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와 병사들을 쫓아 나오니, 어느덧 숲속으로 들어와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저들을 따라갈 필요가 없다.
“왜 멈추는 것인가?”
“저 사람들, 다른 곳으로 가고 있어요.”
“음?”
간만에 보는 영혼이었다.
오크의 영혼.
몬스터 주제에 이승에 미련을 가지는 놈들.
그들 중의 한 명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 거야…”
이곳에 있는 오크의 영혼은 총 넷.
아무래도 어딘가로 향하고 있는 것은 살아 있는 오크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잠깐만 조용히 해주세요.”
내 부탁에 일행들이 침묵을 유지했다.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친 오크가 나를 향해 미끄러져 왔다.
“넌 애가 왜 이렇게 희미하게 생겼냐?”
모습이 희미하다는 게 아니라, 지쳐 있었다.
영혼의 상태로 지치기도 쉽지 않을 텐데….
– ….
“맞아, 보여.”
– ….?
잠깐 이상한 얼굴로 나를 살피다가 이내 눈을 동그랗게 뜨는 오크의 영혼.
녀석의 손끝이 내 허리로 향해 있었다.
심지어는 표정조차 반가워 보이지 않는가.
“이거 알아?”
끄덕.
“어떻게 알아?”
손짓을 섞어가며 무언가를 설명하는 오크.
그 모양새가 꼭 절벽에 매달려 있던 굴락과 비슷해 보였다.
“굴락?”
끄덕.
오크의 손이 허공에서 움직였다.
따라오라는 듯했다.
“다들 가시죠.”
숲이 깊어질수록 분위기가 음산해져 갔다.
나에게만 해당하는 일일 테지만.
이런 경우가 있기는 하다.
치열한 전쟁터였거나, 그에 비교될 만큼 많은 생명이 사그라진 곳.
국경이라고 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야, 오크.”
– ….?
“번개 마법 맞고 죽었냐?”
끄덕 –
탄내가 진동했다.
아마, 죽은지 몇 개월도 안 됐을 것이다.
이렇게 냄새가 생생한걸 보면.
“내가 그마음 잘 알아.”
– …..?
“그런 게 있어.”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모르지만 나도 경험자였으니까.
번개를 맞아본 사람이 어디 흔하겠는가.
물론, 저놈과는 다르게 나는 진짜 벼락이다.
“너희 지금 어디로 가는데?”
오크의 손이 방울을 가리켰다가 하르프 왕국을 향해 들렸다.
역시나 그들의 목적지 역시 저곳인 거 같았다.
“저기 뭐가 있길래?”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던 오크가 손을 움직였다.
내가 방울을 흔드는 것처럼.
이번에는 내 쪽에서 이해되지 않았다.
저놈이 이걸 어떻게 안다는 말인가?
이곳에서 저런 식으로 방울을 흔드는 건 내가 유일할 텐데.
– …..
“굴락?”
끄덕 –
아까부터 모든 질문의 끝에 굴락이 들어갔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하고 있길래 이런 반응이 나오는지….
내 기색을 알아챈듯 오크가 설명을 시도했다.
하지만.
“뭐라는 거야?”
– ….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치는 오크.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몬스터가 사람을 답답해하다니.
인상을 찌푸리니, 저놈이 방울을 보며 몸을 움찔 떨었다.
“이걸로 때려지는 것도 알아?”
끄덕 –
“어떻게 알아?”
대답을 기다리던 나는 예상되는 대답에 얼굴을 일그러 트렸다.
“굴락이라고 하면 맞는다?”
– ….
“에휴, 말을 말자. 가보면 알겠지.”
따라가다 보면 뭐가나와도 나오지 않겠는가.
나와 오크의 대화에 클로셀 영감이 스윽 따라붙었다.
“그 영안이라는 것 말일세.”
“네.”
“어떻게 열어볼 방법이 없겠는가?”
귀신을 보면서 살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중의 하나다.
‘나도 볼 수 있는 방법이 없나?’라는 질문.
호기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들 궁금해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있어요. 영안을 뜨는 방법은 엄청 많아요.”
순간,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로 집중되었다.
드워프인 드잔트 마저도.
“얼른 말해 보시게!”
영안을 가지고 있으면 안 좋은게 더 많은데 왜 이렇게들 관심을 가지는지.
“첫째, 타고난다.”
사실은 이게 제일 확실한 방법이다.
잘못된 방법으로 뜨면 부작용이 많으니까.
“둘째, 촛불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이때는 촛불 주위를 곁눈질로 봐야 해요.”
“그, 그것만으로 가능하다는 말인가?”
“가능은 한데, 아직 한 명도 못만났어요.”
금방 실망스러운 기색을 띄는 클로셀 영감님.
“셋째, 죽었다가 살아난다. 혹은 죽기직전까지 갔다가 살아난다.”
이번에는 파라몬 영감님에게서 반응이 나왔다.
“나는 이미 수도 없이 그런 경험을 했네.”
“이것도 재능 없으면 안떠져요.”
다시 한번 클로셀 영감님이 실망을 했지만, 어쩌겠는가 이게 사실인데.
이것 말고도 다른 방법들이 많다.
경신월 경신일에 기도하면 된다는 사람도 있었고, 간혹 명상을 하다가 비슷하게 뜨는 사람도 있으니.
하지만 이곳에선 불가능한 방법이다.
신성력이 전부 사라져 버린다면 모를까.
“솔직히 안 뜨는 걸 추천드려요.”
“그건 또 왜 그런가?”
“수련을 통해서 뜨면, 영혼이 뜨는 눈이 아닌 가짜가 떠질 수도 있거든요.”
부작용만 가지고 있는 가짜 눈.
영안을 뜬다는 것은 영과 소통하는 길이 열린다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부작용이 이것이다.
그 소통이 영혼쪽에서만 하는 일방통행이라는 것.
온갖 사념과 악의들이 밀려오는데 막지도 되받아 치지도 못한다.
그러면 사람이 미쳐 버리는 것이다.
“깔끔하게 포기하세요.”
“아쉽군. 마치 정령사의 자질 같구만.”
“그런 셈이죠.”
“자네의 말대로면 영안이라는 것은 영혼의 눈인 모양이로군.”
조금 더 관념적인 개념이지만 저렇게 설명해도 얼추 맞을 것이다.
“자네는 영안에 집중할 때 어떻게 하는가?”
나야 눈을 감으나 뜨나 영안이 열려 있으니 뭘 하고 그럴 것은 없지만, 더 집중하는 방법이 있긴 했다.
“눈을 감은 상태로 오감을 지우면 돼요. 비슷한데 새로운 감각이거든요.”
“호오, 내 참고 하겠네.”
“아우우!”
“루나는 할 필요 없으니까, 신경 쓰지 마.”
한참을 영혼을 따라가다 보니, 이상한 길이 나왔다.
다듬어진 듯 그렇지 않은 길.
오크들이 이동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길이라 생각이 든다.
영감님들도 동의하는 눈치였다.
“국경을 넘어간 오크가 한둘이 아니었나보군.”
파라몬 영감님이 이상하다는 듯 수염을 매만졌다.
“이곳뿐만이 아니라 반대쪽 국경에서도 오크가 발견됐다는 보고가 있었네.”
영혼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다들 하르프 왕국으로 가는 듯했다.
오크들이 일제히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 가면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요?”
의도한 건 아니지만, 몰래 국경을 넘어가는 일이다.
문제가 되려면 충분히 그럴 소지가 있었다.
하지만 영감님들은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상관없네.”
저렇게 말해도 찝찝한 것은 사실이다.
“어차피 잡으러 오는 놈들이 우리 후배들일세.”
“아, 그렇구나.”
“계속 가세나.”
애초에 책임자들을 쥐락펴락하는 영감들이니….
걸을수록 주변의 분위기가 침침해졌다.
이윽고, 한쪽방향을 가리키며 방방뛰는 영혼.
그곳에 오크무리가 모여 있었다.
“덮치면 되는가?”
“필요하면 모두 제압하겠네.”
“아니, 대화가 필요한 건데…”
파라몬 영감님이 검을 들어 보였다.
“몬스터에게 가장 훌륭한 대화 수단은 무력일세.”
“평화적으로 하시죠. 제가 해볼게요.”
두런두런 걸어가고 있는 오크 세 마리.
혹시나 굴락과 아는 사이일 수도 있지 않은가.
이것저것 물어볼 것도 많고.
흠칫.
“…어라?”
“무슨 일인가?”
내가 갑자기 멈춰 선 이유가 있다.
“죽을 놈들이 왜 안죽었어?”
세놈 중에 두놈이 죽었어야 정상이지 싶었다.
죽었어야 할 시기도 먼 과거가 아니었다.
“원래 칼맞아 죽었어야 했는데…”
순간, 제법 오래전에 들었던 굴락의 말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위대한 선조의 영혼을 섬긴다고 했던가.
저런 사례를 본적이 있긴 하다.
조상신이 도와 큰 위기를 넘긴 사람들.
스윽 –
– …..
오크의 영혼이 저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살다 살다 별꼴을 다 보네.”
무슨 몬스터가 후손을 챙긴다는 말인가.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좋지는 않은 일이었다.
아무런 업도 귀신으로서의 영기도 충분하지 않은 영혼.
꼬인 팔자를 펴놓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영혼이었다.
“그래서 지쳐 있었구나.”
끄덕.
“너 그러다 힘 다 빠진다? 배고플걸? 밥차려주는 애들은 있냐?”
칠성줄이라는 것이 있다.
조상신들이 후손들에게 도움을 주고 후손들은 제삿상을 올린다.
그렇게 제삿밥을 먹고 허기짐을 채우는 것이다.
그런데 오크가 제삿상을 받을 수 있을 리도 없다.
계속 저렇게 지쳐 있어야 한다는 것.
오크의 영혼이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뻗어지는 손가락.
하르프 왕국 방향이었다.
“이것도 굴락이지?”
끄덕.
“이 새끼는 도대체 거기서 뭘 하는거야?”
그리고 그 순간.
오크 하나와 눈이 마주쳤다.
“취,취이익!”
나를 훑어보며 한번.
“취이익!”
방울을 보고 한번.
잠깐 멈췄던 오크들이 부리나케 도망을 가기 시작했다.
“인간샤먼이다!”
“취익! 크리스!”
“도망가라!”
***
알루어드가 멍한 얼굴로 거리를 훑었다.
“크리스님…?”
고개가 빠르게 돌아가며 주변을 살폈지만….
아무도 없었다.
“루나님…?”
굴락 만나면 완성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