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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4

       

       

       

       

       

       “왜요, 레온 씨는 저 싫어요?”

       

       실비아는 멍하니 있는 나를 보며 부루퉁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 말에 놀라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 아뇨. 그럴 리가요.”

       “이래 봬도 저 B급 용병이거든요? 뭐, 용병단을 이끌고 할 정도는 아니더라도 레온 씨랑 아르 둘 지키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다구요.”

       “하지만 보셨다시피 상대는 보통 놈들이 아니에요. 무려 서부의 뒷골목에서 활동하는 시프 길드를 산하에 두고 있을 정도로 뒷배가 어마어마한 놈들이에요. 만약 놈들에게 위치를 발각 당하면 저보다, 어쩌면 실비아 씨보다 더 강한 놈들이 저희를 습격할 수도 있어요.”

       “아직 발각 안 당했잖아요?”

       “…….”

       

       실비아는 내 말을 알아듣긴 한 건지,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레온 씨가 해 온 것들을 보면, 저는 앞으로도 레온 씨가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번 일만 해도 정말 멋지게 해결해 내셨잖아요?”

       

       실비아는 그렇게 말하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건….”

       

       나는 말할 수 없었다. 

       그게 내가 「레키온 사가」를 했었던 지식 덕분이라고.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실비아에게 말했다. 

       

       “실비아 씨가 저를 좋게 봐 주시는 건 정말 고마워요. 하지만, 전 아직 실비아 씨에게 말하지 못하는 게 있어요. 물론 언젠간 말하게 될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말씀드릴 수 없는 게….”

       “뭐 어때요. 말하지 못할 비밀 같은 건 누구한테나 있는 법인데요. 저도 레온 씨한테 비밀로 하고 있는 게 있는 걸요? 그것도 레온 씨가 들으면 엄청 놀랄 만한.”

       “…그런 게 있어요?”

       

       그 말에 나는 실비아가 비밀로 할 만한 게 뭐가 있는지 머리를 굴려 보았다. 

       

       ‘사실은 실비아 씨가 6성, 혹은 7성 검사였다거나, 뭐 그런 건가?’

       

       솔직히 이쯤 되면 실비아 씨가 4성 검사라는 걸 곧이곧대로 믿는 게 더 이상했다. 

       

       ‘종종 세간에서 실력을 숨기고 다니는 정체불명의 검사들이 있긴 한데.’

       

       그중 하나가 실비아 씨였던 거지.

       

       어쩌면 실비아 씨가 말하는 비밀은 왜 실력을 숨기고 다니는지에 대한 것까지도 포함된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후. 그럼요. 저도 뭐, 레온 씨랑 마찬가지로 때가 되면 알려 드릴 테니 지금은 적당히만 궁금해 하고 계세요.”

       “…….”

       

       나는 말문이 막혔다. 

       

       본인이 이렇게 따라오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밝히며 모든 말에 반박을 완료했는데, 여기까지 와서 내가 내치는 것도 그림이 좀 이상하다.

       

       “쀼우…. 쀼우우.”

       

       게다가 아르도 ‘레온, 아르도 온니 가는 거 시러. 가치 이쓰면 조케써.’라며 나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후우….”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래. 어차피 지금 당장 레키온의 도움을 바랄 수는 없다면, 실비아 씨가 옆에 있는 게 든든하긴 해.’

       

       걱정되는 건 실비아 씨까지 위험해지는 건데….

       

       ‘이렇게 된 이상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실력을 숨기고 있는 실비아 씨한테 최대한 단검술을 전수 받고, 레벨업을 빨리 해서 놈들에게 대항할 힘을 갖추는 거겠지.’

       

       나야 평범한 일반인이지만, 아르는 드래곤이다. 

       레벨만 받쳐 준다면, 그리고 앞으로 성장을 더 한다면 설사 실비아 씨보다 강한 적이 나타난다고 해도 대항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을 마친 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드릴게요. 실비아 씨.”

       “쀼우우우!”

       

       내 말에 아르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아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에게 고맙다고 인사한 뒤, 실비아의 품으로 폴짝 뛰어 안겼다.

       

       아르는 실비아의 가슴팍을 딛고 서서 실비아의 얼굴을 껴안았다. 

       

       “삐유우웃!”

       

       아르는 ‘온니! 안 헤어져서 너무 조아! 어서 레온이랑 겨론해!’라고 외치고 있었다.

       

       ***

       

       대륙 동부, 보르튼 성.

       

       근무를 마친 정식 기사 레키온은 서둘러 움직였다. 

       미리 한쪽에 숨겨 둔 주머니를 가지고 성벽 아래쪽에 빗물이 빠져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 둔 작은 구멍 근처로 갔다. 

       

       그가 투구를 벗자 땀에 젖은 찬란한 금발이 모습을 드러냈다.

       레키온은 투구를 잠시 내려놓고, 휘파람을 불었다. 

       

       휘익.

       

       그러자 숨어 있던 작은 무언가가 하나둘씩 조심스레 나와 레키온의 앞에 나타났다. 

       

       “옳지, 얘들아. 오래 기다렸지? 미안해. 근무 서느라 조금 늦었어. 어서 밥 먹자.”

       “냐앙.”

       

       주머니를 열어 사료를 손바닥에 덜어 주자, 녀석들은 게걸스럽게 그걸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아유, 귀여워라. 천천히 맛있게 먹어. 맥스, 너도 더 붙어. 그렇지.”

       “망.”

       

       맥스는 고양이들 사이에 낀 작은 강아지였다. 새끼 때 어미를 잃어 그런지 고양이들을 어미처럼 따라 하는 짓도 고양이를 닮아 있었다.

       

       레키온은 흐뭇한 얼굴로 동물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때, 뒤에서 익숙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레키온, 나랑 대련 하기로 해 놓고 또 이런 데서 동물들 밥이나 주고 있는 거냐? 엉?”

       

       돌아 보니 붉은 머리의 기사, 데보라가 레키온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데비, 벌써 왔어? 너도 온 김에 이 녀석들 좀 보고 가. 귀엽잖아. 옳지, 잘 먹네. 더 먹어도 돼.”

       “성 안에서는 데비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을 텐데.”

       “뭐 어때. 다른 사람이 듣는 것도 아닌데.”

       

       레키온은 데보라의 날카로운 눈빛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웃으며 동물들에게 밥을 주었다. 

       

       데보라는 그 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하여간 안 어울리게 귀여운 거라면 사족을 못 쓴다니까. 네놈의 겉모습과 활약상을 보고 좋아하는 여자들이 이걸 보면 까무러칠 거다.”

       

       레키온.

       기사단 입단 후 최단 시간, 최연소로 정식 기사로 발탁된, 최근에 6성을 달성하고도 끊임없이 실력이 상승하고 있는 전무후무한 재능을 가진 기사. 

       

       시원시원하고 멋진 외모, 출신이 무색하게 고풍스러운 금발, 정의로운 성격 등, 수많은 장점 덕에 카란트라 제국에서 빠르게 이름을 알려 나가고 있는 기사.

       

       그리고, 데보라의 소꿉 친구.

       

       “뭐 어때. 하하. 나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평가에는 관심 없거든.”

       “대부분의 평가는 널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할 텐데도?”

       “응. 너처럼 날 알아 주는 사람들만 주위에 있으면 충분하지.”

       “…….”

       “옳지, 잘 먹네. 하하. 간지러워.”

       

       레키온은 주머니에서 사료를 더 꺼내느라 데보라의 얼굴이 조금 붉어진 걸 보지 못했다. 

       

       ‘저 눈치라곤 밥 말아 먹은 녀석. 또 내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저런 말이나 하고.’

       

       데보라는 그런 레키온을 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레키온의 소꿉 친구였던 데보라는 레키온이 기사가 되고 싶다며 검을 배우기 시작할 때 자기도 할 수 있다며 낡은 목검을 가져와 검술 수련을 시작했다. 

       

       -데비, 난 기사가 될 거야.

       -뭐? 갑자기?

       -응. 멋진 기사가 돼서 사람들을 지켜 줄 거야.

       -그럼 나도 해야지.

       -어?

       -왜, 네가 하는데 내가 못 할 이유라도 있어?

       -그건 아닌데….

       -그럼 왜? 내가 같이 기사가 되는 게 싫어?

       -아니! 나야 네가 옆에 있으면 좋지!

       

       다행히 데보라는 검술에 뛰어난 재능이 있었다. 

       견습 기사 발탁 시험에서 1년차에 차석으로 통과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레키온의 재능이 훨씬 뛰어나다는 것이었다. 

       견습 기사 발탁 시험에서 수석으로 발탁된 건 물론이거니와, 1년 만에 바로 정식 기사 시험까지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하는 기염을 토했다. 

       

       데보라도 레키온을 따라잡기 위해 엄청난 노력 끝에 정식 기사로 겨우 겨우 발탁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데보라는 레키온과 함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수련을 하고 있었다. 

       

       ‘가끔 저 녀석의 재능이 야속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데보라는 레키온이 천 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한 인재라는 게 자랑스러웠다. 

       

       “냐아아앙.”

       “망망.”

       “얘들아, 쉿. 조용히 안 하면 여기 무서운 누나가 어흥 한단다. 잡아 갈지도 몰라.”

       “누가 어흥을 해?”

       

       레키온은 배가 부른 녀석들을 쓰다듬어 주다가 돌려 보낸 후, 미소를 머금은 채 천천히 일어섰다. 

       

       “자, 데비. 대련하러 가자. 너 최근에 되게 많이 늘었더라.”

       “흥. 금방 널 뛰어넘어 버릴 테니까 각오나 하고 있어.”

       

       그렇게 둘이 대련장으로 떠나려 발걸음을 뗀 순간.

       

       타닷.

       

       “누구…!”

       

       기사의 것이 아닌 발소리에 데보라가 본능적으로 검을 빼 들려다가 멈추었다. 

       

       거기 서 있는 건 얇은 천옷을 두르고 있는 갈색 머리의 호리호리한 남자였다. 

       

       “알렉스? 네가 왜 여기 있어?”

       

       그는 황실 정보부 소속의 암살자였다. 

       레키온과 데보라가 기사단에 들어갈 때 자연스럽게 흩어졌던 친구였는데, 나중에 황실 정보부에 들어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너 엄청 바쁘다며. 여기서 이러고 있어도 돼?”

       

       데보라의 물음에 알렉스는 손가락으로 안경을 슥 밀어 올렸다. 

       

       “우리 정의로운 친구가 나에게 조사를 하나 부탁했었거든.”

       “레키온이?”

       

       레키온을 바라본 데보라가 눈썹을 치켜들었다. 

       아까 동물들을 보며 허허 웃던 레키온은 온데간데없고, 더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알렉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알렉스는 다시 입을 열었다. 

       

       “하무트교. 바냐스 마을 사건 이후로 잠잠해서 꼬리를 잡기가 힘들었는데, 최근 갑자기 다시 활동을 시작했어.”

       “어떤 활동을?”

       “그게….”

       

       레키온의 반응이 예상된다는 듯, 알렉스가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제국 각지에 사람을 풀어 출신이 불분명한 사람들을 납치해 죽이고 있어. 목적은 확실하진 않지만 하는 짓으로 볼 때, 마치 찾는 누군가가 있는 것 같았어.”

       “설마 바냐스 마을을 습격한 것도….”

       “그럴 가능성도 있지.”

       

       까드득.

       레키온이 이를 악물었다.

        

       “사람 한 명을 찾으려고 마을 전체를….”

       “뭐, 확실한 건 더 조사해 봐야 알겠지. 근데 지금 놈들 하는 거 보니까 금방 정보가 더 나올 것 같긴 해.”

       

       알렉스가 턱을 가볍게 쥐었다.

       

       “뭔가 좀 급해 보이더라고. 그전까진 나도 꼬리를 잡기 힘들 정도였는데, 이제는 뒤가 좀 허술하다고 할까.”

       “꼭 부탁할게, 알렉스.”

       

       레키온의 굳은 의지가 담긴 얼굴을 보며, 알렉스가 씨익 웃었다. 

       

       “그럼. 누구 부탁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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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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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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