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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5

       정밀 분석부터 진행했다. 

       

       나와 핑발레즈뿐이었다면 일이 조금 꼬였을 거다. 아카데미나 자색 마탑의 연구실을 이용해야 했거나, 근처의 아티팩트 상점을 털어서 마석을 왕창 구매해야 했을 터.

       

       하지만 이곳에는 무려 마탑주가 있었다. 나는 메스를 요청하는 의사처럼 손을 척 내밀며 말했다.

       

       “마탑주님?”

       

       “응, 여기.”

       

       짠. 마탑주는 손을 내밀었다.

       

       마탑주는 걸어 다니는 마력발전소에 가깝다. 내가 괜히 마탑주의 하품을 받아 마시며 자라난 게 아닌 것이다. 손을 깍지 껴 잡고 단단히 연결했다.

       

       나는 상상도 못 할 양의 마력을 넘겨받아, 앉은 자리에서 인공두뇌를 구축했다. 마네킹의 머리만 똑 떼낸 것 같은 홀로그램 이미지가 허공에 출력됐다.

       

       소년의 머릿속에 심겨 있었던 환상 마법을 인공두뇌에 옮기고 재생했다. 마력의 흐름과 인공두뇌의 피드백을 바탕으로 마법의 구체적인 효과를 파악해 나갔다.

       

       이건 무의식에 작용하는 환상 마법이다.

       

       1) 피시전자가 자신이 걸렸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하며, 2) 명령에 복종하도록 만들고, 3) 타인에게 발각 시 자살하도록 강제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내 설명을 들은 마탑주는 떠올랐다는 듯이 말했다.

       

       “⋯⋯최면 어플?”

       

       나는 대경실색했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대체 뭐 하는 만화까지 본 거예요.”

       

       “아니, 그냥, 지나가다가 어쩌다가 본 거야⋯⋯!!”

       

       마탑에 남겨두고 온 현대 맵에 검열을 좀 쳐야 하나. 전생에 보고 들은 걸 고스란히 전부 때려 박았더니, 호기심 대장 마탑주가 보면 안 되는 것까지 보게 된 것 같았다.

       

       지금까지의 분석 결과로는 평범한 최면어플.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마법사도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면 알아낼 수 있는 수준이었지만, 뭔가⋯⋯ 마법에 교묘하게 배배 꼬인 부분이 있었다. 숨겨둔 기능인가?

       

       어떤 트리거로 반응하는 거지. 시각 이미지? 아니군. 소리? 이것도 아냐. 오감은 체크 끝났고⋯⋯ 시간? 시간의 흐름에 반응이 있었다. 인공두뇌가 느끼는 시간의 흐름을 수백 배 가속했다. 

       

       파라라락. 인공두뇌의 체감 시간이 일주일 정도 지났다. 

       

       꾹 다물린 꽃봉오리가 시간이 지나면 피어나듯, 꼬여 있던 부분이 풀려나가며 숨겨진 네 번째 기능이 작동했다. 인공두뇌는 의식이 잠든 최면 상태로 누군가에게 기도를 시작했다. 

       

       그리고 암호화되고 압축된 상태의 정보를 중얼중얼 뱉어냈다. 정리해 보자.

       

       “⋯⋯그러니까, 이 최면 어플에 당한 사람은. 일주일마다 정기적으로 어디론가 정보를 토해낸다는 건데.”

       

       “⋯⋯⋯⋯.”

       

       사람을 CCTV 삼는 마법이었다. 전체적으로 수준이 상당히 높았고, 숨겨진 부분은 내가 아니라면 알아내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딴 걸 누가 만들어 낸 거지?

       

       옆에서 듣고 있었던 핑발레즈도 낯빛을 딱딱하게 굳혔다. 

       

       “그런, 환상 마법이 있었군요. 자색 마탑의 누구나 이런 마법을 쓸 수 있는 겁니까?”

       

       “아니, 대부분은 불가능해. 나라도 제로 베이스에서는 6개월 정도 걸렸을 완성도니까⋯⋯ 재능 있는 환상 마법사가 적어도 연 단위의 시간을 들인 거다.”

       

       핑발레즈는 추궁 조로 말했고, 나도 정직하게 내 소견을 말했다. 이건 무거운 안건이었다.

       

       이 마법에 걸린 사람이 몇 명인지는 아직 불명이지만, 지나가는 소매치기 소년에게도 써재낄 수 있는 거라면. 어쩌면 생각보다도 넓은 범위에 번져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즉, 제국의 수도에 배후 불명의 스파이가 대거 풀려 있는 거다. 자신이 스파이인지도 모르는 채로.

       

       핑발레즈는 안경을 치켜올렸다. 

       

       “제가 임의로 보고를 누락할 정도의 건은 아닌 것 같군요. 상부에 보고하고, 자색 마탑으로 감찰 한번 가겠습니다.”

       

       “오, 오히려⋯⋯ 바라는 바야. 쓰, 쓸데없는 의심을 사고 싶지는, 않으니까⋯⋯.”

       

       자색 마탑주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덧붙였다.

       

       “그, 그래도 마탑 내부는 아닐 거야. 나, 내가⋯⋯ 분명. 깨끗하게, 모조리. 지웠으니까. 현재 내부에서 진행 중인 연구 중에서도⋯⋯ 이런 건 없어.”

       

       마탑주의 더듬거리는 목소리에는 자색 마탑 구성원들에 대한 신뢰가 담겨 있었다. 굳게 믿는다기보다는, 제발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쪽에 가까운 여린 신뢰가. 

       

       가슴 아픈 일이지만, 나는 그 낙관적인 생각에 흠집을 내야 했다.

       

       “하지만, 마탑주님. 이거 말인데요.”

       

       “응⋯⋯.”

       

       “닮지 않았나요. 얼굴흉터 선배의 마법과.”

       

       “⋯⋯로, 로레이의 마법과?”

       

       마탑주가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핑발레즈는 수첩을 펴 들고 펜으로 적어 내리며, 확인을 위해서 재차 물었다.

       

       “『꼭두각시』 로레이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쟤, 쟤가 얼굴흉터 선배라고 부르는 거면, 로레이가 맞는데⋯⋯. 왜, 왜 그렇게 생각해?!”

       

       “마법의 기본 뼈대가 똑 닮았어요. 얼굴흉터 선배의 논문을 읽어본 적 있으니까. 하지만, 선배가 범인이라고 말하고 있는 건 아니에요. 뼈대가 닮은 거지, 완성된 결과물은⋯⋯ 이것저것 섞인 것 같으니까.”

       

       “비, 비켜 봐. 확인해 볼래.”

       

       마탑주는 인공두뇌를 바닥에 내려놓고 로우킥을 날렸다. 빠직, 하고 환상 마법이 박살 났다. 빛무리가 흩날리며, 깨져나간 마력 파편이 바닥을 굴렀다.

       

       그 감촉에서 익숙한 뼈대를 느꼈는지, 마탑주는 우울한 표정으로 제자리에 쭈그려 앉았다.

       

       “이거, 진짜 로레이 거다⋯⋯.”

       

       “좀 더 파보죠, 이거. 외부로 우리들의 연구 자료가 유출된 거라면⋯⋯ 마탑 차원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설 일이라고 생각해요.”

       

       “으, 응. 유, 유출된 거라면. 전부⋯⋯ 지워 없애야 하니까.”

       

       “⋯⋯⋯⋯.”

       

       가만히 눈을 감았다. 자색 마탑. 내가 인생의 절반가량을 보낸 곳이다. 이름을 기억 못 해서 그렇지, 그들과 함께 지낸 추억들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을 의심하는 건 달갑지 않았다. 불쾌한 기분이다.

       

       마탑주라면 더하겠지. 나는 위로의 의미로 조용히 마탑주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러나 그녀는 천천히 내 손을 걷어냈다.

       

       “괜찮아.”

       

       흔들.

       

       그 한마디와 함께, 마탑주의 눈동자 너머에서 불길한 무언가가 흐릿하게 흔들렸다. 분노 같기도 하고, 슬픔 같기도 한⋯⋯ 어떤 각오의 형태였다. 죄가 피어났다면 스스로 거두겠노라는.

       

       그 모습이, 우주를 떠돌던 거대한 운석이 마침내 떨어져 내리려는 것처럼 보여서. 강대한 힘이 의지를 갖고 움직이려는 그 모습에.

       

       나는 조금 오싹함을 느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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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전자부터 찾을 필요가 있었다.

       

       우선, 마법의 식별명은 『빅브라더』로 정했다.

       

       『빅브라더』는 마법이다. 어떠한 형태로든 시전자가 있으며, 시전했고, 걸었다. 그리고 우리 손아귀에는 마법에 걸려본 적 있는 피해자가 있었다. 시전자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면 일은 간단하게 풀린다.

       

       사람 머릿속에서 이미지를 추출해 3D로 만드는 건, 밥 먹는 것보다 쉬운 작업이다. 흐릿하게나마 스쳐 지나가기만 했어도, 뇌 어딘가에 정보가 한 조각이라도 남아 있으면 내가 꺼내올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일이 그렇게 쉽지는 않은 법인가.

       

       “저, 저는 진짜⋯⋯ 그런 걸 당한 기억이 없어요.”

       

       “저는 제국 수호 방위국 요원 유리 랜스터이고, 2급 이상의 위험인물을 조사하는 건에 대하여 무제한적인 살인 면허를 소지하고 있습니다. 잘 생각하고 다시 대답해 주십시오. 아는 바가, 없습니까?”

       

       “⋯⋯⋯⋯.”

       

       ‘너 구라까면 진짜 뒤지는 수가 있다’라는 흉험한 말에, 소매치기 소년은 신음도 못 뱉고 새파랗게 얼어버렸다. 나는 손을 휘저어서 핑발레즈를 만류했다. 

       

       “더 쪼아댈 필요 없어. 얘, 진짜 모르네.”

       

       “확인했습니다.”

       

       “대신, 너⋯⋯ 사는 곳으로 같이 가자. 네 생활 반경을 좀 살펴봐야겠다. 하는 말만 잘 들으면 주변 사람들한테 피해가 갈 일도 없을 거야.”

       

       “⋯⋯네, 넵.”

       

       나는 소년을 앞세워서 골목길로 걸어 들어갔다. 

       

       당한 기억이 없다라.

       

       그건,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타인의 기억 소거까지 가능한 베테랑이거나. 아니면 최면 마법인 줄도 모르고 걸린 거다. 

       

       나는 후자에 좀 더 무게를 두었다.

       

       이유를 대자면, 타인의 기억을 자연스럽게 주무르는 건 정말 어렵기 때문이다. 천재인 내가 어려울 정도라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어렵겠지.

       

       인간의 정신과 기억은 복잡하게 상호작용한다. 별것 아닌 기억을 지웠더니 성격이 휙 바뀌는 일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건, 주변에서 눈치채기가 쉽다.

       

       나라면 복잡하고 다루기도 어려운 기억 소거로 증거를 지우느니, 가성비 좋게 위장하는 쪽을 골랐을 거다.

       

       “이런 마법을 좀 개발해서 납품하시지 그랬습니까. 그럼 연구비 걱정은 없었을 텐데.”

       

       “그게 쉬운 일이었으면 옛적에 방위국이랑 짝짜꿍하고 있었겠지.”

       

       만약 그랬더라면 사이버펑크스러운 도시가 되지 않았을까. 

       

       사람 정신을 주무르는 마법사들과 암중에서 도시를 수호하는 요원들, 그리고 빼빼 마른 황제⋯⋯. 이거 바로 그냥 세션 소재다.

       

       그런데 세션에서나 일어나야 했을 일이 현실에서 터지니까 머리가 살짝 어지러웠다. 아는 사람들 의심하는 것도 좋은 기분은 아니고, 방위국에서 자색 마탑 전수조사 들어갈 때가 걱정되기도 했다. 

       

       남에게 보여주기에는 살짝 곤란한 연구자료들이 꽤 많은데.

       

       “그, 핑발레즈야. 혹시 내 방은 네가 조사해 주면 안 되겠냐.”

       

       “뭐⋯⋯ 인신매매 기록이라도 있으십니까?”

       

       핑발레즈가 설마설마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어디까지 커버를 쳐줘야 하는 거지 싶은 표정이라서 얼른 설명을 덧붙였다. 그런 쪽의 곤란함이 아니라.

       

       “그건 아닌데. 혈기 넘치는 10대를 지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파고들게 되는 그런⋯⋯.”

       

       “흥미가 솟구치네요.”

       

       다른 요원이 조사하면 나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까가 무섭더라. 다행히도 핑발레즈가 흥미를 가져주었다. 『수치심 억제』마법을 개발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영광스러운 제국의 수도에도 그림자는 드리웠다.

       

       밝고 번화한 거리의 뒷면에 숨겨진 더럽고 어두운 골목. 일반적인 시민들은 발을 들여놓을 일이 없는 곳으로 걸었다. 주변을 살폈다.

       

       그렇게까지 무질서하거나 심각해 보이지는 않는다. 길거리에 시체가 널려있다거나, 마약에 쩔어서 선 채로 죽어간다거나 하는 징후는 포착되지 않았다. 나름대로 관리가 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또, 상대적으로 부유했다. 빈민층이 몰려 사는 소굴이라고 해도, 무려 ‘제국 수도’의 빈민층이었다. 사람들의 영양 상태는 썩 괜찮아 보였다.

       

       어둠 속에서 몇 쌍의 눈동자가 빛났다. 창문 틈새나 문틈으로 힐긋거리면서 우리들을 보고 있었다. 외부인에 대한 경계, 확인.

       

       사람들이 뭉쳐 사는 곳에는 언제나 나름의 질서가 있기 마련이지만, 이런 곳은 대부분 사회보다는 야생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 

       

       야생에서 다른 짐승 무리가 영역을 침범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던가.

       

       “어이, 여긴 외부인들이 헤집고 다닐 곳 아니야.”

       

       “음, 클래식.”

       

       “⋯⋯괜히 험한 일 겪지 말고 꺼져.”

       

       머리를 빡빡 민 불량배 하나가 나와서 위협을 가했다. 몽둥이를 들고나온 것도 아니고, 생긴 것에 비해 말도 예쁘고 곱게 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일행의 면면이 면면이다 보니 일단은 조심스럽게 나오는 것 같았다.

       

       마탑주는 초조한 기색으로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치, 치우면 될까⋯⋯?”

       

       “제가 잘 타일러볼게요, 마탑주님.”

       

       야생의 짐승 사이에서는 확실하게 서열 정리를 해 둬야 한다. 내가 한참 위에 있다는 사실을 새겨주면 감히 이빨을 드러낼 생각을 안 한다. 

       

       마탑에서 나왔다든가, 내 옆에 있는 쭉쭉빵빵한 정장 미녀가 제국 수호 방위국의 사람이라든가, 그런 말들로 위압할 수도 있겠지만⋯⋯ 그걸 증명하는 과정이 이러저러 복잡하니까.

       

       여기서는 어딜 가나 통용되는 힘으로.

       

       나는 금화 한 개를 튕겼다.

       

       “⋯⋯고작 이따위 걸로.”

       

       나는 보석 한 개를 튕겼다.

       

       “어디에서 오신 분인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알이 굵은 루비 하나를 튕겼다.

       

       “귀족분이시군요. 분부만 내려주시지요, 제가 어디로 안내할깝쇼.”

       

       충분히 많은 돈은 그 자체로 신분 증명이 된다. 물론, 내가 진퉁 귀족은 아니지만⋯⋯ 옆에 있는 우리 마탑주는 제대로 된 귀족 출신이니까 틀린 말도 아니다.

       

       넙죽. 빡빡이는 최상급 복종의 자세를 취했다. 나는 거만한 귀족 모드를 켜고 느릿하게 손을 휘저었다. 핑발레즈가 기민하게 알아채고 합을 맞춰 왔다.

       

       “도련님께서 고용한 마법사가 도망쳤고, 우리는 그 행적을 쫒고 있습니다만⋯⋯.”

       

       “나를 방해하지 말라 천것아. 너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을 거고, 내가 알아서 조사하고 나갈 거다. 뭐가 박살 나면 값은 두 배로 쳐 줄 테니, 너희들 무리에게 입 닥치고 있으라고 전하도록.”

       

       빡빡이는 고개를 깊이 조아리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한동안은⋯⋯ 방해하지 않겠지. 나는 뒤늦게라도 ‘귀족님을 몰라뵙고’를 시전해야 하나 고민하는 소년의 등을 두들겼다.

       

       “가자. 네 평소 루틴 그대로 해 봐. 어디서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어느 루트로 나가고, 밥은 어디서 먹고 그런 거. 그대로.”

       

       “네, 넵⋯⋯.”

       

       소년은 버벅거리면서 뒷골목을 돌았다. 소매치기를 배운 어린애들이 생활하는 거처부터 상납금을 내는 곳, 주로 나다니는 길목. 그리고 화장실까지도 따라가 봤다.

       

       쭉 살펴봤지만 특별한 건 없었다. 이거⋯⋯ 마력을 터트려서 사방으로 광역 스캔이라도 때려야 하나. 아니면 아카데미에서 니오레를 초빙해 조사를 부탁해 볼까. 

       

       내가 방법을 궁리하는 사이, 핑발레즈는 소년을 말로 쥐어짰다.

       

       “다른 특별한 건 없습니까? 잘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이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곳이 있을 겁니다. 어떤 형태로든.”

       

       “그, 그게⋯⋯ 그러니까, 아. 일주일마다 기도회라는 걸 하는데요.”

       

       “그걸 처음부터 말했어야지!”

       

       하여간 꼭 다 돌아본 다음에야 결정적인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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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지의 세력은 계절 바뀌듯이 휙휙 바뀐다고 했다. 저저저번에는 빨간 독사파인가가 뒷골목을 지배했고, 저저번에는 어느 부유한 상인이 음지 사업에 뛰어들어서 영향력을 발휘했다가 반짝 하고 사라지고⋯⋯.

       

       계급으로 따지자면 맨 아랫바닥인 소매치기 소년에게 있어서, 그런 권력 다툼은 먼 나라 이야기였다. 위에서 서로 칼침 놓고 주먹을 휘두른다고 소매치기의 삶이 변하지는 않았으므로.

       

       다만 돈을 걷어가는 사람이 간간히 바뀔 뿐이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소매치기 소굴에 들어와서는, “이제부터 상납금은 우리들에게 바치면 된다”고 하면, 고개를 끄덕이고 납득하는 것이다. 

       

       하지만 1년 전 즈음에 뒷골목을 지배하기 시작한 세력은, 이전까지의 세력과는 조금쯤 달랐다. 약간이나마 종교적인 색채를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일주일에 한 번, 그들이 지배하는 중앙 광장에서 기도회를 열었다. 가운데에는 누구인지 모를 석상을 세워 두곤, 그 앞에서 무엇이든 좋으니 기도하라고 지시했다.

       

       소년의 묘사에 따르면, 석상은 성별을 구분할 수 없는 어떠한 인물을 묘사하고 있었으며. 얼굴은 크게 무너져 있어 꺼림칙한 기분이 든다고 했다.

       

       적어도 여신의 조각상은 아닌 것 같았다. 여신을 묘사한 석상은 확실하게 미드가 달려있으니까.

       

       하여간.

       

       상납금을 어쩌다가 바치지 못한 건 몽둥이찜질 정도로 넘어가 주지만 기도회에 불참하는 것은 엄격하게 다스렸다. 구두로도 단단히 주의를 주었던 데다가.

       

       몸살감기에 걸려서 기도회에 나가지 못한 친구가 있었는데, 결국 행방이 묘연해졌다고 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조용히 마법을 준비했다. 선입견일 수도 있지만, 어딜 어떻게 봐도 흑마법사의 냄새가 풀풀 난다고 해야 하나. 핑발레즈도 비슷한 느낌을 느꼈는지 몸을 풀고 있었다.

       

       전투의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소년의 안내로 중앙 광장에 진입하자. 아주 많은 사람이 우리를 환영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얼마나 환영해 주고 싶었는지 눈이 다 뒤집어져 있었다.

       

       수는⋯⋯ 70 정도.

       

       외부 세력을 쫒아내기 위해서 모인 걸까? 아니면, 한 따까리 해 보자는 건가. 

       

       어떻게 나오나 가만히 보고 있으니, 올백 머리를 한 중년인 하나가 창을 꼬나쥐고 우리를 겨누었다.

       

       “너희들은 너무 설치고 다녔어.”

       

       후자로군. 정말로 인심 좋은 동네가 아닐 수 없었다.

       

       중간에 보석을 챙긴 빡빡이도 눈에 들어왔다. 전투가 끝나면 다시 챙겨야겠다.

       

       혼자였더라면 도망쳤으리라. 중간에 흑마법사라도 끼어 있으면 불의의 일격에 당해버릴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니까. 

       

       하지만 이쪽에는 마탑주가 있었다. 여차하면 모든 것을 엎어버릴 수 있는 최강의 창이다. 든든했다. 

       

       육탄전의 달인인 핑발레즈도 내 앞을 지켜주고 있었다. 

       

       그렇다면 든든한 전위와, 만약의 사태에 대한 보험이 확보된 상태의 마법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답은 간단하다.

       

       나는 로브 안주머니에서 시약 세 병을 꺼내 바닥에 흩뿌리며 영창했다. 적, 청, 녹색의 시약이 어지러이 섞이며 지면을 따라 뻗어나갔다. 

       

       마법이 공간을 잠식하며 가두고, 사물의 표면에 문이 나타났다. 평범한 목재부터 시작해서 쇠창살로 된 문까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온갖 형태의 문들. 영창 완료.

       

       “천 개의 문, 천 개의 계단, 눈 둘 곳도, 마음 둘 곳도 없는 미궁. 『답문승계(踏門昇界)』.”

       

       거의 모든 것.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자, 여러분. 이쪽을 봐 주십시오. ~상편~ 이니 ~중편~ 이니 하는 구분은 없었던 겁니다. 알겠죠? 해당 회차는 처음부터 숫자 넘버링이었습니다.
    아이, 저는 상중하로 마무리 될 줄 알았죠⋯⋯. 쪼매 더 이어지겠습니다. 그러면 내일 또 보죠! 아듀, 마이 프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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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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