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95

       비나가 크리스티나에게 볼을 잡힌 채 극지로 끌려가고, 경매장에서 자유의 몸을 얻은 지 대략 한 달이 지나가는 시점.

        나는 오랜만에 참여한 원탁회에서 평소처럼 갤질이나 하는 것이 아니라 보란듯이 자리에서 일어선 상태였다.

        앞선 의제에서 30층의 안정화 작업에 칠현자의 힘을 빌리는 일이나 첸돌이 치안부의 국장으로 부임하는 등 여러 굵직한 사건이 지나갔기에 다들 날이 바짝 서 있었다.

        행정부의 마법사, 특히 치안부 소속의 마법사들에게 의심과 경계의 시선을 한껏 받으면서도 나는 ‘메릴랜드 관의 새로운 동상 디자인’에 대해 열띤 발언을 토해냈다.

       

        “새로 주문할 동상의 디자인에 대해 생활부 측에서 건의 사항이 있습니다.”

        “도둑맞은 메릴린 동상이라면 그냥 기존과 똑같이 만들면 되지 않소?”

        “갈! 아니, 천만의 말씀을!! 이번에 메릴랜드 관 기숙사에 놓을 동상에는 반드시 복사뼈가 드러나 있어야 합니다.”

        “뭐라고……?”

       

        나는 개울가에서 맨발로 들어가 로브가 젖을까봐 끝자락을 움켜쥐고 있는 동작을 자료화면으로 띄웠다.

        오늘만을 위해 밤을 새가며 마법으로 만든 이미지였다.

        30층의 시련도 통과했고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이전보다 높은 경지에 올라섰기 때문일까?

        갤러리에 추천수를 조작하는 것 뿐 아니라 극마법을 응용한 이미지 생성 기능 등을 고루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탄식을 내뱉는 마법사들 사이로 첸돌과 그 부하들이 혹시 또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게 아닌가 골몰하고 있었다.

       

        “외람되오나 저희 칼레이도스는 선현의 이런 자세를 받아드릴 수 없습니다. 위엄이라고는 전혀 없는 모습 아닙니까.”

        “재무부에서도 반대입니다. 기존과 다른 양식의 조형물 제작은 정해진 예산을 초과할 가능성이…….”

        “본인이 직접 허락한다면요?”

        “예?”

        “칼레이도스 측에서 제게 통신수정 하나만 넘겨 주시면 바로 설득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예산 역시 걱정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석공에게 기술을 배워 복사뼈만큼은 직접 조각할 생각이니…….”

        “잠깐! 당신이 그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어!? 지금 메릴린 님께서…… 읍읍!”

       

        장판파에 선 장수처럼 차례로 반대 의견을 격파한 나는 훌륭하게 새로운 동상에 원하던 디자인을 넣을 수 있었다.

        지루한 회의에서 쌓이던 스트레스가 확 날아가는 듯 했다.

        원탁회에 온 목적을 완수했으니 남은 시간은 느긋하게 갤질이나 해야지.

       

        그러나 [솔직히 주딱 존잘일 것 같지 않냐?]라는 제목의 게시물에 한창 개추 500개를 넣던 도중, 재무부에서 꺼낸 다음 의제를 들은 나는 노트를 도로 덮었다.

       

        “재무부에서는 이번 성신제가 성공적으로 개최되도록 대대적으로 예산을 편성할 계획입니다. 그러니 각 부처에서는 대륙 제일의 축제를 빛낼 행사나 기획안이 있다면 저희에게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성신제.

        성신이 대륙에 강림한 날을 축복하는 기간으로 일종의 축일이었다.

        마탑에서도 신성학파를 중심으로 여러 학파들이 부스를 운영하며 친목을 도모하곤 했다.

        성신제 기간에는 학파 간의 적대행위나 시련의 입장이 불가능하며 심한 경우 공공장소에서 ‘메테오’라는 단어를 꺼내는 것조차 금기시되었다.

       

        “저요, 예산이 필요한 곳이 있습니다.”

        “또 당신인가요? 뭐죠?”

       

        모두가 평화에 몸을 맡기는 시기를 내가 질색하는 이유는 이때만 되면 갤러리에 끔찍한 변고가 생기기 때문이었다.

        일반적인 남녀라면 당연한 만남이 갤러리 유저들에게는 그야말로 발작버튼과도 같다.

        심해 아래에 서식하는 분탕들에게는 더욱이.

        재무부가 성신제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겠다는 것은 갤러리의 최고 관리자를 끌어내리겠다는 것만큼이나 위협적이었다.

       

        “기숙사 입구에 외부인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마력 인식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통금도 부활시키고 저녁 6시 이후에 남녀 둘이 손을 잡고 복도를 걷다 적발되면 곧장 치안부가 출동해 대학원에 쳐넣어야 합니다.”

       

        갤러리의 질서를 수호하는 가장 고결한 정의인 주딱으로서는 절대 좌시할 수 없는 상황.

        그러나 원탁회에서 나는 단지 일개 기숙사 사감일 뿐이었다.

       

        “첸돌 국장, 치안부는 지금 발의된 생활부의 예산 편성안에 동의하십니까?”

       

        첸돌이 빛의 속도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쉴 새 없이 떨리며 나를 쳐다보는 동공에는 ‘설마 저 저주술사 놈이 또 치안부의 전력을 깎아먹을 술책을 부리는 건가?’라는 의구심이 떠올라 있었다.

       

        “아무래도 기숙사 사감은 성신제 때 마탑의 보안이 허술해질 것을 염려하는 듯 한데,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성신제 때 단 한 명의 커플도 탄생시키지 않겠다는 나의 굳건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재무부장은 당연하다는 듯이 내 제안을 거절하며 말했다.

       

        “이번에는 성신제를 맞이하며 교국에서 사절단이 온다는 모양이니까요. 적어도 무법자 놈들이 설치기에 좋은 환경은 아닐 겁니다.”

       

       

       

        *

       

        ====

        마린이656

        [여러분, 저 성신제 때 짝녀한테 고백할 예정인데 계획 좀 봐주세요]

       

        대미궁 입구에 ‘ㅇㅇ아 처음 본 순간부터 좋아했어, 나의 영원한 반려가 되어줄래?’라고 크게 써놓을 계획인데 성공할 수 있을까요?

       

        — ㅋㅋㅋㅋ 제발 꼭 해라

        — 그대로만 하면 백퍼 성공한다

        — 후기 올리면 바로 념글 보내줌

        — 이제 공지는 누가 해주냐~

        ====

        ====

        마린이656

        [여러분! 저 성공했어요!]

       

        (사진)

       

        오늘부터 1일이에요~

        여자친구랑 알콩달콩 잘 지낼게요

        갤러리 여러분들도 성신제를 맞아서 예쁜 사랑 하시길 바래요!

       

        — ?

        — 이게 웨 성공함

        — 아오, 인싸놈들

        — 또 기만질이지 ㅋㅋㅋㅋ 

        — 혹시 나도?

         ㄴ 나도 ㅇㅈㄹ ㅋㅋㅋㅋ

        — 슬슬 성신제 다가오니까 갤러리 물 더러워지는 게 느껴지네

        ====

        ====

        [파딱은 뭐하냐? 저 새끼 정지 안 먹이고]

       

        설마…… 지.금.갤.러.리.에.이.렇.게.큰.문.제.가.생.겼.는.데.접.속.안.한.건.아.니.겠.지?

       

        — 흐음…….

        — 축제 준비 기간에 사라지는 완장들?

         ㄴ 이거 좀 수상하거든요…….

        — 갤러리 대문이 허전한데 뭐라도 매달려 있었으면 좋겠네~

         ㄴ 파딱의 목 같은 거?

        — 설마 주딱도?

        — 주딱은 아니겠지 난 주딱 믿어

        ====

       

        벌써 시작됐군.

        나는 게시판을 불문하고 곱창나기 시작한 갤러리를 보며 통탄을 금치 못했다.

        학기도 끝났겠다, 축제날도 가까워지겠다 떡밥이 자연스레 성신제로 향하고 있었다.

        그 주축은 평소 갤러리를 쳐다보지도 않는 인싸들이지만 이번만큼은 절대 다수의 기존 유저들도 그들의 분위기에 휩쓸릴 수밖에 없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뒤틀린 마음 속에 댓글을 단 한 녀석처럼 ‘혹시 나도?’같은 희망을 품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축제가 시작되고 전야제에서 많은 커플들인 탄생하는 모습을 보면 이윽고 현실을 깨닫고 그 분노는 기존의 자신들이 속한 사회, 특히 갤러리로 향하게 된다.

       

        이럴 때일수록 파딱들이 나서서 성난 민심을 달래야 하건만.

        일이 바빠지는 시기를 가늠하는데 도가 튼 기존 부품들은 자신들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는줄도 모르고 이때다 싶어 일제히 ‘접속 시간 랜덤’을 외치는 중이었다.

       

        ====

        — 벽력뇌제霹靂雷帝 : 공략대에 중요한 전력이 합류해 당분간 갤러리 관리가 어려울 예정이다

        — 당신께 축복을 : 저도 갑자기 교국 측 사절단을 맞이해야 해서 성신제는 온전히 즐기기 힘들 것 같아요 ( ˃ ⌑ ˂ഃ )/

        — 부엉부엉부엉이 : 부엉부엉

        — 관리자 : 부엉이 넌 또 왜

        — 부엉부엉부엉이 : 30층에 난 구멍 때문에 급하게 내려가봐야 할 것 같…….

        — 관리자 : 올때 메로나

        — 부엉부엉부엉이 : 뭐?

        — 관리자 : 변명하지 말고 나중에 부르면 재깍재깍 튀어와 컨셉도 다시 잡고

        — 부엉부엉부엉이 : …….

        ====

       

        갤러리의 관리란 단순히 분탕을 쳐내는 게 아니다.

        기존 유저들의 불만이 쌓이지 않도록 조절하는 것이야말로 평온한 갤질을 위해 필수적인 덕목이다.

        아직은 괜찮지만 성신제가 시작되면 남들 다 즐거운 축제 때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오르는 수상한 유동’들이 대거 출현할 예정.

        이렇게 되면 성난 민심에 의해 파딱 몇이 화형대에 매달리고 나서야 사태가 진정되는 편이었다.

       

        아무래도 인재가 더 필요했다.

        올해 막 파딱이 된 마리엘과 기계적으로 분탕만 베는 살살이로는 성신제를 무사히 넘길 수 없었다.

        사실 지금 뽑아봤자 어설프게 차단을 난사하다 명을 달리하는 건 정해진 수순이겠지만 그럼에도 해야 한다.

       

        하지만 누굴 뽑아야 하지?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다분하다고는 하나 아무나 임명할 수는 없고 까다로운 나의 기준을 통과하기란 보통 일이 아닌데.

       

        “아, 클락 님! 이쪽이에요!”

       

        고민하며 걷던 도중 마력 승강기를 타는 곳에 도착하자 때마침 어딘가로 올라가려던 세라가 내게 손짓했다.

        별다른 목적지도 없었기에 안으로 들어가니 39층이 눌려 있었다.

        얘가 벌써 여기까지 올라왔나? 

        내 생각을 읽은 듯 세라가 자조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얼마 전에 30층의 시련이 붕괴했잖아요. 덕분에 등반속도가 훨씬 빨라졌어요.”

        “아, 그렇군.”

        “클락 님은 해주학파시죠? 혹시 성신제 때 행사 같은 거 여시나요?”

       

        그럴 일은 없을 걸?

        행사를 망치는 쪽이라면 몰라도.

        라운지는 완전히 망가진데다 치안부의 감시까지 받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조용히 넘어갈 가능성이 높았다.

        내가 고개를 젓자 세라는 그럴 줄 알았다며 자기들은 얼음물 판매 부스를 운영한다느니 아르투르가 옆에서 수인 카페를 열려고 하는데 제발 좀 막아달라느니 하는 부탁을 늘어 놓았다.

       

        적당히 대꾸하며 머릿속으로는 파딱 후보를 물색하던 내가 슬슬 내리려던 찰나, 버튼을 누르는 것을 본 세라가 의아한 듯이 물었다.

       

        “응? 저랑 같은 곳 가는 게 아니셨어요?”

        “39층? 내가 거길 왜?”

        “저야 영락없이 프리나 선배님 만나러 가시는 줄 알고…….”

        “프리나?”

        “네, 얼마 전에 시련에서 나오셨거든요.”

       

        프리나.

        그 이름을 들은 나는 곧바로 눌렀던 층을 취소하고 세라와 함께 39층으로 향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내일 혹은 모레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하루 휴재할 수도 있습니다.
    가능하면 2틀 다 올려보겠습니다.
    오늘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

[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

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