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익! 모른다!”
대충 도망가는 오크 중 한 마리를 잡았더니 냅다 내뱉은 말이었다.
“나,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아무것도 모르는 놈이 도망을 가?”
“취익!”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이 오크가 방울을 무서워한다는 것.
지금까지 내 방울을 무서워 하는 존재는 언데드 밖에 없었다.
몬스터라서 무서워하는 걸까?
스윽 –
방울을 들어 올리니 몸을 떠는 오크.
움찔.
“흔든다?”
“살려달라!”
“그러니까 왜 도망갔냐고.”
눈치를 보던 오크가 떠듬떠듬 입을 열기 시작했다.
“오크샤먼에게는 신비한 힘이 있다.”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이다.
이곳에 와서 유일하게 영감이 뛰어난 놈이었으니까.
영혼을 보지는 못하지만 냄새를 맡을 수 있었던 특이한 놈.
나 또한 냄새를 맡을 때가 있으니, 그걸로 뭔가를 할 수 있기는 할 것이다.
“그놈이 굴락 맞지?”
“맞다! 굴락이 지팡이를 휘두르면 오크가 죽는다. 죽은 오크는 지팡이가 된다.”
“….?”
“취익! 죽음의 예언!”
역시나 네크로맨서와 얽히더니 결국은 안 좋은 길로 빠진 걸까.
대충 설명만 들어보면 저주와도 흡사해 보였다.
“이 새끼 역시 그때 절벽에서 밀어 버렸어야 했어.”
“살려달라!”
“너 말고.”
후회의 감정이 밀려오는 그때, 오크의 영혼이 옆에서 세차게 고개를 젓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는 듯이.
“계속 설명해 봐.”
“취익!”
이놈의 설명이 제법 자세했다.
굴락이 지팡이를 휘두르며 오크를 가리킨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약해지겠군.’
그 죽음의 예언이라는 걸 받은 놈들은 여지없이 죽었다고 설명하는 오크.
이 설명을 들은 클로셀 영감이 한마디를 툭 던졌다.
“죽음을 점쳐주는 것 아닌가? 신비하군, 오크에게 그런능력이 있다니.”
내가 듣기에도 영감님의 말이 더 정답에 가까워 보인다.
아마도 죽을 놈의 냄새를 맡은 것이겠지.
그런데 이것과 나를 무서워하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오크가 다시 한번 설명을 시작했다.
“오크샤먼 굴락, 항상 인간샤먼의 존재를 말했다.”
“나를?”
“도저히 닿을 수 없는 존재. 위대한 영혼과 동행하는 자.”
부르르.
말을 하던 오크가 돌연 몸을 떨었다.
“굴락, 위대한 영혼의 앞에서 숨조차 쉴 수 없었다고 했다.”
이 말을 들으니, 한 장면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굴락을 처음 만났을 때 점사를 봐주었다.
무려 무당이 되고 처음으로 받은 공수.
내 기억으로는 그때 굴락이 바닥에 엎드려 있긴 했었다.
“인간샤먼 크리스, 굴락보다 강하다! 죽음의 예언을 받으면 바로 죽는다!”
“…..?”
“지,지팡이가 되기 싫다! 살려달라!”
그 지팡이라는 게 어떻게 생긴 것인지 상당히 궁금한 순간이었다.
죽은 애들을 지팡이로 만들어?
이걸 들으니 다시 나쁜 길로 빠진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직접 만나는게 제일 빠를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그놈 지금 어디 있는데?”
“말할 수 없다.”
“말하는 게 좋은텐데?”
“최후의 샤먼. 이것만큼은 죽어도 말할 수 없다!”
아까부터 살려달라던 놈이 죽어도 말을 못 한다고 하다니….
최후의 샤먼이라는 말도 찝찝했다.
형제가 있었다는 걸로 기억하는데 말이다.
두 눈을 부릅뜨고 있던 오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취익! 오크는 은혜를 갚는다! 굴락, 때가되면 스승을 찾아간다고 했다.”
“….?”
스승?
오크샤먼에게 스승이 있다면 최후의 샤먼이 아니지 않나?
하지만 곧 나를 쳐다보는 놈의 눈빛에 스승이 누구인지 알아챌 수 있었다.
“나?”
고개를 돌려 영혼을 쳐다 보니 놈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웃긴 것은 두 놈의 생김새가 닮았다는 것.
이놈들도 형제이려나?
“곧 찾아간다! 인간샤먼, 재촉하지 말라.”
“흐음…”
어찌 되었든 큰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놈이었다.
대충 어떻게 할지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이니, 옆에 있던 영혼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 ….
오크새끼 주제에 불쌍한 표정을 짓고 있는 놈.
인간에게 몬스터는 죽여 없애야 하는 존재이니 저런 표정도 당연할 것이다.
“안죽여 임마.”
“취익?”
“얼른 가.”
내 말에 영감들이 나를 쳐다 봤다.
“어디로 가는지 안 물어도 되겠는가?”
“상관없어요. 여기로 가나, 저기로 가나 어차피 만날 거라서.”
내가 말했지만 뜬구름 잡는 소리.
하지만 내 일행은 그런가 보다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분위기였다.
드잔트를 빼고는.
“이상한 오크에 이상한 인간이로군.”
“같이 다니다 보면 늘 있는 일이라네.”
“자네도 크리스에게 점이라는 것을 봐보게나.”
“관심 없다.”
오크와 그를 따라다니던 영혼이 멀어졌다.
그래도 조상의 영혼이 따라다니니,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아니라면 무사히 넘길 터.
굴락에게 무사히 도착하지 싶었다.
“허.”
파라몬 영감의 웃음소리였다.
그것도 기가차다는 듯한.
“자네, 이제는 하다 하다 오크샤먼의 스승이 되었는가?”
“제자를 들일 생각은 없는데요…?”
“대륙의 종족을 모두 동료로 만드는군. 그것도 굉장히 좋은 방법으로 말일세.”
영감님의 눈빛이 느끼해졌다.
보통 나에 대해 오해를 할 때 저런 눈빛을 보내고는 했으니.
“능력을 빼고서라도 자네는 훌륭하군. 기사가 되었으면 참 좋으련만…”
“마법사가 되었어도 훌륭했을 것이네.”
이건 뭐 거의 예쁜 손주를 보는 눈빛이었다.
“한번씩 도와 준것밖에 없어요.”
그렇지 않은가.
엘프 한 번.
교단 한 번.
오크 한 번.
여러 번도 아니고 한번이었다.
오히려 이런 대접이 과한 것이다.
“그렇지는 않아요.”
조용히 뒤에 있던 세레나가 고개를 저었다.
“세계수의 타락은 곧 엘프 전체의 타락을 의미한답니다.”
“당산나무 하나 가지고…”
“다 죽었거나…”
세레나의 얼굴에 슬픔이 깃들었다.
“다크 엘프가 되었을 거예요.”
사연이 많으면 사람이 조용해진다.
파라몬 영감님도 그렇고, 세레나도 그렇다.
언제쯤 다 괜찮아질런지….
“가시죠.”
다시 길을 걸으려다 멈춰 섰다.
잊고 있던 게 생각났기 때문이다.
“미친…알루어드를 두고 왔네.”
흠칫.
“…..”
“….그렇군. 그 친구를 두고왔군.”
내 말에 일행들이 일제히 쭈뼛거리며 멈춰 섰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클로셀 영감님을 제외하고는.
“내가 연락해 두었네.”
“큰일 날뻔했네요. 어디쯤이래요?”
“우리의 목적지만 알려주었네. 해야 할 일이 있는 게 아니었는가?”
나와 루나를 따라다니는 게 알루어드의 일이 아니었던가?
나에게도 별다른 말이 없었다.
“교단에서 뭘 시킨건가요?”
“그걸 왜 나한테 물어보는가?”
“….?”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그럼 저걸 누구한테 물어야 한다는 말인가?
클로셀 영감이 의미 모를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네, 알루어드를 아이에게 보낼 때 말일세.”
“네?”
“뒷짐을 지고 있었다네.”
“제가요?”
공수를 받지는 않았었다.
유난히 아이가 눈에 들어왔고, 도움을 주었을 뿐.
애초에 그런 거 하라고 있는 게 신관들이었으니까.
“보통 그럴 때는 신비한 일이 일어나더군. 그래서 그냥 두었네.”
“…이것도 발복인가?”
왜 그런 것 있지 않은가.
동자신을 받은 무당은 아기의 말투를 닮아간다.
신령의 영향을 받는 것이다.
애동제자때 저절로 노인이나 아기의 말투가 나오는 것과는 다르다.
조금씩 모시는 신령을 닮아간다고도 말할 수 있다.
어쨌든 신제자의 신분을 가지는 게 무속인이니까.
무업을 공부라고도 칭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때, 자고 있던 루나가 일어나며 몸을 바둥거렸다.
“빠!”
“응?”
“조! 우음…”
루나가 무언가를 말하려 하는 듯했지만, 답답해 보였다.
아직 할 줄 아는 말이 별로 없기 때문일 것이다.
“아우으…!루나! 조!”
“루나랑 알루어드랑?”
도리도리.
바둥바둥.
“아우아우!”
루나의 행동에 영감들이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파라몬 영감이 내어깨를 두드렸다.
“아기들은 갑자기 쑥쑥 커 있다네.”
클로셀 영감도.
“성녀의 경우는 많이 빠르지만 말일세. 말을 하려는 걸 보니 빨리 크는군.”
영감들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루나.
루나가 내 등을 툭툭 건드렸다.
“우움…루나, 커!”
“응…?”
“허어…벌써 배웠단 말인가? 방금의 대화에서 배운 것인가.”
“빠! 루나, 커! 자우! 조!”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칭찬?
뭔가 기쁨이 차오르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어색했다.
조용히 품 안에서 과자를 하나 꺼낼 뿐.
“까! 꺄륵!”
영감들이 우리를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보기 좋은 남매로구만.”
“허허.”
***
“곧, 보일 것이네.”
이틀 정도를 걸어온 것 같다.
서두르지 않고 걸어왔으니, 거리가 그렇게 멀지는 않은 셈.
영감의 말이 있고 얼마 안 가 멀리서 성하나가 보였다.
“도착이군.”
성벽 위로 줄 지어 서 있는 왕국의 병사들.
그리고 열려진 성문.
확실히 평화로웠다.
별것 없는 광경이었지만, 유난히 내 시선은 잡아끄는 것이 하나 있었다.
“혹시…”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하르프 왕국의 깃발.
나라를 대표하는 깃발에는 많은 것들이 깃든다.
그 자체가 상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이 상태가 이상했다.
자꾸만 고개를 드는 허전한 느낌.
“하르프 왕국에는 왕이 없나요?”
늦어서 죄송합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