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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4

        

       제자가 뭐라고.

        

       VR방 앞에서 재차 멈춰선 채, 문에 비치는 내 모습을 바라보며 드는 생각이었다. 내가 봐도 정말 내키지 않는 표정이네.

        

       신성한 나오나를 VR로 하고 싶지 않다……는 목소리가 아직도 안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아무리 기술의 발전이 좋다고 해도, 역사와 전통이라는 게 있는 법 아닌가.

        

       VR로는 VR에 어울리는 게임이나 하면 된다. 왜, 롤러코스터 체험이나, 절벽에서 걷기 체험같은……그런 것들 있잖아. 캐쥬얼하고, 가벼운. 메인스트림이 아닌.

        

       좋아하던 게임들이 하나 둘 씩 VR게임에 밀려나, 대회도 폐지되고 유저도 사라지던 모습을 두 눈 뜨고 보기만 해야 했던 기억 때문에 하는 얘기는 아니다.

        

       진짜로.

       

       나오나를 VR로 한다니. 시즌 8까지 수 년간 합을 나누던 과거의 동지들이 듣는다면, 내 목을 베어 효시할 사안이다. 갤러리 대문에 박제된 내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어제 무슨 얘기를 해도 병아리처럼 ‘네, 선생님!’을 외치며 따르던 별포크가 떠올랐다. 광전사도 안 하겠다고 했고. 나중에는 제자리에서 춤을 추는 연습을 시켜도 의문 하나 없이 하더라.

        

       실력은 조금 이상하지만……이렇게나 의욕 있는 학생을 만나면, 사람인 이상 마음이 물러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멘토가 하고 싶어서 지원한 대회는 아니지만, 이렇게 된 이상 제대로 해야지.

        

       그리고 제대로 하려면, 당연히 제자의 눈높이에서 게임을 바라보는 것이 먼저다.

        

       다시 말해-

        

       그토록 피해왔던 VR기기를 뒤집어 써야만 한다.

        

       검으로 일가를 이룬 스승이라고 하더라도, 도를 한 번 휘둘러보지도 않고 도를 가르칠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는가.

        

       따지고 보자면 제자가 검을 배우는 게 맞겠지만……고작 일주일만에 키보드 마우스로 게임을 하는 법을 익히라고 요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런고로, 나는 새벽 2시에 24시간 VR방 문 앞에 서있었다.

        

       -후

        

       망설여봐야 달라질 건 없겠지.

        

       -딸랑!

        

       “어서오세요.”

        

       카운터 뒤편에서 늘어지듯 앉아있는 남자 아르바이트생이, 고개를 핸드폰에서 떼지도 않은 채 심드렁한 인사를 건네왔다.

        

       접객의 의사는 없어 보였다.

        

       PC방과 비슷한 시스템인 걸까. 손님이 알아서 빈 기기 앞에 앉아서 플레이 하는, 그런.

        

       안으로 걸어 들어가며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힌트가 될 만한 건 없었다. 개별 룸으로 파티션이 나뉘어져 있는데……저 안에 VR 장비가 있겠지만, 아무데나 들어가도 되는 건지를 모르겠다.

        

       시스템 좀 설명해주면 좋겠는데.

        

       고개를 뻗어 아르바이트생과 눈을 마주치려 해봤지만, 어림도 없었다. 하기사, 핸드폰만 하면서 월급을 받을 수 있는데 손님을 챙기고 싶을 리가.

        

       목 마른 자가 우물을 파는 수밖에.

        

       “안녕하세요.”

        

       카운터로 걸어가, 고개를 앞으로 쭈욱 내민 채 인사를 건넸다. 주의를 확실히 끌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솔직히, 핸드폰으로 뭘 하고 있었는지 궁금했던 탓이었다.

        

       아, 나오나 방송이네. 위에 점수와 팀명 등이 떠있는 걸로 봐서, 프로 경기인 모양이었다.

        

       “네, 무엇을 도-으헉?!”

        

       ……너무 가까웠나. 고개를 들며 일어나던 아르바이트생이,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나다가 넘어지듯 의자에 다시 주저앉았다. 의자만 아니었으면 성대하게 자빠졌을 거다.

        

       좀 쪽팔리겠는데.

        

       이럴 땐 상대라도 최대한 태연하게,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대응해줘야 덜 쪽팔린 법이다.

        

       “저, 처음이어서요. 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네? 아, 네! 네! 잠시, 잠시만요. 이쪽으로 오시겠어요?”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난 알바가, 앞장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자꾸 힐끔힐끔 뒤를 돌아보며 눈치를 보는 모습이 조금 안쓰러웠다. 모른 척 해줘야지.

        

       .

       .

       .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 화면이랑 싱크는 잘 맞으시나요?”

        

       “네, 좋아요.”

        

       기기 착용부터 세팅까지 친절하게 도와준 아르바이트생 덕분에, 생소한 장비에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근데 이렇게 자리 오래 비워도 되는 건가.

        

       내가 걱정할 일은 아니긴 하지만. 새벽이라 딱히 찾아오는 손님이 없는 거 같기도 하고.

        

       “혹시 원하시는 게임 있으신가요? 여성분들은 보통 마스터스포츠 많이 찾으시고……움직이는 거 부담스러우시면 경치가 아기자기하게 예쁜 게임도 있어요. 추천해 드릴까요?”

        

       “음……나오나, 할 거여서요. 괜찮아요.”

        

       “나오나요? 해본 적 있으세요?”

        

       나오나 하면 VR게임인 세계다. VR기기를 처음 차보는 주제에 나오나는 해본 적 있다고 대답하는 것도 이상하겠지만, 키보드마우스로만 9년차라고 설명하는 건 더 이상하겠지.

        

       이래저래 귀찮았기에, 그저 얼버무리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가볍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이제 해볼게요. 감사합니다.”

        

       “아, 네. 혹시 도움 필요하시면 여기 벨 눌러주세요! 제가 나오나도 좀 해서요. 알려드릴 수도 있어요.”

        

       “네. 감사합니다.”

        

       “음료수 한 잔 드시겠어요? 제가 쏠게요. 처음 하시는 기념으로.”

        

       음료수……숙성보리음료는, 조금 땡기는데.

        

       하지만 냉장고는 조금 전 들어올 때 이미 스캔했다. 알코올을 취급하는 업장은 아니다.

        

       “괜찮아요. 필요하면 부탁드릴게요.”

        

       “네! 원하실 때 언제든 여기 벨 눌러주세요. 즐거운 시간 되세요!”

        

       다시 한번 살짝 허리를 숙이며 인사하자, 아르바이트생은 비로소 싱글싱글 웃으며 떠나갔다.  

        

       쉽지 않네.

        

       -후.

        

       VR나오나……어떠려나.

        

       가볍게 심호흡을 하며, 준비해둔 부계정으로 접속했다.

        

       * * * *

        

       별포크, 윤아리의 하루는 스트리머치고는 제법 빠르게 시작됐다. 낮방송을 주력으로 하기 때문이지만,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늦잠을 허용치 않는 그녀의 동거묘다.

        

       오전 8시.

        

       전날 새벽 1시가 넘어 잠든 별포크로서 일어나기 쉬운 시간은 아니었다. 배 위에 올라타서 체중실린 앞발을 꾹꾹 눌러대는 고양이의 압박을 이겨내는 건 더욱 어려운 일이었지만.

        

       “응…언니 일어났어. 밥 줄게.”

        

       인간이 다시금 고양이에게 패배하는 순간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더 사랑하는 쪽이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기에.

       

       눌러붙은 듯한 눈을 힘겹게 뜨고 습관적으로 핸드폰부터 켜자, 전 날 잠들기 전까지 보던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의 방송 화면이 떠올랐다.

        

       정확히는, 그녀의 비공식 팬튜브였지만.

        

       팬튜브의 구독자가 1만에 육박하고 있었다.

       

       대체 공식 지튜브 채널은 언제 만드는 걸까. 무언가 계획이 있으시겠지- 하고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만약 지금 전재산을 걸어야 한다면 ‘그냥 만들 생각을 안 했다’에 걸 요량이었다.

       

       이예나의 방송을 자주 챙겨보았기에, 어느 정도는 그 인간상에 대해 알게 된 탓이다.

        

       ‘아무래도 좋으니까, 방송이나 자주 해주시면 좋을 텐데.’

        

       찬장에서 사료를 꺼내 그릇에 담으며 팬튜브의 영상 목록을 훑어보았으나- 당연하게도, 모두 이미 본 영상이었다.

        

       무보수 팬튜브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퀄리티와 속도라지만, 양은 항상 부족했다. 애초에 방송 주인이 원재료를 잘 공급하지 않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참다못해 처음으로 부계정을 만들고, 이예나의 위게더에 ‘제발 방송 좀 켜주세요 며칠째야 진짜ㅠㅠㅠㅠㅠ’라고 댓글을 달게 되었던 시절을 생각하면, 최근의 방송주기는 그나마 양반이었지만.

        

       ‘빨리 다음 영상 좀 올라왔으면.’

        

       어쩌면 그녀와 함께한 어제자 방송분이 올라올지도 몰랐다. 조금은 민망하겠지만, 팬으로서 기대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이예나가 챌린저까지 노방종을 하던 시절에 유입된 그녀는, 어느새 푹 빠져버린 상태였기에.

        

       ‘옆집 스트리머는 챌린저를 간다는데’라는 제목의 영상 도네이션으로 처음 그녀를 접했을 때까지만 해도, ‘목소리 좋네’ 정도의 감상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 날 방종을 하고 침대에서 뒹굴거리다가 호기심에 잠시 접속했을 때, 이예나는 페이크 오더를 섞어가며 저격들을 농락하고 있었고-

        

       저격으로 고통받는 일이 매우 잦았던 별포크는 그야말로 압도적인 대리만족감에 취할 수밖에 없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침대를 굴러다니며 박장대소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을 정도로.

        

       그 날의 방송을 계기로, 별포크의 하루 일과에는 ‘아따먹 방송 시청(혹은, 방송 언제 켜냐고 댓글 달기)’이 들어가게 되었다.

        

       마침 이예나의 방송 시간도 그녀의 방송과는 절묘하게 어긋나 있었던 덕분이었다.

        

       물론, 애초에 방송을 안 하는 날이 더 많았지만-

        

       -야옹

        

       발치에서 기다리던 고양이가 불만스럽게 재촉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응, 여깄어. 맛있게 먹어.”

        

       그릉거리며 그릇에 머리를 박은 고양이를 잠시 토닥거리던 별포크는, 가볍게 몸을 스트레칭하며 컴퓨터 앞에 앉았다.

        

       ‘복습해야지.’

        

       무려 현역 챌린저인, 좋아하는 스트리머에게 직접 강의를 받는 기회다. 결코 허투루 하고 싶지 않았다. 이 대회를 계기로 친해질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쭈굴쭈굴해진 탓에, 2시간 가까이 배우면서도 사담이라고는 ‘어디 사세요?’와 ‘와! 저도 서울이에요!’가 전부였지만.

        

       대회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면 다같이 현실 뒤풀이라도 하게 되지 않을까. 얼굴을 공개하지 않았으니, 뒤풀이에도 안 나올 가능성도 있지만.

        

       머릿속으로 상상 속의 이예나를 그려보며, 마우스를 흔들었다.

        

       디스코스 아이콘이 알림으로 번쩍거리고 있었다. 그녀가 자러 간 뒤에도 나머지 팀원들은 대화를 주고받은 걸까. 하기야, 저녁부터 새벽을 주력으로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아크: 그러면 다들 내일 오후 8시에 봬요!]

       [별포크: 네네!! 전 먼저 자러 갈게요!! 다들 너무 고생하셨습니다ㅠㅠㅠㅠ]

       [고라박스: 넵. 다들 고생하셨어요.]

       [레반: 내일 뵙겠습니다]

       [궁탁: 우리 멘토선생님들 푹 쉬세요~~~]

        

       그러나 6명이 모인 단체방에 남아있는 채팅은, 전날 밤 인사를 나눈 것이 전부였고-

        

       ‘그러면 알림이…어?’

        

       반짝이는 알림은, 이예나로부터 온 개인 메시지였다.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별포크님]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 같이 VR방 가실래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맥주와 하이볼도 파는 피시방은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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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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