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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4

       [정말로 이 기세라면…….]

         

       크라우첼이 침음성을 내뱉었다. 수천에 가까운 망령들이 일거에 소멸했다. 올리비아의 위령이 제대로 통한 것이다.

         

       이렇게 몇 번만 더 하면 에스티의 영혼에 새겨진 주박은 물론이거니와, 아쿠아르의 모든 망령들이 안식을 되찾는 것도 꿈이 아니었다.

         

       ‘……도대체 뭐하는 인간이란 말인가.’

         

       산전수전 다 겪은 전사도 그 정도 숫자의 망령 앞에서는 거품을 무는 것이 정상인데 말이다.

         

       [상태이상, ‘저주’에 저항합니다.]

       [상태이상, ‘약화’에 저항합니다.]

       [상태이상, ‘부패’에 저항합니다.]

         

       간혹 순순히 소멸하지 않는 망령들도 있었다. 그들은 여태껏 망령으로 떠돌아다녔던 삶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올리비아에게 모든 증오의 화살을 떠넘긴 다음에야 소멸을 받아들였다.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아무리 정신을 차렸다고 한들, 수백년을 정신이 나간채로 떠돌았는데 순순히 받아들이는 게 더 이상하다.

       이럴까봐 리브가를 데려온 것이다. 이깟 상태이상 정도야 신성력으로 단번에 치유할 수 있으니까.

         

       [……자네 괜찮나?]

       “네. 괜찮아요.”

         

       엄살이 아니었다. 리브가의 치료 덕도 있겠지만, 정말로 아프지 않았다.

         

       ‘단서에서 쫓겨났을 때의 고통에 비하면, 이건 뭐 천국이지.’

         

       머리가 어지럽고, 심장이 평소보다 빠르게 뛰는 것 같기는 하지만, 이 정도는 예상 범주 내였다.

         

       “앞으로 이렇게 몇 번만 더 하면 되니까, 그때까지만 좀…….”

         

       턱.

         

       리브가가 어느새 곁으로 다가와 손목을 붙들었다. 올리비아의 말이 더 이어지기를 원치 않는 듯, 그녀의 눈망울은 그렁그렁했다.

         

       “……이제부턴 제가 할게요.”

         

       뜻밖의 행동에 놀란 올리비아가 리브가를 바라보았다.

         

       “……제발요.”

         

       떨리는 리브가의 손과, 조금씩 낮아지는 시선.

       올리비아는 한 발 물러나기로 했다.

         

       ‘몇 번 정도는 내가 더 하려고 했었는데.’

         

       하지만 리브가가 저렇게 나온 이상, 그녀의 정신을 위해서라도 물러나는 게 맞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도 했고,’

         

       반응을 보아하니 ‘희생 정신’을 강조하는 것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았다.

         

       ‘올리비아’의 희생정신이 대두될수록, ‘아스모데우스’와의 연결고리는 약해진다.

       이번 일이 잘 마무리되면, 리브가는 ‘올리비아’가 저지를 모든 악행을 ‘아스모데우스’의 짓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생판 남을 위해 이렇게까지 희생한 사람이, 어떻게 몰살을 저지르겠는가.

         

       올리비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 방법을 그대로 따라할 필요는 없어.”

       “……저도 언니처럼 할 수 있어요.”

       “너를 못 믿어서 이런 말을 하는게 아니야.”

         

       [‘성녀 리브가’가 ‘거짓 간파’를 사용합니다.]

       당신의 말은 진실입니다.

         

       “……어.”

         

       갑자기 떠오른 알림창에 올리비아가 입을 다물었다.

       설마 리브가가 거짓 간파까지 사용할 줄이야.

         

       왜 사용했는지는 대충 유추할 수 있었다.

       아마 또 자신이 희생할까봐 걱정됐기 때문이겠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진짜 많이 삐졌구나.’

         

       다른 의미로 신뢰를 잃어버린 모양이다.

         

       가끔씩 리브가가 십대 초반의 아이의 불과하다는 사실을 깜빡한다.

         

       재빨리 평정을 되찾은 올리비아가 말했다.

         

       “나는 마법사여서 그런 극단적인 방법밖에 쓸 수 없지만, 너는 아니야. 성녀라는 직책을 이용하렴. 크라우첼이 도와준다면 어렵지 않을거야.”

         

       올리비아는 그 말을 끝으로 크라우첼을 쳐다보았다.

       그 눈빛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크라우첼은 단번에 알아챘다.

         

       여김없이 전음이 들려왔다.

         

       – 나보고 바람잡이를 하라는 말인가?

       – 바람잡이라고 생각하면 바람잡이고, 기사도라고 생각하면 기사돕니다.

         

       망령들은 리브가가 성녀라는 것은 몰라도 크라우첼이 기사단장이라는 사실은 안다.

       그의 품행은 대외적으로 유명했을테니 크라우첼이 리브가가 성녀가 맞다고 못박아주기만 하면 그 후로는 일사천리다.

         

       – 백성들이 신의 품에서 생을 마무리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크라우첼.

         

       빛의 교단이 대륙에 자리를 잡은 것은 오백 년 전의 이야기.

       아쿠아르 왕국 또한 빛의 교단의 영향을 크게 받았을테고, 적지 않은 신자를 보유하고 있었을 것이다.

         

       ‘못해도 6할에서 7할이야.’

         

       크라우첼은 거절할 수 없을 것이다.

         

       [……최선을 다하겠다.]

       “믿고 맡기겠습니다. 크라우첼.”

         

       둘의 대화에, 리브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언니는요? 올리비아 언니는 저희랑 같이 안 가요?”

       “너한테 이 일을 맡겼으니, 다른 일을 하러 가야겠지. 네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시간에 맞출 수 있게 됐어.”

         

       리브가의 흔들리는 눈빛. 시간이 없다는 올리비아의 말이 리브가의 속을 후벼 팠다.

         

       “어디……가시는데요?”

       “왕성에. 높으신 분들은 내가 직접 설득해야 할 것 같아서.”

       “……아.”

         

       커다랗게 벌어지는 리브가의 눈동자를 애써 무시하며, 그녀의 머리를 쓸었다.

       

        “고마워. 금방 다녀올게.”

         

       리브가의 손이 허공을 애처롭게 흝고 지나갔다.

         

         

       *****

         

         

       ‘일단 저쪽은 얼추 마무리됐고…….’

         

       리브가와 크라우첼이라면 3할 정도야 사흘이면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리브가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으니, 어쩌면 4할까지도 가능하겠지.

         

       리브가는 올리비아의 희생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위령을 이어갈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게 한계다.

         

       위령 자체를 거부하는 이들도 존재할테고, 무엇보다 인외의 존재 그 자체가 되어버린 자들도 있을테니까.

         

       한 때 인간이었다는 사실조차 망각한 채, 그저 생자의 육체를 탐할 뿐인 진짜배기 망령들.

       인간이길 포기한 이들은 신성력으로도 제 정신을 찾게 만들 수 없다.

         

       그들은 위령조차 불가능하다. 소멸만이 답이다. 당연히 지분을 얻는 것도 불가능하다.

         

       ‘아마 국왕은 이것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겠지.’

         

       제 정신을 되찾을 가능성이 있는 백성들을 전부 모아도, 과반에 미치지 못할테니까.

       올리비아가 왕성으로 향하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결국, 과반의 지분을 얻으려면 왕족 놈들을 설득해야 했다.

         

       ‘크라우첼이 0.3퍼센트였으니까, 고위층들은 그보다 약간 적겠지. 왕족들은 그보다는 많을거고.’

         

       올리비아는 왕성 복도를 걸으며 생각에 잠겼다.

         

       물론, 이번에도 그런 호소를 할 생각은 없었다. 시민들은 엄연한 피해자였다.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었고, 심지어는 제 목숨까지 잃은 피해자들이었기에 용서해달라고 호소한 것이다.

         

       하지만 왕성에 있는 놈들은 다르다.

         

       이 놈들은 전부 가해자다. 에스티가 바다를 움직이도록 부추긴 것도, 자기네들을 죽인 것이 에스티라고 여론전을 한 것도 다 이 자식들 짓이다.

         

       ⌜흠, 무슨 일인가?⌟

         

       검은 형체가 말했다. 그것이 왕족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을, 올리비아는 이미 알고 있었다.

         

       “전하께서는 지금 어디 계십니까?”

       ⌜기간을 늘려달라고 할 셈인가? 아서라. 전하께서는 뜻을 굽히시는 분이 아니다.⌟

         

       그건 올리비아도 알고 있다. 아쿠아르의 패왕이 어떤 작자였는지는 역사서에 잘 드러나 있었으니까.

         

       그리고 분명, 그는 이렇게 말했다.

         

       – 앞으로 나흘 동안, 아쿠아르의 그 어떤 망령도 너를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국왕은 그것을 단순히 신변의 안전을 보장해주겠다는 뜻으로 한 것이 아닐 것이다.

         

       애초에, 망령이 되어 정신이 나간 백성들을 어떻게 통제한단 말인가.

         

       생전에 국왕이었다고 해서, 죽은 후에도 국왕일 리가 없을 지인데.

       이 당연한 사실을 패왕이라고 불렸던 사람이 몰랐을 리가 없다.

         

       “여쭤볼 것이 있어서 말입니다.”

        ⌜여쭤볼 것이라……. 3층을 떠돌고 계실테니 거기서 찾아보도록 하거라.⌟

         

       선뜻 대답해주는 것으로 보아하니 올리비아에게 호감을 품었던 왕족 중 한 명인 듯 했다.

         

       올리비아는 곧바로 3층으로 향했다. 국왕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가 머무르는 곳만 유독 어두웠기 때문이다.

         

       [이르군. 짐과 만난지 한 시간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올리비아는 대답하는 대신 손을 뻗었다. 파편이라고 부를 수 없는 크기의 사슬이 손바닥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당신의 지분은 7.43%입니다.]

         

       ⌜어떻게 벌써……!⌟

         

       왕족들이 헛숨을 들이켰다. 정작 국왕은 물끄러미 올리비아를 응시하고 있을 뿐이다.

         

       “확답을 들으러 왔습니다.”

       [……무슨 확답 말인가?]

         

       올리비아는 일부러 뜸을 들였다. 국왕을 달아오르게 하기 위함이 아니다. 다른 왕족들을 물려달라는 무언의 부탁이었다.

         

       국왕도 그 뜻을 모르지 않았다.

         

       [다들 잠시 물러가도록.]

         

       왕족들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이제 말하거라. 확답은 무슨 뜻으로 한 것이냐.]

       “국왕 전하께서는 따님을 용서하고 싶으십니다. 맞습니까?”

       [……부정하지 않겠다.]

       “그렇지만 스스로 용서할 자격이 없다는 사실도 알고 계십니다.”

       [그 또한 옳다.]

         

       예상이 맞았다.

       국왕은 에스티의 주박을 해제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다른 망령들의 반발 때문에 그러지 못했을 뿐이다.

         

       그가 가진 지분은 고작 0.7퍼센트에 불과하니까.

         

       ‘이제야 알겠네.’

         

       퍼즐이 하나씩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어떻게 ‘올리비아’가 이카일을 멸망시킬 수 있었는지도 알 것 같았다.

         

       ‘국왕을 꼬드겼겠지.’

         

       에스티의 영혼에 새겨진 주박은 ‘적’으로부터 이카일을 지키는 것. 그리고 그 ‘적’의 기준은, 아쿠아르의 망령들이 정한다.

       아쿠아르가 이카일을 공격하면, 에스티로서는 손 쓸 방법이 없다.

       아쿠아르 또한 한 때 이카일이었으니, 막을 수도 없었을테고.

         

       국왕은 제 딸의 자유를 위해 후손들을 쓸어버렸을 것이고, 에스티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그저 만족했을 것이다.

         

       “제가 왕족 분들을 좀 교육해도 되겠습니까?”

       [교육?]

       “패겠다는 말입니다. 따님을 용서하겠다고 말할 때까지.”

       [……짐이 그걸 허락해줄거라고 생각하는가?]

       “허락해주시지 않으실 거였다면 크라우첼을 붙여주시지 않으셨겠죠.”

         

       국왕이 왕족들을 지키고자 했다면, 크라우첼을 왕성 바깥으로 내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그때부터, 국왕은 이럴 생각이었을 것이다.

         

       국왕이 허탈한 듯 말했다.

         

       [그 방법 뿐이겠지?]

       “이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에스티를 잘 부탁하네.]

       “그 이야기는 일이 마무리되고 나서 듣겠습니다. 망령 수십 명 설득하려면 하룻밤은 새야 되거든요.”

         

       국왕은 몸을 뒤로 돌렸다. 앞으로 벌어지는 모든 일을 묵인하겠다는 뜻이다.

         

       그리고 올리비아가 가장 바라던 것이기도 했다.

         

       “좋은 소식 들고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국왕 전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Ilham Senjaya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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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세계를 멸망시킨 마녀가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destroyed the world to see its Annhiliation Ending.

And I possessed my Character Olivia in the game.

However… … .

[The world is rebuilt.] – NPCs killed by you return.

– Princess Aria hates you.

– Sword Saint Kiel wants to slit your throat.

… … Isn’t that a bit of a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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