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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4

     오드론 백작령, 리그레트 성.

     영주의 집무실에는 두 명의 남녀가 서로를 바라보며 서있었다.

     “갈 거냐, 마지막으로 묻겠다, 생각을 되돌릴 거라면 지금이다. 그런 말은 하지 않겠다.”

     오드론 백작은 벽으로 다가가 벽에 걸린 검을 하나 들었다.

     “너는 이미 한 명의 성인으로서 너의 길을 정했고, 오드론이라는 성조차 버릴 각오를 했지. 내게 너의 길을 막을 권리는 없다. 너는 스스로 자랐고, 나는 그저 너를 태어나게 한 것 이외에는 도와준 게 없으니.”

     오드론 백작의 자조섞인 목소리에 드로니엘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생아.

     아무리 딸이라고 한들, 여느 귀족가를 막론하고 첩의 소생이 있는 가정은 화목한 경우가 잘 없었다.

     “그러나 이전의 일로, 그리고 이번의 일로 깨달았다. 너는 나의 핏줄이라는 것을. 너를 위해서…라는 변명도 하지 않겠다. 다만 이것 하나만은 알아다오. 네가 죽을 뻔 했다는 걸 생각할 때마다,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는 것을.”

     만약 성검의 마을이 습격당하지 않았다면, 드로니엘이 먼저 자신을 도와달라고 요청하지 않았다면, 아마 드로니엘은 성검의 마을 사람들과 함께 운명을 달리 했을 지도 모른다.

     “솔직히 보내고 싶지 않다. 마왕이라는 존재가 나타난 지금, 용사 파티는 솔직히 죽을 위기가 가득한 곳마다 찾아가는 자들. 매일 매일 너의 부고가 들려오는 게 아닐까 걱정하고 또 걱정하겠지. 그러니.”

     스릉.

     오드론 백작은 벽에 걸린 검은색 검을 검집째 들어 드로니엘에게 건넸다.

     “이걸 너에게 맡기마. 이 검의 이름은 ‘에이디티모’. 우리 오드론 가에 대대로 내려오는 가보이자, 우리 오드론 가문이 예전…’사드론’ 가문이었을 때의 시조셨던 분의 이름을 딴 가보이자 명검이다. 이 검으로 말할 것 같으면….”

     “괜찮아요.”

     드로니엘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신의 손을 옆으로 뻗었다.

     스르릉.

     드로니엘의 손에서 뿜어져나온 갈색빛의 마나는 명백한 검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

     오러 블레이드. 

     단순히 검의 위에 오러를 덧씌우는 게 아니라, 검도 없이 마나로, 오러만으로 검을 만들어내는 궁극의 경지.

     “…너는, 어느새 또 한 단계 성장했구나.”

     “루키우스 덕분이에요. 그리고 현자님, 그리고 로즈마스, 그리고…아버님 덕분이기도 하고요.”

     “…아버님이라. 나는 네게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한 게 없는데, 그렇게 계속 불러주는구나.”

     “아버님은 충분히 역할을 해주셨어요. 제게…검을 가르쳐주셨으니까.”

     드로니엘은 오러 블레이드를 해제하고 오드론 백작에게 허리를 숙였다.

     “아버님의 검 덕분에 저는 좋아하는 사람의 곁에 설 자격을 얻을 수 있었어요. 반드시 살아서 돌아올게요. 여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에는…혼자가 아니라 셋이서 돌아올테니까.”

     “…셋?”

     “네. 그러니까 제 부고 소식을 들을 걸 걱정하는 게 아니라, 손자 이름은 뭘로 할지 고민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아아.”

     오드론 백작은 벽으로 몸을 돌렸다.

     그의 눈가는 촉촉히 젖어있었다.

     “…알았다. 너의 앞길에 창월여신과 적월여신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후. 정말…이런 걸 보면 정말 너는 네 어머니를 닮았구나.”

     “…예?”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

     오드론 백작은 눈가를 소매로 훔친 뒤,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잘 듣거라, 드로니엘. 네 어머니는 우리 가문의 메이드였다. 나보다 연상이었고, 그녀는 크림파이를 정말 잘 구웠어.”

     “……어머니에 대한 걸 왜 지금-”

     “내 아내가 본가로 떠났던 날, 그녀가 준 크림파이를 먹고 나는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이미 모든 게 끝나있었지. 그리고 그녀는 삼 개월 정도 뒤, 잠적했지.”

     “…….”

     드로니엘은 사색이 되었다.

     “알겠니, 드로니엘? 크림파이다. 네 어머니의 방식을 그대로 가르쳐주는 게 좋은 지는 모르겠지만, 네 어머니를 쏙 닮았다면 분명 성공할 거야. 역사는 되풀이되는 법이니.”

     “아니, 그, 어머니는 평민이라고….”

     “그래. 평민이었지.”

     오드론 백작은 여러모로 할 말이 많아보였지만, 묵묵히 웃을 뿐이었다.

     “너와 네 어머니를 성검의 마을로 추방한 건, 너희 모녀를 지키기 위해서였단다.”

     “…….”

     * * *

     “…평민이 귀족을 건드리면 보통 어떻게 되죠?”

     “건드린다는 게 무슨 의미입니까?”

     “어떤 의미에서든.”

     “사형입니다.”

     “…과연.”

     다소 불편할 수 있는 정보를 들었지만, 드로니엘은 그녀의 아버지와 이별을 나누고 있었다.

     나 또한 이곳에서 만난 인연과 이별을 고해야 할 때.

     “릴리에즈 시저크로스.”

     “예, 현자님.”

     내 앞에 서있는 청발의 여인, 릴리에즈는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당신이 무릎을 꿇어야 할 건 창월여신이지, 제가 아니잖아요.”

     “창월여신께서도 여신의 교리를 누구보다도 가장 성실히 이행하는 현자님께 무릎을 꿇었다고 하면 인정해주실 겁니다. 현자님께서는 저를 한 단계 더 강하게 만들어주셨고, 제 눈을 더 넓혀주신 분이니까요.”

     릴리에즈는 내 손을 잡고 내 손등에 키스했다.

     “당신의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나의 레이디. 저는 비록 성기사지만, 기사의 한 명이기도 합니다. 기사로서 저는 당신을 지키겠습니다.”

     “이미 저를 지키는 기사는 있는데요.”

     “그 기사가 목욕탕까지 지켜주지는 않을 거 아닙니까.”

     “그건 그런데.”

     어째서일까.

     목욕탕까지 들어와서 나를 지켜주는 이로서 루키우스가 릴리에즈보다 더 안전할 것 같다는 느낌은.

     “교단에 대한 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만약 교황 성하를 비롯하여 교단의 늙은이들이 현자님을 잡아들여야 한다고 한다면, 제가 정령기를 꺼내서 그들의 뇌를 씻기고 현자님이 있는 곳으로 당장 달려가겠습니다.”

     “제 위치는….”

     “이걸 받아주십시오.”

     릴리에즈는 품에서 뭔가를 꺼내 내게 건냈다.

     “이건…?”

     “‘신비의 물방울’입니다. 정령기를 각성한 이후, 셀시우스의 힘을 담겠다는 의지를 가득담아 제 마력을 결정으로 만든 물건입니다.”

     “…정말 고마워요, 릴리에즈.”

     안 그래도 노리고 있었는데, 정말 잘 됐다.

     베어네스와 이별할 때도 성검의 마력을 일부 받은 마석을 받았는데, 마침 릴리에즈는 그걸 직접 자기가 알아서 만들어 건네주니 좋을 수밖에.

     “제 마력을 담다보니 파란색이라서 현자님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

     “아니죠, 릴리에즈.”

     사아아.

     나는 릴리에즈의 어깨를 붙잡고 마력을 빨아들였다.

     “이러면 어울리죠?”

     내 앞으로 흔들리는 머리칼은 붉은색이 아니라 파란색을 띄기 시작했고, 릴리에즈는 나를 올려다보며 활짝 눈웃음을 지었다.

     “…예. 정말 어울릴 것 같습니다.”

     “그럼 직접 걸어줘요.”

     “…예?”

     “목걸이잖아요. 모처럼 선물해준 건데, 릴리에즈가 목에 걸어줘요.”

     나는 신비의 물방울을 릴리에즈에게 건넸고, 릴리에즈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며 신비의 물방울을 내 목에 걸었다.

     “현자님.”

     와락. 

     릴리에즈는 나를 갑자기 자신의 품에 끌어안았다.

     키 차이 때문에 내 얼굴은 그녀의 가슴에 파묻혔고, 릴리에즈는 내 등을 격하게 끌어 안으며 가만히 있었다.

     “……만약, 교단이 현자님을 적으로 돌리게 된다면-”

     “창월여신교 성기사단장 릴리에즈.”

     나는 다시금 그녀의 ‘위치’를 상기시켰다.

     “교단이 설령 제 적이 된다고 해도, 당신은 성검의 용사이자 성기사단의 단장이라는 걸 잊지 마세요.”

     “현자님.”

     “괜찮아요. 당신과 거리를 두는 게 아니라, 창월여신교와 적대할 생각도, 그들이 저를 적대할 이유도 없다는 걸 알아주세요.”

     생각해보니 정령기를 꺼냈다고 한들, 오백년 전의 진실을 알고 있다고 한들, 나를 제거하려고 들지는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만약 교단에서 저를 없애려고 한다면. 그 때는.”

     나는 릴리에즈의 품에서 벗어난 뒤, 그녀의 손을 잡고 내 명치에 올렸다.

     “당신이 저를 죽여주세요. 릴리에즈.”

     목걸이, 신비의 물방울이 아래로 흘러내려오는 곳을 향해.

     * * *

     각자의 이별을 끝낸 뒤.

     나는 앞으로 우리의 여정을 위해 모두를 소집했다.

     “아서 루키우스. 로즈마스 테르베이션. 드로니엘 오드론. 그리고…얀 디에레.”

     나를 포함하여 이상 5명.

     “우리는 지금부터 대장벽의 너머, 북쪽 설원지대로 갈 거예요.”

     가는 이유를 다시 상기하자면, 일다 루키우스가 가자고 했다.

     “루키우스, 설명을.”

     “예. …제가 스승님께 육신을 잠시 빌려드린 사이, 저는 바람의 성검 아스칼론 안에 있는 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스승님께서는 아스칼론의 인격이라고 말씀하셨고, 그는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천공의 섬으로 가라.

     “천공의 섬이…뭐죠?”

     “지금 시대에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일 거야. 그건 500년 전에 있던 왕국을 지칭하는 거니까.”

     북부 대륙의 끝 너머.

     하늘에 떠있는 거대한 섬.

     “구름보다도 더 높은 곳에 떠있는 섬이야. 대규모 부유석으로 섬 전체를 뜯어서 하늘 위에 올린 채 지상과 단절하여 살아가는 이들이지.”

     “그, 혹시 교단은….”

     “알고 있기는 합니다.”

     성녀 얀은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천공의 섬에서 사람이 내려왔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정말로 단 한 번도요?”

     “예. 그도 그럴게 하늘에 섬이 떠있다는 걸 알면 누구나 한 번 쯤은 가보고 싶어할테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하지만 지금까지 그 누구도 오다녔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어요.”

     “당연한 이야기에요. 천공의 섬은 그냥 구름 위에 있다는 정도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니까.”

     덧붙여서 사람이 사는 곳도 아니다.

     “예? 하지만 섬이라고….”

     “섬이 아니에요. 섬처럼 넓고 거대하지만, 섬이라기보다는 그냥 거대한 시설일 뿐이에요.”

     내가 이래서 성검의 인격들을 싫어한다.

     확실하게 언급해주면 좋을 걸, 굳이 빙빙 돌려서 말하거나 현학적인 표현으로 사람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니까.

     “지금 시대를 생각해보면 천공의 섬이라는 표현이 멋지게 들리겠지만, 저로서는 ‘격납고’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단 말이죠.”

     “격납고…요? 그게 뭐죠?”

     “마굿간 같은 거예요.”

     “……저기, 또 긴 설명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현자님, 이거 저희가 알 수 있는 지식인가요?”

     “음…모를 지도?”

     성검에 대한 모든 지식을 알고 있는 나만이 알 수 있는 말이기는 하다.

     “여러분은 이거 두 가지만 생각하면 돼요. 하나. 천공의 섬으로 올라가는 포털은 대륙 북부의 끝에 있다는 것.”

     그러니까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은 북쪽이다.

     그리고.

     “…격납고에는 그게 잠들어있어요.”

     나는 루키우스와 하늘을 번갈아가리켰다.

     “성검, 아스칼론과 짝이 되는 정령기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10:22~11:12 50분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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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ro’s Mentor is a (Demon) Witch

The Hero’s Mentor is a (Demon) Witch

Status: Ongoing Author:
I, who was once the Demon King, have become a terminally ill beautiful girl who can't do anything. To survive, I became the witch of the Hero's party. ...No, I don't like the H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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