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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5

       

       

       “아하하.”

       

       

       소녀는 웃었다.

       

       아무런 근심과 걱정이 없는 표정으로. 너무나도 즐겁다는 듯 웃었다.

       

       

       [···네 그 독자님, 상당히 위태로워 보이는데?]

       

       “그러게! 내가 말 안 해서 그런가 봐.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걸까?”

       

       

       독자님이 잔뜩 불안해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설마 버림받지는 않았을까. 내가 무언가를 잘못한 걸까.

       

       그런 고뇌를 하는 모습이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버려진 새끼 고양이가 울고 있는 것 같아!”

       

       

       애옹, 애옹.

       

       사람을 향해 살려달라며 울부짖는 새끼 고양이.

       

       도움을 받지 못하면 죽어버리기에 필사적으로 달라붙는 새끼 고양이.

       

       벌벌 떨며 두려워하는 모습이 귀여운 새끼고양이를 연상시켰다.

       

       어떻게든 온기를 찾아 주인공에게 달라붙는 모습이란.

       

       

       “귀여워라. 이래서 독자님이 마음에 든다니까!”

       

       [에휴···.]

       

       

       내가 독자님을 죽일 리가 없는데.

       

       쓸데없이 걱정은 많고, 이것저것 보아온 게 많아서일까.

       

       자기가 교체당할지도 모른다며 두려워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그래도 네가 데려온 영혼이잖나. 조금 잘 대해주는 게 어때?]

       

       “너희가 할 말이야?”

       

       

       소녀는 심통 맞은 얼굴로 고개를 홱 돌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녀석들에게 소녀가 무어라 들을 처지는 아니었다.

       

       그야, 저 녀석들이 하는 꼴이 더 심했으니까.

       

       

       “맨날 회귀니, 뭐니 시간가지고 장난치고. 대전쟁이 보고 싶다면서 탑 하나 세워놓고 종족 하나 다 집어넣은 다음 치고받고 싸우게 하는 놈들이 뭐래.”

       

       [···할 말이 없네.]

       

       “그리고, 너희들도 알다시피 나도 독자님을 죽이고 싶은 생각은 없거든!”

       

       [하긴. 죽일 수 있을 리가 없지. 그 세계를 그렇게 마음에 들어하니까.]

       

       “그야 당연하지. 못 버려. 아니, 안 버려!”

       

       

       이 세계에 침입하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데 버릴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미쳤다고 독자님을 버려?

       

       

       “독자님이 망가져 버리기 전에, 꼭 전부 즐기고 싶단 말이야.”

       

       

       다른 세상에 침입하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이물질을 배제하려는 세계의 특성상, 그냥 들어가기는 불가능하니까.

       

       어떻게든 외부에서 인간의 영혼을 가져오고, 그 영혼과 내 신체를 일부 섞어 침투시켰다.

       

       그래야만 튕겨 나오지 않을 수 있으니까.

       

       그렇게 고생을 해가면서 이 세계에 침투했는데, 금방 튕겨 나가는 건 너무 아깝잖아.

       

       다른 단말을 구하려면 몇백 년이 걸릴지 알 수 없다고. 그럼 의미 없잖아.

       

       

       “뭐, 독자님에게 굳이 버림받지 않았다고 이야기할 필요는 없지만.”

       

       

       독자님이 혼자서 내가 버림받지는 않았을까 착각하는 게 재밌기도 했다.

       

       원래 남자여서 그런가? 독자님은 주인공에게 별다른 생각이 없어 보였거든.

       

       그런데 짜잔. 내가 잠깐 말을 걸지 않았더니, 세상에.

       

       불안감에 주인공에게 붙어 다니는 모습 좀 봐.

       

       그냥 독자님에게 뭐라고 이야기해야 하나 잠깐 고민하느라 대답하지 않았던 것뿐이었는데.

       

       혼자서 반쯤 패닉에 빠진 채로 주인공에게 달라붙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어때? 로맨스도 재밌지?”

       

       [···으음. 인정하기는 싫지만, 꽤 괜찮은데.]

       

       [우리도 한번 해볼까?]

       

       [일단 이거 먼저 좀 보고. 저 세계가 멸망하고 나서 시도해봐도 괜찮겠지.]

       

       

       다른 녀석들이 이 세계에 관심을 가지고, 흥미를 보이는 모습에 콧대가 높아졌다.

       

       유행을 선도하는 존재가 된 기분이었다.

       

       

       “독자님이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까. 기대되네.”

       

       

       주인공과의 거리감이 확 좁혀진 모양이던데.

       

       어떤 행동으로 우리를 즐겁게 해 줄까.

       

       소녀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숨기지 않은 채로, 독자님을 다시금 지켜보기 시작했다.

       

       

       

       ***

       

       

       

       “···좋아. 이 정도면 괜찮겠지.”

       

       “크윽···! 놔, 놔! 내가 이딴 놈들에게···!”

       

       “가만히 있으세요. 사지 멀쩡히 걸어 나가고 싶으면.”

       

       “히익!”

       

       

       이딴 놈이라니.

       

       시우에게 감히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 퉁명스럽게 말했다.

       

       다행히도 자기 잘못을 쉽게 깨닫는, 빌런치고는 제대로 된 놈이었던 모양이다.

       

       그 이후로는 아무 말 없이 우리와 함께 아카데미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많이도 잡았네요.”

       

       “그러게.”

       

       “오늘 잡은 빌런들만 해도 상당수는 될걸요. 상위권은 따 놓은 셈이죠.”

       

       

       이렇게까지 확신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아라크네가 활동을 멈췄더니 사칭범이 나타나기 시작했었잖아.

       

       그럼 아라크네가 활동하고 있으면 무서워서라도 그만두겠지.

       

       게다가, 사칭범들의 집 안에 거미의 문양을 그려놓고 집 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줬더니 다들 몸을 사리기 시작했다는 모양이다.

       

       아라크네의 목표는 언제나 빌런.

       

       지금이야 수가 좀 많겠지만, 아라크네가 다시 활동을 시작할 무렵에는 빌런의 숫자가 다시 줄어들 테니까.

       

       포인트를 얻을 방법 자체가 줄어드는 거다.

       

       그러니 지금 포인트를 벌어두면 상위권은 확정이었다.

       

       

       “믿음직하네, 아르테.”

       

       “물론이죠!”

       

       

       평소와 같은 웃음을 지으며 시우를 바라보았다.

       

       아까와 같은 추태는 부리지 않는다. 나는 완벽하게 진정했으니까.

       

       어제와 오늘 있었던 일은 그저 해프닝일 뿐···.

       

       

       “···그럼, 오늘은 여기서 헤어질까?”

       

       “네?”

       

       

       헤, 헤어진다고?

       

       갑자기?

       

       

       “더 이상 포인트를 벌 필요도 없으니까 말이야. 잠도 모자란 것 같던데. 일찍 들어가서 쉬는 게 낫지 않겠어?”

       

       “그, 그렇···죠.”

       

       

       헤어진다. 유시우와 내가 헤어질 시간이 왔다.

       

       그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후으, 후으···.

       

       아냐, 나는 괜찮아. 그냥 헤어지는 것뿐이잖아.

       

       별다른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야. 그냥 시간이 되었고, 나를 걱정해주며 돌아가서 쉬라고 한 거잖아.

       

       내가 이렇게까지 떨 이유는 없어. 없다고.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이성은 헤어지는 게 당연하다고. 저 발언에 틀린 점은 없다고 나를 납득시키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신체는?

       

       떨어질 시간이라는 걸 깨닫자마자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은 나 자신이 제일 잘 알 것 같았다.

       

       이런 불안정한 상태를 주인공에게 보여줄 수는 없어.

       

       어떻게든 호흡을 억누른 채로, 평소와 같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렇게 해요. 저는 이만···!”

       

       “아르테! 잠깐만···!”

       

       

       무어라 이야기하려던 시우의 말을 듣지 않은 채로 자리를 빠져나왔다.

       

       조금만 더 있었다면 시우에게 이상한 모습을 보여줄 뻔했다. 어쩔 수 없어.

       

       

       “하악, 하악, 하악···.”

       

       

       숨이 가빠졌다.

       

       시우와 떨어져야 한다는 사실에 이렇게까지 정신적으로 몰리다니.

       

       자괴감이 몰려왔다. 강아지나 고양이도 아니고, 이게 뭐야.

       

       

       “후읍···. 후우우···.”

       

       

       어떻게든 호흡을 진정시킨 뒤에 시우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이렇게까지 몰려있다는 사실에 자괴감이 드는 것과는 별개로, 나는 시우를 지켜보아야만 했으니까.

       

       작가님이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른다는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어떻게든 주인공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점차 안정감을 찾기 시작한 호흡을 가다듬으며 시우를 쫓기 시작했다.

       

       

       

       ***

       

       

       

       “맛있다. 맛있다. 미르, 너도 맛있지?”

       

       “그래, 애니. 정말 맛있다.”

       

       

       시체들이 널려있는, 폐허가 된 도시 속.

       

       넝마가 된 후드를 걸친 소녀가 무언가를 계속 입에 집어넣으며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인간도 인간이지만, 마수는 특히 각별하구나. 맛있어, 맛있어···.”

       

       “마수라고 차별해서는 안 돼, 애니. 모두 평등한 게 좋은 거야.”

       

       “응. 알겠어, 미르.”

       

       

       소녀는 입으로 쉴 새 없이 무언가를 집어넣으면서도 계속해서 말했다.

       

       소녀의 입은 하나가 아니었으니까.

       

       

       “···아. 뭔가 또 생겼다.”

       

       “평등해졌다는 증거야, 애니. 걱정하지 마···.”

       

       “알았어, 미르. 네 말은 항상 옳았으니까.”

       

       

       혼자서 대화를 이어 나가는 모습을 사람들이 봤다면 섬뜩하다고 느꼈겠지.

       

       ···아니, 그녀의 모습을 본 순간 지체 없이 도망가거나 죽이려고 했을 거다.

       

       후드 속 소녀의 모습은 사람이라고 보기 힘들었으니까.

       

       

       “···뭔가 이빨이 더 생겼어.”

       

       “고작해야 3급 마수란다, 애니···. 약하기 그지없는 녀석이야. 그렇지?”

       

       “응, 그래. 그렇구나···.”

       

       “세상을 평등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강대한 힘이 필요해. 강대한 힘이.”

       

       

       소녀는 혼자서 계속 중얼거렸다.

       

       강대한 힘이 필요해. 아주 강한 힘이.

       

       계획의 성공을 눈앞에 두고 실패한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소년 탓에 발목이 잡히고, 갑작스러운 강자의 난입에 순식간에 죽어버린 그녀.

       

       우리들이 모두 모여있었다면 그럴 일은 없었을 텐데.

       

       스피라, 미노스, 마르모, 나, 미르, 랑, 라비와 하비. 오비스와 크리스. 에쿠스와 레포.

       

       열 두 명이 모였다면 이야기는 달랐을 거다.

       

       그 괘씸한 거미 녀석들만 아니었다면, 미르가 죽을 일도 없었어.

       

       

       “힘이 부족했어, 미르. 우리는 약했어.”

       

       “···그래, 애니. 우리는 약했지.”

       

       “거미 녀석들만 아니었다면···! 그 녀석들만 아니었다면···!”

       

       

       울분에 차 마수의 뼈를 씹어먹었다.

       

       우리는 약했다. 적들보다 약했다.

       

       그렇기에 죽었어.

       

       우리가 패배했다고 생각하겠지. 강대한 힘에 부서졌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하지만 틀렸다. 우리는 아직 부서지지 않았다.

       

       자그마한 파편이 남아있으니까.

       

       

       “하하. 우리를 죽이지 않은 걸 후회하게 될 거야. ···그렇지, 마르모?”

       

       

       후드를 쓴 소녀가 보따리를 풀어 어렵사리 구한 시체를 바라보았다.

       

       형체가 무너져 신원을 파악하기는 힘들었지만,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이 특징적인 두개골의 형태. 뾰족한 앞니.

       

       여러 번 봤던 사람이니까.

       

       

       “기다려, 친구들. 우리 같이 목표를 달성하러 가자. 내가 금방 갈게.”

       

       

       힘을 갈구하는, 미쳐버린 망령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 님,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Fortissimo 님, 1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언제나 재밌게 즐겨주시면 좋겠네요! 후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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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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