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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5

       유 설의 상태이상에서 당연히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심각한 자기혐오였다.

         

       방금까지 이것은 경쟁이라고…, 착한 척하는 내가 이상한 거라고 나를 몰아세우던 유 설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스스로를 방어하던 유 설은 자기혐오라는 상태이상을 갖고 있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유 설의 상태이상에 내가 당황한 찰나….

         

       “……아.”

         

       서유진을 보고 바보 같은 표정을 짓던 유 설은 이제야 정신을 차린 듯 다시 표정을 굳히더니….

         

       “…비켜.”

         

       그대로 그녀 앞을 가로막고 있던 나를 옆으로 밀었다.

         

       “…….”

         

       그리고는 서유진 앞에서 잠시 멈칫했다가….

         

       스윽.

         

       고개를 숙이고는 그녀의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나는 그런 유 설의 뒤를 따라가 다시 잡을까도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타다닥.

         

       도망치듯 떠나는 그녀의 뒷모습이…, 너무나도 연약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내가 멍하니 유 설의 뒷모습을 보는 사이…, 서유진도 마찬가지로 그녀의 뒷모습을 보다가 중얼거렸다.

         

       “…그랬군요. 설 언니가…, 저를 일부러….”

         

       “…유진아.”

         

       지금 내게 우선순위는 단연코 유 설이 아닌 서유진이었다.

         

       나는 서유진에게 다가가 그녀의 어개를 감싸 주었다. 서유진의 어깨가 잘게 떨리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요. 내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든 건가….”

         

       “그건 다 저 언니가 자기 득표수 올리려는 욕심 때문에 그런 거야. 네 잘못은 없어.”

         

       “…….”

         

       [상태이상 : 미약한 우울증, 미약한 불안장애, 극심한 분리불안.]

         

       나는 계속해서 서유진의 상태이상을 체크했다.

         

       예상과 달리 그녀의 상태이상은 아까부터 아무런 변화도 없는 채였다.

         

       ‘뭐지? 고장 났나…?’

         

       이에 나는 조금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당연히 서유진의 상태이상이 악화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서유진은 내 예상과 달리….

         

       “언니.”

         

       “…응?”

         

       “일단 이건 저희끼리의 비밀로 할까요? 밖에 이 사실이 알려지면 유 설 언니가 무척 곤란할 거예요.”

         

       금세 평온한 얼굴로 돌아오며 오히려 유 설을 두둔하는 말을 꺼냈다.

         

       “그래도 돼…?”

         

       지금 있었던 일을 비밀로 하자는 서유진의 말에 되려 당황한 것은 나였다.

         

       서유진 입장에서 자기를 나락으로 보냈던 유 설이 미울 게 분명할 텐데…, 지금 일을 비밀로 하자는 건 사실상 용서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이에 내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으니 서유진이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시끄럽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요.”

         

       “…아.”

         

       “그보다 언니, 저희 얼른 돌아가죠. 제작진들이 언니랑 설 언니 데려오라고 저 보내준 거 거든요.”

         

       “아…, 그래?”

         

       턱.

         

       서유진은 그대로 내 손을 턱 붙잡고는 나를 이끌고 다시 세트장으로 향했다.

         

       “네, 어서 돌아가요.”

         

       “…그래.”

         

       나는 그동안 서유진이 어리다고만 생각했다.

         

       안하무인에 감정조절 잘 못하고…, 표정도 숨기지 못 하는데다 늘 자기 멋대로였으니까.

         

       하지만 지금 내 손을 잡은 채 앞에서 나를 이끄는 모습은 왠지….

         

       ‘낯설어….’

         

       …나보다 언니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렇게 서유진이 어른스러워 보이는…, 낯선 느낌과 함께 그녀의 뒤를 따라 세트장에 돌아갔다.

         

       “죄송합니다, PD님. 갑자기 제가 너무 놀라서 실수를….”

         

       “아, 아니예요…, 설 양. 저희야말로 민감할 수도 있는 문제를 상의도 안 하고….”

         

       아까 화장실을 박차고 떠났던 유 설은 우리보다 먼저 세트장에 돌아와 있었다.

         

       그녀는 이제 와서 카메라가 걱정되었는지 또다시 가면을 쓴 채로 신PD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신PD 또한 여전히 상황 파악이 안 된 듯한 얼굴로 유 설의 사과에 마주 고개를 숙였다.

         

       그의 표정을 보니 이번 일을 크게 문제 삼을 것 같지는 않을 것 같았다.

         

       이번 주 또 한 번 논란을 피웠다가 잘못되면 나아아 제작진 입장에서도 골로 가는 거니까.

         

       나는 그렇게 조금 안심한 채 서유진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언니, 피곤하죠? 얼른 들어가서 자고 싶네요.”

         

       방금 일은 비밀로 하자는 아까 말은 진심이었는지 서유진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내게 말했다.

         

       이에 나도 그녀의 말에 맞추어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얼른 쉬고 싶네.”

         

       얼른 쉬고 싶다는 말이 거짓은 아니었다.

         

       제작진 놈들은 왜 하필 경연 전날 이런 걸 해서 마음 심란하게 하는 건지….

         

       그래도 다행히 어수선한 분위기를 고려한 제작진 측에서는 예정보다 빨리 우리를 쉬게 해주었고….

         

       몇 시간 후.

         

       “지금부터 나아아 3차 팀 경연 무대를 시작하겠습니다-!!”

         

       …또다시 3차 팀 경연 무대의 날이 밝았다.

         

         

         

         

       **

       

         

         

         

       “와아아아아-!!”

         

       밖에서는 관객들의 함성 소리가 들리고 대기실 모니터에서는 무대를 진행 중인 다른 팀의 모습이 송출되고 있다.

         

       우리 팀의 무대 순서는 마지막에서 두 번째였기에…, 우리는 진작 모든 준비를 마치고 대기실에서 다른 팀의 무대를 보며 리액션을 찍었다.

         

       물론….

         

       “후우….”

         

       “하아아….”

         

       중요한 무대를 앞둔 채라 그런지 우리는 모두 숨 막히는 긴장감에 절여져 있었다.

         

       이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아.”

         

       벌써 3번째로 무대를 서는 것임에도 내 몸을 지배하는 긴장감이 떠날 생각을 않는다.

         

       심장이 평소보다 몇 배는 더 빠르게 두근거리고 등에서는 식은땀이 흐른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에도….

         

       “…….”

         

       꾸준하게 서유진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상태이상 : 미약한 우울증, 미약한 불안장애, 극심한 분리불안.]

         

       여전히 서유진의 상태이상은 변한 게 없었다. 어제 내 방에서 같이 잘 때도 서유진은 별다른 기색을 보이지 않았었다.

         

       지금도….

         

       “후우….”

         

       무대 직전 마인드컨트롤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서유진의 모습은…, 정말 어제일 따위 아무렇지 않다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잖아….’

         

       내 입장에서 생각했을 때 이것은 괜찮을 리 없는 일이었다.

         

       저번 경연 말아먹은 것 때문에 대중들에게 그렇게 욕을 먹었는데…, 그게 다 자기 팀원이 뒤통수 친 거였다?

         

       나였으면 그 배신감에 이가 다 떨렸을 것이다.

         

       요새 변했다고 하긴 하지만 서유진은 여전히 안하무인에 17살로 감정조절이 쉽지 않은 어린 나이다.

         

       나는 그런 서유진이 지금 아무렇지 않다는 듯 행동하니 오히려 더 신경 쓰였다.

         

       이에…,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유진아.”

         

       “네, 언니.”

         

       “잠시 밖에서…, 나랑 얘기 좀 하자.”

         

       자리에서 일어나 서유진을 밖으로 불렀다.

         

       내가 서유진과 대기실 밖으로 나가려 하자 도리어 당황한 것은 박유정이었다.

         

       “…네? 언니, 이제 곧 무대 시작인데 유진이랑 갑자기 어디 가는 거예요?”

         

       “잠시 밖에서 할 말이 있어서. 금방 다녀올 테니 걱정 마.”

         

       “…칫, 무슨 비밀 이야기를 하시려고…. 그러면 얼른 다녀오세요.”

         

       “알았어. 가자, 유진아.”

         

       “네? 아, 넵.”

         

       서유진은 갑작스런 내 부름에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잠자코 내 뒤를 따랐다.

         

       그렇게 나는 서유진과 함께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세트장의 뒤편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는….

         

       “언니, 그래서 할 이야기가 뭐예요?”

         

       “그게…, 유진아, 이거 먹어.”

         

       “…네?”

         

       …품에서 초콜릿을 꺼내 서유진에게 건넸다.

         

       나아아 이번 주차 시작할 때 강형만이 내게 줬던 고급 초콜릿이었다.

         

       서유진은 그것을 받자마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내게 물었다.

         

       “언니…, 이건….”

         

       “…원래는 많았는데 내가 그동안 까먹다가 하나밖에 안 남아서…. 다른 애들한테는 비밀이야.”

         

       무대 직전에 괜한 말을 해서 서유진의 멘탈을 더 흔들 수 없었다.

         

       이에 내가 선택한 것은 바로 하나 남은 초콜릿을 서유진에게 건네는 것이었다.

         

       초콜릿은 먹으면 기분을 좋게 해주는 효과가 있으니까.

         

       의미 없는 일일 수도 있지만…, 나는 이렇게라도 서유진의 기분이 나아졌으면 했다.

         

       그리고 서유진은….

         

       “푸핫.”

         

       내게 건네받은 초콜릿을 바라보다가 작게 웃고는 내게 말했다.

         

       “언니. 어제 일 때문이죠?”

         

       “…어?”

         

       “어제부터 계속 저만 보면 안절부절 못 하셨잖아요. 어제 일로 제가 상처 받으셨을까봐 그런 거 아니에요?”

         

       “그게….”

         

       요즘 부쩍 예리해진 것 같기도 하단 말이야….

         

       내가 대답을 못 하고 우물쭈물하니 서유진이 다시 한번 씨익 웃으면서 답했다.

         

       “근데 언니. 저 정말로 괜찮아요.”

         

       “…정말?”

         

       “네, 이제 아무렇지…,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지만 버틸 만 하고…, 설 언니가 밉지도 않아요.”

         

       “…어째서?”

         

       내가 서유진의 입장이었다면 거짓이더라도 유 설이 밉지 않다고 말 못 했을 것이다.

         

       이에 내가 조심스레 물으니 서유진이 진지한 얼굴을 한 채로 답했다.

         

       “…제가 아이돌이 되고 싶은 만큼 그 언니도 아이돌이 되고 싶었을 테니까요.”

         

       “…….”

         

       “너무나도 절박한 상태면…,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때 제가 예의 없게 군 것도 사실이고요.”

         

       “…….”

         

       “그러니 설 언니의 잘못이 아니라…, 과거 제 자신의 업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아무렇지 않아요.”

         

       이것은 착각인가.

         

       나는 지금 서유진의 눈에 현기(玄機)가 가득 차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만났을 때 서유진과 비교해 보았을 땐 정말 천지개벽 정도의 변화였다.

         

       이에 나는 나도 모르게 서유진의 머리에 손을 올리고….

         

       “…유진이 너, 이제 다 컸구나.”

         

       …그리 중얼거렸다.

         

       그러자 서유진이 내 손을 붙잡고 자기 볼에 부비면서 말했다.

         

       “…언니, 덕분이에요.”

         

       “…….”

         

       그리고는 내 손에 내가 준 초콜릿을 다시 올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근데 언니, 저 최근 3년 동안 초콜릿 먹어본 적 없는데.”

         

       “…어? 그게 말이 돼? 3년간 초콜릿을 먹은 적이 없다고?”

         

       “초콜릿은 당이랑 칼로리가 너무 높으니까요.”

         

       “아….”

         

       확실히…, 초콜릿은 몸매 관리를 해야 하는 아이돌 연습생들에게는 맞지 않지.

         

       이에 나는 당황하여 물었다.

         

       “그래서 다시 돌려주는 거야? 안 먹으려고?”

         

       “아뇨, 그게 아니라…. 먹여주세요.”

         

       “…응?”

         

       “언니가 먹여주는 걸 먹고 싶어요.”

         

       그리 말하는 서유진의 표정은…, 요망하면서도 아이처럼 천진난만했다.

         

       이에 나는 웃으며 초콜릿 포장지를 까 서유진의 입으로 갖다 댔다.

         

       서유진은 그런 내 손목을 붙잡고 내 손의 초콜릿을 자신의 입으로 넣었다.

         

       그리고는….

         

       물컹.

         

       “…!”

         

       말랑한 그녀의 혓바닥으로 내 손가락에 붙은 설탕 가루를 핥았다.

         

       그 말캉한 감각에 요묘한 기분이 들어 내가 잠시 멈칫한 사이 서유진이 초콜릿을 음미하며 말했다.

         

       “…달아요.”

         

       “…….”

         

       “…엄청나게 달아요, 언니.”

         

       초콜릿을 3년 만에 먹은 게 사실인지 초콜릿을 먹는 서유진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그것은 마치…, 무언가에 취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할 정도였다.

         

       그렇게 서유진이 초콜릿을 다 삼키고…, 그녀는 내 손을 만지작대며 말했다.

         

       “아이 참…, 회사에서 초콜릿 이런 거 절대 먹지 말라고 했는데…. 언니가 주는 걸 안 먹을 수도 없고….”

         

       “…미안.”

         

       “아니예요, 언니. 대신…, 책임져 주세요.”

         

       “…뭐?”

         

       “이번 무대에서도…, 다음 경연에서도…, 데뷔를 한 후에도…, 나아아에서 만든 그룹이 해체된 후에도….”

         

       그리 말하는 서유진의 눈동자에는 그러한 미래를 상상하기라도 한 듯 환희로 가득 차 있었다.

         

       “저를 끝까지 책임져 주세요. 저도…, 절대 언니한테서 떨어지지 않을 테니.”

         

       그때였다.

         

       [모든 조건을 충족하셨습니다!]

         

       [지금부터 서유진을 당신의 권속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서유진을 당신의 권속으로 삼으시겠습니까? (Y/N)]

         

       “…!”

         

       갑자기 난생 처음 보는 상태창 알림이 뜨고….

         

       ‘Yes….’

         

       나는 내용도 제대로 읽지 못한 채 무심코 속으로 예스를 외쳤다.

         

       그리고….

         

       [서유진의 특성이 새롭게 추가됩니다!]

         

       “……!”

         

       또다시 새로운 상태창 알림이 울렸다. 이에 나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잠긴 특성이 해제되는 것도 아니고…, 없던 특성이 새롭게 추가되다니.

         

       이런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는 조금 멍한 심정으로 서유진의 상태창을 열어 보았고….

         

       [특성 : 안하무인(眼下無人) – 현재 잠겨 있습니다.]

         

       [특성 : 좌호법(左護法) – 당신은 그분의 은혜를 받고 그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당신은 그분에게 당신의 모든 것을 바치기로 결정했습니다. 당신의 능력, 당신의 몸, 당신의 감정…, 모두 다요. 마(魔)의 하늘이 이룩하는 날 당신은 그분의 발밑에서 모든 영광을 함께 누릴 것입니다!]

         

       [특성 효과 : 나의 하늘, 나의 주인 : 당신은 천마 특성 보유자와 함께 있을 때 모든 스탯이 소폭 상승합니다! 당신은 천마가 스킬을 사용할 때 추가 효과를 얻습니다! 천마를 향한 당신의 집착이 대폭 상승합니다!]

         

       “……에?”

         

       …나는 그녀의 새로운 특성을 보고 멍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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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빚을 갚기 위해 아이돌이 되었습니다.
Status: Ongoing Author:
"What? How much is the debt?" To pay off the debt caused by my parents, I became an id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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