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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5

 

   “어째서. 어째서!”

 

    “….”

 

    “당신은, 당신은! 우리들의 왕이라고! 지금도 느껴지는 이 기운! 왕이어야 했단 말이야!”

 

 

 

   으스러진 한쪽 어깨를 부여잡은 채, 벨리알이 억울하다는 듯 소리친다.

 

 

   아니. 진짜로 억울했다. 분명 자신들의 왕인데. 악마들을 이끌 새로운 군주인데.

 

   어째서 저 너머 세상에 처박혀서는 저들의 집 지키는 개 노릇을 하고 있단 말인가.

 

   심지어 인간의 껍데기까지 뒤집어쓴 채. 이상한 이름을 스스로에게 붙이면서!

 

 

 

   “그러니까 난 이 세상 왕이라고 한 적 없다니까 그러네.”

 

    “아니! 애당초 운명이 그러했다! 그 힘! 그 기운! 그 본능적인 두려움과 공포! 당신은 애써 아니라며 부정했겠지만 느꼈을 텐데! 모두가 그리 느꼈을 게 분명해!”

 

   “….”

 

 

 

   확실히 좀 이상하긴 했다. 아무리 외모가 험하다곤 하지만 기절초풍할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사실 맞다.)

 

   저 악마의 말대로, 그 본능적인 두려움이 악마의 왕으로서 지닌 아우라에서 비롯되는 거였다면 모든 게 충분히 납득이 될 만했다.

 

 

   하지만.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이제 와서 왕 노릇을 해? 네 말대로 인간이고, 이미 이곳 지옥에 악마들 파편을 흩뿌린 게 바로 나라고. 이 악마야.”

 

   “어차피 시간이 흐르면 다시금 일어날 것이니 괜찮아. 괜찮고말고.”

 

   “얼마나 걸리는데.”

 

    “왕의 기운이 퍼졌으니 길지 않을 거다. 그러니 걱정할 건 없어!”

 

 

 

   그래도 악마나 지옥이 아주 완벽하게 이 세상에서 지워지는 건 아닌 모양이다.

 

   하기야. 목숨이 하나고 한 번 죽으면 그대로 끝! 하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한 법.

 

   따지자면 지금은 일반 난이도에 다음은 어려움 난이라도라도 된다는 건가.

 

 

   데우스가 더 떠들어보라는 듯 벨리알을 쳐다보자 그는 무엇이 그리 분한지 중얼거렸다.

 

 

 

   “이래선 안 돼. 이제야 겨우 일어설 수 있게 되었는데. 우리 선조들이 치른 그 고생을. 우리 부모들이 치렀던 희생을. 비로소 떨쳐낼 수 있게 된 것인데!”

 

   “…?”

 

 

 

   이상한 말이다. 자간이 했던 말에 따르면 악마들은 어둠이니 지옥의 불길이니, 뭐 그런 곳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선조니 부모이니 떠들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다.

 

   한데 벨리알은 그런 단어를 내뱉고 있다. 심지어 굉장히 분하다는 듯한 어조까지 해서.

 

 

 

   “자간에게 듣기로 악마는 무슨 어둠이니 불길이 그런 곳에서 태어난다고 들었다만.”

 

    “…그랬지. 대부분은. 아니, 우리 모두는 그렇게 태어났지. 그리고 죽어도 죽어도, 다시금 그 무저갱 속에서 되풀이될 테고 말이야.”

 

 

 

   이 악마. 뭔가 알고 있다. 이것은 마치, 최종장을 마무리하면 ‘사실 이러이러한 뒷배경이 있었다.’ 라고 떠들어주는 NPC의 모습이다.

 

   거기서 데우스는 문득 자신이 예전부터 품고 있던 의문을 해소할 수 있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이. 악마.”

 

 

 

   벨리알 앞에 주저앉은 데우스는 자신이 기억하던, 소설 속 배경의 단편적인 부분들을 꺼내놓았다. 이제껏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바로 그 부분들을 말이다.

 

   망하기 직전의 세상과, 그 상황 속에서도 기어코 스스로를 지옥 속으로 밀어 넣던 어리석은 자들과. 어떻게든 모두를 구해내기 위해서 제 몸까지 불사르던 극소수의 영웅들.

 

 

 

   “….”

 

 

 

   이야기를 모두 들은 벨리알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데우스를 응시한다.

 

   그의 입이 열리고 당장이라도 ‘지금 나를 가지고 장난 치냐.’ 혹은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하고 있는 거냐.’ 라는 말이 나올 것만 같은 상황.

 

 

 

   “이상하군.”

 

 

 

   하지만 벨리알의 반응은 둘 모두 아니었다. 그는 흐릿한 눈빛을 한 채 말을 이었다.

 

 

 

   “내가 알던 것과 다른 게 조금 있기도 하지만…. 아주 오래된 기억 속에 묻힌 것과 비슷한 구석이 꽤나 있어. 마치, 당신이 더 상세하게 알고 있는 것 같군.”

 

   “….”

 

 

 

   정리해보자. 자신이 빙의한 세상은 본인이 알던 곳과 굉장히 흡사한 곳이었다.

 

   하지만 아주 똑같지는 않다. 다른 점이 존재한다. 거기서 1차적으로 이상함을 느꼈다.

 

   그리고 지금. 이곳 지옥에 와서 이 악마와 이야기를 나누니 그 다른 점이 이곳의 과거와 굉장히 유사하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악마들은 어떻게든 이곳을 벗어나고자 한다. 저주에라도 걸린 것처럼 그걸 반복한다.

 

   이들이 가고자 하는 세상은 데우스가 기억하는 소설 속과 굉장히 닮은 곳. 마치 거울을, 정확하게는 여기저기 깨진 거울 너머를 들여다보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좋겠는데. 아니었으면 하는데.’

 

 

 

   자신이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맹약까지 박으면서 해피엔딩 노래를 불렀을까.

 

   그건 그만큼 그 세상의 운명이 너무나 지옥 같았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멸망이 예정된 곳이었기에 그리했다. 무척이나 애정이 깊었던 만큼 바꾸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해서 정말로 빙의했을 때 무척이나 다행이라 생각했다. 바꿀 수 있다 여겼으니까.

 

   물론 자신이 알던 곳과는 다르다는 걸 자각했을 때 그만큼 아쉽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마주하게 되니 본능적으로 깨닫게 되었다.

 

   이건 빙의자로서 지니게 된 감이라고 해야 할까? 지금 마주하는 이 악마가 하는 말. 지금 자신이 느끼는 이 모든 게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실임을.

 

 

 

   ‘내가 알던 그 모든 게 이미, 진작. 아주 오래 전에 사라졌고. 이제 남은 건 그 저주와 증오, 그리고 후회를 머금은 채 빼앗긴 걸 당했던 그대로 되찾게 된 부스러기들과. 거짓말처럼 그들과 비슷한 세상에 살면서 또 똑같은 굴레를 감당해야 할 새로운 세상이라는 건가?’

 

 

 

   그러니까. 결론을 말하자면 또 착각했다는 소리잖아. 데우스는 실소를 머금었다.

 

   정말 구원하고 싶었던 세상은 이미 다 망가져서 무저갱에 처박혀 이제는 악의만 품은 찌꺼기들의 근거지가 되어버렸고.

 

   그냥 이상한 곳에 빙의했다고 여긴 그곳은 깨진 거울 너머를 보듯 투영되었던 그 세상과 비슷한 또 하나의 곳이었음을 모른 채로.

 

 

 

   “하.”

 

 

 

   가슴이 답답해진다. 두 손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일이 이렇게 된 것에 대해 한탄한다.

 

   그러니까. 제발 해피엔딩이었으면 했던 세상은 이미 다 망가져서 이렇게 되었고. 남은 찌꺼기들은 이제 그들의 과거가 그러했던 대로 또 다른 세상을 망가트려야 하는 것이다?

 

 

   절대로 끊어지지 않을 고리다. 어느 누구도 이걸 잘라낼 수는 없을 것이다.

 

   또 하나의 세상이 망가지고. 또 다른 곳이 찌꺼기만 남아 더럽혀질 테고. 그렇게 늘어나다 보면 언젠가 모두가 그리 되지는 않을까.

 

 

 

   ‘….’

 

 

 

   데우스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미 이곳은 망가졌다. 되돌아갈 수 없다.

 

   자신이 기억하는 그 세상은 남지 않았다. 그저, 제 머릿속에만 남은 곳이 되었다.

 

 

 

   “왜 그렇게나 본능적으로 매달렸던 건지, 내가 이해는 하겠어. 그렇게 멸망해버렸으니, 그 억울함과 그 분노와, 그 슬픔이 악의로 변질되어 다른 곳도 그리 만들고 싶었겠지.”

 

   “그러면.”

 

    “그래도 말이야. 안 돼.”

 

 

 

   데우스는 땅을 짚고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내가 아는 그들을 기리기 위해선, 여기가 사라지는 게 맞아.”

 

 

 

   비록 자신이 원하던 것처럼 그들과 그 세상을 위해서 싸워주지는 못했지만.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그대로. 저 너머에서 똑같이 몸부림치는 이들이 있기에.

 

   자신이 스스로 목에 새겨 넣은 맹약을 떠올리며 말을 잇는다.

 

 

 

   “안타깝지만 이곳의 선함이 더는 하나도 남지 않아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그동안 흩뿌려진 저 너머의 눈물과 피를 없던 일로 하는 건 불가능하기에.

 

   그나마 아스타로트를 제외한 모두가 그 악의와 연관이 되어있는 게 확실했기에.

 

 

   씁쓸한 기운을 지우지 못한 채 데우스는 이 유쾌하지 못한 만남에 작별을 고하기로 했다.

 

 

 

   *

 

 

 

   “이 짐승 같은 것!”

 

 

 

   악마, 세이르의 입에서 그런 단어가 튀어나온다. 외양만 보면 누구보다 짐승 같은 그가 그런 말을 한다는 게 상당히 우스운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상태를 본다면. 그리고 상대를 본다면 악마의 말임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끄덕거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타타탓!!

 

 

   온몸에 자잘한 상처를 입었음에도 전혀 지치거나 힘들어하는 기색이 없다.

 

   피에 젖은 분홍 머리칼을 휘날리며 유리시아는 또 다시 빈틈을 찾아 날아들었다.

 

 

   곧이어 파앙!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조금만 더 빨랐다면 세이르의 옆구리를 뜯어냈을지도 모르는 일격이었다.

 

 

 

   “….”

 

 

 

   유리시아의 두 눈이 이글이글 타오른다. 제 안의 두려움과 공포를 땔감 삼아서.

 

   지금 남은 것은 과거에 대한 분노와 반드시 이겨내겠다는 의지. 그리고 저걸 넘어야만 닿고자 하는 곳에. 그리고 닿고자 하는 이에게 향할 수 있는 확신이었다.

 

 

 

   “후배님! 너무 흥분했어요!”

 

 

 

   허공에 뜬 채 세이르의 공격에서 유리시아를 지켜낸 네페르티가 주의를 준다.

 

   상대는 아직 지치거나 힘든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체력이 많이 남았다 판단해야 한다.

 

   반대로 유리시아는 거친 호흡을 토해내는 것만 봐도 벌써 한눈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만약 네페르티의 바람이 아니었다면 진작 속도를 올리다 지쳐 쓰러졌을 터였다.

 

 

 

   “회장. 다음 플랜으로.”

 

    “벌써요?”

 

    “생각보다 상대가 강해요.”

 

 

 

   루시엘은 점차 버거워지는 빛의 검을 재정렬하며 숨을 골랐다.

 

 

   온갖 훈련을 했다. 악마를 잡기 위해 그 악마에게서 집중 교육을 받았다.

 

   심지어 데우스와 몇 번이나 모의 전투까지 치르며 어찌 해야 할지 알아냈다.

 

   오만함은 없었다. 하지만 자신감은 분명 있었다. 이길 수 있다 확신도 했다.

 

   허나 이렇게 부딪친 악마의 전력은 분명 예측을 상회하는 수준이었다.

 

 

   자신들이 간절하듯 저들도 간절하다. 계속되는 싸움을 거치며 그게 느껴졌다.

 

   승리는 항상 간절한 자의 것이라 하지만 둘 모두 간절하다면 결국 강한 자가 쟁취할 터.

 

 

 

   ‘다음 수에, 결판을 내야 해.’

 

 

 

   그리 생각하며 루시엘은 데우스가 알려준 비기를 준비했다.

 

   하늘까지 치솟아, 끝이 보이지 않는 검으로. 상대를 통째로 베어버리라.

 

 

 

등록된 마지막 회차입니다

 


           


Surviving in a Genre I Mistook as a Munchkin

Surviving in a Genre I Mistook as a Munchkin

Overpowered in the Wrong Genre 장르 착각에서 먼치킨으로 살아남기
Score 3.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found myself in an apocalypse novel with no dreams or hope. And because of that, I trained and trained to become stronger in order to survive. “Wait, hold on a minute.” But, one day, I realized I had mistaken the genre of the novel I had transmigrated in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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