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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4

        기존 마도공학에서는 자연이나 마수에게서 얻은 마석을 있는 그대로 사용했다.

         

        마석의 내부구조를 뜯어보려는 시도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연구는 실패했거나, 아주 제한적인 성과만을 거두었다.

         

        그러나 살리에르 백작이 1년 전 새로운 기계를 비밀리에 발명하면서 재료마공학의 새로운 가능성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정제기.

         

        말 그대로 피치블렌드 마석을 정제하여 연노랑 빛을 띠는 분말로 변환하는 장치다. 이 기계를 발명함으로써 크롬웰 살리에르는 마석을 있는 그대로 쓸 때보다 정제해서 사용할 때 더 좋은 효율을 낸다는 것을 실증해냈다.

         

        비록 정제한 가루를 어느 산업에 응용할지는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지만, 머지않아 널리 쓰이는 시대가 도래하리라.

         

        크롬웰은 이러한 응용 연구를 로테에게 일임했다. 자기 딸을 살리에르 가문 역사상 유례없는 천재라고 생각헀기 때문이었다.

         

        그랬기에 로테는 이 기계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이게 왜 대체 여기서….”

         

        가문의 기밀이 전혀 의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외부인에게 공개되었다. 

         

        “오. 재미있는 게 나왔네.”

         

        아카샤는 흥미롭다는 듯 턱 끝을 매만지며 정제기 앞으로 성큼 다가섰다. 어찌나 반응이 빠르던지 말릴 틈도 없었다.

         

        불과 몇 초가 지나지 않았다. 아카샤는 단번에 정제기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피치블렌드 마석을 가루 내는 기계네?”

        “어, 어떻게 그걸 네가….”

        “우리 언니가 예전에 이거 비슷한 걸 만들려고 했었거든.”

         

        아카샤의 폭탄과도 같은 발언에 로테의 입이 함지박만 하게 벌어졌다. 못 믿겠다는 표정이었다.

         

        아버지가 10년간 연구해서 만들어낸 기계라고 하는데, 그걸 들킨 것도 모자라 이미 친구가 옛날에 만들었던 거라니. 

         

        “뭘 그리 놀라? 우리 언니는 금안족 중에서도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이었는데.”

         

        금안족이 다른 종족에 비해 똑똑하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 금안족에서도 천재라고 부풀릴 만한 인물이라면 보통이 아니리라.

         

        아무튼 엎질러진 물이다. 로테는 차분하게 아카샤의 표정을 읽었다. 아버지가 만든 기계에 흥미를 가지는 것 말고 다른 감정은 없는 듯했다.

         

        어떻게든 주제를 돌려서 이쪽으로 대화의 주도권을 돌려야 한다. 로테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너희 언니가 이런 걸 만들었다고? 언제 어디서?”

        “나와 헤어지기 직전까지 만들었었어. 한 몇 년 됐나?”

         

        로테가 알기로, 그녀와 에테르는 비슷한 나이였다. 이제 막 성인식을 치른 로테에게 있어 몇 년이라는 시간은 절대로 적지 않았다.

         

        못해도 15살 전후로 이만한 기계를 홀로 만들어냈다는 소리인데.

         

        아무리 천재라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로테는 곧 아카샤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근데 완성은 차마 못 했지. 이런 거 만들면서 회의감이라도 느꼈었나 봐.”

        “왜, 뭐 하러 만들었던 건데?”

        “있어, 그냥.”

         

        아카샤는 알 거 없다는 듯 팔짱을 끼며 뒤를 돌아보았다. 동굴에서 자기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을 때 비교하면 누그러진 어조였지만… 거절은 거절이다. 이런 점이 수상한데.

         

        “왜?”

        “알면 다칠 텐데.”

         

        역시, 뭔가 알고 있다.

         

        로테는 아카샤가 꽂아 넣었던 관능소설을 책꽂이에서 빼 다른 쪽으로 던졌다. 툭, 하고 다른 선반에 책이 착지한다. 그와 동시에 코앞의 책상이 원래 위치로 움직였다.

         

        아버지의 역작을 들킨 이상 뭐라도 해야 한다. 살리에르 백작가에서 개발을 시작한 마도는 살리에르의 손에서 완성되어야 한다.

         

        그런 생각으로 소녀는 과거를 반추했고-

         

        “텔러-울람 설계.”

         

        아무런 맥락 없이, 그런 말을 아카샤의 면전에서 내뱉었다. 혹시 너도 이걸 알고 있나 싶어서.

         

        “뭔지 알아? 네 언니가 나한테 가르쳐 준 건데.”

         

        꽤 볼만한 얼굴이 되었다.

         

         

        **

         

         

        언니는 기술고문으로서 많은 무기를 만들어냈다.

         

        무기 개발과정은 모든 게 기밀이다. 신무기 개발의 모든 지휘를 언니 혼자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쌍둥이 여동생인 아카샤조차 모르는 게 많았다. 애초에 자긴 언니처럼 똑똑하지도 않았고.

         

        “텔러-울람 설계. 뭔지 알아? 네 언니가 나한테 가르쳐준 건데.”

         

        그래서 로테가 그런 말을 꺼냈을 때 등골이 오싹해졌다.

         

        텔러-울람 설계가 뭔지는 모른다. 텔러와 울람은 또 뭐 하는 사람이란 말인가?

         

        중요한 건 언니가 뭔갈 알려줬다는 사실이다.

         

        대충 [설계]라는 단어가 뒤에 붙으면 언니가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무기 개발 프로젝트라는 뜻이다.

         

        설마, 군사기밀을 빼돌린 건가?

         

        아카샤는 조금 전의 정제기를 떠올렸다.

         

        ─ 피치블렌드, 학명으로 우라니나이트라고 하지. 이걸 정제해서 폭탄으로 만들 수 있어.

         

        아직 기억을 잃기 전의 언니가 해줬던 말.

         

        그 [텔러-울람 설계]인가 뭔가 하는 것이랑 연관성이 있는 듯하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 소녀가 정제기를 들킨 직후에 이런 얘기를 꺼내지 않았을 터.

         

        자길 떠보려고 하는 거다. 우습게도.

         

        겨우 수 밀리초가 지났을 동안 여기까지 사고를 마쳤다. 금안족의 두뇌는 인간 따위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빠르게 돌아간다.

         

        아카샤는 일부러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그걸 언니가 가르쳐 줬어?”

         

        로즈마리처럼 연기를 잘하진 못하지만… 그래도 잠입 업무를 수행하는 인간형 마수다. 거짓 감정 표현 정도는 식은 죽 먹기.

         

        “우리 언니가 옛날에 몰래 만들려고 했던 고유마법인데……. 뭐, 상관없겠지. 언니가 말해줄 정도면 꽤 신뢰받고 있는 모양인데.”

        “알아?”

        “암, 알고말고.”

         

        거짓말이다. 그러나 아카샤는 애써 못 이기는 척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털어놓았다.

         

        “피치블렌드 마석을 이용하여 엄청 강력한 폭탄을 설계하는 마도. 그게 텔러-울람 설계야.”

         

        되는대로 내뱉은 것이지만, 억측은 아니었다. 전후 맥락을 고려한다면 그런 식으로 유추하는 게 정상 아닌가?

         

        오히려 로테가 놀란 얼굴이었다. 새하얀 안색이었다.

         

        뭐야. 정답이었나?

         

        나쁘지 않은 흐름이다. 아카샤는 계속해서 거짓을 섞어가며 로테를 밀어붙였다.

         

        “그나저나 언니도 참, 자기 혼자 연구해서 발표하겠다는 걸 너에게 알려준 거야? 정말 좋아하는 사람 아니면 자기 공부하는 거 절대로 안 알려주는 사람인데.”

        “어? 어….”

        “왜, 하스펠트 공작 가문에서 연구하던 플레어인가 뭔가 하는 마도도 그랬잖아? 때마침 우리 언니도 비슷한 걸 연구하고 있었거든. 그전까진 나한테도 거의 안 가르쳐줬어.”

         

        아카샤는 로테 살리에르에게서 클라이스 하스펠트 공작을 보았다. 기밀 마도를 연구하고 있다면, 이런 식으로 뒤통수 맞을 걸 미리 알고 있으라고.

         

        언니를 의심하고 또 의심해서, 사이가 틀어져 버린다면. 그렇다면 그다음부터는 어떻게 되든 마왕군에게 이득 아니겠는가?

         

        “음, 어쨌건 이건 불문율에 부칠게. 언니 친구에, 날 도와주기까지 한 사람한테 민폐 끼치긴 싫거든.”

         

        씩 웃으며 입가에 검지를 가져갔다. 로테는 꽤 볼만한 얼굴이 되었다. 

         

        좋아, 이걸로 며칠 전 겪었던 굴욕은 해소됐다.

         

         

        **

         

         

        그날 저녁, 아카샤는 살리에르 식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메이드들을 도와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정말 이러지 않아도 되는데….”

        “신세 지고 있잖아요. 못해도 하루는 이러게 해 주세요.”

         

        언뜻 보면 선심 쓰는 듯한 발언이었다.

         

        아카샤는 평범하게 요리를 도와주다가, 메이드들이 자신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 틈을 타 품에서 하얀 가루가 담긴 코르크 병을 꺼냈다.

         

        “간이 덜된 것 같은데.”

         

        뽁, 하고 코르크를 딴 뒤 펄펄 끓는 냄비에 하얀 가루를 털어 넣고 국자로 휘휘 저었다.

         

        음식들이 널따란 식탁보를 따라 소담스럽게 차려졌다. 음식을 만드는 데 사용한 재료 수준은 평민들도 구매할 수 있을 만큼 저렴한 것이었지만, 숙련된 요리사가 만들어서 그런지 고급스럽게 느껴진다.

         

        사치가 심한 귀족들은 이런 것도 안 먹는다지? 로즈마리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보며 내심 코웃음을 친 아카샤는 포크를 들었다.

         

        “에테르는 수프 안 먹니?”

        “오늘은 됐어요.”

         

        살리에르 백작가의 식사는 귀족치고는 검소하면서도 짧은 편이었다. 바깥 상황이 말이 아닌데, 신분이 높다는 이유만으로 비싼 식자재를 싸다가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잘 먹었습니다.”

         

        아카샤도 이 점만큼은 인정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식기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날 살리에르 집안사람들은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왠지 모르게 모두가 평소보다 많은 피로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로테도 마찬가지였다. 로테는 아카샤가 푸욱 잠든 걸 확인하자마자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아카샤는 정확히 600까지 세고 나서 몸을 일으켰다. 로테에게로 다가가 뺨을 툭툭 건드렸다.

         

        “야, 자냐?”

         

        사실 이렇게까지 물을 필요도 없었다. 로테의 머릿속에서 델타파가 새어 나오는 걸 감지기관으로 확인하여 알 수 있었으니까. 제대로 잠들어 있단 뜻이었다.

         

        “좋아.”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왔다.

         

        오늘 낮, 살리에르 가문에서 정제기를 발견한 이후로 아카샤는 저택에 무언가가 더 있으리라고 확신했다.

         

        툭, 탁, 툭.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바닥에서 그런 소리가 났지만, 이상함을 느끼고 뛰쳐나오는 이는 없었다.

         

        “수면제 효과 제대로네.”

         

        아카샤는 괜찮은 게 걸리길 바라면서 웬만한 방문을 다 열어봤다. 변경백 저택답게 넓고 복잡해서 집 안을 쏘다니는 데에만 1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러다가 구석에 있는 창고에 이르렀다. 마법으로 잠겨있었지만, 그리 어려운 주문은 아니라 쉽게 해주하고 들어갔다.

         

        내부는 유독 어두웠다. 하지만 아카샤에게는 적외선 감지장치가 있었기에 불을 따로 켜지 않더라도 창고 안을 샅샅이 훑어볼 수 있었다.

         

        “어.”

         

        가슴까지 오는 높이의 꽤 커다란 물건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손으로 쓰다듬어 보니 철제 같은데. 

         

        “잠깐만, 이건….”

         

        토카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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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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