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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4

       경(勁), 제자들은 [머슬 아츠]란 이름으로 더 자주 부르는 이 기법은 무협에서 보았던 외공에서 본떠 만든 그의 독자적인 기술이다.

       육체의 기능을 극한으로 뽑아내어 사용하는 심플함.

       심플한 힘과 속도, 튼튼한 내구력 등을 기반으로 하는 기술이었으며, 덕분에 재능이 다소 부족한 사람이라 해도 누구나 쉽게 익힐 만한 기술이다.

         

       반대로 투기법.

       이건 까다로운 기술이다.

       원리는 간단하다.

       몸속 내부에서 폭발 비스름한 것을 강제로 일으켜, 폭발적인 힘과 속도를 내뿜는 것이니까.

       신체 능력이 순식간에 5~10배가량 상승폭을 그리는 것이니, 위력적이다 못해 가공할 만한 기술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투기법을 익히는 데 있어 필요한 센스와 재능은 특별해야 한다.

         

       몸속 내부에서 폭발을 일으켜 강제적으로 신체 능력을 전반적으로 올리는 기술이란 것만 들어도 얼마나 미친 기술인지 알 수 있지 않은가?

       신체가 망가지지 않는 선에서, 그리고 폭발의 힘을 응용할 천재적인 운용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시로 따지면 F1레이서 급 판단 능력이 필요하다 보면 되었다.

         

       하여 이한은 투기법을 익힌 이들은 결코 무시하지 않는다.

       무협만 해도 내가기공을 익힌 무림인들이 대부분 최강자 소릴 듣지 않던가?

       그게 다 이유가 있음을 환생하고 깨닫게 되더라.

         

       그러나 지금.

         

       콰아아앙!!

         

       “!!?”

         

       머리로만 알고 있었지, 투기법이 왕국과 제국마저 인정하는 가장 위대한 기법임을 그는 깨닫지 못했던 것이 분명하다.

       자신은 ‘진정한 투기법’을 몰랐던 모양이고, 그런 주제에 좀 안다고 자부하며 나대고 있던 듯하다.

         

       이한은 과거의 자신이 얼마나 오만했는지를 깨달으며 이를 악물었다.

       자칫 입을 열었다간 어제 먹었던 것까지 다 게워낼 것 같은지라.

         

       ‘덤프트럭이냐고!’

         

       한 손 방패를 든 채 그를 들이박는 열세 명의 기사들이 보인다.

         

       버클러(Buckler).

       혹은 부크리예 등으로 불리는 둥근 방패는 공격을 막는 용도보단 공격하는 용도로 만들어진 형태였다.

       허나 장점 못지 않게 단점도 많아 웬만한 기사들은 잘 쓰지 않는데, 적혈수리 대부분은 버클러를 사용했으며, 이러한 방패가 그를 향해 다가올 때마다 덤프트럭 못지 않은 충돌이 연신 그를 난타했다.

         

       콰아앙!!

         

       폭발을 일으키듯 다리를 박차며 전신으로 들이박는 기사들.

       또한 열세 명이나 되는 인원이 모였기 때문일까?

       기운이 공명현상을 일으키며 아지랑이를 일으켰고, 이한은 그런 그들을 향해 똑같이 한 손 방패를 내질렀다.

         

       우연치 않게도 똑같은 버클러를 착용한 그와 기사들이었고, 이한은 전신에 경을 둘러 금강을 시전했다.

         

       후우욱-!

         

       금강불괴의 경지에 다다르잔 의미에서 붙인 기술.

         

       지금의 이한은 온몸에 갑옷을 두른 것과 마찬가지였으며, 그로 인해 사각지대란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온몸이 곧 방패이자 갑옷이며, 공격 수단이 되기도 하니까.

         

       덕분에.

         

       콰아앙!!

         

       다시금 일어나는 폭발과 같은 충격을 그는 견뎌내었다.

         

       “크허어억!”

       “크흐읍!”

       “끄윽….”

         

       반대로 견뎌내지 못한 기사들은 쓰러졌고.

         

       그냥 단번에 떨쳐나간 것이 아니었다.

       수십 번이 넘는 추돌 끝에 가까스로 저들을 떨쳐 낸 것이지.

         

       “…이것들, 진짜 죽자고 덤비네.”

         

       다만 떨쳐 내었다고 해도 그가 아무런 희생 없이 이겼다는 뜻은 아니었다.

         

       쿨럭….

         

       내부가 진탕되는 느낌이었다.

       그의 남다른 단단함과 회복력으로도 미처 해소하지 못하는 충격이 쌓이고 또 쌓인 것일 터.

         

       도중 조금만 더 부딪쳤으면 그의 금강이 먼저 깨졌을 것이라며 아찔함마저 느껴진다.

       끈기와 체력 싸움이었기에 그가 이긴 것일 뿐이지.

         

       이한은 물이라도 한 모금 마시고 싶은 유혹을 참으며 곧장 다가오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이번엔 여덟 명이냐?”

       “우리가 가장 합이 좋아서 말이오.”

       “…그러지 말고 한꺼번에 오지?”

       “허허, 그래서 우리의 힘이 부족한 것 같은가?”

       “으음, 그건 아니고.”

       “그럼 이게 맞지. 괜히 백 명이나 몰려다니면 힘만 분산되는 법일세.”

       “……하.”

         

       어느 순간부터, 아니 정확히는 창을 잘 쓰는 놈이 당한 이후부터 그들은 다 같이 달려들지 않게 되었다.

         

       열 명 혹은 두 명씩 다가오며 그에게 덤볐지.

         

       그렇다고 이게 자신을 무시하거나 저들이 오만해서 저러는가?

         

       …그건 또 아니었다.

         

       ‘더 거슬리고, 더 힘들어.’

         

       백 명을 상대할 땐 차라리 난전이란 느낌이 들었고, 도리어 상대하기가 편했다.

       아무리 훈련을 열심히 했다 한들, 진정으로 백 명이 한 사람처럼 움직일 순 없는 법이니까.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열 명, 일곱 명, 다섯 명 단위로 오는 놈들은 하나같이 합이 좋았다.

       백 명이 한꺼번에 공격하는 것보다 효율적이고도 위협적이란 뜻이다.

         

       ‘만만한 놈들이 없네.’

         

       심지어 가장 위협적인 상대는 방금 전 열세 명이 방패 기사들과 그 전에 쓰러트린 두 명의 검수들이었다.

         

       합이 맞은 기사가, 아니 달인들이 힘을 합친다는 건 야구로 따지면 투수와 포수의 궁합이 환상적인 것을 넘어 노히트 노런이나 퍼펙트게임을 해낼 정도의 기량을 선보이는 것과 같은 원리였다.

       하여 이렇게 합이 맞춰진 이들끼리 그에게 덤비는 것이 심적으로 더 지쳤으며, 힘겹기도 했다.

       그렇기에 깨닫는다.

         

       이것이 진정으로 기사와, 아니 기사단과 결투를 한다는 것임을.

         

       이제부터가 진정한 시련이란 생각과 함께 이한은 묻은 먼지와 피 섞인 침을 뱉어냈다.

         

       하면서 드는 의문은.

         

       “괴한을 상대로 너무 고상하지 않냐? 뭐 이리 전력을 다하지?”

       “허허, 지금 우리 중 그대를 단순히 괴한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겠소?”

       “-괴한 맞지 않나?.”

       “제온 경과 그런 대화를 나눴는데, 우리가 그대를 한낱 괴한이라 경시할 리 없잖소.”

       “……왜?”

         

       이한은 진심으로 의문이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보다 제온은 또 누구야?

         

       허나 그런 자신의 반응에.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도 모르고 행동했다, 라…. 하! 더욱 기사의 투지를 건드리는구려! 좋소, 서로의 명예를 걸고 붙어 봅시다, 우리도!”

       “……미치겠네.”

         

       눈가에서 열화를 토해내듯 열정을 뿜어내는 기사였고, 이한은 이것들이 단체라도 약이라도 먹었나 싶었다.

         

       “-됐다, 다 쓰러트리다 보면 결론이 나겠지, 뭐.”

         

       그래도, 그가 해야 할 일은 변함이 없기에 이한은 부러진 도끼와 갑옷을 던져 버리며 묵묵히 검을 들었다.

         

       앞으로 60명만 더 이기면 된다는 긍정적인 마인드와 함께.

         

       *

       *

       *

         

       콰아아아!!

         

       콰직! 콰지직-!

         

       “…….”

         

       트리스탄의 정예병들은 감히 저 대결에 끼어들 수 없었다.

       괴한이 습격한 상황이다.

       상식적으로 기사단을 엄호하며 저 괴한을 물리쳐야 하는 게 옳다.

         

       이를 머리로는 알고 있다.

       한데도 끼어들 수가 없었다.

         

       이유?

         

       다름이 아니라.

         

       “다, 다가가면 죽는다….”

       “…꿀꺽.”

         

       …저기 끼어드는 순간 말 그대로 태풍에 휘말리듯 찢어발겨질 것 같아서.

         

       병사들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갔다.

       저들이 자신들처럼 피륙으로 이루어진 인간으로 보이지가 않았다.

       어찌 사람이 저리 움직일 수 있단 말인가?

         

       저들에게 중력의 작용 같은 것이 없단 말인가.

         

       “초, 초인….”

         

       어느 병사의 중얼거림이었다.

         

       그래, 기사들의 결투를 보는 게 처음은 아니다.

       그들도 나름 트리스탄에서 오래 일한 병사들이니까, 가끔 대련을 볼 때가 있다.

       한데 지금은 다르다.

         

       쿠웅!

         

       발이 땅을 디딜 때마다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땅이 부서진다.

         

       콰르릉!

         

       검이 휘둘러지고, 몸이 충돌할 때마다 벼락이 치는 소리가 울린다.

       뭔가? 저게 인간끼리 부딪치면 생기는 소리란 말인가?

         

       과거 어느 음유시인이 읊어 준 ‘영웅 설화’의 내용이 떠오른다.

         

       – [기사의 움직임은 바람과 같으며, 기사의 검격은 벼락이 내려치는 것과 같으니, 하여 그들은 일기당천의 초인이다.]

         

       그냥 애들 코 묻은 돈이나 뺏자고 아무렇게나 읊어대는 동화의 내용인 줄 알았다.

       그런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알겠다.

         

       저게 기사구나.

         

       기사들이란 진정으로 바람이 되기도 하고, 벼락이 되기도 하는 초인이 맞구나 하고.

         

       다만.

         

       “─아니지, 진짜 초인들이었다면 저렇지 않지. 이미 후작가는 초토화되고도 남았을 거다, 허허.”

         

       “!!?”

         

       자신들의 오해를 정정해주는 노기사가 있었음이다.

         

       병사들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들의 곁에 다가온 그들의 주인을 확인하자마자 곧장 군례를….

         

       “아아, 됐네. 이런 상황에서까지 예의를 안 차려도 되네. 그저 홀로 구경하려고 있으니 청승맞아 여기까지 온 것이니, 보던 거나 계속 같이 보세나.”

       “가, 각하?”

       “좋구나, 좋아. 아무렴, 그래…! 이것이 결투지!”

       “…….”

       “내 차례까지 와야 할 텐데, 이거 참! 애도 아니고, 초조해서 미칠 것 같군…!”

         

       오싹….

         

       병사들은 서늘한 공포를 느꼈다.

       그들이 모시는 주군.

       제니미아 각하의 눈이 붉게 충혈 된 것이, 마치 배고픔을 호소하는 맹수가 아닌가 싶었다.

       허나 허기짐이 느껴질 뿐만 아니라, 그는 감동을 먹은 것 같기도 했다.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법을 잊었던 독수리가 자신에게 날개가 있음을 기억해내고, 창공을 훨훨 날아다닐 준비를 끝낸 듯이.

         

       그리고 마냥 이것이 착각이 아니란 것처럼.

         

       꽈드득!

         

       그의 손에 잡힌 활이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지금 당장 화살을 쏘고 싶은 것처럼.

         

       제니미아 후작.

         

       그는 자신의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리며 안달이 난 상태였다.

         

       …저의 기사들이 패배하는 것조차 흥겨워하면서.

         

       그렇게.

         

         

       콰아아아!

         

       후작의 기대감을 충족시키듯, 그의 순서가 다가오고 있었다.

         

       * * *

         

       챙그랑!

         

       “…….”

         

       이한은 반 토막이 난 검을 보았다.

       50명 정도를 쓰러트렸을 때부터 불길한 소리가 나더라니, 기꺼이 내구성이 다 된 모양이다.

         

       금강을 익히고 난 이후로, 검이 쪼개진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허나 이한은 별 미련을 갖지 않은 채, 검을 던져 버리곤 품 안에 손을 넣어 손도끼를 꺼냈다.

         

       “붉은 독수리의 카를 드 메츠다. 서열은, 적당히 이십 위라고 해 두지.”

       “이한이다.”

         

       …이 대화도 대체 몇 번이나 한 것인지 이제는 잘 기억이 안 난다.

         

       언제부터인가 기사들은 제 이름을 대었고, 이한도 관성적으로 이름을 대었다.

         

       뭐, 이름을 다 기억하진 못한다.

       몇몇은 기억하는데, 도중 드문드문 의식이 꺼질 뻔한 적이 있어 까먹은 것이리라.

       허나 이름이나 대화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아도 상대방이 무슨 기술을 쓰고, 무슨 병기를 썼는지 기억은 난다.

         

       머리가 아닌 몸이 기억하기에.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후욱!

         

       품을 파고드는 검과 손도끼가 빛살이 되어 부딪쳤고, 상대방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이한은 그 틈을 놓치지 않으며 곧장 놈의 품에 파고들어 박차기를 가했다.

         

       궁신탄영의 보법.

         

       상대가 피할 틈도 없는 일격이 아닐 수 없다.

         

       허나 아무리 그래도 투구를 쓴 상대에게 박치기를 가하다니….

       이만한 미련한 짓도 없었고, 본인의 두개골이 깨지는 게 아닐까 싶었으나.

         

       “……자네, 두개골이 무슨 강철로 만들어졌나?”

       “그 투구, 아무래도 낡은 것 같은데 새 걸로 바꿔.”

       “미, …미친놈.”

         

       털썩.

         

       깨진 건 투구였고, 이긴 건 이한의 머리였다.

         

       “…아프네.”

         

       투구랑 헤딩을 하면 안 된다는 배움을 얻으며 그는 정신이 확 깼다.

         

       도중 의식이 꺼질 뻔했다.

         

       “후우….”

         

       “이마에서 피가 흐른다만.”

         

       “알고 있다. 그보다 넌 몇 번째냐? 왜 혼자서 와.”

         

       “합을 맞추고 싶긴 하지만, 안타깝게도 더는 합을 맞출 동료가 없군.”

         

       “왜?”

         

       “주위를 보게.”

         

       “……아.”

         

       상대가 주위로 시선을 돌리라 조언을 따르고 나서야 보았다.

         

       한 명을 제외한 채, 다른 이들은 쓰러져 있음을.

         

       적혈수리.

       무수한 전설을 가진 기사단이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으며, 이한만이 홀로 서 있었으니.

         

       “축하한다. 넌 실질적으로 적혈수리 전부를 꺾은 거다.”

         

       스릉.

         

       “다만, 우리가 완전 패배하는 것만큼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막아야겠지.”

         

       결투도 중요하지만, 그 결투만큼이나 승리도 중요한 법.

         

       베일, 그가 투기를 내뿜으며 심상치 않은 ‘검울림’을 선보였다.

         

       우웅!

         

       검명.

       검을 뽑는 순간 자연스럽게 검명을 일으킨다.

       이한은 놈의 검울림을 보자마자 깨달았다.

         

       이놈은 앞서 상대한 녀석들 중 첫 손가락 안에 들 녀석이라고.

         

       “베일 드 트리스탄이다. 과분하게도 적혈수리 기사단의 부단장 직을 맡고 있지.”

       “트리스탄?”

       “방계다. 하나 미리 변명을 하자면, 핏줄의 힘으로 부단장이 된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군.”

       “알아. 딱 봐도 지금까지 상대했던 녀석들 중 가장 세 보이는구먼.”

       “…하아, 노력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정말 오랜만인데….”

         

       베일은 지금 이 순간, 단순히 방계란 이유로 느꼈던 자격지심을 모두 날려버렸다.

         

       눈앞에 선 기사는 단순히 그를 방계로 보지 않고, 오로지 쓰러트려야 할 맞수로 보고 있다.

         

       강해지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이 보답 받는 것만 같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하여 아쉽다!

         

       “멀쩡할 때 싸웠어야 했거늘.”

       “지금도 멀쩡하다만?”

       “그 꼴이?”

       “…크흠.”

         

       그의 말대로 이한의 몰골은 처참했다.

         

       아흔아홉 명의 독수리들은 쓰러질지언정 결코 그냥 쓰러지지 않았다.

         

       어느 이는 자상을 입혔고.

       또 어떤 이는 그의 턱을 때렸으며.

       또 어떤 이는 동료를 위해 그의 움직임을 막았고, 기어이 칼침마저 새겨졌다.

         

       하여 이한의 몰골은 혈인(血人)과 다를 바 없었다.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단 뜻이다.

         

       하여 베일은 자신의 차례가 마지막인 것이 굴욕적이었다.

         

       차라리 가장 먼저 나섰어야 했거늘, 다른 이들이 그를 계속 뒤로 미뤄대니, 원.

         

       “부단장이라며? 그럼 직위로 밀고 나가지 그랬냐.”

       “부단장이라도 나보다 다들 선배다.”

       “아, 그럼 그럴 수 있지.”

         

       직위보다 짬이 더 우위였던 군대를 겪은 그는 베일을 이해했다.

         

       이한은 수긍하며.

         

       “됐고, 칼이나 들어.”

       “좀 더 쉬지 않고?”

         

       일부러 쉬게 하려고 대화를 걸었건만, 베일은 미간을 찌푸리려는 찰나.

         

       “널 무시하는 건 아니고, 지금 쉬면 더는 못 움직일 것 같거든.”

       “……그래, 상처를 입었을지언정 사자는 사자인가.”

         

       우우웅.

         

       베일의 검이 요동쳤다.

       지금까지와는 비교조차 안 되는 검의 울림.

       검명에도 경지가 있음을 보여주는 걸까?

         

       기사단의 후배인 요르드나 회귀자 녀석이 보인 검명과도 다르다.

         

       사아아악!

         

       검기인가?

       아니다, 검기와 다르다.

       검명 자체가 가진 힘을 마치 실로 뽑아낸 것만 같았다.

         

       그래, 마치 이한의 검화(劍花)처럼 검이 가진 기운만을 운용한 것이다.

         

       검사(劍絲).

         

       서걱!

         

       검이 뿜어낸 실 가닥은 바위를 가르는 절삭력을 보였다.

         

       “…멋진데?”

       “위력은 더욱 멋질 거다.”

         

       사악!!

         

       많은 대화는 필요 없었다.

         

       베일의 검사가 덮쳐왔고, 이한은 곧장 대응하듯 몸을 허공에 띄웠다.

         

       허공답보.

         

       빠른 승부수를 띄우기 위한 이한의 한 수였다.

         

       “그건 이미 봤다!”

         

       다만 이미 한 번 보인 기술을 예측하지 못하랴.

       이한의 금강이 사각이란 게 없듯이, 베일의 검사 또한 사각은 없었다.

         

       그가 [트리스탄의 올빼미]라 불린 이유는, 그의 공격에는 범위란 게 없기 때문이었다.

       공중전조차 그가 자유롭게 뛰어놀 무대에 불과할 뿐.

         

       검사의 칼날이 매섭게 용솟음치며 공중으로 뛰어오른 이한을 끈질기게 노렸다.

         

       단숨에 먹잇감을 낚아채는, 말 그대로 매마저도 사냥하여 먹어 치우는 올빼미마냥.

         

       허나 이한은 그런 검사를 향해.

         

       타악!!

         

       거침없이 허공을 박차며 돌진했다.

         

       “무슨!?”

         

       검사를 향해 돌진하는 행위는 자살과 다름없다.

       승부를 포기한 것인가?

         

       ‘아니다!’

         

       베일은 이한을 이미 인정했기에 그가 승리를 포기하여 자포자기하듯 돌진하는 것이 아님을 믿었다.

       무언가 수단이 있기에 저토록 전력으로 돌진하는 것일 테지.

         

       이를 알기에 베일은.

         

       ‘벤다!!’

         

       무슨 계략이 있을지언정 절대 벗어날 수 없는 검의 그물을 펼쳐냈다.

         

       이름 붙이길 [하늘의 그물].

         

       땅이고 하늘이고 벗어날 방도가 없는 칼날의 그물이리라.

         

       “천라지망이냐고…!”

         

       이한은 어이가 없었다.

         

       마지막에 뭐 이런 놈이 다 나오는가 싶어서.

         

       이건 진짜 자칫 잘못하면 전신이 난도질당할 판이었다.

         

       그래도.

         

       ‘어쩌라고-!’

         

       이한은 난도질을 당하건 말건 상관하지 않겠다는 듯이 온몸을 회전했다.

         

       놈이 펼쳐낸 것이 천라지망이라면, 자신이 펼쳐낼 건.

         

       “뭐!?”

         

       도가의 전설, 신선들의 고향 곤륜.

       그러한 곤륜의 후예들이 구름 사이로 노니는 용의 움직임을 보고 만들었다는 무공.

         

         

       – 운룡대팔식(雲龍大八式).

         

         

       다만 이는 그의 재해석이 들어간 운룡대팔식이다.

       무협에선 이를 신법으로 분류했다면, 이한의 운룡대팔식은 공중에서 떨어지며 생기는 회전력과 돌파력을 한없이 폭증시킨 수단이니까.

         

       전날 그가 썼던 관일창을 온몸으로 재현하는 것이었고, 기어이 그의 운룡대팔식은.

         

       콰득!

         

       하늘의 그물이건 뭐건 찢어발기는 위력을 발휘했다.

         

       “……이거야, 원. 그런 건 대체 어디에서 배우는 건가?”

         

       베일은 제 기술이 깨지는 것을 보며 저도 모르게 되물었다.

       기술이 깨진 것에 대한 허망함보다 저런 기술은 대체 어디에서 배우나 싶어서.

         

       “있어, 낭만과 협객이 가득한 도서가.”

       “혀, 협객은 또 뭔, …가.”

         

       쿠웅!

         

       베일은 뒤로 뒤집어졌다.

         

       피할 새도 없이 이한의 무릎이 정확히 그의 배 정중앙을 타격하며 그대로 쓰러진 것이다.

         

       “…….”

         

       후우…! 후우우….

         

       이한은 거칠게 숨을 들썩였다.

         

       마지막까지 방심할 틈도 없는 강자를 꺾었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 그리고 운이 좋았음을 인식한다.

         

       ‘생소한 기술이라 먹힌 거지, 그런 게 아니었으면 내가 도리어 먹혔다.’

         

       고집스럽게 운룡팔대식을 연습한 시간이 보답 받았음을 느끼는 순간이었고, 이한은 이 순간 실존하는지도 알 수 없는 곤륜파에게 감사했다.

         

       덕분에 이겼다.

         

       ……물론.

         

       “후우,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나?”

       “아닐세. 더할 나위 없이 보람차고도, 흥분되는 시간이었네. 대체 내 차례는 언제일지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를 거야, 허허!”

       “…내가 할 말은 아니긴 한데, 당신 부하들이지 않나?”

       “다들 만족했을 게야. 아무렴, 이만한 결투를 경험할 일이 어디 있을까? 패배하긴 했지만, 돈으로도 매길 수 없는 값진 시간이 아닐 수 없을 테지.”

       “으음…, 원래 대귀족이란 양반들은 다 괴짜밖에 없나?”

         

       대공이나 공작이나, 그리고 왕녀나…, 하나 같이 생각의 발상이나 가치관이 특이한 인간들밖에 없다.

         

       원래 권력자일수록 괴짜밖에 없는 것인가?

         

       헛웃음을 짓는 그였으나, 후작은 개의치 않았다.

       그저 흥분한 기색을 엿보이며 활을 들 따름이었지.

         

       쿵!

         

       거대한 활이 바닥을 찍으며 파열음을 낸다.

       활이 대체 얼마나 무거울지 가늠이 안 가는 바.

         

       저게 당겨지기나 할까 의심이 되었으나.

         

       촤아악!

         

       후작은 몸소 시범을 보여주듯 활시위를 당겼다.

         

       고오오오-!

         

       분명 화살은 없었다.

       한데 그가 활시위를 당기는 순간 와류가 형성되었고, 바람으로 이루어진 화살이, 아니 탄환이 그를 노리는 듯했다.

         

       일촉즉발의 순간, 여전히 웃는 낯인 후작이 말하였다.

         

       “아, 조금 전 보고 받아 안 것이지만, 미리 사과하지. 조금 변명을 하자면 자네 제자에게 매파를 보낸 건 본의가 아니었네. 수하 녀석들이 멋대로 일을 벌였더군.”

       “알아. 그다지 책망할 일도 아니고. 도리어 내가 이런 짓을 하는 건 선을 넘는 짓인 것도 알고 있고.”

       “…하면 왜 이렇게까지 한 건가?”

       “시위하려고.”

       “시위?”

       “우리 애를 데리고 가는 건 막지 않을 테지만, 만만하게 보지 말란 걸 보여주는 거지. 걔 뒤에도 만만치 않은 뒷배가 있단 걸 알려주고 싶었거든.”

       “…그걸 위해서 이렇게까지 한 건가?”

       “왜, 대귀족에게 너무 보잘 것 없는 이유라 실망했나?”

       “……아니, 실망할 리가 있나. 되려…!”

         

         

       ─황홀할 정도로 멋진 이유군!

         

         

       후작은 감동했다.

         

       존경했던 선왕의 시대가 끝나고 지루하기만 했던 삶.

       50세를 넘기고, 기력이 떨어지며 하루하루 늙어만 가던 노기사의 삶에 이토록 가슴 뛰는 자극을 주다니!

         

       고마워서 눈물마저 날 정도인데, 단순히 제 제자가 아무런 값어치가 없는 아이가 아님을 알려주기 위해 이렇게까지 했단다.

         

       트리스탄조차 감히 함부로 할 수 없는 아이임을 보여주기 위해서!

         

       “레이디를 위해서라, 요즘 젊은 기사들이 본받아야 할 자세가 아니겠는가, 반할 것 같군, 자네.”

       “…사양하지, 곱상한 아저씨.”

       “젊은이가 예의가 없구먼, 어허허허!!”

         

       파아아앙!!

         

       후작은 유쾌하게 웃으며 활시위를 놓았다.

         

         

       후작이, 트리스탄이 너를 인정한다는 메시지처럼.

         

       

       ─과격하기 그지없는 방식이었지만.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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