이기에 마땅히 보상이랄 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

     

   괜히 탑 4층의 보상이 성좌와의 계약뿐인 것이 아니었다.

   화신이 된다는 것은 초월적인 존재에 한 발짝 다가간다는 것.

     

   -성좌의 화신이 되면 탑을 오르는 게 조금 더 수월해집……

     

   토끼는 은근슬쩍 고개를 들어 서세영의 눈을 바라봤다. 아직 만족스럽지 않다는 표정이다.

     

   -그, 그리고 성좌의 하위 존재로서 강한 힘과 권능을 부여받게 되죠! 그에게 편입된 삶을 살게 되면 부귀영화를 누리게……

   “……”

   -……

     

   성좌들이 원하는 것은 화신들의 힘.

   그리고 도우미가 원하는 것은 성좌들에게 잘 키운 플레이어를 바치고 격을 상승시키는 것.

     

   “그러니까 없다는 거지?”

   -…넴.

     

   그리고 그 와중에 플레이어에게 떨어지는 무언가는 없었다.

     

   “그 계약이라는 거… 한 번 하면 무를 수 없는 거야?”

   -네 보통은 그렇죠? 아! 계약을 한 화신이나 성좌가 사망하게 되면 계약이 끊기기는 하는데 그런 경우는 아직까지 본 적은 없어서……

   “으음……”

     

   서세영의 머릿속에 한 남자가 떠올랐다.

   그는 이 말도 안 되는 계약을 할 것인가?

     

   힘을 얻기는 하겠지만 성좌와 도우미에게는 확실한 이득을 가져다주고 본인에게는 불확실하고 어정쩡한 이 계약을?

     

   그리고 그녀의 머리가 내린 결론은 ‘절대 아니다’ 였다.

     

   “그래서 그 계약은 언제부터 진행할 수 있는 거야?”

     

   서세영은 한숨을 내쉰 후, 시련에 직면한 토끼에게 물음을 던졌다.

     

   -오! 관심이 생긴 모양이군요! 사실 이전부터 서세영 씨한테 관심을 가진 성좌님들이 계시긴 했습죠! 원하신다면 바로 진행 가능하십니다!

     

   토끼가 반색하며 짝하고 박수를 친다.

   어떻게든 이 계약을 따내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두 눈에 보인다.

     

   —

   「분노를 노래한 음유시인」

   「모험하기를 좋아하는 자」

   「자유를 갈망하는 별」

   ……

   ……

   —

     

   임무를 받을 때처럼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명단.

   그 이름들 중에는 탑을 오르는 내내, 그녀에게 후원을 했던 이름도 있었고 그 외에 익숙하지 않은 성좌들의 이름도 있었다.

     

   -이 분들이 서세영 씨에게 관심을 보였던 성좌님들이십니다! 아, 성좌 계약은 오직 한 분하고만 가능하니까 신중하게 선택하셔야 합니다!

     

   토끼의 설명에 서세영은 가만히 명단을 읽어 내려갔다.

   수십 개의 이름. 낯설고도 익숙했다. 하지만 결코 친숙하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 장소는 계약을 위한 장소다 보니, 이 계약에 대해 알게 될 존재는 도우미와 플레이어, 그리고 계약 당사자인 성좌 셋뿐입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신중하라는 말을 한 뒤, 아차 싶은 표정으로 걱정하지 말라는 토끼.

   하지만 녀석의 반응을 떠나 서세영의 귀에 집중된 것은 토끼의 말이었다.

     

   “이 계약을 아무 성좌도 보지 못한다고?”

   -예? 아, 예 아직 계약을 한 것도 아니니까 그렇죠?

   “그렇단 말이지?”

     

   서세영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계약은 무를 수 없다. 그리고 내가 하는 계약은 나와 도우미, 그리고 단 하나의 성좌만이 알게 된다.

     

   “너는 아직 도우미지? 근데 격은 성좌 직전까지 간?”

   -예? 어… 그렇긴 한데 왜죠?

   “혹시 너하고도 계약이 돼?”

   “…………네?”

     

   그녀의 말에 토끼가 지금까지 보인 적 없던 당혹감을 보이며 말을 더듬었다.

     

   -해, 해본 건 아닌데… 안 되지 않을… 아닌가? 아직 나는 도우미인데?

     

   토끼가 묘한 기대감을 품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공중에 살짝 떠 있다가 완전히 내려와, 방 안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 녀석.

     

   그리고 이내, 녀석은 동글동글하고 반짝이는 눈빛으로 서세영을 바라봤고 반신반의한 목소리로 그녀를 향해 외쳤다.

     

   -계, 계약하실?

     

   띠링.

     

   그때 서세영의 눈앞에 떠오르는 새로운 메시지 하나.

     

   —

   「이명이 없는 붉은 눈의 짐승」

   —

     

   -……

   “……”

     

   그로부터 이어진 기나긴 적막.

   끝이 없을 것만 같은 침묵이 깨어진 것은 토끼의 말이 나온 직후였다.

     

   -…이게 왜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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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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