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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4

        

         

         

       노인은 가부좌를 튼 자세 그대로 허공에 둥둥 떠서 엘라의 앞까지 도달했다.

         

       그리고는 관찰하듯 엘라를 유심히 살펴보더니, 툭 하고 말을 던졌다.

         

       “나는 정신의 수양을 통해 집단 무의식의 뿌리에 닿아 진리를 얻고자 하는 수행자 중 하나이니라. 이 집단 무의식의 표면을 넘나들며 여행하는 사람 중 하나. 저 이름 없는 아이가 익숙하게 나를 대한 것은 나 같은 이를 많이 본 경험에서 비롯된 것. 너에게 해를 끼칠 생각도 없으며, 해를 끼칠 수도 없으니 너는 안심하고 내 말을 듣도록 하여라.”

         

       노인은 먼저 자기소개와 함께 엘라를 안심시켰다.

         

       “이곳은 집단 무의식의 표면. 무의식의 집합이며, 같은 문화와 같은 상식을 공유하는 이들의 무의식이 모인 장소.”

         

       그는 엘라가 경계심을 조금 푸는 듯 하자 천천히 설명을 이어갔다.

         

       “현실에서 밤하늘을 보면 별이 보이는 법. 다만 그 반짝임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이지만 그 실체는 멀고도 멀어 도달할 수가 없다. 이 장소 역시 그와 같은 것이라. 집단 무의식이란 꿈에서 밤하늘을 보는 것 같아 너무나 멀어 도달할 수 없고, 먹구름과 눈을 현혹하는 빛이 가득해 그 별빛조차 확인하기 힘드니라. 다만 운이 좋아 그 별빛을 볼 수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이 집단 무의식의 표면이다.”

       “네에….”

       “다만 표면은 대단하지만 대단하지 않다. 여러 사람의 무의식에서 파편이 모여 쌓인 곳이기는 하나 단지 그뿐. 산호가 모여 시간이 흘러 섬을 만든다 한들 그것이 살아있겠느냐? 섬이 산호를 지배할 수가 있겠느냐? 이곳은 흔적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별개의 공간이며, 꿈에서 이곳으로 건너올 수는 있으나 반대로 이곳에서 꿈으로 건너갈 수 없는 일방통행의 광장. 영감은 줄 수 있을지언정 개체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는 곳. 다만 그들의 흔적이 남아 그들의 삶을 보고, 그것을 바탕으로 수양하고 수련할 수 있을 것이다.”

         

       비유로 가득한 말.

       하지만 엘라는 왠지 모르게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꿰뚫어 본 것일까.

       노인은 설명을 멈췄다.

         

       “이해를 어느 정도 한 것 같구나. 귀여운 아이야, 이 정도면 되겠느냐?”

       “넹~”

         

       하지만 발랄하게 말하는 여자의 말에도 노인은 뭔가 심기가 불편한지 수염을 계속 쓰다듬었다.

         

       “안으로 파고드는 것도 아니고, 고작 표면에 대한 이해를 말하는 것으로 마녀들의 집단 무의식 조각을 얻는 것은 대가가 맞지를 않는데….”

       “괜찮아용! 어차피 저는 쓸 데도 없고. 그리고 할아버지한테 도움이 됐으니 그걸로 좋아요!”

         

       그 말에 노인은 결심이 섰는지 입을 열었다.

         

       “아니. 저울의 균형은 맞아야 하고, 주고받는 것은 반드시 그 무게가 비슷해야만 하느니라. 하니 너희에게 도움이 될 말을 해주겠다.”

         

       노인은 묵주의 알을 여러 개를 뜯어 제 손에 얹더니, 그것을 깨뜨려 불꽃을 피워내었다.

       타오르는 불꽃은 춤을 추는 것처럼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또르르 굴러 바닥으로 떨어졌고, 반짝이는 불똥으로 터져나가며 노인과 자매의 주위를 맴돌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휘휘 움직이며 선을 그리고 면을 이루었는데, 그 모양이 알아보기 힘든 문양 같았다.

         

       “세상에 거대한 불꽃이 퍼질 것이다. 한 곳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수많은 곳에서 피워지는 불꽃은 온 세상을 불 지르되 생명의 숨통만은 간신히 붙여놓을 것이다.”

         

       노인은 여자를 쳐다보았다.

         

       “너는 그 불꽃 속에서 살아가리라. 그 끔찍한 고통은 호기심으로 덮고, 공포는 탐구심으로 덮어 오직 너는 그렇게 살아갈 것이라. 몸의 말단이 잘려나가고 비명을 질러도 낯선 것을 집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요, 시야가 반쪽이 된다 한들 그 지혜를 갈구하기를 멈추지 않으니 참으로 외눈의 주신과 같은바. 너는 반드시 그들의 땅에서 그 축복을 받아 그 편린을 맛보았으리라.”

         

       노인은 말을 하다가 멈췄다.

       그리고는 입을 꾹 닫더니 엘라를 바라보았다.

         

       “수레바퀴가 굴러가듯 운명은 굴러갔다. 무릇 비탈에서 굴러가는 것과 같이 수레바퀴는 결코 내려갈 때까지 멈추지 않으며, 돌부리가 있다 한들 거대한 질량은 그 모든 것을 깨부수고 무시하며 계속해서 굴러갔으리라. 거기에는 방향성이 있고, 목적지가 있으며, 관성이 있다. 오직 죽음이라는 목표에 도달해서만 멈추는 것이었으니 오직 그 미래는 하나밖에 없는 것. 다만 그 비탈의 길이가 짧고 바퀴가 굴러가는 속도가 빠르니 그 명이 마침내 끊어졌음이라.”

         

       노인은 거기까지 말하고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다만 운명은 가변적인 것. 한 알의 모래가 정교한 기계장치를 멈추게 하고, 거대한 물길 역시 인간의 손으로 바꿀 수 있는바. 운명은 비틀리고 정해진 것은 사라졌으며, 엮여있던 인과는 풀려 이제는 새로운 가능성이 피어났도다. 이는 참으로 선업이라, 타오르는 불꽃에서 새 생명을 얻은 둘은 이제는 빛을 발하며 마침내 도달할 미래까지 타오르리라.”

         

       그는 거기까지 말하고 입을 닫았다.

       노인의 눈앞에서 불똥은 아직 할 이야기가 많다는 듯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지만, 노인은 뭐가 그리 심각한지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꾹 닫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기를.

         

       “거대한 집념이 제 둥지를 나갈 준비가 곧 끝나겠다.”

         

       그는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눈으로 여자에게 물었다.

         

       “이름 없는 아이야. 내가 묻노니, 죽을 위기의 사람을 구하는 것은 선이더냐.”

       “네! 당연하죠!”

       “그렇다면 죽고자 하는 이를 구하는 것은 선이더냐?”

       “네? 그렇죠. 선한 거죠!”

       “그 이유는 무엇이냐?”

       “사람을 구하는 행동 자체가 선한 것이니까요?”

       “네 말대로라면 구하는 사람의 행동은 선한 것이며, 구해지는 사람의 의도가 어찌 되었건 죽음에서 구해지는 것은 좋은 일이라는 것이구나.”

       “네? 그런, 가?”

       “구명(救命)이란 말 그대로 선한 것이니, 이는 선업이라. 그렇다면 묻는다. 자유를 얻으면 계속 다치다가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할 짐승이 있다면, 그 짐승에게 자유를 주는 것보다 목줄을 채워 목숨을 구하게 하는 것이 더 큰 선인가?”

         

       노인은 물었다.

         

       “결과는 목숨을 구했으니 선이 될 것이고, 그 과정과 의사가 어찌 되건 그 행동은 선하다. 다만 선함에는 경중이 있고, 옳고 그름이 있는바. 자유를 갈망하는 이를 풀어주고 목숨을 잃게 하는 것은 그른 것이고 목줄을 채워 구해주는 것은 옳은 것인가? 목숨을 구하는 것이 선한 것이라면 자유를 주는 것은 선하지 않은 것인가, 더 가벼운 것인가?”

         

       노인은 깊은 눈으로 여자를 바라보았다.

         

       “오직 결과만이 중요하다면 어찌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선이라는 결과만을 원한다면 그 외의 것은 필요가 없는가? 하늘과 땅이 거대한들 걸을 때 사용하는 것은 오직 발자국이 닿는 곳뿐이라, 그 외의 것을 저승에 닿을 만큼 깊게 파면 어찌 걸어 다닐 수 있을까!”

         

       노인은 여자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어느새 시간이 많이 지난 것인지, 그녀의 몸은 흐릿해지면서 반투명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꿈에서 깰 때가 다가온다는 의미였다.

         

       “쓸모없는 것의 쓰임이라. 결과가 중요한 것은 맞으나 그 외의 것들도 중요하니, 결과가 좋고 과정도 좋으면 그보다 좋은 것이 없다. 덜함도 더함도 없고 모난 것도 없다.”

       “할아버지?”

       “너는 처음 보는 나에게 귀한 것을 주었고, 별 것 아닌 일에 과분한 대가를 지불하였다. 이는 명백히 호의라고 할 수 있는 것. 진리를 추구하는 나로서는 호의에는 호의를 돌려줄 수밖에 없구나. 하니 남은 대가를 묘수를 알려주는 것으로 갈음하겠다.”

         

       노인은 사라지기 직전 여자의 귓가에 속삭였다.

         

       “깨어나면 네 은인이 있을 것이다. 너는 그가 입을 열기 전에 이렇게 말하거라.”

         

       그 말을 마지막으로 엘라와 여자의 눈 앞이 깜깜하게 변했다.

         

        * * *

         

         

       부유하고 있다.

         

       엘라는 자신의 정신이 위쪽으로 부유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검은 공간으로 떨어지고, 숨결이 방울지며 길을 만들던 전과는 다르게 그 반대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물이 손이라도 가진 것처럼 그녀의 정신을 밀어주고 끌어올리고 있었고, 작게 보였던 빛이 점차 그 크기를 불려가며 그녀의 시야를 밝힌다.

       하얀빛은 점에서 면으로 변하고, 면은 이윽고 그녀의 눈을 밝게 물들이는 공간이 되었다.

         

       마침내 밝게 물든 시야에 누군가 수채화를 그리듯 색이 입혀지고, 그 색이 형체를 이루었을 때.

         

       그녀는 자신이 호텔의 천장을 바라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어, 어?”

         

       끔찍한 납치 후에 잃어버린 정신이 다시 돌아왔으니 그 자체로 기뻐서 환호성을 질러야 정상이건만.

       엘라는 당혹감에 몸 둘 바를 모르며 눈을 굴릴 수밖에 없었다.

         

       “어?!”

         

       이는 그녀가 실 한 오라기도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기 때문이며.

       또한, 그녀의 위에 어린아이가 마찬가지로 알몸으로 몸을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알몸인 것으로도 당혹스러운데, 그녀의 코와 아이의 코에 이상한 실 같은 것이 연결되어 있고, 그것을 따라가보면 코에 바늘이 꽂혀있었다.

         

       엘라는 그 모습이 과학 시간에 감자 전지를 만들던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아이는 누구죠?’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든다.

         

       자신의 몸 위에 엎어진 채, 그녀를 옴짝달싹 못 하게 몸무게로 짓누르고 있는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는 누구란 말인가?

         

       엘라는 입을 열어서 그녀를 깨우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의도가 텔레파시로 전해지기라도 한 듯, 아이는 눈을 확 뜨고는 엘라와 마주 보았다.

         

       그러더니 꿈에서 본 여자와 똑같이 배시시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안뇽? 언니에용~”

         

       그 화사하기 짝이 없는 웃음에, 엘라는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을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

         

       “누가 봐도 제가 언니잖아요! 이 사기꾼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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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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