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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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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그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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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대 밖으로 다리를 뺀 후 다급히 피아의 어깨를 붙잡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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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야 왜 그래? 어디 아파?”
    “흐으,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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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는 얼굴을 새빨갛게 붉힌 채, 뭐에 홀린 사람처럼 멍한 얼굴로 내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그런 피아의 어깨를 가볍게 흔들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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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 적이라도 들어온 거야? 흑마법에 당했다거나… 안되겠다. 다른 사람을 불러야겠어.”
    “네, 제가 불러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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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는 멍하니 내 말을 듣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잡을 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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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어!? 자, 잠깐만 피아야! 혼자가지 말고 같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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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뒤늦게 피아의 뒤를 따라가고자 침대에서 내려와 문 쪽으로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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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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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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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목과 연결된 사슬이 딱 문 앞에서 팽팽해졌다. 생각보다 긴 길이이긴 했지만, 방에서 빠져나갈 순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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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가 마법에 당하기라도 한 상태라면 위험한 상황일지도 몰라. 역시 발목을 잘라서라도 족쇄를 빼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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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 결론 내린 후 가르간도아를 불러냈다. 평소와 달리 별 임팩트 없이 소환된 마검은 다급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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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트너! 괜찮나?! ]
    ‘어어, 괜찮아.’
    [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내가 역소환이 된 거지? 파트너가 기절한다고 해서 역소환될 리 없을 텐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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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검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을 때, 난 욕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욕실이라면 피가 튀어도 정리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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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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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시 그때 사라져버린 놈들이 무슨 짓을 한 게 분명하다. 흑마법을 걸었거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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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검의 중얼거림을 대충 흘려들으며 욕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족쇄와 연결된 사슬의 길이가 길어 어렵지 않게 욕실 안으로 들어갈 순 있었지만, 문이 닫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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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쪽에 놓인 접이식 의자를 가져와 욕실 안쪽에 펴놓은 후 그 위에 앉았다. 족쇄가 채워져 있는 다리를 반대쪽 다리 위에 올린 후 마검을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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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앞으로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으니 제대로 대비를 해둬야… 응? 파트너 그 족쇄는 뭔가? ]
    ‘애들이 걱정된다고 채워놓은 건데. 불편해서 빼려고.’
    [ 훗, 나 정도 되는 마검이라면 이 정도 쇳덩이는 순식간에 반으로 갈라버릴 수 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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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말에 머리에 벼락이 내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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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깐만, 발목이 아니라 족쇄를 부수면 해결될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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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으로 ‘유레카!’를 외치며 마검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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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네가 직접 자를래?”
    [ 좋다! 잘 봐라 내 실력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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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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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의 주도권을 넘겨받은 마검은 가볍게 검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실용적이기보단 멋에 잔뜩 치중된 손짓이 발목을 스쳐 지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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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드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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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쁘게 조각난 족쇄가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비현실적인 장면에 입을 헤 벌린 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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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 대단하다.”
    [ 흐흐흐,후흐흐… 더, 더 이 몸의 위대함을 칭송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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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아지를 칭찬해주듯 손뼉까지 치며 “잘했다. 잘했다.”를 외쳐주자 마검이 잔뜩 신이 나선 검신을 부르르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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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후 조각난 족쇄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발목을 빙글빙글 돌렸다. 가볍게 채워져 있었다고는 하나 쇠로 이루어진 묵직한 족쇄를 차고 있었던 탓에, 발목이 살짝 부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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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을 때마다 은은하게 아프긴 했지만, 바닥에 주저앉을 정도는 아니었다. 샤워기로 발목에 찬물을 촤악하고 뿌려준 후 욕실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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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뒤 따라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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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은 곧바로 문 쪽으로 향했다. 막 입구에 가까워졌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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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 오빠가요?”
   “응, 꼭 불러오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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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릴리와 피아의 목소리가 문밖에서 말하고 있음에도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 만큼 거리가 가깝다는 증거였다. 내 시선이 아래쪽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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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헉, 족쇄 풀린 거 보면 분명 다시 채우려고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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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엄청난 속도로 침대로 달려가 다이빙했다. 이불 안으로 쏙 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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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똑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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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손에 쥐고 있던 마검을 빠르게 역소환한 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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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어, 누구야?”
    “오빠 나 릴리인데. 들어가도 될까?”
    “응, 들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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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허락이 떨어지자 곧바로 문이 열리고 피아와 릴리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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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빠 어디 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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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 게 아파서라고 생각했는지 릴리가 후다닥 침대 옆으로 다가왔다. 나는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이불을 끌어 내린 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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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냐, 아픈 데 없어. 그냥 이불이 포근해서 누워있던 거 뿐이야.”
    “정말? 진짜 아픈 데 없어?”
    “없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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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체를 일으켜 앉은 채 두 손을 들어 보이자 릴리가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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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다행이고. 혹시 어디 아픈 데 있으면 바로 얘기해 줘야 해.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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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거리자 릴리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갈무리하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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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나는 왜 부른 거야?”
   “아,그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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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래도 피아가 이상한 것 같아.’라는 말을 입에 담으려는 순간, 릴리의 소매에 묻은 얼룩이 시야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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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릴리 너 옷에 그거…”
    “응?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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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릴리의 시선이 나를 따라서 소매 쪽으로 향했다. 베이지색 셔츠에 붉은 얼룩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릴리가 당황한 얼굴로 몸을 옆으로 틀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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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아, 별거 아니야. 아까 뭐가 묻었는데. 그거 때문인가 봐.”
    “정말이야?”
    “당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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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릴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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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짓말입니다.”
    “어?”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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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있는 듯 없는 듯 숨죽인 채 서 있던 피아가 훅 다가와 릴리의 손목을 덥석 붙잡았다. 그리고는 팔꿈치 아래까지 내려오는 소매를 위로 들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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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앗! 어,언니?!”
    “뭐가 묻은 게 아니라 상처에서 새어 나온 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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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는 ‘저 잘했죠?’라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피로 젖은 거즈를 보여주었다. 릴리가 다급히 피아를 밀어낸 후 소매를 내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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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정말 별거 아니야. 그냥 모서리 같은데 긁힌 거뿐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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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릴리는 말을 잇다 말고 입술을 꾹 다물었다. 나는 그런 릴리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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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크 판타지 세계의 주민들은 상처가 심해지면 죽을 거야. 개그 세계의 주민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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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릴리가 마치 불치병에 걸린 사람처럼 보였다. 
    ​
    ​
    “내가 누워있을 게 아니라 릴리가 누워있어야지! 어서 이리와! 빨리 누워!”
    “어? 어어?”
    ​
    ​
    나는 릴리를 잡아끌어 침대에 눕혔다. 반대로 나는 침대에서 내려가 릴리의 목 끝까지 이불을 덮어주었다. 릴리가 당황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다행히 내 발목에 족쇄가 없다는 걸 알아차리진 못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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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나가서 의사… 아니, 치료사 불러올게.”
   “내가 치료사인데..?”
    “다른 사람은 없어?”
    “있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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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릴리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했는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기 바빴다. 그때 옆에 서 있던 피아가 나에게 훅 다가오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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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아, 역시 리안님…”
   “으응?”
    “고통에 몸부림치는 이를 두고보지 못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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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는 무어라 알 수 없는 말을 빠르게 중얼거리더니, 갑자기 내 앞에 무릎을 꿇어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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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도, 저도 당신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언, 언니 왜그래?”
    “릴리 네가 보기에도 피아가 이상해 보이지? 혹시 마법에 당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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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릴리보다 더 상태가 나빠 보이는 피아의 모습에 다급히 질문을 던지자, 릴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침대에서 내려오려 했다. 나는 손을 들어 릴리가 내려오는 걸 막은 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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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무래도 둘 다 누워있는 게 좋겠다. 릴리, 피아를 같이 눕혀도 괜찮을까?”
    “오빠 나는 괜찮아. 그러니까 피아 언니만 눕히자.”
   “무슨 소리야! 팔에서 피가 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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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릴리가 입술을 꾹 다문 채 나를 지그시 바라보기 시작했다. 가늘게 떠진 눈동자엔 무언가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다. 본능적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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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피아부터 눕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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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무릎을 굽히고 피아의 어깨를 붙잡은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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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아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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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손등이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
    ​
    “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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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은하게 금빛을 띠는 새하얀 빛이 방 안의 어둠을 전부 몰아낼 것처럼 빛을 뿜어냈다. 눈부시지만 눈이 아프지 않은 밝음에 멍한 얼굴로 손등을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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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아! 신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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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나 당황했는지, 피아가 무어라 말을 했는지 인지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환하게 빛나던 빛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차츰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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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간 방 안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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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뭐야 이게?”
    “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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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왼쪽 손등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리자, 옆에서 헛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침대에서 내려온 릴리가 내 왼쪽 손등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피아는 어느새 땅바닥에 머리를 박고 무어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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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워낙 정신이 없어 피아를 일으켜주지도 못한 채 손등에 새겨진 인장을 바라보았다. 가운데 깃털 문양을 중심으로 아름다운 식물이 줄기를 뻗은 것처럼 기하학적인 문양이 손등에 새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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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하얀 줄기는 손등뿐만이 아니라 손목까지 이어져 있었다. 마치 내 손에 새하얀 식물이 뿌리를 내린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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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건 분명… 다크 판타지 세계의 신이 인장을 새겨줬던 곳인데?’
    ​
    ​
    딱 봐도 신성해 보이는 문양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니, 무언가 알 수 없는 정보가 머리에 밀려들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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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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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작게 탄성을 내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릴리를 바라보았다. 릴리는 얼마나 당황한 건지 입술을 벙긋거리며 제대로 말을 꺼내지도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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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그런 릴리에게 다가가 다친 팔 쪽에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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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명 이렇게 쓰는 게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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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확신을 가지고 왼쪽 손등에 의식을 집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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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아아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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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그라들었던 황홀한 빛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따스한 품을 떠올리게 만드는 안온한 기운이 릴리의 팔을 쓸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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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자 상처가 씻은 듯이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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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오늘도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되세요! :3

가르간도아 : 왼손에는 빛의 힘을 오른손에는 어둠의 힘을 다루다니… 크흑, 좋지만..싫다! 빛의 힘은 싫어! 하지만…그래도…(끙끙)

피아의 이름은 그대로 유지하겠습니다!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잘그락.

침대 밖으로 다리를 뺀 후 다급히 피아의 어깨를 붙잡아 일으켰다.

“피아야 왜 그래? 어디 아파?”

“흐으,흐…”

피아는 얼굴을 새빨갛게 붉힌 채, 뭐에 홀린 사람처럼 멍한 얼굴로 내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그런 피아의 어깨를 가볍게 흔들며 말했다.

“혹시 적이라도 들어온 거야? 흑마법에 당했다거나… 안되겠다. 다른 사람을 불러야겠어.”

“네, 제가 불러오겠습니다.”

피아는 멍하니 내 말을 듣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잡을 새도 없었다.

“어어!? 자, 잠깐만 피아야! 혼자가지 말고 같이가!”

나는 뒤늦게 피아의 뒤를 따라가고자 침대에서 내려와 문 쪽으로 뛰어갔다.

철컹!

“아..”

발목과 연결된 사슬이 딱 문 앞에서 팽팽해졌다. 생각보다 긴 길이이긴 했지만, 방에서 빠져나갈 순 없어 보였다.

‘피아가 마법에 당하기라도 한 상태라면 위험한 상황일지도 몰라. 역시 발목을 잘라서라도 족쇄를 빼내자.’

그리 결론 내린 후 가르간도아를 불러냈다. 평소와 달리 별 임팩트 없이 소환된 마검은 다급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 파트너! 괜찮나?! ]

‘어어, 괜찮아.’

[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내가 역소환이 된 거지? 파트너가 기절한다고 해서 역소환될 리 없을 텐데… ]

마검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을 때, 난 욕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욕실이라면 피가 튀어도 정리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달칵.

[ 역시 그때 사라져버린 놈들이 무슨 짓을 한 게 분명하다. 흑마법을 걸었거나 -… ]

마검의 중얼거림을 대충 흘려들으며 욕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족쇄와 연결된 사슬의 길이가 길어 어렵지 않게 욕실 안으로 들어갈 순 있었지만, 문이 닫히지 않았다.

한쪽에 놓인 접이식 의자를 가져와 욕실 안쪽에 펴놓은 후 그 위에 앉았다. 족쇄가 채워져 있는 다리를 반대쪽 다리 위에 올린 후 마검을 들어 올렸다.

[ 앞으로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으니 제대로 대비를 해둬야… 응? 파트너 그 족쇄는 뭔가? ]

‘애들이 걱정된다고 채워놓은 건데. 불편해서 빼려고.’

[ 훗, 나 정도 되는 마검이라면 이 정도 쇳덩이는 순식간에 반으로 갈라버릴 수 있지. ]

그 말에 머리에 벼락이 내리쳤다.

‘…잠깐만, 발목이 아니라 족쇄를 부수면 해결될 일 아닌가?’

속으로 ‘유레카!’를 외치며 마검에게 말했다.

“그럼 네가 직접 자를래?”

[ 좋다! 잘 봐라 내 실력을! ]

스릉.

몸의 주도권을 넘겨받은 마검은 가볍게 검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실용적이기보단 멋에 잔뜩 치중된 손짓이 발목을 스쳐 지나가자.

후드드득.

예쁘게 조각난 족쇄가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비현실적인 장면에 입을 헤 벌린 채 말했다.

“진짜 대단하다.”

[ 흐흐흐,후흐흐… 더, 더 이 몸의 위대함을 칭송해라! ]

강아지를 칭찬해주듯 손뼉까지 치며 “잘했다. 잘했다.”를 외쳐주자 마검이 잔뜩 신이 나선 검신을 부르르 떨었다.

이후 조각난 족쇄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발목을 빙글빙글 돌렸다. 가볍게 채워져 있었다고는 하나 쇠로 이루어진 묵직한 족쇄를 차고 있었던 탓에, 발목이 살짝 부어있었다.

걸을 때마다 은은하게 아프긴 했지만, 바닥에 주저앉을 정도는 아니었다. 샤워기로 발목에 찬물을 촤악하고 뿌려준 후 욕실을 빠져나왔다.

‘이제 뒤 따라가 보자.’

리안은 곧바로 문 쪽으로 향했다. 막 입구에 가까워졌을 때.

“리안 오빠가요?”

“응, 꼭 불러오래.”

“…!”

릴리와 피아의 목소리가 문밖에서 말하고 있음에도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 만큼 거리가 가깝다는 증거였다. 내 시선이 아래쪽을 향했다.

‘헉, 족쇄 풀린 거 보면 분명 다시 채우려고 할 거야!’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엄청난 속도로 침대로 달려가 다이빙했다. 이불 안으로 쏙 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손에 쥐고 있던 마검을 빠르게 역소환한 후 말했다.

“어어, 누구야?”

“오빠 나 릴리인데. 들어가도 될까?”

“응, 들어와.”

내 허락이 떨어지자 곧바로 문이 열리고 피아와 릴리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오빠 어디 아파?!”

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 게 아파서라고 생각했는지 릴리가 후다닥 침대 옆으로 다가왔다. 나는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이불을 끌어 내린 후 말했다.

“아냐, 아픈 데 없어. 그냥 이불이 포근해서 누워있던 거 뿐이야.”

“정말? 진짜 아픈 데 없어?”

“없어, 없어.”

상체를 일으켜 앉은 채 두 손을 들어 보이자 릴리가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그럼 다행이고. 혹시 어디 아픈 데 있으면 바로 얘기해 줘야 해. 알겠지?”

내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거리자 릴리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갈무리하며 말했다.

“그런데 나는 왜 부른 거야?”

“아,그게…”

‘아무래도 피아가 이상한 것 같아.’라는 말을 입에 담으려는 순간, 릴리의 소매에 묻은 얼룩이 시야에 들어왔다.

“릴리 너 옷에 그거…”

“응? 아…”

릴리의 시선이 나를 따라서 소매 쪽으로 향했다. 베이지색 셔츠에 붉은 얼룩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릴리가 당황한 얼굴로 몸을 옆으로 틀며 말했다.

“아아, 별거 아니야. 아까 뭐가 묻었는데. 그거 때문인가 봐.”

“정말이야?”

“당연 -..”

릴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거짓말입니다.”

“어?”

“응?”

있는 듯 없는 듯 숨죽인 채 서 있던 피아가 훅 다가와 릴리의 손목을 덥석 붙잡았다. 그리고는 팔꿈치 아래까지 내려오는 소매를 위로 들쳐버렸다.

“아앗! 어,언니?!”

“뭐가 묻은 게 아니라 상처에서 새어 나온 피입니다.”

피아는 ‘저 잘했죠?’라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피로 젖은 거즈를 보여주었다. 릴리가 다급히 피아를 밀어낸 후 소매를 내려버렸다.

“저, 정말 별거 아니야. 그냥 모서리 같은데 긁힌 거뿐이라…”

릴리는 말을 잇다 말고 입술을 꾹 다물었다. 나는 그런 릴리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다크 판타지 세계의 주민들은 상처가 심해지면 죽을 거야. 개그 세계의 주민이 아니니까.’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릴리가 마치 불치병에 걸린 사람처럼 보였다.

“내가 누워있을 게 아니라 릴리가 누워있어야지! 어서 이리와! 빨리 누워!”

“어? 어어?”

나는 릴리를 잡아끌어 침대에 눕혔다. 반대로 나는 침대에서 내려가 릴리의 목 끝까지 이불을 덮어주었다. 릴리가 당황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다행히 내 발목에 족쇄가 없다는 걸 알아차리진 못한 것 같았다.

“내가 나가서 의사… 아니, 치료사 불러올게.”

“내가 치료사인데..?”

“다른 사람은 없어?”

“있긴 한데…”

릴리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했는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기 바빴다. 그때 옆에 서 있던 피아가 나에게 훅 다가오며 말했다.

“아아, 역시 리안님…”

“으응?”

“고통에 몸부림치는 이를 두고보지 못하시고…”

피아는 무어라 알 수 없는 말을 빠르게 중얼거리더니, 갑자기 내 앞에 무릎을 꿇어 앉았다.

“저도, 저도 당신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언, 언니 왜그래?”

“릴리 네가 보기에도 피아가 이상해 보이지? 혹시 마법에 당한 게 아닐까?”

릴리보다 더 상태가 나빠 보이는 피아의 모습에 다급히 질문을 던지자, 릴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침대에서 내려오려 했다. 나는 손을 들어 릴리가 내려오는 걸 막은 후 말했다.

“아무래도 둘 다 누워있는 게 좋겠다. 릴리, 피아를 같이 눕혀도 괜찮을까?”

“오빠 나는 괜찮아. 그러니까 피아 언니만 눕히자.”

“무슨 소리야! 팔에서 피가 나잖아!”

릴리가 입술을 꾹 다문 채 나를 지그시 바라보기 시작했다. 가늘게 떠진 눈동자엔 무언가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다. 본능적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우선 피아부터 눕히자.”

내가 무릎을 굽히고 피아의 어깨를 붙잡은 순간.

파아앗!

왼쪽 손등이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어어?”

은은하게 금빛을 띠는 새하얀 빛이 방 안의 어둠을 전부 몰아낼 것처럼 빛을 뿜어냈다. 눈부시지만 눈이 아프지 않은 밝음에 멍한 얼굴로 손등을 내려다보았다.

“아아! 신이시여!”

얼마나 당황했는지, 피아가 무어라 말을 했는지 인지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환하게 빛나던 빛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차츰 줄어들었다.

순간 방 안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뭐, 뭐야 이게?”

“헉…”

내가 왼쪽 손등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리자, 옆에서 헛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침대에서 내려온 릴리가 내 왼쪽 손등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피아는 어느새 땅바닥에 머리를 박고 무어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워낙 정신이 없어 피아를 일으켜주지도 못한 채 손등에 새겨진 인장을 바라보았다. 가운데 깃털 문양을 중심으로 아름다운 식물이 줄기를 뻗은 것처럼 기하학적인 문양이 손등에 새겨져 있었다.

새하얀 줄기는 손등뿐만이 아니라 손목까지 이어져 있었다. 마치 내 손에 새하얀 식물이 뿌리를 내린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건 분명… 다크 판타지 세계의 신이 인장을 새겨줬던 곳인데?’

딱 봐도 신성해 보이는 문양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니, 무언가 알 수 없는 정보가 머리에 밀려들어 왔다.

“아.”

나는 작게 탄성을 내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릴리를 바라보았다. 릴리는 얼마나 당황한 건지 입술을 벙긋거리며 제대로 말을 꺼내지도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릴리에게 다가가 다친 팔 쪽에 손을 뻗었다.

‘분명 이렇게 쓰는 게 맞아.’

그런 확신을 가지고 왼쪽 손등에 의식을 집중하자.

파아아앗!

사그라들었던 황홀한 빛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따스한 품을 떠올리게 만드는 안온한 기운이 릴리의 팔을 쓸어내렸다.

그러자 상처가 씻은 듯이 사라져버렸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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