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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5

       우라니나이트를 정제하는 기계를 우연찮게 발견한 이후로 아카샤는 꽤나 들떠 있었다.

         

       살리에르 가문에서 피치블렌드 원석의 쓰임새를 눈치챘다는 것 자체는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니었다. 자칫하면 이걸로 자신을 포함한 구천지대계는 물론이고, 마왕님조차도 쓰러뜨릴 수 있는 병기가 개발될지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인간들의 이런 비밀을 알아내는 것이야말로 인간형 마수들이 하는 일이었다. 돌아가면 공적을 보고할 생각에 아카샤의 입가가 깊은 호선을 그렸다.

         

       그렇다고 여기서 끝낼 순 없는 노릇이다. 노다지를 발견했는데 금 한 조각만 챙겨 돌아가는 것만큼 아까운 짓도 없을 테니까.

         

       “뭐가 더 있을 줄 알았는데, 역시였네.”

         

       깊은 밤. 정제기 말고도 다른 숨겨진 게 없나 확인하고자 저택을 돌아다니던 참이었다. 창고 문을 따고 들어간 아카샤는 그곳에서 흥미로운 물건을 발견했다.

         

       도넛 형태로 생긴 커다란 금속 박스였다.

         

       익숙한 감촉과, 익숙한 모양. 이것도 언니가 옛날에 만들었던 병기 중 하나였다.

         

       “토카막이네?”

         

       ‘도넛 형태의 자기장 가둠 장치’를 제국어 약어로 쓰면 그런 이름이 된다더라.

         

       “살리에르 백작이 만들었을 것 같진 않아.”

         

       피치블렌드 마석 정제기를 비밀스러운 장소에 가져다 놨는데, 이런 건 창고에 처박아놨다고? 앞뒤가 안 맞는 말이었다.

         

       “어쨌든 횡재했네.”

         

       토카막을 쓰다듬으며 비릿한 미소를 흘린다. 아마 언니가 만들어서 여기다가 둔 거겠지.

         

       왜 이걸 만들어서 여기다가 뒀는지는 몰라도, 마탑에 가져가면 이득이 된다. 아카샤는 품에서 공작용 스크롤을 꺼내 마력을 흘려넣었다.

         

       [상급 고유마도 스크롤 ─ 불가시화(Transparency)]

       [중급 고유마도 스크롤 ─ 무게 경감(Weight Alleviation)]

         

       도둑이 뭔가를 훔칠 때 자주 사용하는 스크롤 조합이다. 이 토카막에는 방어 마법도 안 걸려 있으니 스크롤을 적용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좋아.”

         

       스크롤이 제대로 먹히는 걸 확인한 아카샤는 창고 문을 닫고 나왔다. 창문 너머로는 여전히 태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폭풍우가 멈추면 여길 뜨자. 철탑으로 향해서 군단장들을 소집해 이 모든 사실을 알리는 거다.

         

       “그리고….”

         

       그 전에 그 계집애를 조금 볶아볼까.

         

         

       **

         

         

       며칠 뒤, 태풍이 슬슬 약해질 때쯤.

         

       두 소녀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아침 식사를 때운 후 서재에서 책을 읽었다. 매일 똑같은 생활을 반복하는 로테를 보고 있으니 싫증이 날 지경이었다.

         

       아카샤는 읽던 소설책을 덮고 오랜만에 마도학 관련 도서를 가져왔다. 그녀의 실력으로는 보나 마나한 수준의 책이었지만, 목적은 지식을 이해하는 데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상급화계마도총론]

         

       진짜 재미없어 보이네.

         

       대충 아무 페이지를 펼쳐서 읽고 있자니 입질이 왔다. 로테는 자기 쪽으로 고개를 흘기더니 읽던 책을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재미있지?”

         

       자기가 좋아하는 주제가 나오니까 좋아라 하고 무는구나. 소녀의 순수한 학구열에 아카샤는 슬쩍 입매를 비틀었다.

         

       “뭐, 그럭저럭.”

       “그러고 보니 동생은 아카데미 안 다녀? 아카데미에 들어오면 그런 거 많이 배우는데.”

       “굳이?”

         

       아렌스 대륙에 세워진 아카데미의 대부분은 군사학교를 겸한다. 초급 마수도 상대하지 못했던 입학생들에게 온갖 전투마도를 가르쳐 졸업할 즈음에는 상급 마수와도 대적할 수 있도록 만든다.

         

       “펜릴은 그냥 때려잡는데 뭐 하러 거길 들어가?”

       “아, 맞다….”

         

       자신과 처음 만났을 적 기억이 떠올랐는지 로테가 몸을 움츠렸다. 그래도 며칠 부대끼며 지내서 그런지 하숙 첫날보다는 상태가 많이 양호해졌다.

         

       “하지만 학교는 전투법을 배우러만 가는 곳이 아니잖아. 공부도 하고….”

       “공부는 언니에게 미리 배웠어. 독학해도 할 만하더라.”

       “그런 실력이면 에테르는 왜 입학한 건데?”

       “나야 모르지.”

         

       아카샤는 잠깐 침음을 흘렸다. 다음 할 말을 고르기 위함이었다.

         

       “언니는 옛날부터 변덕도 심하고 가출도 자주 했어. 특히 뭘 연구하다가 안 풀릴 때면 며칠은 집에 안 들어왔지. 그러다가 밖에서 영감이라도 얻었는지, 돌아오고 나면 금방 연구를 완성했어.”

       “어릴 적부터 연구를 했어…?”

       “인간이나 엘프 중에도 10살 때부터 논문 쓰고 그러는 천재들 있잖아? 나는 아니지만, 언니는 그런 부류야. 내가 생각해도 완전 미쳤다니까.”

         

       이 말도 반쯤은 거짓말이다. 언니의 연구는 막힌 적이 없었다.

         

       그 마왕님께서도 인정하신 천재성이다. 요르문간드 이상으로 제멋대로 행동하고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동료들이 배척하기는커녕 돌아와 주길 희망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언니의 기술력이 없으면 마왕님의 패도는 완성되지 않을 테니까.

         

       -탁

         

       아카샤는 홍차로 목을 축인 뒤 말을 이었다.

         

       “그래서 한 번은 내가 어디 다녀왔냐고 물었지. 그러더니 알 거 없더래? 어라, 얘가 왜 이러지? 싶어서 언제는 한 번 몰래 미행해봤어. 그러더니 하스펠트 공작의 저택 앞에서 서성거리더라?”

       “하스펠트 저택에서…?”

       “여기서 북쪽으로 가면 본가 나오잖아. 거기도 엘랑카야 산맥 근처잖아? 여름에는 그쪽에서 약초를 좀 캐오기도 하거든.”

         

       이쯤에서 로테의 동공은 실시간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갑작스레 갈증이라도 생긴 건지, 뜨거운 찻잔을 집어다가 찻물을 꼴깍꼴깍 넘기기 시작했다.

         

       -탁

         

       “그래서… 그래서 왜 거길 간 거야?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됐어?”

       “그 다음엔 안 봐서 몰라. 얘가 또 이상한 짓 하는구나 싶어서 돌아왔지.”

         

       아카샤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아꼈다.

         

       괜히 여기서 구체적인 얘기를 꺼냈다가 로테가 자길 더 경계하기라도 하면 말짱 도루묵이겠지. 실로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상대방이 어쩔 줄 몰라하는 게 눈에 훤했으니까.

         

         

       **

         

         

       아카샤의 말을 다 듣고 나니 머릿속에 단어 하나가 떠올랐다.

         

       ‘플레어….’

         

       에테르가 완성한 마도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 마법은 하스펠트 가문에서 삼대에 걸쳐 연구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 얘길 들었을 때 로테는 어찌할 줄 몰랐다. 학계에서 이런 일은 많다는 말을 들은 이후로 그나마 안심하고 머릿속에서 지워버릴 수 있었다. 그래, 어쩌다가 주제가 겹친 거겠지. 그리 생각하면서.

         

       분명 그랬는데.

         

       ‘언니는 옛날부터 변덕도 심하고 가출도 자주 했어. 특히 뭘 연구하다가 안 풀릴 때면 며칠은 집에 안 들어왔지. 그러다가 밖에서 영감이라도 얻었는지, 돌아오고 나면 금방 연구를 완성했어.’

         

       조금 전 들었던 말이 떠오른다.

         

       로테는 뱁새눈으로 아카샤를 슬쩍 훑었다. 태연하게 고개를 내리고는 독서에 열중하고 있는 모양새다.

         

       “후아암.”

         

       아니, 그건 아닌가.

         

       아카샤가 읽고 있는 책의 제목은 [상급화계마도총론], 하필이면 플레어와 연관성이 높은 도서다.

         

       잠깐 과거로 시간을 돌려본다. 불과 3개월 전, 아카데미에 입학하고 꼬박 하루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에테르를 두고 클리온 제2황자와 클라이스 선생님 사이에서 신경전이 벌어졌었다. 서로 돈을 더 많이 줄 테니까 자기 말을 따르라고 에테르에게 강요하던 구도가 퍽 우스웠었는데.

         

       ‘역시, 그 전에 뭔 일이 있었어.’

         

       입학하기 전 에테르가 뭘 하고 살았는지는 모르지만, 그 두 사람과 엮였던 것만큼은 확실하다.

         

       ‘미인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변태 황자는 그렇다 치고….’

         

       클라이스 선생님이 보인 그때의 그 태도는 이해가 안 갔다. 기껏해야 대학원생을 점찍어 두시려는 건가 싶기도 했지만, 그땐 아직 수업 시작도 안 했을 때였다.

         

       무엇보다도 당시 클라이스 선생님은 꽤 다급한 표정이었다. 에테르를 여기서 붙잡지 못하면 일을 크게 그르칠 것만 같았던 얼굴이었는데.

         

       설마.

         

       ‘선생님 가문에서 연구하고 있던 플레어를, 에테르가….’

         

       “크흡.”

       “뭐야. 왜 갑자기 쪼개?”

       “아니, 그냥. 아무것도 아니야.”

         

       쓸데없는 억측이다.

         

       가문에서 피치블렌드 정제기를 만들었다는 건 로테도 몰랐던 이야기였다. 하물며 에테르가 그걸 알았을 리가 있나.

         

       로테는 의심병이 도진 자신을 반성했다. ‘남을 함부로 의심하지 말라’라는 아버지의 옛말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만에 하나 에테르가 살리에르 가문에서 비밀리에 연구하던 걸 알았다고 치자. 그러면 왜 곧바로 저택을 떠났는가? 따지고 보면 아카샤가 여기서 더 오래 머물렀다.

         

       -똑똑

         

       “저기, 가주님께서 아가씨 친구분을 조금 뵙자는데요?”

         

       갑작스레 견습 메이드가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그런 말을 전했다. 아카샤는 자기를 가리키며 고개를 비틀었다.

         

       “저요? 왜요?”

       “그, 친구분께서 가주님께 조금 전 편지를 보내셨잖아요. 큰일이 있으니까 집무실에서 잠깐 만나 뵙고 싶다, 그렇게요….”

         

       이상한 일이었다. 아카샤가 눈살을 찌푸렸고, 그 사이에 로테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반문했다.

         

       “같은 집에 사는데 왜 굳이 편지로 약속을 잡아요?”

       “그니까.”

       “아, 아무튼 가주님께서 에테르 님에게 지금 집무실로 오셔도 좋다고 하셨어요…!”

       “죄송하지만 다른 분이랑 헛갈렸다고 전해주세요. 전 편지같은 거 안 썼으니까.”

       “아… 네…!”

         

       덜컥,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힌다. 잠깐 소란스러워졌던 서재가 정적을 되찾았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가끔가다 저렇게 우편이 잘못 오는 경우도 있으니까.”

         

       별 시답잖은 해프닝인 듯했다. 아카샤와 로테는 서로의 얼굴을 스리슬쩍 확인하고는 다시 독서에 집중했다.

         

       그리고, 커튼 너머의 세상은 칠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연재시간을 오전 7시~9시 사이로 옮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주로 밀린 처리하고 밤늦게 소설을 쓰기 시작하는데, 그러다 보니 자정을 맞추기가 많이 빠듯하더군요..

    다음화 보기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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