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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5

       정은 시간과 관계없이 들기 마련이다.

       길가다가 만난 고양이와 정이 들 때가 있고. 산책하던 멍멍이가 마음에 새겨질 때도 있으며.

       한 번 먹어본 음식을 잊지 못할 때가 있다.

         

       정이 든다는 건 그런 거였다.

       함께 보낸 시간과 비례하지 않다.

       짧은 시간이라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읏.”

         

       베아트리스는 자신이 지니고 있던 스마트폰을 쉽게 건네지 못했다.

       스마트폰을 아무렇지 않게 돌려주기엔 이미 정이 들어버렸으니까.

       정이 들었다는 표현보다는. 갤러리에 흠뻑 빠졌다는 표현이 맞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베아트리스의 행동은 굼떴다.

         

       스마트폰을 건네는 손은 느릿느릿하고 별로 원치 않는 모양새였다.

       결국 주딱에게 건네긴 했으나. 베아트리스는 허전해진 손에 아쉬워했다.

         

       “아….”

       “손에 이게 들려있지 않으니 허전하죠?”

       “그러네요….”

       “음. 심각한 갤러리 중독이네요. 그럴 수 있죠. 근데 도대체 어떤 글을 주로 읽었길래 재밌어했어요? 한 번 확인해야….”

       “그러지 말아요.”

       “설마 제가 멋대로 보겠어요. 굳이? 갤러리를 확인해서 못 보던 얼굴을 집중적으로 확인하면.”

       “그것도 하지 말아요.”

       “테엥.”

         

       반장난 식으로 말한 주딱과 달리.

       베아트리스는 반쯤 가라앉은 기분으로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

         

       그녀는 주딱에게 스마트폰을 건네지 않을 수도 있었다.

       거절하기엔 충분한 명분이 있었다.

         

       투자한 연구소의 결과물로서 마법 공학 문물을 테스트하기 위함이니. 주딱의 말을 무시할 수 있었다.

       거기에 베아트리스는 주딱과 달리 힘이 있었다.

       여왕은 여왕. 왕국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자.

       주딱이 이런 말을 하는 걸 불경하다며 무시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말을 걸어오는 주딱의 표정은 너무나도… 걱정되는 표정이라.

       베아트리스는 쉽게 거절할 수 없었다.

         

       “요새 제가 꼴불견이었나 보네요….”

       “꼴불견이라기 보단, 조금 방황하고 계셨죠.”

       “…그런가요.”

         

       방황이라는 간단한 단어로 표현하기엔.

       요즘은 너무 최악으로 보냈던 것 같은데.

       반성하는 그녀를 향해, 주딱이 피식 웃었다.

         

       “여왕님 갤질은 재밌었어요? 일을 내팽개칠 정도로?”

       “읏….”

         

       그 정도로 재밌긴 했다. 그러니, 주책없게 갤질에 몰두했지.

       베아트리스는 부끄러움에 시선을 살짝 피했다.

         

       “아. 물론 그냥 놀리는 말은 아니에요. 여왕님의 감상이라고 해야 하나. 이 물건에 대한 솔직한 평가를 듣고 싶은 것도 있거든요.”

       “그랬었죠.”

         

       원래 목적은 물건을 사용하고 감상을 듣기 위함이었으니.

       이면지와 펜을 잡은 주딱을 향해, 베아트리스는 자신의 기분을 말했다.

         

       “재밌긴 했어요. 저는 이게 처음이니까. 왜 사람들이 갤러리에서 활동하는지 알았어요.”

       “그럼 이 물건이 대륙 전체에 퍼진다면?”

       “굉장히 큰… 문제를 야기할 거라 생각해요.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그녀에겐 그만큼 충격적인 물건이었다.

       갤러리라는 축복을. 사람에게 임의로 부여할 수 있는 물건이라니.

       이 만한 물건의 가치를… 과연 측정할 수 있을까.

       평범한 물건이라고 보기엔 어려웠다.

         

       “다만, 마나 배터리로 인해 사용시간이 한정되어있는 점. 배터리를 충전하기 위한 소요… 그걸 해결하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겠지만요.”

       “배터리 문제라. 하긴 그렇죠.”

         

       베아트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요 며칠 동안 배터리를 몇 개나 갈아치웠던가.

       근데 배터리를 달라고. 폭군처럼 말했던 것 같은데.

       배터리주세요. 배터리. 무정하게 말했던 과거의 자신을 떠올리고서, 베아트리스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런 치부는 잊어야지. 잊어야만 한다.

       그녀는 모르는 척 말을 이었다.

         

       “이 물건을 보급한다고 끝이 아니에요. 지속적인 활용을 위한 인프라가 필요할 텐데. 아마… 비용이 많이 들 거라 생각해요.”

       “그 비용은 음. 조금 생각해보도록 하죠.”

       “오센 왕국의 자금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니까요.”

       “그렇죠.”

         

       이걸 오센 왕국의 자금만으로. 대륙에 보급하려고 한다?

       용사와 성녀도 돈으로 팔아치워도 오센 왕국은 파산할 가능성이 다분했다.

       긴 시간이 걸리거나. 다른 해결책이 필요하다.

         

       주딱이 그러한 내용들을 이면지에 적는 동안.

       조용해진 방 안에서 베아트리스는 평소처럼 냉정한 이성을 되찾았다.

       오랜 시간 동안 이어진 갤질로 망가진 이성이 회복되었다.

       그리고 지금의 상황을 온전히 파악했다.

         

       평소에 심한 말을 하지 않는 주딱이 베아트리스에게 직언을 했다.

       주딱이 이렇게까지 말할 정도라면….

       아마 최악에 가까운 모습을 보고 있던 게 아닐까.

       최근의 일상을 엉망으로 보냈다는 생각에 베아트리스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여왕 실격이었다.

         

       “주딱… 저.”

       “말씀하세요.”

       “최근에 제가 그렇게 걱정이 됐나요?”

       “좀 걱정되긴 하죠. 원래 그러지 않았던 사람이 변했으니까. 요새 스트레스가 쌓이셔서 그랬겠죠.”

       “그런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주딱은 펜을 내려놓았다.

         

       “갤질 대신에 제가 좀 도와드리려고요.”

       “어떤…?”

       “스트레스 해소를?”

         

       베아트리스는 의아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주딱이 직접 말인가요?”

       “예 뭐. 거창한건 아니고… 이따가 아침 드시고 제 방으로 와주세요.”

       “…???”

         

       아침 먹고 방으로. 주딱이 직접…?

       진도가 너무 빠른 것 같아요. 주딱.

       그러나 베아트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갈게요.”

         

       아침 식사를 마친 베아트리스의 머릿속에 온통 ‘그 생각’으로 가득 차있었다.

       방으로 오라는 주딱의 단도직입적인 말.

       직접 스트레스를 풀어주겠다는 표현에 꽂혀 있었다.

         

       ‘하지만… 방에 단 둘은 아니겠죠.’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방에 단 둘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를 호위하는 임무를 맡은 용사가 있으니까.

       단 둘이 있게 해달라고 용사를 내쫓지 않는 한. 단 둘 일리가 없었다.

       셋. 거기에 삐약이까지. 한 마리.

       아마 그럴 거라 생각하며, 베아트리스는 주딱의 방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조금 희미하게 그의 목소리가 들린다.

       베아트리스는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역시나 단 둘은 아니었다.

       주딱과 용사. 그리고 깃털을 관리하는 삐약이까지.

       세 명. 한 마리로 이루어진 방 안이지만. 베아트리스는 이상한 물건을 발견했다.

         

       “대야…?”

         

       약간 뜨거운 물이 담겨있는 건지.

       김이 피어오르는 대야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 자리에 어울리는 물건이 아니었다.

         

       “아 이게. 제가 준비한 건데. 족욕이거든요. 혹시 제가 발을 만지는 게 싫으신가요? 실례라거나. 무례한 짓이라거나 그런 이유로?”

       “….”

         

       주딱이… 발을 만진다고?

       맨 발을 맨 손으로 꾹꾹 만진다고?

       베아트리스의 사고가 잠시 멈췄다.

         

       “어… 그건 아니에요.”

       “그럼 침대에 걸터앉아서 발을 이쪽으로 해주세요.”

       “….”

         

       베아트리스는 그가 시키는 대로 침대에 걸터앉았다.

       여기가 주딱의 침대…. 주딱의 향기가 가득해서 계속 의식이 쏠리지만.

       그녀는 이성을 부여잡고 자신의 구두를 벗었다.

       맨발을 내보이는 건 생각보다 부끄러웠다.

       혹시 주딱에게 발이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까.

       설마 냄새가 나는 건 아니겠지?

       아침에 깨끗하게 씻었던가? 그랬던가…?

       발을 씻겨 준다니. 시녀에겐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인데….

         

       온갖 상념이 피어오르지만, 베아트리스는 일단 따뜻한 물에 발을 담갔다.

       온 몸의 긴장이 풀리면서 좋은 느낌이다.

       베아트리스는 자신의 앞에 무릎 꿇은 주딱에게 슬쩍 발을 허용했다.

         

       “…괜찮아요.”

       “아 그래요? 그럼.”

         

       시작할게요. 라는 주딱의 말과 함께 손가락이 발등에 닿았다.

         

       “…!”

         

       베아트리스의 몸이 움찔 떨렸다.

         

         

       ***

         

         

       주딱에게 베아트리스의 갤러리 중독을 치료하는 건 쉬운 일이었다.

       스마트폰을 압수하는 건 쉬운 일이라, 그건 고민거리도 되지 않았다.

       강제로 뺏어도 되고. 설득해도 되고. 어떻게든 가능하니까.

         

       ‘음.’

         

       하지만 주딱에겐 여전히 고민이 있었다.

       갤러리를 빼앗는다고 모든 게 해결되진 않는다.

       갤러리에 푹 빠지는 원인을 그는 잘 알고 있었으니.

         

       ‘도파민 중독이잖아.’

         

       갤러리는 재밌다. 즐겁다. 그것도 아주 쉽고 간편하게 즐거움을 부여해준다. 심지어 무한하게!

       그러니 사람은 침대에 누워서 갤질을 하는 무한 굴레에 빠질 수밖에 없는 구조를 지녔다.

         

       갤러리 중독으로부터 여왕님을 빠져나오게 하려면.

       그냥 스마트폰을 압수하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할 필요가 있었다.

         

       ‘스트레스가 심한 게 문제 같은데.’

         

       스트레스가 심하니까. 갤러리 같은 유흥에 빠지는 거다.

       스트레스가 적었다면 굳이 갤러리에 푹 빠지지 않지.

       밖에서사람들과술마시고놀고연애하는 인싸들이 굳이 갤러리에와서똥글을싸고기분나쁜글을 쓰지 않는 이유와 같았다.

       그들은 밖에서 모든 걸 충족할 수 있으니까.

         

       “음.”

         

       체스를 두는 걸로는 부족했다. 인가

       아니, 요새 연구소에 출근하다보니 같이 노는 시간이 부족해서 그런 건가.

       어떤 방향이든 여왕님에게 갤질을 뺏고. 대신 스트레스를 풀어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주딱은 고민하다가, 한 가지를 떠올렸다.

         

       ‘아. 발 마사지 받고 싶네.’

         

       발 마사지 받고 싶으니까. 여왕님에게 해드리면 어떨까.

       안 된다면 다른 걸로 스트레스 해소를 시켜주면 되는 것 아닌가.

         

       마침 거절하지도 않았고.

       그렇게 싫어하는 표정도 아니다.

         

       그런 흐름으로 주딱은 베아트리스의 발에 손을 댔다.

         

       “읏….”

         

       베아트리스는 흘러나오려는 목소리를 억지로 참았다.

       발을 꽉 붙잡혀서… 손가락으로 꾹꾹 눌리는 건 생각보다 부끄러운 일이었다.

         

       ‘하으…. 투박한 손가락으로 거기 누르는 거… 아….’

         

       두 손으로 발을 꼼짝없이 붙잡혀서….

       생각보다 강하게 눌려지는 감각이….

       베아트리스가 작게 목소리를 흘렸다.

         

       “응….”

       “아파요? 좀 세게 누르긴 했는데. 그만할까요?”

       “아, 아뇨 괜찮아요…. 그대로 해주세요….”

         

       평소와 달라진 목소리로. 묘하게 상기된 목소리로. 베아트리스가 작게 소곤거렸다.

       그만하다니. 그런 건 말이 안 된다.

       발 마사지를 평생 받고 싶은 기분이었다.

         

       짜릿하고 시원하면서…. 기분이 좋아서 중독될 것 같은 느낌….

       발바닥이 손가락으로 꾹꾹 눌릴 때 마다, 눈앞이 찌릿해오는 게….

       베아트리스는 침대보를 손으로 꾸욱 붙잡았다.

       이렇게 마사지를 잘 할 줄이야.

         

       ‘이대로… 어깨가 뭉쳤다고. 그것도 부탁하면….’

         

       그것도 원하는 대로 말해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베아트리스와.

         

       ‘…저도 발 마사지를 받고 싶습니다.’

         

       그 모습을 부러운 눈초리로 지켜보는 카이라가 있었다.

       발이나 어깨가 뭉쳤다. 혹은 피곤하다는 명목으로 마사지를 부탁하면 어떨까.

       카이라의 상상은 불발로 끝을 맺었다.

         

       오센 왕국 최강. 용사가 어깨가 뭉친다? 발이 피곤하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몸에 마나가 그렇게 넘치는데?

       마음만 먹으면 수도를 베어버릴 수 있는 괴물이?

         

       “….”

         

       카이라는 묵묵하게 마사지 받는 베아트리스를 바라보았다.

       부러움과 질투가 담긴 눈빛이었다.

         

         

       ***

         

         

       제국의 황제 크리스는 벌써 갤러리 분탕 모임에 8번이나 참석했다.

       그리고 그 동안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굳이 이야기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으니까.

         

       갤러리가 망하면 제국에겐 손해가 크다.

       갤러리의 존속을 원하는 입장이니, 이들과 반대되는 의견이었다.

       그렇다 해서 이 모임에서 빠져나갈 수도 없었다.

       저기에 있는 절대적인 ‘존재’가 두려웠다.

       그가 지닌 아티팩트 따위로 저 존재를 막아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니 침묵을 고수했다.

         

       참석도 불참도 아닌. 그 중간의 미묘한 스탠스를 고집하면서.

       그는 이번에도 남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저번에 갤러리에 훼방을 놓는다면서 그 일은 어떻게 됐지?”

       “아 그거. 진행 중이지.”

       “항상 진행 중이라는 말만 해대다니. 우습군 우스워.”

       “갤러리를 멸망시킬 놈이 없다면 내가 나서도록 하지.”

       “아. 이번은 나 아니야?”

       “….”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크리스도 상념에 빠졌다.

       갤러리는 모르겠는데. 돈 먹고 튄 주딱의 정강이는 걷어 차주고 싶었다.

         

       ‘주딱 그 망할 놈에게 한 방 먹여주고 싶다만….’

         

       그렇다고 갤러리를 망하게 해버리는 건 리스크가 큰 일 아닌가.

       갤러리를 내버려두고 주딱만 어떻게 못 하나?

       머릿속이 복잡한 그와 달리, 상쾌한 목소리로 누군가가 떠들었다.

         

       “갤질 자체를 못 하도록 방해하면 되는 거 아닌가? 히히. 그럼 망한 거나 다름없잖아?”

         

       광기가 번들거리는 목소리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베아트리스…족욕..헤응응..
    더쓰고싶은게 많은데 못 쓰겠네요… 아쉽슴니닷…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Becoming The Top Moderator Of The Otherworld Board

Becoming The Top Moderator Of The Otherworld Board

I Became The Top Moderator Of The Otherworldly Gallery 이세계 갤러리 주딱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as minding the board 24/7 when I got dragged into another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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