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94

       전설 카드, 특급 카드, 희귀 카드, 일반 카드.

       4종류의 카드에 각각 점수가 배정됐다.

       그리고 종료 시각까지 모두 합쳐서 가장 높은 점수의 덱을 구성한 사람에게 상품이 약속되었다.

         

       몇 가지 제한이 있기는 했다.

       우선 같은 종류의 전설 카드는 덱에 넣지 못했다. 전설 카드를 제외한 카드도 같은 종류는 2장까지밖에 넣지 못했다. 페어를 맞춘 카드는 3장 있는 것으로 점수를 계산했다. 마지막으로 덱은 30장 이하로 구성되어야 했다.

         

       당연히 이기기 위해서는 30장을 꽉 채워야 했고 이는 혼자서는 모으기 힘든 양이었다. 고액권을 샀던 사람도 이미 코인을 많이 소모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뽑은 카드를 가지고 서로 교환하거나 힘을 합쳐 덱을 만들었다.

         

       “자, 잠깐! 나도 전설 카드 1장에 특급 카드 1장이 있소. 끼워주시오.”

       “무슨 카드죠?”

       “전설은 핏빛 판금 갑옷에 특급은 총사대 제복이오.”

       “죄송하지만 핏빛 판금 갑옷은 이미 있습니다. 다른 팀을 알아보시죠.”

       “잠깐! 당신 총사대 제복이 있다고 했소? 그럼 우리랑 바꾸는 게 어떻겠소?. 우리 쪽에 총사대 제복이 한 장 있소. 우리 쪽에서 특급 카드 한 장이랑 희귀 카드 한 장을 주리다.”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분장을 서둘렀다.

       오늘은 또 무대에 오를 일이 없는 줄 알고 화장을 지웠는데 설마 다시 익살꾼으로 변할 일이 있을 줄은 몰랐다.

         

       지난 1주일간 반복해온 화장이라서 그런지 이제 혼자서도 능숙하게 해냈다.

       나는 거울을 보며 소리를 내어 웃어보았다.

       이제 그의 모습도, 그의 웃음소리도 익숙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늘 함께하던 파트너가 옆에 없다는 것이었다.

       엘라는 내가 토마토를 들고 나왔을 때, 테이블에 엎드려 잠들어 있었다.

       무대 위에서도 선 채로 졸았던 그녀였다.

       이후로 계속 억지를 쓰며 버티고 있었으니 체력이 바닥나도 이상할 게 없었다.

         

       마야가 잠든 그녀를 데리고 먼저 호텔로 돌아갔다.

       그녀는 이제 이곳에서 할 일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기다리다 보니 어느새 저녁 7시.

       장미 풍차 카바레의 3주 차 대결의 종료를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가 울렸다.

         

       각자의 분장을 마친 단원들이 연습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검은 귀부인 복장을 한 유라크네가 나를 보며 말했다.

         

       “호텔에서 연락이 왔어요. 두 사람 다 무사히 도착했다고요.”

       “다행이군요. 그럼 마지막까지 힘내봅시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연기는 소홀히 하지 말자고요.”

         

       나는 그들을 데리고 로비로 나갔다.

       관객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반대편 매점 쪽에서는 샛별 서커스단의 사람들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도 막판에 들이닥친 의외의 상황에 많이 당황한 모양이었다.

         

       우리 쪽 매점 주방에서는 아나이스의 집사 바텔이 칵테일을 만들고 있었다.

       그는 수백 명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서 조금도 긴장한 기색 없이 칼을 휘둘렀다.

       탁하는 소리와 함께 토마토가 갈라지면서 황금빛 즙이 쏟아져 나왔다.

       그가 몇 번 더 칼을 휘두르자 토마토 과육이 잘게 썰리며 유리그릇에 떨어져 내렸다.

       그는 거기에다 여러 가지 술과 허브를 섞었다.

       노련한 집사다운 솜씨였다.

         

       마침내 그는 그것을 세 개의 유리잔에 나눠 담았다.

       마지막은 미리 잘라낸 토마토 조각으로 장식을 했다.

         

       사람들은 황금빛의 영롱한 빛깔을 내는 3잔의 칵테일을 바라봤다.

       저 중 하나는 아나이스의 것, 하나는 내 것,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당첨자의 것이었다.

       선물로 받은 토마토를 상품으로 사용해도 결례가 안 되도록 이런 형태로 준비한 것이다.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칵테일을 바라보는 군중들 사이에는 도스빌 남작도 있었다.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히죽 미소를 지었다.

         

       황금 토마토의 등장에 처음에는 뭔가 딴지를 걸려는 듯 벼르던 그가 얼마 안 있어 입을 꾹 다물며 아무 말 없이 뒤로 물러났다.

         

       그의 속셈은 짐작이 갔다.

       일단 지금은 상품을 얻기 위해 우리에게 협력하지만, 만약 얻지 못한다면 내일 있는 결산에서 우리를 또 공격할 것이다. 그는 필요하면 얼마든지 자신이 입에 담은 논리도 뒤집을 수 있는 인간이었다.

         

       아나이스는 그에 대비하여 지금 대결의 규칙을 읽고 열심히 연구하고 있었다.

       재판 때처럼 한바탕 언쟁이 오고 갈 것이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녀를 믿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바로 추첨에 들어갔다.

         

       가장 먼저 덱을 제출한 팀은 215점을 기록했다.

       첫 번째 기록을 발표하자 참가자들의 절반이 울상을 지었다.

       그들이 만든 덱은 그 점수에 미치지 못한 것이다.

         

       덱들을 개봉해 나갈 때마다 최고점이 계속 바뀌었다. 그에 따라 실망하는 사람도 점점 늘어갔다.

       나중에 가서는 점수가 262점까지 올라갔다.

       그 덱의 주인들을 의기양양하게 앞으로 나섰다.

       그러나 그들은 미처 내 앞에 오기도 전에 그 자리를 뺏기고 말았다.

         

       “281점!”

         

       내 선언에 앞으로 나서던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관객들은 서로를 돌아보며 웅성거렸다.

       누가 저 덱의 주인일까?

         

       나는 단상 위에 있었기에 누군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

         

       도스빌 남작이 건달들을 뒤에 대동하며 걸어 나왔다.

       그들은 애초에 순수하게 공연을 즐기러 온 게 아니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코인을 거의 쓰지 않았다. 덕분에 카드를 많이 뽑을 수 있었다.

         

       그는 밉살맞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고개를 까딱였다.

         

       “이거 두 분의 칵테일 파티에 제가 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칵테일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가 이글거렸다.

       1년에 30개도 안 나오는 토마토였다.

       산술적으로 저 칵테일 한 잔은 1년에 100잔이 나올 수 없는 물건이었다.

       소문만으로 듣던 그것을 맛볼 수 있다는 생각에 그의 눈이 돌아갔다.

       저것을 마셨다는 것만으로 그는 사교계에서 다시 화젯거리가 될 것이다.

         

       나는 이걸 화내야 하는지 기뻐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가 저걸 차지한다면, 내일 있을 결산에서 강력한 적이 하나 줄긴 할 것이다.

       그러나 번번이 우리를 괴롭혔던 그가 이 귀한 것을 차지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관객들을 둘러봤다.

       모두가 낙담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 이상 되는 점수는 없는 것 같았다.

         

       나는 남은 봉투를 하나하나 까나갔다.

       새로운 점수의 경신은 없었다.

         

       이제 내 앞에는 마지막 봉투만이 남아 있었다.

         

       나는 봉투를 열고 덱을 꺼냈다.

         

       처음 다섯 장은 전설 카드였다.

       100점.

       나는 그렇게 점수를 매기고는 카드를 넘겼다.

         

       그다음 다섯 장도 전설 카드였다.

       또 100점.

         

       나는 놀라서 재빨리 카드를 넘겼다.

       그다음 다섯 장도 전설 카드였다!

       또 100점!

       이것만으로 이미 도스빌 진영의 점수를 넘어섰다.

         

       그 뒤도 놀랍기는 마찬가지였다.

       한 장의 전설 카드와 모두 페어를 맞춘 특급 카드들이었다.

         

       나는 점수를 외쳤다.

         

       “425점!”

         

       2등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압도적인 점수 차.

       모두의 얼굴에 경악이 떠올랐다.

       특히 도스빌 남작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이 볼 만했다.

         

       나는 봉투를 뒤집어 제출자의 이름을 확인했다.

         

       이런 미친.

       웃는 남자가 없었다면 저들과 똑같은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

         

         

       엘라는 눈을 뜨자마자 몸을 벌떡 일으켰다.

       이불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자신이 잠옷을 입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떻게 된 거지?’

         

       주변을 둘러봤다.

       그녀가 누워있는 곳은 호텔에 있는 그녀의 방이었다.

         

       그녀는 어쩌다 자신이 이곳에 있게 된 건지 몰랐다.

         

       분명 대회 중 아니었나?

       그것도 분명 막바지였는데.

       설마 또 쓰러진 건가.

         

       불길한 상상에 심장이 쿵쿵 뛰었다.

         

       혼란스러워하는 그녀에게 방구석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집사 바텔이 인사를 건넸다.

         

       “일어나셨습니까, 부단장님?”

         

       엘라는 지난 며칠 동안 같이 어울리며 친해진 노인을 바라봤다.

       그는 표정과 목소리로 자연스럽게 사람을 안심시키는 재주가 있었다.

       그녀는 맥박이 조금 진정되는 것을 느꼈다.

         

       “뭐예요, 바텔 씨? 제가 왜 여기 있는 거죠? 다른 사람들은요?”

       “다른 분들은 전부 결산에 참여하러 갔습니다.”

       “결산이요? 잠깐, 그럼 오늘이 일요일이라는 소리예요?”

         

       그녀는 그제야 창밖이 환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집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16시간을 내리 주무셨습니다.”

         

       그녀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려 했다.

       그러나 어느새 옆에 다가온 집사가 그녀의 어깨를 조심히 밀어 세웠다.

         

       “절대 침대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해달라고 부탁받았습니다.”

       “윽, 누가요?”

       “원더스타인 단장님이십니다.”

         

       엘라는 몸에 힘이 쭉 빠지는 걸 느꼈다.

         

       체념일까 혹은 신뢰일까.

       그의 이름을 듣는 순간 ‘뭐 그렇다면야’라는 마음이 작용했다.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며 그의 손에 밀리는 대로 침대에 다시 누웠다.

         

       “좋아요. 어떻게 된 거죠?”

         

       바텔은 차분한 목소리로 어제 있었던 일을 간략히 설명했다.

         

       아나이스의 등장과 황금 토마토.

       마지막 역전의 카드 뽑기까지.

       아직 몸이 덜 회복된 그녀가 놀라지 않도록 극적인 대목도 최대한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엘라는 위기를 넘겼다는 안도감과 별개로 패배감 비슷한 것을 느꼈다.

       시험에 대해서는 후원자의 도움을 받고 싶지 않았는데…….

         

       “그래서 칵테일은 어떻게 됐나요? 도스빌 남작이 상품을 타갔나요?”

       “아닙니다. 꼴 좋게도 그는 2등을 했지요.”

         

       집사는 허허 웃음을 터뜨렸다.

       함께 있으면서 그는 도스빌 남작에 대한 험담을 몇 번 했다. 아나이스에 대한 소문을 부추기고 뒷공작을 한 그를 절대 좋아할 수 없었던 것이다.

         

       엘라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녀도 자신에게 토마토를 던진 인간이 물을 먹은 건 즐거웠다.

         

       “그럼 지금쯤이면 엄청난 설전이 벌어지고 있겠네요.”

       “허허, 글쎄요.”

         

       집사는 어딘가 멋쩍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엘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말인지 캐물으려는 그때, 밖에서 마차들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집사는 빙그레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행 분들이 돌아오신 모양이군요. 그럼 저는 축하일지 위로일지 알 수는 없지만 작은 파티를 준비하러 가겠습니다.”

       “저도 도울게요.”

         

       그녀는 침대 모서리를 짚고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집사는 그녀의 몸을 다시 밀어 눕혔다.

         

       “부단장님은 쉬고 계십시오.”

       “진짜 괜찮아요!”

         

       그런 그녀의 말에 집사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무대에 오르지 말라는 의사의 말을 어겼다가 어떻게 됐습니까?”

       “윽, 치사하게.”

         

       그녀는 어제 무대 위에서 졸았던 일이 떠오르면서 급격하게 기세가 수그러들었다.

       노인은 그녀의 목까지 이불을 덮어주고는 방을 나섰다.

         

       “대회의 결과는 단원 한 명을 올려보내서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집사가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엘라는 바깥을 향해 귀를 기울였다.

       복도를 지나가는 단원들의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어딘가 신나 보였다.

         

       시험의 중압감을 훌훌 털어버려서 홀가분해서 그런 건지 혹은 승리의 기쁨에 들뜬 사람의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러던 중 방문이 열렸다.

       그녀는 방으로 들어오는 사람의 모습을 보고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그럼 그렇지.

         

       원더스타인이었다.

         

       그는 평소대로 검은 정장에 검은 망토를 두른 모습이었다.

       불과 며칠이지만 익살꾼의 모습을 봐왔던 그녀는 아쉬움을 느꼈다.

       그 모습은 다시 못 보는 걸까.

       다른 사람들은 기괴하다고 난리였지만, 그녀는 왠지 그 모습에서 안정감을 느꼈다.

         

       “잘 잤나요?”

       “응.”

         

       원더스타인은 모자를 벗어 옷걸이에 걸었다.

         

       “다른 단원들은 화장을 지우고 있어서 제가 왔습니다.”

       “분장하고 간 거야?”

       “아무래도 괴물 단원들이 평범한 얼굴을 드러내고 무대에 서는 건 인상이 죽는 거 같아서요. 과도한 걱정이었나요?”

       “아냐, 아냐. 잘했어.”

         

       그녀는 이불 아래로 조용히 미소지었다.

         

       “당신도 그런 생각을 하다니. 이제 좀 단장다워진 거 같네.”

       “후후, 그런가요?”

         

       그들은 한동안 일주일 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했다.

       대결의 결과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떠들다가 원더스타인의 웃음이 가라앉아갈 때.

       엘라는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어제 있었던 이야기는 집사 할아버지에게 들었어.”

       “그런가요?”

         

       엘라는 잠시 숨을 고르고는 말을 꺼냈다.

         

       “결산은 어떻게 됐어?”

         

       원더스타인은 그녀를 잠시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주최 측에서 토의한 결과.”

         

       그는 감정을 도통 읽기 힘든 묘한 미소를 지었다.

         

       “황금 토마토로 인한 수익은 모두 없던 것으로 처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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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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