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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5

       본래 미궁이란 돈은 되지만 위험하고, 준비할 것도 많은 곳이다.

       

       하지만 베니는…아니, 그림자 괴물의 존재는 그런 미궁을 소풍처럼 만들어 버릴 정도로 유용했다.

       

       “잘한다~ 잘한다~”

       

       멀리서 손을 흔들며 응원하자, 베니가 조용히 하라는 듯 팔을 휘적인다.

       

       그러면서도 입꼬리는 씰룩이는 것이 싫지 않은 모양이지만.

       

       베니로부터 시작된 그림자가 길게 뻗어 은밀하게 코볼트의 발밑을 차지한다. 그리고.

       

       콰지직.

       

       “코고곡!”

       “코, 코볼…!”

       

       늪에 빠진 것처럼 통째로 삼켜지는 코볼트. 몇 번을 봐도 신기하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언가 으스러지는 무자비한 저작음이 들려온다.

       

       꽤나 그로테스크한 느낌. 하지만.

       

       뿅.

       

       다시 베니의 발밑으로 돌아온 그림자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부산물의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키야! 지금껏 짐꾼 없이 단둘이서만 파티를 꾸렸던 이유를 알겠네요! 전부 베니가 대단해서 그런 거였어요!”

       

       “흐, 흥! 나 정도 되면 당연한 일이야.”

       

       가슴을 쭈욱 펴고 그리 우쭐대는 베니. 그 모습에 키득이며 가볍게 기지개를 켰다.

       

       “읏차차. 그래도 덕분에 마지막은 좀 편했네요. 이제 슬슬 지상으로 올라갈까요?”

       

       “지, 상?”

       

       엣헴 엣헴 거리다 멈칫한 베니. 그런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오늘은 여기까지라고 했잖아요. 베니도 마지막으로 보여준다고 한 거고.”

       

       뭐어. 마지막이라고 했지만 내 반응에 들떠 벌써 몇번이고 보여줬지만 말이다.

       

       “베니가 평생 제가 잡은 몬스터를 해체해 줬으면 하는데 말이죠. 아, 리디아 님은 평생 저를 지켜주실 거죠? 그렇죠?”

       

       “…하아.”

       

       “으윽…파티 브레이커….”

       

       너무 베니만 띄워준 것 같아 리디아도 칭찬해 줬건만, 어째서인지 한숨을 내쉬는 리디아.

       

       베니 또한 아까까지 그렇게 기분 좋아 보이더니 지금은 또 질색한 표정이다.

       

       괜히 삔또 상해 툴툴거리며 앞장섰다.

       

       “흥흥. 됐어요. 저한테는 엘리가 있거든요?!”

       

       오늘은 엘리를 뭐로 놀릴까 고민하며 길을 찾는 사이. 베니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미궁을 나오면 내 공방에 들른다고 했잖아. 까먹었어?”

       

       “아.”

       

       그러고 보니 오늘 일은 어디까지나 2층 맛보기 겸, 내가 어떤 식으로 싸우고 마법을 얼마나 잘 다루는지 보기 위함이었지.

       

       어깨를 추욱 늘어뜨리고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리디아를 돌아보았다.

       

       “리디아 님. 리디아 님. 제가 사악한 마녀에게 납치당하게 생겼는데 도와주시지 않을 건가요?”

       

       “그러네. 친구 없는 마녀가 발랑까진 꼬맹이에게 홀랑 넘어가 탈탈 털리지 않도록 같이 가야겠어.”

       

       “너무해요! 제가 베니에게 바라는 건 기껏해야 자동 파밍 시스템이랑, 돈이랑, 마법이랑, 놀리는 재미뿐인걸요!”

       

       “우, 우린 친구가 아니었어 리디아?! 그리고 요나 너는 누가 봐도 탈탈 털어먹을 생각이잖아!”

       

       뺴액 소리 지르는 베니. 그녀의 그림자 위로 솟아오른 괴물이 날카로운 이빨을 딱딱이며 즐거워했다.

       

       말을 전부 알아듣고 즐거워할 정도의 지능이 있다는 건가.

       

       아니, 애초에 저 그림자 괴물의 재료는 사람이라고 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는 몰라도 지능이 높은 게 당연한 일이겠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망설이지 않는 길 찾기 스킬에 정신을 집중시켰다. 안전지대가 멀지 않았다.

       

       ***

       

       “…2층이 좋긴 좋네요.”

       

       안전지대의 비석을 통해 올라온 지상. 오늘의 전리품을 팔고, 공헌도에 맞춰 정산하고 보니 꽤 많은 돈이 들어왔다.

       

       32실버.

       

       짧게 한 바퀴 돈 것으로 얻은 수익치고는 상당한 금액이다.

       

       물론, 이 중 대부분은 코볼트의 부산물이 아니라, 녀석이 들고 있던 곡괭이의 날 부분의 가격이지만.

       

       잡철이라도 미궁에 그대로 가져갈 수 있는 소재다. 1, 2층의 모험가를 위한 장비를 만들기엔 안성맞춤이겠지.

       

       마음만 먹으면 미궁산 철의 순도를 높이는 것도 가능하다고 들었으나….

       

       미궁산 철의 농도를 높이기 위해 온갖 노오오력을 들이는 것보다, 조금 더 주고 더 좋은 재료를 사는 게 이득이라 잘 안 한다고 들었다.

       

       당장 한층 높이 올라간 3층에서는 철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단단한 합금이 쏟아져나오잖나.

       

       그 외에도 몬스터의 신체 일부, 멸신전쟁의 잔해, 권능이 깃든 물건 등등.

       

       미궁에서 철은 유용하지만, 그렇게까지 대단한 물건은 아니라고 한다.

       

       아무튼 오늘 얻은 돈은 나중에 가챠 돌리는 데 쓰기로 하고….

       

       품에 돈주머니를 넣은 뒤, 리디아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리디아 님. 요즘 저만 봐주느라 미궁에서의 수익이 거의 없는 것 같은데 괜찮으세요? 엘리한테 받은 의뢰금도 다 떨어지셨을 텐데.”

       

       리디아는 극한의 장비충이다. 무구는 물론이요, 온갖 마법이 인챈트 된 아티팩트, 그리고 소모품까지 항상 최고로 유지하려 드니까.

       

       당연히 그만큼 지출도 많다. 고위 모험가씩이나 되면서 미궁도시에 이렇다 할 거점이 없는 것도 그래서고.

       

       많이 벌고, 많이 쓰는 리디아가 나를 봐주겠답시고 한동안 못 벌었으니 빚이라도 생기는 게 아닐까 불안해지더라.

       

       내 말에 리디아가 희미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이제 베니도 왔으니까 가끔씩 중층부에서 용돈벌이하고 올 예정.”

       

       “뭐어? 내 의견은 묻지도 않고?”

       

       “그럼 심층에 갈 거야?”

       

       “…아니. 나도 조금 알아봐야 할 일이 생겨서 그렇게 미궁에 몰두하기는 힘들 거야. 중층이 딱 좋네.”

       

       이쪽을 힐끔거리며 그리 말하는 베니.

       

       알아볼 일이라는 건 그림자 괴물이 나를 좋아하는 이유. 그리고 그림자와 동화되어 일어나는 침식 현상을 억제할 연구겠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베니의 옆. 조금 더 정확히는 아까부터 기웃기웃 그림자에서 눈동자만 내미는 괴물의 옆에 섰다.

       

       “아무튼 저는 이제 약속대로 베니 따라갈게요. 리디아 님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같이 오실래요?”

       

       “됐어. 나는 엘리 선배랑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요정과 은화로 갈게.”

       

       고개를 저은 리디아가 베니 쪽을 향해 입을 열었다.

       

       “베니. 요나를 너무 오래 데리고 있으면 엘리 선배가 무서워지니까 적당히 하고 풀어줘.”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어. 오늘은 본격적으로 뭘 하려는 게 아니라 가볍게 알아보는 정도에서 끝낼 거니까.”

       

       “응. 그리고 요나에게 손대도 큰일 나.”

       

       “그럴 생각 없거든?!”

       

       “아무리 베니라도 화낼 거야.”

       

       “정말 그럴 생각 없다니까!”

       

       빼액 소리치고는 이쪽을 노려보는 베니. 방금까지 그림자 괴물의 눈동자를 콕콕 찔러보던 입장에서는 참으로 귀엽기 그지 없는 모습이었다.

       

       베니의 오해 섞인 원망을 받아내며 리디아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럼 나중에 봐요.”

       

       “응.”

       

       “의문의 영상 기록 수정구가 도착해도 놀라지 말구요.”

       

       “…응?”

       

       판 대륙에는 영상 편지 개념이 없는 걸까.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리디아.

       

       그런 그녀의 모습에 한차례 낄낄대고서야 헤어졌다.

       

       그림자 괴물의 촉수 위에서 균형 잡는 놀이를 하며 한숨만 내쉬는 베니에게 물었다.

       

       “그럼 이제 출발하죠. 베니의 공방은 어디인가요?”

       

       “하아. 도시에서 꺼내면 다들 불안해하거나, 심하면 신고까지 하니까 우선 집어넣을게.”

       

       그리 말하고는 그림자 괴물을 향해 손을 까딱이는 베니.

       

       “들어가 있어.”

       

       -…….

       

       “아, 잠깐만 들어가 달라니까?”

       

       -…….

       

       “야! 또 나 잡혀가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크릉.

       

       듣기 싫다는 듯 고개를 휙! 돌리는 그림자 괴물. 녀석의 촉수를 살살 쓰다듬으며 말했다.

       

       “수고했어. 그런데 집에 갈 때까지 잠깐 들어가 있어 줄 수 있을까?”

       

       -…….

       

       이쪽을 빤히 바라보던 그림자 괴물이 다시 그림자 속으로 잠수하듯 몸을 숨겼다.

       

       그 모습에 베니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을 더듬었다.

       

       “너, 너 그거 어떻게…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내 말은 하나도 안 듣더니!”

       

       분하다는 듯 그림자 위에서 콩콩 발을 구르는 베니. 그렇게 한참을 분풀이한 뒤에야 씩씩대며 앞장선다.

       

       “따라와! 여기서 그렇게 멀진 않으니까 금방일 거야!”

       

       “넹. 그나저나 가는 길에 샌드위치 하나 사 가도 될까요? 미궁에서 막 올라온 터라 배를 좀 채우고 싶은데.”

       

       “…내가 만들어 줄 테니까 그냥 와!”

       

       “오. 그건 좀 궁금하네요. 빨리 가죠!”

       

       베니의 등 뒤에 찰싹 달라붙어 길을 걸었다. 그렇게 얼마나 이동했을까. 어느새 한적한 거리에 도착해 있었다.

       

       상업지구라고 하기에는 아무것도 없고, 거주지구라고 하기에는 묘하게 느낌이 다르다.

       

       “여기가 공방지구군요.”

       

       “응. 대부분은 공방 연합의 장인들이 차지했지만, 구석에는 나 같은 무소속 모험가의 공방도 있어.”

       

       “다른 마법사는 공방지구의 공방을 잘 안 쓰는 건가요?”

       

       “대부분의 마법사는 마탑에 소속되어 있잖아. 마탑 안에서 공방을 제공해 주는데 굳이 비싼 돈 들여 집 한 채 장만할 이유가 있겠어?”

       

       “…혹시 베니의 공방은 베니의 소유인가요?”

       

       “당연한 거 아냐? 마탑이 아닌 이상 공방 같은 걸 누가 빌려준다고…아, 혹시 리디아가 집이 없으니까 나도 없다고 생각한 거야?”

       

       “네, 뭐어.”

       

       “나랑 리디아랑 똑같은 취급하지 말아 줄래? 제대로 관리하고 있으니까!”

       

       그리 말한 베니가 성큼성큼 걸어가 적당한 크기의 건물 앞에 멈춰 섰다.

       

       “여기야!”

       

       “과자로 된 집이 아니네요?”

       

       “…넌 대체 마법사에 대해 무슨 환상을 지닌 거야?”

       

       마법사라기보다는 마녀를 향한 편견이지. 머리에 쓴 고깔모자가 잘 어울려서 그런 거다.

       

       “에휴. 아무튼 들어오기나 해. 조금 더럽지만 그럭저럭 참을 만할 테니까.”

       

       철그럭.

       

       무슨 마법이라도 걸려있는 건지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자물쇠를 열고 들어가는 베니.

       

       그녀를 따라 나 또한 안쪽에 발을 내디딘 순간.

       

       콰아아-!

       

       시야를 가득 채운 그림자가 내게 몰려들었다.

       

       “꺄아아악!”

       

       요나 살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살려주새오…

    제가 오늘 새벽부터 몸 상태가 굉장히 좋지 않습니다…

    오늘은 어떻게든 쓰긴 했지만, 내일이랑 모레는 잘 모르겠네요. 일단 병원 다녀와서 약 타왔으니 그거 먹고 푹 자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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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5

EP.95





       본래 미궁이란 돈은 되지만 위험하고, 준비할 것도 많은 곳이다.


       


       하지만 베니는…아니, 그림자 괴물의 존재는 그런 미궁을 소풍처럼 만들어 버릴 정도로 유용했다.


       


       “잘한다~ 잘한다~”


       


       멀리서 손을 흔들며 응원하자, 베니가 조용히 하라는 듯 팔을 휘적인다.


       


       그러면서도 입꼬리는 씰룩이는 것이 싫지 않은 모양이지만.


       


       베니로부터 시작된 그림자가 길게 뻗어 은밀하게 코볼트의 발밑을 차지한다. 그리고.


       


       콰지직.


       


       “코고곡!”


       “코, 코볼…!”


       


       늪에 빠진 것처럼 통째로 삼켜지는 코볼트. 몇 번을 봐도 신기하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언가 으스러지는 무자비한 저작음이 들려온다.


       


       꽤나 그로테스크한 느낌. 하지만.


       


       뿅.


       


       다시 베니의 발밑으로 돌아온 그림자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부산물의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키야! 지금껏 짐꾼 없이 단둘이서만 파티를 꾸렸던 이유를 알겠네요! 전부 베니가 대단해서 그런 거였어요!”


       


       “흐, 흥! 나 정도 되면 당연한 일이야.”


       


       가슴을 쭈욱 펴고 그리 우쭐대는 베니. 그 모습에 키득이며 가볍게 기지개를 켰다.


       


       “읏차차. 그래도 덕분에 마지막은 좀 편했네요. 이제 슬슬 지상으로 올라갈까요?”


       


       “지, 상?”


       


       엣헴 엣헴 거리다 멈칫한 베니. 그런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오늘은 여기까지라고 했잖아요. 베니도 마지막으로 보여준다고 한 거고.”


       


       뭐어. 마지막이라고 했지만 내 반응에 들떠 벌써 몇번이고 보여줬지만 말이다.


       


       “베니가 평생 제가 잡은 몬스터를 해체해 줬으면 하는데 말이죠. 아, 리디아 님은 평생 저를 지켜주실 거죠? 그렇죠?”


       


       “…하아.”


       


       “으윽…파티 브레이커….”


       


       너무 베니만 띄워준 것 같아 리디아도 칭찬해 줬건만, 어째서인지 한숨을 내쉬는 리디아.


       


       베니 또한 아까까지 그렇게 기분 좋아 보이더니 지금은 또 질색한 표정이다.


       


       괜히 삔또 상해 툴툴거리며 앞장섰다.


       


       “흥흥. 됐어요. 저한테는 엘리가 있거든요?!”


       


       오늘은 엘리를 뭐로 놀릴까 고민하며 길을 찾는 사이. 베니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미궁을 나오면 내 공방에 들른다고 했잖아. 까먹었어?”


       


       “아.”


       


       그러고 보니 오늘 일은 어디까지나 2층 맛보기 겸, 내가 어떤 식으로 싸우고 마법을 얼마나 잘 다루는지 보기 위함이었지.


       


       어깨를 추욱 늘어뜨리고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리디아를 돌아보았다.


       


       “리디아 님. 리디아 님. 제가 사악한 마녀에게 납치당하게 생겼는데 도와주시지 않을 건가요?”


       


       “그러네. 친구 없는 마녀가 발랑까진 꼬맹이에게 홀랑 넘어가 탈탈 털리지 않도록 같이 가야겠어.”


       


       “너무해요! 제가 베니에게 바라는 건 기껏해야 자동 파밍 시스템이랑, 돈이랑, 마법이랑, 놀리는 재미뿐인걸요!”


       


       “우, 우린 친구가 아니었어 리디아?! 그리고 요나 너는 누가 봐도 탈탈 털어먹을 생각이잖아!”


       


       뺴액 소리 지르는 베니. 그녀의 그림자 위로 솟아오른 괴물이 날카로운 이빨을 딱딱이며 즐거워했다.


       


       말을 전부 알아듣고 즐거워할 정도의 지능이 있다는 건가.


       


       아니, 애초에 저 그림자 괴물의 재료는 사람이라고 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는 몰라도 지능이 높은 게 당연한 일이겠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망설이지 않는 길 찾기 스킬에 정신을 집중시켰다. 안전지대가 멀지 않았다.


       


       ***


       


       “…2층이 좋긴 좋네요.”


       


       안전지대의 비석을 통해 올라온 지상. 오늘의 전리품을 팔고, 공헌도에 맞춰 정산하고 보니 꽤 많은 돈이 들어왔다.


       


       32실버.


       


       짧게 한 바퀴 돈 것으로 얻은 수익치고는 상당한 금액이다.


       


       물론, 이 중 대부분은 코볼트의 부산물이 아니라, 녀석이 들고 있던 곡괭이의 날 부분의 가격이지만.


       


       잡철이라도 미궁에 그대로 가져갈 수 있는 소재다. 1, 2층의 모험가를 위한 장비를 만들기엔 안성맞춤이겠지.


       


       마음만 먹으면 미궁산 철의 순도를 높이는 것도 가능하다고 들었으나….


       


       미궁산 철의 농도를 높이기 위해 온갖 노오오력을 들이는 것보다, 조금 더 주고 더 좋은 재료를 사는 게 이득이라 잘 안 한다고 들었다.


       


       당장 한층 높이 올라간 3층에서는 철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단단한 합금이 쏟아져나오잖나.


       


       그 외에도 몬스터의 신체 일부, 멸신전쟁의 잔해, 권능이 깃든 물건 등등.


       


       미궁에서 철은 유용하지만, 그렇게까지 대단한 물건은 아니라고 한다.


       


       아무튼 오늘 얻은 돈은 나중에 가챠 돌리는 데 쓰기로 하고….


       


       품에 돈주머니를 넣은 뒤, 리디아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리디아 님. 요즘 저만 봐주느라 미궁에서의 수익이 거의 없는 것 같은데 괜찮으세요? 엘리한테 받은 의뢰금도 다 떨어지셨을 텐데.”


       


       리디아는 극한의 장비충이다. 무구는 물론이요, 온갖 마법이 인챈트 된 아티팩트, 그리고 소모품까지 항상 최고로 유지하려 드니까.


       


       당연히 그만큼 지출도 많다. 고위 모험가씩이나 되면서 미궁도시에 이렇다 할 거점이 없는 것도 그래서고.


       


       많이 벌고, 많이 쓰는 리디아가 나를 봐주겠답시고 한동안 못 벌었으니 빚이라도 생기는 게 아닐까 불안해지더라.


       


       내 말에 리디아가 희미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이제 베니도 왔으니까 가끔씩 중층부에서 용돈벌이하고 올 예정.”


       


       “뭐어? 내 의견은 묻지도 않고?”


       


       “그럼 심층에 갈 거야?”


       


       “…아니. 나도 조금 알아봐야 할 일이 생겨서 그렇게 미궁에 몰두하기는 힘들 거야. 중층이 딱 좋네.”


       


       이쪽을 힐끔거리며 그리 말하는 베니.


       


       알아볼 일이라는 건 그림자 괴물이 나를 좋아하는 이유. 그리고 그림자와 동화되어 일어나는 침식 현상을 억제할 연구겠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베니의 옆. 조금 더 정확히는 아까부터 기웃기웃 그림자에서 눈동자만 내미는 괴물의 옆에 섰다.


       


       “아무튼 저는 이제 약속대로 베니 따라갈게요. 리디아 님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같이 오실래요?”


       


       “됐어. 나는 엘리 선배랑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요정과 은화로 갈게.”


       


       고개를 저은 리디아가 베니 쪽을 향해 입을 열었다.


       


       “베니. 요나를 너무 오래 데리고 있으면 엘리 선배가 무서워지니까 적당히 하고 풀어줘.”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어. 오늘은 본격적으로 뭘 하려는 게 아니라 가볍게 알아보는 정도에서 끝낼 거니까.”


       


       “응. 그리고 요나에게 손대도 큰일 나.”


       


       “그럴 생각 없거든?!”


       


       “아무리 베니라도 화낼 거야.”


       


       “정말 그럴 생각 없다니까!”


       


       빼액 소리치고는 이쪽을 노려보는 베니. 방금까지 그림자 괴물의 눈동자를 콕콕 찔러보던 입장에서는 참으로 귀엽기 그지 없는 모습이었다.


       


       베니의 오해 섞인 원망을 받아내며 리디아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럼 나중에 봐요.”


       


       “응.”


       


       “의문의 영상 기록 수정구가 도착해도 놀라지 말구요.”


       


       “…응?”


       


       판 대륙에는 영상 편지 개념이 없는 걸까.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리디아.


       


       그런 그녀의 모습에 한차례 낄낄대고서야 헤어졌다.


       


       그림자 괴물의 촉수 위에서 균형 잡는 놀이를 하며 한숨만 내쉬는 베니에게 물었다.


       


       “그럼 이제 출발하죠. 베니의 공방은 어디인가요?”


       


       “하아. 도시에서 꺼내면 다들 불안해하거나, 심하면 신고까지 하니까 우선 집어넣을게.”


       


       그리 말하고는 그림자 괴물을 향해 손을 까딱이는 베니.


       


       “들어가 있어.”


       


       -…….


       


       “아, 잠깐만 들어가 달라니까?”


       


       -…….


       


       “야! 또 나 잡혀가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크릉.


       


       듣기 싫다는 듯 고개를 휙! 돌리는 그림자 괴물. 녀석의 촉수를 살살 쓰다듬으며 말했다.


       


       “수고했어. 그런데 집에 갈 때까지 잠깐 들어가 있어 줄 수 있을까?”


       


       -…….


       


       이쪽을 빤히 바라보던 그림자 괴물이 다시 그림자 속으로 잠수하듯 몸을 숨겼다.


       


       그 모습에 베니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을 더듬었다.


       


       “너, 너 그거 어떻게…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내 말은 하나도 안 듣더니!”


       


       분하다는 듯 그림자 위에서 콩콩 발을 구르는 베니. 그렇게 한참을 분풀이한 뒤에야 씩씩대며 앞장선다.


       


       “따라와! 여기서 그렇게 멀진 않으니까 금방일 거야!”


       


       “넹. 그나저나 가는 길에 샌드위치 하나 사 가도 될까요? 미궁에서 막 올라온 터라 배를 좀 채우고 싶은데.”


       


       “…내가 만들어 줄 테니까 그냥 와!”


       


       “오. 그건 좀 궁금하네요. 빨리 가죠!”


       


       베니의 등 뒤에 찰싹 달라붙어 길을 걸었다. 그렇게 얼마나 이동했을까. 어느새 한적한 거리에 도착해 있었다.


       


       상업지구라고 하기에는 아무것도 없고, 거주지구라고 하기에는 묘하게 느낌이 다르다.


       


       “여기가 공방지구군요.”


       


       “응. 대부분은 공방 연합의 장인들이 차지했지만, 구석에는 나 같은 무소속 모험가의 공방도 있어.”


       


       “다른 마법사는 공방지구의 공방을 잘 안 쓰는 건가요?”


       


       “대부분의 마법사는 마탑에 소속되어 있잖아. 마탑 안에서 공방을 제공해 주는데 굳이 비싼 돈 들여 집 한 채 장만할 이유가 있겠어?”


       


       “…혹시 베니의 공방은 베니의 소유인가요?”


       


       “당연한 거 아냐? 마탑이 아닌 이상 공방 같은 걸 누가 빌려준다고…아, 혹시 리디아가 집이 없으니까 나도 없다고 생각한 거야?”


       


       “네, 뭐어.”


       


       “나랑 리디아랑 똑같은 취급하지 말아 줄래? 제대로 관리하고 있으니까!”


       


       그리 말한 베니가 성큼성큼 걸어가 적당한 크기의 건물 앞에 멈춰 섰다.


       


       “여기야!”


       


       “과자로 된 집이 아니네요?”


       


       “…넌 대체 마법사에 대해 무슨 환상을 지닌 거야?”


       


       마법사라기보다는 마녀를 향한 편견이지. 머리에 쓴 고깔모자가 잘 어울려서 그런 거다.


       


       “에휴. 아무튼 들어오기나 해. 조금 더럽지만 그럭저럭 참을 만할 테니까.”


       


       철그럭.


       


       무슨 마법이라도 걸려있는 건지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자물쇠를 열고 들어가는 베니.


       


       그녀를 따라 나 또한 안쪽에 발을 내디딘 순간.


       


       콰아아-!


       


       시야를 가득 채운 그림자가 내게 몰려들었다.


       


       “꺄아아악!”


       


       요나 살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살려주새오...

    제가 오늘 새벽부터 몸 상태가 굉장히 좋지 않습니다...

    오늘은 어떻게든 쓰긴 했지만, 내일이랑 모레는 잘 모르겠네요. 일단 병원 다녀와서 약 타왔으니 그거 먹고 푹 자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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