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94

        

         크리스마스에 구경한 불꽃놀이와는 다방면에서 이질적인 폭발을 노려본다.

         

         쉬지 않고 뿜어져 나오는 매캐한 연기, 무슨 휘발 물질에 옮겨붙었는지 몰라도 꺼질 기미가 안 보이는 화재.

         원래 폭탄의 일부인지, 조각난 선로 파편인지는 몰라도 하늘 높이 치솟았던 금속 파편들이 불규칙하게 떨어져 사막 여기저기에 틀어박힌다.

         

         시발, 얼마나 폭발이 컸으면 여기까지 잔해가 날아오네.

         

         가장 먼저 뇌리를 스쳐 지나간 건 승객이 둘이나 빠져서 널찍해진 객실을 쓰고 있을 원조 테러리스트들이지만. …기회를 잡았어도 적당히 기업 성질머리나 긁던 그들의 소행이라 보기엔 너무 화끈하지 않나?

         

         게다가 기화한 타르처럼 끈적하고 불길한 색감으로 가득한 폭발 현장은 그다지 아기자기한 의도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저걸 그냥 뚫고 가겠다는 게 전문가들의 결단이라고…?”

         

         말할 것도 없이 맨몸도 아니고, 기차의 몸체를 이용해 호쾌하게 들이박겠다는 작전이긴 했으나 무식하기 그지없는 현장 판단에 합당한 의문을 제기해봤다.

         

         그치만 나름의 논리 무장은 완벽한듯 아주 확신에 찬 목소리로 승무원은 해명을 늘어놓았다.

         

         “고속 운행하는 기차의 물리력, 전면부 합금의 강도, 리펄서가 발생시킬 수 있는 척력까지 모두 고려한 사안입니다. 외부 무뢰배들이 이런 식으로 물자 탈취 시도를 걸어온 것도 최초는 아니기에.”

         

         “흐응… 그럼 다행이긴 한데….”

         

         “더군다나 지원 요청도 들어갔으니, 못해도 30분 내로 하베스트 플래닛에서 보낸 병력과 유지보수 관리지부에서 나온 파견팀이 도착해서 이 난장판을 정리할 겁니다.”

         

         미심쩍어 하는 내 기색을 읽은 그가 안심할 만한 정보를 덧붙여주었다.

         하지만 그건 결국 사후지원이지, 당장은 아무 도움이 안 되지 않나…?

         

         몇 번이고 겪어본 상황이기에 괜찮다.

         허나 반대로 말하면, 그건 상대도 이번엔 다른 결과를 낼 자신이 있어서 걸어온 게 아닐까 하는 잔걱정은 불행히도 빗나가지 않았다.

         

         쿠르르릉…!

         

         인근…이라고 하기엔 거리가 좀 있긴 했지만, 창문 너머로 보이는 언덕에 굉장히 인공적이고 작은 모래폭풍이 휘몰아친다.

         

         위쪽으로 층층이 쌓여 있던 모래더미를 파헤치고, 상승기류로 날려버리며 그 번들거리는 윤곽과 거구를 드러낸 건 한 기의 호버크래프트.

         

         맹렬하게 돌아가는 프로펠러의 회전 날이 연주하는 진동과 압력에, 조금 전의 폭발마저 가볍게 포용한 사막이 수영장 마냥 물결치는 건 굉장히 멋있었다.

         

         거기에 더해 흡사 개미귀신이 떠오르는 고전적인 잠복 방식은, 낡았지만 이런 사막 한가운데서 저만큼 잘 먹히는 것도 없긴 했고.

         

         덕분에 좋은 구경은 실컷 했으니. 이제 그만 알려줬으면 좋겠다.

         

         “…저게 그 지원 병력이라면 좋겠는데?”

         

         “어….”

         

         입을 뻐끔거리는 승무원 씨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어디까지나 예의상 물어본 거라 큰 기대는 안 했다.

         배달되려면 30분 걸린다 하고는 10분만에 와주는 그런 서비스일 가능성도 있었으니까. 응, 실망하지는 않았다.

         

         단지 이렇게 되면, 공교로운 타이밍에 나타난 저 군용 호버크래프트가 아군일 확률이 현저하게 낮아진 건데… 막상 적으로 간주하기엔 이상했다.

         

         호버바이크나 호버모빌(Hovermobile; 부유형 승합차)도 아니고, 반년 넘게 메트로폴리스에서 구를 때조차 EMP 테러 정도는 발생해야 겨우 볼 수 있던 물건이 이런 곳에서 갑자기 튀어나온다?

         

         …구린 냄새가, 악취가 풍긴다.

         

         그리고 그 강렬한 구린내는 정체불명의 기체機體가 점점 기차를 향해 접근해올수록 진해지다가… 내 몸에 옮겨붙었다.

         

         “…어라.”

         

         호버크래프트라는 건 결국 기종에 대한 명칭.

         대량 생산 가능한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이 몇 군데 없다 해도. 용도에 따라서 다양한 모델과 타입, 요구되는 세부적인 옵션이 달라진다.

         

         가령 엑사테크에서 출시한 군용 호버크래프트라면 그 자체만으로도 독립형 병기로 작동할 수 있도록 다양한 무기와 센서로 무장한 이동 요새일 것이고.

         헤이롱에서 제작한 호버크래프트라면 안에 탑승하는 병사들이 주체이기에 부가적인 무장보다는 빠른 기동력과 내구성을 강조한 수송선일 것이다.

         

         또 거기서도 기계 제품은 주문자의 의향에 따라 커스텀이 무궁무진하게 들어가니, 저런 초고가 기계 중에 완벽하게 동일한 물건은 없어야 정상인데…… 이 호버크래프트는 왜 이렇게 익숙하냐. 뭔데.

         

         드득, 드드드득…….

         

         고민을 끝마치기도 전에, 다가온 강철 날개가 내뿜는 진동으로 인해 창문이 거칠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거리가 충분히 가까워지자 멀리서는 잘 안 보였던 조잡한 해골 무늬 페인팅이나 붉고 누런 도색, 무엇보다도 사연이 짐작가는 측면부의 찌그러진 긁힌 흠집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마치 지근거리에서 수류탄이라도 터진 역사가 있는 것처럼 패인 자국이.

         

         “…억울해 죽겠네, 진짜로.”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당신의 용돈벌이, 훗날 범죄자의 총알로 되돌아옵니다? 누가 이런 경우까지 상정하면서 살아가냐고요!

         

         “이 도시쥐 새끼들아 잘 들어라!! 우리는 하베스트 플래닛부터 프레스노 식량 플랜트 단지, 그리고 모하비 사막 인근을 지배하는 타이토 갱단이다! 당장 엔진을 완전히 끄고 씨발할 기차를 세우지 않으면, 물건 망가지는 것 정도는 감수하고 아예 전복시키겠다!”

         

         칼칼하고 야만적인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린다.

         

         실제로는 경찰이나 기업 군사들이 주둔하는 곳 근처는 얼씬도 안 하는 주제에 거창하게 말하는 솜씨만은 제법이었다.

         이 경우엔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본인의 주장처럼 상황을 ‘지배’한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드드득…! 쿠구궁….

         

         선로가 끊어진 폭발 지점까지 얼마 남지 않은 순간에도 기차 측의 응답이 없자 호버크래프트가 공중에서 선회한다.

         

         당연히 모터쇼 같은 걸 펼치려는 건 아니었고. 비스듬하게 주행하는 대신 기차와 나란히, 속도마저 동일하게 맞춰서 질주하나… 싶더니 기차에 그 장갑을 맞대 버렸다.

         

         끼긱… 끼이이익…!!

         까드득!

         

         곧이어 소름 끼치는 쇳소리가 차체에서 울려 퍼졌다.

         미친 듯이 돌아가는 회전 날개와 푸른 화염을 내뿜는 부스터 엔진이 보였다. 이건 통째로 밀어내는 거다. 단선된 곳을 지나칠 때 완전히 기차의 진행 경로가 어긋나도록.

         

         선두 부분이 제어를 잃으면 나머지야 줄줄이 따라갈 게 뻔했으니까.

         

         고막을 두들기는 금속음이 점차 심해진다. 꼭 침몰하는 배에 탄 것 같아서 농담으로라도 계속 들어줄 만한 소리는 아니었다. 기차가 계속 버텨줄지도 알 수 없었고.

         

         내가 메카닉은 아니지만 이건 알 수 있었다.

         자랑하던 하부 리펄서라는 게, 옆에서 미는 힘에도 대응이 된다면 이대로 강행 돌파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런 형편 좋은 장치가 아니라면….

         

         덜컹! 하고, 폭력적인 외부 간섭과는 다른 형태의 진동이 차량 전체를 관통한다.  

         유리창으로 비치던 사막 풍경이 뒤로 밀려나는 속도가 줄어들고, 갑작스런 스피드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호버크래프트의 외부 장갑이 기차 옆구리에 긴 손톱 자국을 냈으니.

         

         타이토인지 타이거인지 하는 뭐시꺵이 갱단의 요구를 일단 들어준 것이다.

         

         “…이게 맞는지 모르겠네.”

         

         그야 전복 사고가 나서 다 같이 좆돼느니 이게 훨씬 낫다는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겠지만…… 진짜 문제로 번지기 전에 깡패 새끼들에게 승복했다고 생각하자 기분이 영 더러웠다.

         

         아니면 이게 안전 불감증인가, 그건가?

         

         “아직, 아직은 괜찮습니다! 퍼스트 클래스 구획까지는 보안문이 두 개나 버티고 있으므로…!”

         

         “네~ 잘 알겠으니까, 돌아가서 그 매뉴얼대로 열심히 버티고 계세요.”

         

         제발 기관실로 같이 대피해 달라며 애걸하는 승무원 씨를 쫓아냈다.

         차라리 진짜 움직이기도 어려운 금고문이라면 모를까, 좀 치는 해커가 만지작거리면 10초만에 어서 오세요~ 하며 열릴 전자식 보안문 따위를 신뢰할 생각은 없었다.

         

         “서둘러!! 작업은 시간 싸움이다! 낭비하는 새끼는 버린다!!”

         “뒤지기 싫은 새끼들은 엎드려! 엎드…^&%#…!!”

         “씨발! 개…^&*$….”

         

         벌써 시끌벅적 차량 내부에 메아리치기 시작한 욕지거리와 총성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오랜만에 뽑아 든 권총의 슬라이드를 당겨 약실을 확인했다.

         

         봐라, 엔진만 껐다 뿐이지. 따로 항복한 것도 아니거늘. 이미 적들은 기차 출입문을 뚫고 들어와서 싸우고 있지 않나.

         

         도어 브리칭(Door Breaching)도 재빠르고 손속도 매운 것 같으니 그야말로 범죄자 중에서도 특급 쓰레기들 되시겠다.

         

         업보…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아무도 원흉은 지목할 수 없는 업보다.

         책임 소재를 따질 수도 없고, 추측하기에도 단서가 부족하니 저쪽에서 덤벼들 생각이 없다면 그냥 소가 닭 보듯 넘어가는 게 최선이겠지.

         

         허나 저 망할 애물단지가 어쩌다가 무사히 남아 운행기록을 전수조사 당한다면? 내가 정착지를 나오기 전에 깔끔하게 공장 초기화를 시행하긴 했어도, 거기서부터 남겨진 기록은 그대로 흘러 들어갈 게 뻔했다.

         

         꼼꼼한 인간이 대조한다면 에나마에서 쓰던 물건이라는 사실도 밝혀낼 지 몰랐고.

         

         그때야 시민권이 살 크레딧이 급해서 팔아먹자는 말에 억지로 동의.

         혼자서 싸우는데 한계가 있어서 나름 잘 써먹기도 했지만, 지금은?

         

         “제로? 저 호버크래프트, 무조건 박살내야 해.”

         

         – 타이토 갱단에게 따로 원한이라도 있으십니까? –

         

         “…아, 이것도 자세한 기억이 없나? 저거, 우리랑 ‘동향 출신’이라 이번에야말로 완전히 폐차하게.”

         

         정말 중대한 사유를 인지한 제로의 센서들이 최대 밝기로 켜졌다.

         증거 인멸만 하더라도, 아마 여태 내가 내린 지시 중에 가장 살벌한 요구라 생각하는데 그는 실수를 만회할 기회라고 여겼는지 한술 더 뜬 말을 내뱉었다.

         

         – 목격자도. 전부 제거합니까? –

                                                                                                           

         “무법자만 골라 죽여야 한다…?”

         

         ……요놈. 스캐너에 핏발 선 것 같은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 : 넌 뭐야?!
    ??? : 열받은 눈사람이다. 죽어라!

    항상 재밌게 봐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