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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4

       “하아, 정말.”

        

       테라스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아니, 정확히는 일부러 그렇게 만들어 둔 듯했다.

        

       창문 하나 없던 카지노와는 다르게, 위로 두 층만 올라가자 커다란 창문이 여러 개 달린 무도회장이 나왔다. 그 위로도 건물은 몇 층이나 더 올라갈 수 있었는데, 아마 그 위로는 호텔이 있을 것이다. 아카데미 학생들이 지내는 곳은 노스우드 성이었으니 당연히 그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기 어렵겠지만, 사실 굳이 돈을 받는다고 해도 여기보다는 적게 받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정~말 독실한 여신교라서 말이야. 몸에 손을 대는 것 정도는 참아줘도 섞는 것 까지는 못하겠는데. 앞에서 옷이라도 벗어줄까?”

        

       장난스럽게 말하며 테라스의 커튼을 친 그녀가 말했다.

        

       실제로 여기서 옆으로 고개만 돌려도 보이는 다른 테라스에서는 그런 짓을 하는 남녀도 보였다. 보통은 그냥 무릎 위에 앉히고 몸을 주물럭거리는 인물들 뿐이었지만.

        

       본격적으로 몸을 팔기 전에 거쳐 가는 곳이기라도 한 걸까.

        

       탁 트여있는 곳이긴 했지만 테라스 사이의 거리가 꽤 멀어서, 그리고 아래쪽에서 올라오는 빛이 있기는 했지만, 꽤 높은 곳이라서 가까운 곳이 아니라면 얼굴을 식별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았다.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손님용 소파에 가서 앉아 다리를 꼬았다.

        

       그리고 장난스럽게 자기 가슴 옆으로 손을 집어넣은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

        

       “…….”

        

       “……뭐, 뭐야, 진짜 벗어?”

        

       내가 물끄러미 바라보자 저쪽도 당황했는지 그렇게 되물었다.

        

       “30파운드라는 가치 안에 그 서비스가 포함되어있다면.”

        

       내가 그렇게 말하자, 여자는 입을 뻐끔거리다가 이내 얼른 대담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황녀님 취향이 그렇게 되는 줄은 몰랐는데?”

        

       “만약 그렇게 못하겠다면, 정보 값으로 받아도 됩니다.”

        

       “그렇다는 건, 내가 어디 사람이라는 걸 이미 알고 왔다는 뜻 같은데?”

        

       “물론입니다. 베라티 경.”

        

       내가 그렇게 말하자, 여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키아라 베라티 경께서 여기 이러고 있는 이유를 알고자 찾아왔습니다.”

        

       “이미 알고서 찾아온 건 아니고?”

        

       “정확히 말하자면, 제가 알고 있는 사실을 제대로 확인해보기 위함입니다.”

        

       “……이미 다 알고 오셨다?”

        

       키아라 베라티는 내 말에 허탈하다는 표정으로 옷을 벗기 직전이었던 손을 빼서 아래로 축 늘어뜨렸다.

        

       “교황청에서 조심하라고 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구나.”

        

       “정확히 말하자면, 조심한다고 해서 제게서 정보를 숨길 수는 없었을 겁니다.”

        

       내 말에 키아라 베라티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말했다.

        

       “뭐, 그러시던가.”

        

       그리고 눈을 이리저리 굴리던 그녀는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하지만, 고작 이 정도 돈으로 기밀을 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들이 ‘기밀’이라고 생각하는 정보는 이미 제 머릿속에 다 들어있으니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 비용은 그저 정보 확인하는 비용입니다.”

        

       “그렇게 네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풀어놓아도 된다는 거야?”

        

       키아라 베라티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그야 당연하지.

        

       어차피 확인만 하고 다시 시간을 돌릴 생각이니까.

        

       “필요하다면, 이쪽에서 정보를 조금 넘겨드릴 수도 있습니다.”

        

       “정보 거래를 하자고? 네가? 나랑?”

        

       “이상합니까?”

        

       “당연히 이상하지. 작년에 그 회장에서 네가 보였던 그 태도를 생각하면.”

        

       거기 있었던 걸까?

        

       하긴, 있었다고 해도 이상하지는 않다. 추기경이 이끌고 온 수녀 중 하나였다고 해도 남들은 몰랐을 테니까. 그때는 나도 관심도 없었고.

        

       “저는 그저 지금 당장 제국에 이득이 될 일을 염두에 두고 움직일 뿐입니다. 당시에는 제국 외에 동맹이 생기는 것이 제국에게 해가 된다고 생각했을 뿐, 개인적인 감정은 없었습니다.”

        

       사실은 개인적인 감정이 가득해서 벌인 일이긴 했지만, 그런 사실을 굳이 이 성당 기사에게 밝힐 이유는 없었다.

        

       “……내가 내 정보를 주면, 너는 뭘 더 줄 수 있는데? 아, 참고로, 이런 수표 같은 건.”

        

       키아라 베라티는 자기 가슴 사이에서 수표를 꺼내며 말했다.

        

       “법국 전체를 기준으로 보면 한 줌도 되지 않는—”

        

       “제국이 가진 예언서의 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

        

       내가 꾸준히 여유로운 태도를 유지하며 그렇게 말하자, 여자의 말문이 다시 막혀버렸다.

        

       예언서는 법국이 노리는 지보중 하나였다. 제도 황궁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그 책을 빼낼 방법이 없으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을 뿐이지, 만약 방법만 있었다면 법국은 강제로라도 그 지보를 빼돌리려고 했을 것이다. 여신께서 남긴 모든 지보는 신앙의 계승자인 자신들이 관리해야 한다고 보는 광신도 집단이었으니까.

        

       그리고 예언서는 그 내용이 중요한 거지, 책 자체는 신성한 무언가가 아니었다. 그 사실을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키아라 베라티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네가 만약 거짓말을 하는 거라면.”

        

       “앞으로 제가 하는 모든 이야기는 법국의 기준으로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이 될 겁니다. 지금 당신 손에 있는 그 30파운드 수표만도 못한 휴지 조각이 되겠죠.”

        

       “…….”

        

       그 돈이 대단한 것도 아니라면서 나를 여기까지 데리고 온 이유는 단순하다.

        

       바니걸이 30파운드씩이나 되는 돈을 거절하는 것이 어색하니까.

        

       몸을 팔지 말지는 나중에 판단하더라도, 일단 손님을 잡아두고 싶어 하는 것이 당연하다. 성별이 어떻건 아무렇지도 않게 30파운드를 쓰는 손님이니, 조금이라도 더 털어먹으려고 하는 게 자연스럽다. 그게 아니라면 그냥 겁에 질려서 돈을 돌려주던가.

        

       거기에 내가 황녀라는 사실까지 이미 파악하고 있으니, 대화라도 나누어보자고 생각해서 이렇게 불러온 거겠지.

        

       “좋아.”

        

       복잡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던 키아라 베라티는 의외로 순순하게 말하며 의자에 앉았다.

        

       마주 보는 종류의 의자는 아니었다. 의자는 테라스를 감싸듯 반원을 그리고 있었으므로, 그 의자의 가운데 앉은 나에게서 멀찍이 떨어진 끄트머리에 앉게 되었다.

        

       서로 표정을 보기에는 나쁘지 않은 거리였다.

        

       음료 한잔 없이 앉아있는 삭막한 모습이었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친해지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으므로, 나는 그대로 입을 열었다.

        

       “먼저, 당신의 정체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죠. 이름은 키아라 베라티. 성 안토니오 수도회의 수녀이자 성당 4기사. 수여받은 무기는 성창. 여기 온 이유는 노스우드 유적에서 지보를 ‘되찾기’ 위해서. 맞습니까?”

        

       “……제국이 지보에 대해서 알고 있어?”

        

       “적어도 저는 알고 있습니다.”

        

       만약 차라도 한 잔 내왔다면 호록, 하고 한 모금 마셨을 텐데.

        

       “고대 병기의 일부분입니다. 이 카지노가 세워진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 옛날, 아직 세상이 제대로 만들어지지도 않았던 시절.

        

       모든 것이 붕괴하기 이전의 세계에 존재하던 문명이 있었다.

        

       그리고 그 문명의 건축물이나 물건 중 극히 일부가 대혼란 중에도 부서지지 않고 남았다.

        

       법국은 그 장소와 물건들에 유적과 유물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신의 지보랍시고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닌다. 물론 최대한 남들 알지 못하도록 몰래.

        

       그리고 그 와중에 ‘들키지 않기 위해서’ 남들에게 온갖 잘못을 뒤집어씌운다.

        

       그 대상은 도적무리일 때도 있고, 때아니게 튀어나온 괴수 때문일 때도 있고, 운 나쁘게 생겨난 기상 이변 때문일 때도 있었다.

        

       아니면, ‘군벌’이라거나.

        

       “…….”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지만, 대답을 들은 것 이상으로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여기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메인 스토리를 최대한 따라가고 있다는 것을.

        

       “대답하지 않는다면 예언도 없습니다.”

        

       “……맞아.”

        

       이를 갈면서 키아라 베라티가 말했다.

        

       사실 그렇게 화낼 일도 아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알고 있다는 시점에서 법국의 계획은 이미 틀어져도 단단히 틀어졌고, 성공 가능성도 몹시 희박해졌다.

        

       차라리 되지도 않게 숨길 바에는 인정하고 내게서 뭐라도 얻어가는 게 더 낫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제안은 무척 관대한 것이다.

        

       “대단하네. 역시 제국의 차기 여제다워.”

        

       “차기 황제는 제가 아닙니다.”

        

       빈정거리는 말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감탄 섞인 말을 바로잡아주었다.

        

       “……그래서 우리 뒤를 다른 황녀가 따라오도록 내버려 둔 건가 봐? 네가 섬길 차기 황제가 이야기를 알고 있어야 하니까.”

        

       ……우리를 따라온 사람?

        

       “날 놀리려는 거야?”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자, 키아라 베라티는 조금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테라스 입구로 걸어가, 내가 말릴 틈도 없이 커튼을 확 젖혔다.

        

       “……아.”

        

       커튼 너머에 있던 사람들의 모습이 바로 보였다.

        

       나처럼 가벼운 복장을 하고 있는 클레어와 아마도 그 클레어를 따라온 듯한 레오, 그리고, 줄지어 서 있는 그 두 사람의 앞에 있는……

        

       앨리스였다.

        

       하늘색 바니걸 복장인 앨리스.

        

       “…….”

        

       나와 앨리스는 말없이 눈을 마주쳤다.

        

       앨리스는 분명 내 입에서 나온 예언이니 뭐니 하는 말을 듣고 놀라고 있어야 정상이었지만…….

        

       가슴이 흘러내릴 듯한 복장을 하고 나와 마주친 것이 훨씬 더 수치스럽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

        

       그렇단 말이지.

        

       나는 한숨을 푹 쉬고 생각했다.

        

       다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후에 한 화 더 올라옵니다.

    후원 감사는 그때 한번에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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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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