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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4

       ‘아, 네 입찰 받았습니다. 이보다 더 높은 가격을 부르실 분은 없으신가요? 그, 그렇겠죠! 자, 그럼 이번 대학원생은 저기 앉아계신 마법사 두분께 낙찰된 것으로 하고 빠르게 다음 순서를…… 네? 실수라고요?’

       

        ‘죄송하지만 한 번 입찰 의사를 표명하신 이상 철회는 불가능합니다, 경매는 그런 시스템이…… 두분께서 의사결정에 잡음이 있다면 휴게실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허나 이 이상 진행을 방해하신다면 피치 못하게…… 어어? 시스테인 파크 내에서 마법은 쓰시면 안 됩니다!’

       

        ‘이봐! 경비원! 경비원 불러 당장! 여러분 다들 진정하세요, 이러다 인식저해 마법이 풀릴 수도 있습니다! 파블로! 일단 지하로 내려가서 철창 다 잠그고 대학원생들 신변부터 확보해!’

       

        ‘세상에…… 이것도 다 저주란 말인가. 시스테인 파크에 저주가 내린 거야, 저, 저 괴물을 우리에 가둬 놓았기 때문에……!’

       

        ‘파블로, 젠장 파블로!!’

       

        아수라장으로 바뀐 경매를 주최 측이 긴급히 중지시키고 대략 두 시간 뒤.

        나는 철창에 갇힌 채 시스테인 파크 내부의 한 VIP 전용 휴게실로 배달되었다.

        예스러운 골조의 성당을 연상케하는 소회의실 크기의 공간은 과거 교국의 사절단을 맞이하기 위해 지어진 양식이었다.

        전용 통로로 이어져 있는 주방에선 요리도 가능한지 신선하고 맛있는 냄새가 풍겼다.

       

        낮은 시야로 이곳저곳을 살피다 발견한 것은 머리 높이의 테이블에 놓여 있는 웰컴 음료세트.

        그중에서도 미궁에서 놓치고 만 바나나우유였다.

       

        먹고 싶다.

        허나 닿지 않는다.

       

        살살이를 붙잡고 팔을 한계까지 뻗었지만 우윳빛 유리병을 카펫 위로 떨어뜨리기에 세 뼘은 부족했다.

        창이라면 닿았을 텐데, 이래서 검은 쓸모가 없다니까.

       

        치안대에게 빼앗긴 애장이 떠올라 불현듯 눈시울이 붉어지던 순간, 바깥에서 시끄러운 고성과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이백만 골드야 비나! 이백만 골드라고? 니플헤이르의 분기 예산에 맞먹는 금액을 냅다 던지면 어쩌자는 거야! 뭐? 학회에서 받은 황실 지원금이라고? 야아!! 너 진짜 내가 속 터져 죽는 거 보고 싶어—!?’

        ‘맞습니다. 순혈 마법사 씩이나 되시는 분께서 대학원생을 사려고 하다뇨! 심지어 엘리시아의 복종까지…… 이건 누가 봐도 지나친 처사입니다!’

        ‘헌데 엔리코와 리브라의 아이야, 너도 손에 똑같이 생긴 마도구를 들고 있지 않느냐?’

        ‘이, 이건! 어디까지나 클락을 갱생시키려고…… 제, 제 건 사이즈도 딱 맞고 안쪽도 가죽을 덧대서 부드럽다구요!’

        ‘그런 문제가 아닌 것 같다만.’

       

        문이 열리고 인상을 잔뜩 쓴 비나가 경매장 직원들을 앞세우고 휴게실로 들어왔다.

        옆에는 경매에 참여했던 크리스티나와 시엔, 아녜스도 있었다.

        나를 구매하는데 성공했으니 평소였다면 승리의 춤사위를 벌여도 이상하지 않지만, 두 귀를 꾹 막고 있는 걸 보니 어딘가 단단히 잘못된 모양.

        사방에 둘러싸여 잔소리를 듣는 걸 보니 마치 동료들에게 공격당하는 펭귄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안 되겠어, 너 이번에는 그냥 못 넘어가. 지금 당장 밀로네 님께 말씀 드릴 거야.”

        “제가 최강비나얼음물로 얻은 골드니까 사용처도 제가 정할 수 있어요. 게다가 사감은 연구를 도왔으니 지분도 일정부분 있고요.”

        “그 설화수에 쓰인 마법이 니꺼야? 우리 니플헤이르의 고유술식이잖아!”

        “크리스리스티나는 제 결정의 진의를 이해하지 못해요, 흥.”

        “크리스리스티나!? 그, 그게 무슨 무례한 말버릇이야!”

       

        그간 금쪽이같은 비나의 돌발 행동에 주된 피해자였던 크리스티나는 이번만큼은 용서 못한다며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허나 주최측은 한 번 입찰한 이상 그 결정을 번복하긴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경매 과정에서 자신들의 실수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이백만 골드에 달하는 최종 입찰가의 수수료를 얻으려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아녜스는 나를 다른 학파에 빼앗길지 모른다며 눈물을 그렁그렁 모으고 있고, 시엔은 정보부의 이름까지 들먹이며 막아서려는 상황.

        양측 모두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비나가 철창의 문을 열었다.

        예의 무표정한 동공에 어딘가 등골이 서늘해지는 열망이 가득했다.

       

        “사감은 제꺼에요. 제가 얼음물도 주고 산책도 시키고 잠도 같이 자고 해주 연습도 꾸준히 시킬게요.”

        “대학원생을 무슨 애완동물 키우는 것처럼 말하지 마. 그리고 뒤로 갈수록 순전히 네 욕망만 채우는 거잖아.”

        “사감도 그게 좋다고 할 거에요. 봐요, 벌써 이름을 부르면 반응하잖아요.”

        “제발 비나! 관리인 씨 이름은 클락이라구!!”

       

        숫제 버려진 강아지를 키우기 위해 부모에게 허락을 구하는 듯한 모습.

        만약 비나와 한 지붕 아래에서 살면 어떻게 될까.

        마탑의 마법사라면 누구나 한 번은 꿈꾸는 순혈 가문으로의 입성이다.

        칠현자의 직계를 최측근에서 보필하며 승승장구하는 인생인 것이다.

        밤마다 단둘이서 간섭기 연습에 몰두하다 보면 지금과는 사뭇 다른 관계로 발전할 수도 있겠지.

       

        ====

        까고보니글평

        [얼음성에서 탑내 S급 쿨뷰티 미녀에게 잡혀 살기 vs 기숙사 사감실에서 에너지 효율 1등급 얼음 정수기 끼고 살기]

       

        일생일대의 진지한 고민 중이니 투표 부탁함

       

        전자 : 추천

        후자 : 비추천

       

        [추천 15946/ 비추천 32142111]

       

        — 닥전

        — 고민할 필요가? 있나?

        — 기숙사 사감실은 뭐냐 ㅋㅋㅋ

        — 전자 선택하면 옆에 얼음 정수기 있는데 웨 고민?

         ㄴ 쿨뷰티 얼음 미녀한테 입으로 얼음 받아먹고 싶다

         ㄴ ㅗㅜㅑ…….

        — 비추 왤캐 많음? 뭔가 정상적인 집계가 아닌 것 같은데

         ㄴ 닉 꼬라지 보면 답 나옴

         ㄴ 백퍼 주작기지 ㅋㅋㅋㅋ

         ㄴ 저 새끼 평소에도 글레시아 학파 발작버튼 차례로 누르는 악질 글까단이라 그럼

         ㄴ 호감고닉 얼죽메 님이 쟤한테 대가리 깨져서 아직도 요양 중임

         ㄴ 그 고닉은 진짜 호감인데 평생 안 보였으면 좋겠는 거에요~

         ㄴ 어허, 나쁜 발언~

        ====

       

        실제로 갤러리 유저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조사에서도 생각보다 추천이 우세했다.

        선량한 320만의 글까단이 없었다면 패배하고 말았을 것이다.

        다행히 마탑의 정의는 아직 살아있었고, 대세에 따라 평생 바나나우유 대신 얼음물만 먹는 걸 선택하는 우를 범하진 않았다.

       

        ‘근데 이래도 팔려가게 생겼는데.’

       

        내가 마음을 정했다 한들 상황이 반전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백만 골드라는 금액과 니플헤이르의 이름값은 그만큼 무거웠다.

        이미 값은 지불하겠노라 공언한 상태고, 그렇다고 나를 가지고 경매를 다시 열 수는 없는 노릇.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은 비나에게 유리한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계약서를 가져오세요. 도장을 찍을 테니까.”

        “옙, 바로 대령하겠습니다.”

        “비나! 너 정말……!”

        “실례합니다, 잠시 들어가도 괜찮겠습니까?”

       

        그런데 주최 측이 계약서를 가져오려 문을 연 타이밍에 맞춰, 익숙한 얼굴들이 등장했다.

        첸돌과 쌍둥이 감독관, 그리고 광장에서 마주쳤던 모녀였다.

       

       

       

        *

       

        “치안부 부국장 첸돌이라 하오. 마침 근처에 있었기에 경매장에서 소란이 있었다는 소식을 듣고 왔소.”

        “아니 어찌 부국장님께서! 보시다시피 이미 잘 해결되었습니다. 괜한 걸음을 해드리게 한 것 같아 죄송하군요.”

       

        경매장 관리인의 말에도 불구하고 첸돌은 문을 막은 발을 치우지 않았다.

        그는 좌중을 둘러보더니 나와 눈이 딱 마주쳤다.

        어째서인지 ‘드디어 잡았다’는 생각이 전해지는 듯해 자연스럽게 궁지에 몰린 악역같은 미소가 떠오르고 말았다.

        무슨 연유로 다시 찾아왔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를 잡기 위해서는 넘어서야 할 산이 있었다.

       

        드높고 차가운 설산이.

       

        “비나 네타니아 님 되십니까.”

        “맞아요. 제게 무슨 용무가 있나요?”

        “니플헤이르 가문은 저 남자의 거취를 향후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첸돌의 질문에 비나의 동공이 흔들렸다.

        내가 물끄러미 쳐다보자 그녀는 시선을 피하며 살짝 볼을 붉혔다.

       

        “앞으로 사감의 집은 저희 집 냉장고에요.”

        “……과연, 아무도 찾지 못하게 극지(極地)에 숨기겠다는 건가.”

       

        첸돌의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굳은 결심을 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뒤에 서 있던 샬롯과 엔이 무언가를 들고 왔다.

        2미터가 넘는 길이에 날과 대가 분리되는 창.

        내가 소싯적부터 애용하던 무기이자 마법사로서의 마장을 바닥에 보란 듯이 찍은 그는 아니꼬운 표정으로 한 차례 나를 보더니, 큰 소리로 외쳤다.

       

        “안타깝지만 이번 거래는 작은 착오가 있었던 바, 애초부터 성사될 수 없다는 것을 치안부의 이름으로 확언하는 바요!!”

        “예!?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클락 데스몬드는 대학원생 신분이 아니요. 아무런 죄가 없었음에도 누명을 썼을 뿐이지.”

       

        그가 한손으로 창을 뽑자 나는 이전과 달라진 점을 눈치챘다.

        껌을 떼느라 검은 얼룩이 눌러붙고 제대로 관리조차 안해 금가고 부서진 창날이 은빛을 내뿜는 새것으로 교체되어 있었다.

        동시에 샬롯과 엔이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생활부장의 인장이 찍힌 탄원서.

        내가 없어 기숙사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으니 하루빨리 복귀시켜달라는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그가 세계선을 붕괴시킨 줄 알았으나 그의 마장을 조사한 결과 아무런 마력의 파장도 검출되지 않았소. 이는 명백히 우리의 책임이며 클락은 지금까지처럼 계속 1층에 머무르며 기숙사 사감직을 수행할 것이오.”

       

        과연, 내게 표백제를 들이 부어서라도 철저한 감시하에 두겠다는 속셈이렸다.

        자신들의 실책을 인정함과 동시에 더는 나를 잡아들이지 못하는 수였지만 그럼에도 치안부는 고육지책을 택한 것이었다.

        입찰이 취소될 위기에 처한 관리인이 항변해 보았으나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말도 안 됩니다 그는 해주학파 출신이라구요! 애초에 B동에 수감된 것도 시련의 붕괴가 아닌 출신 때문이지 않습니까!”

        “오, 그랬지. 하지만 증거가 없네.”

        “예?”

        “그냥 로브에 어디서 구해온 해주학파의 문장을 달고 본인 입으로 그렇게 말했을 뿐 아닌가. 심증도 물증도 있지만 그가 해주학파라는 걸 증명할 방법은 어디에도 없지. 심지어 행정부의 관리 명단에도 이름이 적혀있지 않았고 말이야.”

       

        안내 데스크 직원의 비명을 들으며 도망쳐 버렸기에 명단에 이름이 올라가지 않은 건 당연한 일.

        그렇기에 첸돌은 눈앞에 뻔히 아녜스가 있음에도 못 본 척하며 나를 풀어줄 것을 요구했다.

       

        창살 안에서 박수라도 쳐주고 싶은 훌륭한 전략이다.

        서로가 아니꼽긴 하지만 나 역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으니 이번만큼은 속아주지 못할 것도 없었다.

        앞으로는 치안부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더욱 신중하게 행동해야겠군.

       

        수갑이 풀리고 새것이 된 창을 돌려받았다.

        아녜스도, 시엔도, 크리스티나도.

        거액의 수수료를 받을 기회가 날아간 경매장 관리인만 빼면 모두가 납득하는 결말이었다.

       

        “자, 정리되었으니 다들 이만 해산을…….”

        “아뇨, 사감은 저와 함께 갈 거에요.”

       

        허나 비나는 달랐다.

        눈앞에서 나를 손에 넣을 기회를 잃게 생긴 그녀는 갑작스럽게 이쪽으로 몸을 날렸다.

        서늘한 머리카락이 볼에 닿는 간지러움과 고급스러운 드레스의 옷감 너머로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짐과 동시에.

        목 뒤에서 버클이 채워지는 소리가 났다.

       

        — 철컥.

       

        “아아아앗!!”

        “비나! 무슨 짓을……!!”

        “대학원생이든 아니든 상관 없어요. 사감은 제 옆에 있기만 하면 되니까요.”

       

        엘리시아의 복종.

        착용자의 기호나 애정의 대상을 바꿀 수 있는 무시무시한 마도구.

        기어코 그것을 내게 채우는 데 성공한 비나는 이번에야말로 양팔을 휘적이며 기쁨의 동작을 취했다.

        목젖이 보일 정도로 놀란 시엔이 급히 검을 뽑으려 했지만 이미 검집이 꽁꽁 얼어버린 뒤였다.

        아녜스와 첸돌, 두 모녀의 얼굴에도 절망감이 드리워졌다.

       

        “젠장, 여기까지인가……!”

        “아, 안 된다! 클락아, 정신을 차려 보거라!”

        “소용 없어요. 사감은 이제 제 말이라면 전부 들어줄 테니까.”

       

        소중한 스승, 껄끄러운 공권력, 예쁜 복사뼈.

        휴게실 안에 있는 그들의 모습 대신 비나의 미소 띤 얼굴만이 시야에 가득 담긴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승리를 선언하는 목소리 역시 심장을 파고들듯 내 귓가에 스며들었다.

       

       마치 바위를 뚫는 낙숫물처럼.

       깊숙한 영혼의 안쪽까지, 서서히.

       

       “왜냐하면 사감의 얼음 메테오와 저에 대한 애정도를 바꿨거든요.”

        “응?”

        “네?”

        “뭐라고……?”

       

        음, 그냥 가까이 있어서 크게 들린 것 뿐인가.

       

       

       “사감은 저와 뜻을 같이하는 동지에요. 제게도 얼음 메테오를 무엇보다 좋아한다고 말했었으니 지금은 저를 좋아한다는 뜻이에요.”

       “……?”

       

       나는 양손으로 목줄을 잡아뜯었다.

        비나를 향한 감정이 원래대로 돌아오자 이전보다 훨씬 나은 기분이었다.

       내게 있어 메테오는 뭐…… 아무래도 좋았으니까.

       

        “하아, 비나비나야…….”

       

        자신의 자매가 바보라서 다행이라는 크리스티나의 깊은 한숨만이 휴게실에 울려 퍼졌다.

       상대를 깔보는 지극히 무례한 발언이었지만 본인은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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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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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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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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