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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4

       95. 보스의 정석

       

       

       발자크는 인상을 찌푸리며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새하얀 머리칼.

       번뜩이는 푸른색 눈동자에 금빛의 불꽃이 깃든다.

       

       그리고 그 손에 쥐여진 검.

       그것에서 흘러나오는 찬란하기 그지없는 광채까지.

       

       이 모든 것들이 말해주는 사실은 하나밖에 없었기에. 그의 얼굴이 이내 경악으로 물들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군.’

       

       성검은 반토막났다.

       심지어 타락하기까지 하여 이젠 아무도 쓸 수 없는 물건이 되었다.

       

       게다가 맛이 간 건 성검뿐만이 아니다.

       

       생전에 온갖 축복과 가호를 받으면서 빛의 신과 연결되어 있는 전대 용사의 시체.

       

       그 연결은 이젠 속박이 되어, 온갖 장치와 술식을 통해 빛의 신을 제어하는 데에 사용되고 있으니까.

       

       이제 빛의 신은 용사를 축복할 수조차 없었다.

       

       분명 그럴 터인데.

       행방이 묘연해진 성검은 불완전하게나마 모습을 되찾은 데다가 정화되었다.

       

       빛의 신은 이제 가호도 내릴 수 없는 몸인데.

       저 남자에게서는 막대한 신성력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의 눈앞에 있는 건 명실상부한 용사였다.

       절대 다시 나타날 수 없는 존재가 다시금 그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저 검의 빛도.

       눈동자에 깃든 황금색의 불꽃도. 

       

       기억의 개변이 행해지지 않은 그의 머릿속에는 뚜렷이 남아 있었다.

       

       다만 알 수 없는 게 있다면.

       

       “……너는 대체 누구지?”

       

       저놈의 정체다.

       저 얼굴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전대와 연관이 있는 인간인가 했지만, 그놈과의 관련성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렇기에 발자크는 살기를 내뿜으며 그리 물었지만.

       

       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런 살기 따위 느껴지지도 않는다는 듯, 그저 천천히 그를 향해 걸어오는 남자만이 있을 뿐.

       

       그 눈빛에 담긴 명백한 분노의 감정.

       지금 상황을 생각해 보면…. 무엇이 저 남자를 분노하게 했을지는 간단하게 눈치챌 수 있었다.

       

       ‘저 여자의 동료라도 되는 건가?’

       

       그 연기력.

       분명 상황을 더 유연하게 넘길 방법도 있었을 터인데. 조금의 위험도 감수하지 않으려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

       

       그걸 보고 그년이 뭔가 중요한 걸 숨기고 있을 거란 건 눈치챘지만.

       

       설마 용사와 관련이 있을 줄이야.

       

       “…아무래도 나와 대화를 나눌 생각은 없나 보군.”

       

       저 여자를 건드린 게 어지간히도 심기에 거슬렸는지. 살기를 품으며 그를 노려보고 있는 상황.

       

       저걸 보면 아무래도 포섭은 힘들어 보이지만.

       

       “뭐, 상관없겠지.”

       

       애초에 대화로 저놈을 구워삶을 수 있을 거라곤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런 것은 그의 특기도 아니었고 말이다.

       

       눈앞에 있는 건 명실상부한 적.

       그렇다면 주고받아야 할 것은 시답잖은 대화가 아니라 검일 터이니.

       

       “와라.”

       

       더 이상 망설일 이유 따윈 없었다.

       

       *****

       

       눈앞의 남자가 자세를 잡으며 호흡을 가다듬는다. 고작 그것만으로도 주위의 모든 것이 요동치는 듯 했다.

       

       인간을 아득히 초월한 경지.

       신검합일을 넘어 세상과 자신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하나된 모습.

       

       ……알고는 있었지만. 역시 쉬운 상대는 아니다.

       

       대기 중에 있던 마력.

       심지어 나 자신에게 깃들어 있던 마력까지도 놈에 의해서 통제당한다.

       

       이것이 소드마스터와 근거리에서 싸우는 게 자살행위인 이유였다.

       

       대마법사의 경지에 도달한 이가 아닌 이상. 마나는 언제나 저놈의 편을 들어줄 테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땅을 박차고 놈에게로 달려들었다.

       

       놈의 얼굴에 잠시나마 당황이 엿보인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마력강화도 하지 않았는데 이런 힘을 내는 것은 일반적으로 절대 불가능한 일이니까.

       

       하지만 나는 다르다.

       

       ‘애초에 마력 같은 건 필요없어.’

       

       서클도 형성하지 않는 상황. 마력으로 신체를 강화하는 법을 익혔다지만 그것 또한 그렇게 높은 경지에 도달한 건 아니다.

       

       그러니 마력을 사용할 수 없다는 건 내게 큰 손해가 아니었다.

       

       반대로 이 괴상하기 그지없는 몸뚱이는 마력 하나 없이도 비정상적인 힘을 발휘한다.

       

       아무런 도움 없이 그저 기본적인 근력 하나만으로도, 마력으로 신체를 강화한 초인에게 맞설 정도의 위력을 지닌 것이다.

       

       날개의 컨트롤도 아직 완전히 익숙해지진 못했지만. 사실 복잡한 운용 같은 건 필요없었다.

       

       그저 앞으로.

       무엇보다 더 빠르게 놈을 향해 돌진하는 것만 생각하면 되는 일이니까.

       

       0.1초도 되지 않는 찰나의 순간.

       그 사이에 놈과 내 사이의 거리가 좁혀진다.

       

       나는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두른다.

       허나 저 괴물 같은 놈은 그 찰나의 순간에도 완벽하게 반격을 행하였다.

       

       울려퍼지는 굉음.

       놈과 내 검이 맞부딪힌다.

       

       소드마스터 급의 강자가 자신의 오러를 힘껏 불어넣어서 휘두른 검.

       

       그리고 검술 경력이라고는 6개월도 채 되지 않는 내가 되는 대로 휘두른 검.

       

       본래 이 승부가 어떻게 끝나야 했는지는 명백할 터였다. 신비가 담긴 아티팩트조차 가볍게 베어내는 것이 소드마스터의 검기니까.

       

       허나 그럼에도.

       나의 검에는 금 하나 가지 않는다.

       

       놈이 이를 악물며 나를 바라보았다.

       지금 일어난 일을 도저히 납득하지 못하는 듯한 모습이지만.

       

       이런 결과가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것은 주인공을 위해 마련된 검이다.

       

       이 세상의 중심.

       그런 존재를 위해 준비되었었던 물건이란 말이다.

       

       한 번 망가졌다 하더라도 그것에 담겨 있는 힘은 변치 않으리라.

       

       저놈의 검기가 아무리 강력하고 매섭다고 한들, 그런 건 성검 앞에서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

       

       나의 맹세.

       내 의지가 꺾이지 않는 한 성검은 결코 부러지지 않을 테니까.

       

       당연히 그 어떤 검에도 패배할 리가 없었다.

       

       “네놈은 대체….”

       

       놈의 그런 말 따윈 무시하고. 있는 힘을 쥐어짜내 계속해 놈을 밀어붙인다.

       

       놈은 그 검을 받아내면서 필사적으로 나와 거리를 벌렸다.

       

       수치심으로 일그러진 얼굴.

       

       저놈도 알아차린 것이다.

       정면으로 힘을 겨루면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저 멀리서 놈이 나를 향해 검기를 난사한다.

       수백, 아니 수천의 참격이 나를 향해 쇄도한다.

       

       닿는 것만으로도 몸이 산산조각날 것이 분명한 공격. 허나 그런 것들 또한 전부 무용지물이다.

       

       ‘저놈한테는 내가 초면이겠지만.’

       

       안타깝게도 이쪽은 아니다.

       더럽게 어려운 난이도. 패턴 파훼에 꽤 애먹었던 히든 보스. 놈이 어떤 식으로 상대를 공격하는지 정도는 파악하고 있다.

       

       아니, 파악하는 걸 넘어 전부 암기하고 있다.

       거기에 날개로 얻은 기동력까지 더해진 상황.

       

       당연하게도 놈의 공격이 내게 닿을 리 없었다.

       

       수천의 참격을 모두 피하고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은 나를 바라보면서. 놈이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대체 어떤 비겁한 수를 쓴 거지?”

       

       분노로 얼룩진 표정으로 그리 묻는 발자크.

       

       놈은 내게 물었다. 어떻게 내 검을 알고 있는 거냐고. 이걸 본 이들은 모두 죽었을 터인데.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용사라는 작자가 명예도 모르는 것인가.”

       

       자신이 불리해지자마자 명예를 들먹이는 모습.

       

       기사다움 따윈 전혀 엿보이지 않았지만. 오히려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진정으로 기사도를 지키려고 하는, 명예를 알고 있는 인간이라면. 제국의 편에 섰을 리가 없으니까.

       

       아무리 포장해 봤자 저놈은 결국 깡패일 뿐이다.

       

       결투라는 명목으로 마음에 안 드는 상대를 썰어버리며. 그것을 명예로운 승부라 포장하는 추악한 인간.

       

       나는 그런 생각을 하다가….

       이내 눈치챘다.

       

       저놈이 어떤 행동을 하려 할지를.

       

       “그렇다면 나 또한 거리낄 건 없겠지.”

       

       그런 말과 함께 힘껏 검기를 날리는 모습.

       허나 그것이 향하는 방향은 내 쪽이 아니었다.

       

       묶여있는 루비아 씨를 향해 검격을 날린 것이다.

       

       나는 이를 악물고서 루비아 씨의 앞을 막아섰다.

       놈의 진심이 담겨 있는 검기.

       

       그것을 전력으로 상쇄해 막아낸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 과정에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었고….

       

       그 지랄맞은 새끼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다시금 수천의 참격이 나를 향해 쇄도했다.

       

       *****

       

       난장판이 된 저택.

       흙먼지가 얼마 안 가서 가라앉고, 이내 발자크의 눈에 그 빌어먹을 남자의 모습이 들어온다.

       

       대체 얼마나 명줄이 끈질긴 것인지.

       쓰러지지 않고 검으로 몸을 지탱하며 서 있는 모습.

       

       놈은 그 참격을 정통으로 맞아내면서까지 끝내 저 여자를 지킨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발악도 여기까지다.

       괴상한 힘을 동원하고 영문모를 방식으로 그의 검술을 모두 읽어내고.

       

       그런 수작질도 이젠 부릴 수 없으리라.

       

       발자크는 재빨리 소년의 심장에 검을 박아넣었다.

       

       결국 이 싸움은 그의 승리로 끝을 맺은 것이다.

       

       수치스럽게도.

       그걸 위해 그다지 정당하지 못한 수단을 동원하여 명예를 더럽혀야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사악한 술수에는 사악한 술수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발자크는 그런 생각을 하며, 소년의 심장에서 검을 뽑아낸다.

       

       보고할 사항이 많았으니까.

       그렇게 발자크는 정신을 잃은 여자를 챙겨 저택을 떠났다.

       

       …아니.

       떠나려고 했다.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무척이나 심기에 거슬리는 웃음소리.

       

       “……왜 웃는 거지?”

       

       승부는 이미 결정났다.

       저놈이 뭐라 지껄이든 그것은 결국 패배자의 헛소리일 뿐이다.

       

       곧 죽을 놈의 유언 따위 들어줄 필요도 없었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데도.

       어째서인지 그 웃음소리가 심기에 거슬렸다.

       

       “알고 있어? 네가 방금 최악의 선택을 했다는 거.”

       

       예상대로.

       놈의 입에서 나온 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헛소리다.

       

       그럴 수밖에 없다.

       헛소리일 것이 분명한데.

       

       “뭐, 억울하다고 생각하지는 마. 애초에 사기는 네가 먼저 친 거잖아.”

       

       피가 흐르지 않는다.

       분명 심장을 꿰뚫었을 터인데도. 상처에서 혈액은 흘러나오지 않는 것이다.

       

       심장, 근육, 피부.

       그 모든 것이 거짓말처럼 다시금 재생된다.

       

       “먼저 비겁한 수를 썼으면, 너도 비겁한 수에 당할 각오 정도는 해둬야지.”

       

       불타는 소리가 들려온다.

       

       놈의 목에 걸려있던 ‘검은색의 부적’.

       그것이 불길한 빛을 내며 타오르고 있었다.

       

       남자에게 드리운 거대한 그림자.

       그 너머로 끔찍한 기운이 전해져 온다.

       

       무언가….

       무언가 끔찍한 것이 이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발자크는 식은땀을 흘리며 그리 물었다.

       그 모습을 비웃으며 남자는 입을 열었다.

       

       “아직도 모르겠냐?”

       

       남자는 다시금 성검을 뽑아들었다.

       아까의 사투 같은 건 벌어지지 않았다는 듯.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모습으로.

       

       심지어… 옆에 세 명의 동료들까지 데리고서.

       

       “2페이즈 시작이다. 이 애미뒤진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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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ccidentally Created a Villainous Organization

I Accidentally Created a Villainous Organization

How did you create a dark organization? 어쩌다 흑막 조직 만들어버림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game spoilers turned out to be fake. The characters I gathered thinking they were heroes are actually all villains. In other words, I accidentally created a villainous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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