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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4

       우리 파티의 서열이 어떻게 되는지 아는가.

       

       리디아가 1위이며, 그림자는 2위이고, 베니는 3위에 불과하다.

       

       참고로 나는 남자라서 서열 놀이에서 제외된다. 경쟁상대로 인식되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굳이 말하자면 승자의 트로피 역할이겠지.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비틱이다. 애초에 가챠와 트로피는 그러라고 있는 거잖아??

       

       그런 가벼운 마음을 담아 리디아의 허리에 손을 감았다. 비키니 아머 덕에 팔뚝에 와닿는 맨살의 감촉.

       

       부드럽고 따뜻한데 잘록해 팔에 착 감기는 리디아의 허리 감촉을 즐기며 한쪽 입꼬리를 히죽 끌어 올렸다.

       

       베니에게 보여주듯이.

       

       “으그그극!”

       

       내기의 대가로 배낭을 멘 베니가 그림자 괴물의 위를 타고 다니며 이를 갈았다.

       

       그런 그녀를 향해 우쭐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베니의 동료 쩔더라구요.”

       

       “그아아앗!”

       

       서열 3위의 베니가 그림자 위를 데굴데굴 구르다 떨어질 뻔했으나, 그림자 괴물이 촉수를 뻗어 그녀의 허리를 붙잡아 들어 올렸다.

       

       한숨이라도 쉬듯 살랑살랑 베니를 흔들고는 다시 자신의 등 위에 올려놓는 그림자 괴물.

       

       그 모습을 보며 낄낄대고 있자니, 리디아가 쓴웃음을 지으며 내 팔을 떼어낸다.

       

       “요나. 베니를 너무 괴롭히지 마.”

       

       “괴롭히다뇨. 저는 베니랑 친해지려고 했을 뿐이에요.”

       

       어깨를 으쓱이며 너스레를 떠는 것도 잠시. 장난치는 와중에도 날카롭게 세운 감각의 끄트머리에서 무언가 느껴졌다.

       

       깡! 깡! 깡!

       

       저 멀리서 들려오는 희미한 금속음. 2층에서 이런 소리를 낼 만한 녀석은 하나뿐이다.

       

       늘어져 있던 긴장의 끈을 다시 팽팽하게 잡아당기고는 귀를 기울였다. 불규칙하게 겹친 금속음의 개수는 넷이었다.

       

       “전방. 코볼트 네 마리. 제가 앞장설게요.”

       

       “…그래.”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어둠을 꿰뚫어 보는 안경 형태의 마도구를 장착하는 리디아.

       

       조금 전까지만 해도 최하위 서열(?)에서 고통받던 베니 또한 그 기색이 변화했다.

       

       배낭을 바닥에 내려두더니, 제 자리에 팔짱을 꼬고 선다. 그림자 괴물은 언제 어디서든 달려들 수 있도록 다시 그림자 속으로 가라앉은 상태.

       

       “이번에는 꼭 마법으로만 싸울 필요는 없어. 자유롭게 싸우되 마법을 섞어 봐.”

       

       “그거야 제 전문이죠.”

       

       고개를 끄덕이고는 소리를 먹는 발걸음 권능을 발동시켰다. 순식간에 세상과 나 사이에 얇은 막이 생기는 감각.

       

       몇 걸음 앞으로 나아가자, 이젠 한두 마리가 아니라 넷씩이나 뭉쳐 다니는 코볼트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늑대와 도마뱀을 섞어둔 듯한 녀석이 거적때기 하나 걸친 채, 곡괭이로 벽면을 파는 데 열중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코볼트 쪽에서 먼저 우리의 존재를 발견했었는데, 이번에는 우리가 먼저 발견한 탓에 하던 일을 멈추지 않은 모양.

       

       2층의 지하대미로는 1층의 대수림과 비슷하면서도 상당히 다르다.

       

       대수림 전역이 세계수의 영역이듯, 지하대미로는 대지의 신의 영역이라는 건 동일하지만.

       

       엘프의 보호라는 명백한 목적을 갖고 만들어진 대수림과 달리, 지하대미로는 그저 방치된 땅에 여러 생물이 모여들었을 뿐이다.

       

       추락한 태양에 강과 바다가 증발하고, 몰아치는 눈보라에 최초의 불꽃마저 꺼졌으나.

       

       땅만큼은 신들이 일으킨 온갖 이적 속에서도 꿋꿋이 제 자리를 지켰다.

       

       때로는 깊게 패고, 때로는 녹아내리긴 하나, 땅은 어디에도 가지 않는다. 같은 자리에서 항상 버티고 선 존재.

       

       그 믿음직스러움에 홀린 이들이 하나둘 땅속으로 파고들었다.

       

       한때는 당당한 전사였으나 이젠 광부 겸 노예로 전락한 코볼트가 그러했고, 군단의 어미였던 스파이더 퀸이 그러했으며, 그냥 땅이 좋은 대지의 정령들이 그러했다.

       

       굳건한 땅은 모든 것을 가리지 않고 받아들였다. 설령 그것이 제 살을 파먹는 이들이라도.

       

       그렇게 오랜 전쟁 기간 동안 피난처가 되어주기를 얼마나 반복했을까.

       

       어느새 지하대미로는 대지의 신을 상징하는 성역이 되었고, 신의 유해와 함께 미궁에 묻혔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안에서 한때 대지의 신을 섬겼던 신도를 사냥한다.

       

       푸욱!

       

       부드럽게 들어가는 유니콘 단검의 새하얀 칼날. 경추를 꿰뚫린 코볼트 한 마리가 끽소리도 못 하고 그대로 허물어진다.

       

       갑작스런 동료의 죽음에 당황한 주변 코볼트들이 곡괭이질을 멈추고 허둥댄다.

       

       “코, 코볼?!”

       “코볼코볼!”

       “코코볼…!”

       

       이대로 하나씩 처리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한 놈을 공격한 시점에서 권능이 해제됐다.

       

       시각이 퇴화된 대신 다른 감각이 예민하게 발전한 녀석들이다. 내가 자신들의 뒤에 서 있다는 사실은 금방 눈치챌 터.

       

       실제로 코볼트 중 하나가 내 방향을 눈치채고 곡괭이를 휘둘러 왔다.

       

       후웅!

       

       허리를 비스듬하게 꺾어 곡괭이를 피해냈다. 그 과정에서 살짝 팔뚝을 스치긴 했으나, 아이언 울프의 가죽으로 만든 갑옷을 뚫을 정도는 아니었다.

       

       약간의 얼얼함을 참아내며 방금 막 곡괭이를 휘두른 녀석의 팔을 붙잡아 내 쪽으로 당겼다.

       

       1층의 계층 수호자를 최초로 쓰러뜨린다는 업적을 달성한 것은 물론, 바실리우스로 미궁의 성장 보상을 배가시킨 덕에 요 며칠 사이에 내 신체 능력은 부쩍 늘어났다.

       

       그래봤자 아직 2층 최약체인 코볼트와 힘겨루기로 승리할 정도는 절대 아니지만…적어도 그 몸뚱이를 잡아당기기엔 충분했다.

       

       처음에는 내 손길에 저항하던 녀석이었으나, 은근슬쩍 발을 걸어 균형까지 무너뜨리자 속절없이 끌려오는 코볼트.

       

       “코, 볼?!”

       

       잡아당기는 힘만큼이나 앞으로 들이미는 내 몸뚱이. 순식간에 나와 코볼트의 사이가 반전되었다. 그리고.

       

       뒤늦게 내 위치를 알아챈 코볼트들이 휘두른 곡괭이에 직격당했다.

       

       퍽! 퍼억!

       

       “코오옥…!”

       

       이마와 어깨에 곡괭이가 박힌 코볼트. 아직 목숨이 끊어지지 않은 녀석이 바닥에 널브러진 채로 꿈틀거린다.

       

       “코볼볼!”

       “코볼코볼!”

       

       자신이 동료를 때려죽였다는 사실을 알아챈 코볼트 둘이 격분하며 달려든다. 이번에는 서로 팀 킬 하지 않도록 나란히 말이다.

       

       사고방식이 단순한 고블린이나 평범한 짐승이 진화했을 뿐인 1층의 다른 몬스터와 달리, 지능이 상당한 편. 하지만 그런 녀석들도 이건 예상치 못했을 거다.

       

       “바실리우스.”

       

       내 머리 위에 떠오르는 나무 왕관. 얼마 없는 신성력을 잔뜩 빨아먹은 녀석이 비어있는 손을 녹색으로 물들인다. 그리고.

       

       우웅-!

       

       미리 사둔 씨앗이 급속도로 성장하며 달려오는 코볼트 하나의 하반신에 엉겨 붙는다.

       

       동시에 다른 한 놈의 무릎을 향해서 손목 석궁을 발사했다.

       

       쐐애액…푹!

       

       “코, 볼코볼?!”

       “코코볼…!”

       

       덩굴에 발이 묶인 녀석이 당황한 목소리와 함께 철푸덕 앞으로 엎어졌고, 무릎에 화살을 맞은 녀석은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는다.

       

       서로 과정은 다르지만, 똑같이 바닥에 몸을 붙인 두 코볼트를 향해 미리 챙겨온 씨앗을 아공간 반지에서 꺼내 한 움큼 쥐어 뿌렸다.

       

       그리고 얼마 없는 신성력을 최대한으로 쥐어짰다.

       

       우우웅!

       

       폭발적인 기세로 자라나는 식물 줄기. 복잡하게 뒤엉킨 줄기가 코볼트들의 몸을 단단히 구속한다.

       

       기름 덩굴이라는 이 식물의 특징은 표면에서 끈적이는 인화성의 분비물을 뿜어낸다는 것.

       

       이제 남은 것은 하나뿐이다.

       

       꼼지락대는 코볼트를 향해 검지를 겨누었다.

       

       “미약한 불꽃.”

       

       피어오르는 라이터 크기의 불꽃. 그 상태로 가볍게 손을 튕겼다.

       

       넓게 흩어진 불씨가 코볼트들의 위로 떨어졌다. 그리고.

       

       화르륵!

       

       크게 타오르는 화염.

       

       어찌나 그 기세가 맹렬한지, 코볼트가 지르는 비명조차 이글거리는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반응성이 좋다는 것은 태울 것이 빠르게 소모된다는 뜻.

       

       10초가 채 지나기도 전에 사그라드는 불길. 그 안쪽에서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해진 코볼트가 모습을 드러낸다.

       

       워낙 불에 지져진 시간이 짧았기 때문인지 완전히 숨이 끊어지진 않았으나, 비늘이 새까맣게 그을릴 정도로 심한 화상 탓에 움직이는 것도 불가능해 보인다.

       

       그저 죽을 날만을 기다리며 꺽꺽대는 코볼트의 목을 단검으로 내리쳤다.

       

       툭, 데구르르….

       

       너무나 간단히 바닥을 구르는 머리. 그 원형을 알아보기 힘든 몰골에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비효율적이네.”

       

       전투가 한결 쉬워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기름 덩굴의 씨앗이 꽤 비싸다는 점. 그리고 신성력의 소모가 생각보다 크다는 것이 문제다.

       

       “코볼트 자체는 그리 돈 되는 부분도 없는데….”

       

       한숨을 푸욱 내쉬고는 시체를 지나쳐 놈들이 휘두르던 곡괭이를 주워 들었다.

       

       미궁에서 나온 철. 즉, 모험가용 장비를 만들 수 있는 재료가 되는 것은 그럭저럭 귀하다.

       

       잡철에 가까운 순도를 자랑하는 이 곡괭이조차 코볼트의 마석보다 비쌀 정도로.

       

       …다음부터는 그냥 곡괭이만 뺏고 튀어볼까?

       

       아니, 어차피 미로의 특성상 도망칠 공간이 여의찮으니 싸우긴 싸워야겠구나.

       

       속으로 한숨을 푸욱 내쉬며 곡괭이의 날 바로 밑부분 자루를 단검으로 베었다.

       

       서걱.

       

       그렇게 분리된 철 부분만 모아 일행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어쩐지 질린 표정을 짓고 있는 베니. 그런 그녀를 빵긋 웃으며 품에 안은 철 덩어리를 내밀었다.

       

       “이번에는 코볼트 머리 말고 곡괭이 머리만 가져왔어요! 잘했죠?!”

       

       “에. 아. 응.”

       

       영 매가리 없는 목소리로 내게서 곡괭이를 받아 드는 베니. 그녀가 주섬주섬 배낭에 전리품을 정리하는 사이. 이번에는 코볼트의 부산물과 마석을 뽑아내려는 사이.

       

       “아, 잠시만 기다려 봐. 이제 슬슬 목적지에 도착해서 위로 올라갈 거잖아? 배낭도 가득 찼고.”

       

       “아무래도 그렇죠?”

       

       “그러니까 이번에는 내 마법을 보여줄게. 너도 네가 뭘 배울지, 뭘 도와줄지는 알아야 하니까.”

       

       “넹?”

       

       뭘 배울지는 그렇다 쳐도 도와줄지는 뭔 소린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도 잠시.

       

       베니가 널브러진 코볼트 시체를 바라보며 손가락을 튕겼다.

       

       딱!

       

       “해체.”

       

       그 한마디를 신호 삼아 길게 늘어지는 베니의 그림자. 부자연스럽게 뻗은 그림자가 시체를 감싸는 순간.

       

       늪이라도 되는 것처럼 부드럽게 시체를 빨아들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림자 위로 뿅 튀어나오는 것이 하나.

       

       “…뿔?”

       

       돌기 같은 작은 뿔이었다. 코볼트 부산물 중 그나마 비싼 녀석이다.

       

       이후로도 이런저런 코볼트의 부위가 그림자 너머로 튀어 오르더니, 마지막에는 마석까지 토해낸다.

       

       닭고기에서 뼈를 바르듯이 코볼트를 해체한 그림자가 베니에게로 돌아간다. 그리고 베니의 뾰족뾰족한 이빨 사이로 흘러나오는 귀여운 트름.

       

       “꺼윽.”

       

       반사적으로 자신의 입가를 가린 베니였으나, 이내 자신만만한 태도로 허리에 손을 얹었다.

       

       “어때? 나름 괜찮지 않아?”

       

       “베니. 평생 제 뼈를 발라주시지 않을래요?”

       

       “엣.”

       

       내가 어디서 들었는데, 뼈 발라주는 게 찐 사랑이라더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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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cha Addict in a Matriarchal World

Gacha Addict in a Matriarchal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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