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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5

       며칠 뒤.

         

       예정대로 나와 프란체는 황실과의 회담에 참여하게 되었다.

         

       회담의 주제 두 가지였다. 모르쇠하는 사하라를 어찌할 것인가. 그리고 모옥의 처벌을 어찌할 것인가.

         

       “우선 회담을 시작하기 전에 먼 길을 와주신 데카르트 공작님과 소 공작님. 그리고 공녀님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시작은 황실의 재상이 끊었다.

         

       이 회담을 나누는 원탁에 앉은 사람은 총 여섯.

         

       라인을 제외한 데카르트 공작가의 일원과 황제. 그리고 황태자와 재상까지.

         

       사건에 관계되고,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프란체의 옆에 조용히 서 있다.

         

       “첫 번째 내용입니다. 이번 일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사하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재상은 사하라에서 보낸 전서를 펼치더니, 안의 내용을 읊기 시작했다.

         

       “이번 사태에 관해서 정말 유감을 표하고 싶소. 허나 모옥과 사하라는 전혀 관계가 없소. 그들의 정보 또한 자세히 알지 못하여……”

         

       대충 자기들은 관계없고 이 일에 대해서 자세히 모르니까 알아서 하라는 내용이었다. 귀찮은 일은 피하고 싶다는 건가.

         

       “이는 사하라의 수뇌부가 모옥에 침식당해 벌어진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모옥은 대륙 최강의 길드. 국가 하나를 조종하는 거야 일도 아니니까요.”

         

       일리 있는 말이었다. 무력으로서 대륙 최강인데 나와 초월 마법사 같은 초월자 반열에 있는 자가 마스터로 군림하고 있다.

         

       ‘아무리 국가라고 해도 그 정도 규모면 관리는커녕 잡아먹히지 않기를 기도해야지.’

         

       사하라에서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제국과 모옥 사이에 껴서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 아닌가.

         

       “제가 감히 의견을 올려도 괜찮겠습니까?”

         

       에덴이 손을 들어 물었다. 상석에 있는 황제는 “그리 하시오.”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전쟁은 피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바렌베르크 때와는 사정이 다르니까요.”

         

       제국과 바렌베르크는 국경이 맞닿아있었다. 그렇기에 전쟁을 재빠르게 끝낼 수 있었다.

         

       하지만 사하라와 제국의 거리는 가깝다곤 할 수 없다.

         

       말을 갈아타며 쉬지 않고 달려야 일주일이다. 병력으로 움직인다면 훨씬 더 걸릴 터. 거기에 보급까지 생각하면 벌써부터 어지럽다.

         

       “소 공작의 말에 찬성하네. 제국의 명예를 깎아내린 것에 대하여 분노할 건은 맞지만, 손익을 확실하게 생각해야 하네.”

         

       에덴의 말에 동조하는 황제. 그러나 황태자는 반대였다.

         

       “보복해야 합니다! 감히 제국의 위신을 떨어트리지 않았습니까! 이대로라면 다른 국가들도 페델리안 제국을 무시할 게 뻔합니다!”

         

       강경파라고 말할 수 있겠다. 우릴 건드렸으니 일단 조지고 보자는 쪽.

         

       “진정하시지요, 태자 전하. 여기선 냉철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데카르트 공작은 차갑고 침착했다. 아무리 사하라의 모옥이 가문을 공격했다고 해도 전쟁은 다른 얘기라는 걸 알고 있는 거겠지.

         

       “이번엔 내가 얘기를 꺼내지.”

         

       상석의 황제가 드디어 의견을 꺼냈다.

         

       “우선 전쟁은 피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네. 명예를 챙기는 것에 비해 손해가 막심하니까. 다만, 그들에게 확실하게 보복을 하기 위해 생각한 게 있네.”

         

       모두가 황제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무역 견제네. 사하라와의 무역 금지를 전 국가에 선포하고 이를 어길 시에 제국을 적으로 돌리게 될 것이라고 통보할 걸세.”

         

       괜찮은 작전이다.

         

       사하라는 사막. 무역이 없으면 삶의 질이 현저히 떨어진다.

         

       식량도 식량이지만, 그들이 취급하는 원료나 사치품들을 팔 수 없다는 게 가장 크다.

         

       “찬성합니다.”

       “동의합니다.”

         

       에덴과 데카르트 공작은 받아들였다.

         

       “폐하! 무역 견제는 너무 약하다 생각합니다! 마치 제국이 두려워서 피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쟤는 왜 이렇게 전쟁을 하고 싶어서 난리인 건지 모르겠다. 후방에 있다고 남일이라 생각하는 건가.

         

       “태자. 전쟁은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니야. 바렌베르크 왕국 때와는 달라.”

       “하지만…!”

       “그만. 더이상 전쟁 얘기는 꺼내지도 말도록.”

         

       황태자는 자신의 의견이 묵살당한 게 분한 듯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책임을 회피하는 사하라에 대한 처벌은 이 정도로 마무리 짓도록 하지.”

         

       판결을 내려버렸다. 이 정도면 저 라면 사리 황태자는 그냥 없어도 될 거 같은데.

         

       “그럼 다음 안건입니다. 사하라의 모옥 처리입니다.”

         

       드디어 중요한 얘기가 나왔다. 재상은 말을 이었다.

         

       “데카르트 공녀님을 습격하는 과정에서 모옥의 핵심 전력인 칠성의 여섯이 사망했습니다. 그들의 전력은 상당히 낮아졌을 거라 예상됩니다.”

         

       칠성의 여섯이 사망했다고 해도 모옥은 건재하다. 애초에 핵심은 초월자인 모옥의 마스터니까.

         

       심지어 셀다스에게 들은 바로 소드 마스터나 상위 마법사들이 즐비해 있다고 들었다.

         

       “소수 정예 토벌대 구축을 제안합니다.”

         

       에덴이 말했다. 당연하면서도 최상의 선택지다.

         

       “소수 정예 토벌대라, 전력은 어찌할 생각이지?”

       “저를 중심으로 기사단을 꾸릴 생각입니다.”

         

       음, 너의 힘으로는 한없이 부족할 텐데.

         

       “그거라면 황실도 지원하지. 기사단장을 호출하겠네.”

         

       황실 기사단장. 제국에서 프라이덴 후작, 케일과 함께 3대 강자로 뽑히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래도 부족해.’

         

       아무리 지쳐있었다곤 하지만, 케일도 칠성 최강인 카아락을 상대하지 못했다. 비슷한 수준인 황실 기사단장은 말할 것도 없을 터.

         

       ‘결국엔 물량으로 밀어야 하는데.’

         

       그럼 전쟁과 다른 바 없다.

         

       “당시 전투를 벌였던 진 바렌베르크에게 묻겠네. 데카르트 소 공작과 황실 기사단장을 필두로 토벌대를 구축하면 그들을 이길 수 있겠나?”

         

       황제가 물었다. 당연하게도 나는 고개를 휘저었다.

         

       “불가능합니다.”

         

       심기가 거슬린 에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나는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저 혼자 칠성 넷을 상대하고 백귀… 아니, 동부의 수호자 케일이 둘을 상대했습니다. 여기까진 문제없었습니다만, 카아락이라는 자가 문제였습니다.”

         

       카아락의 이름이 나오자 얼굴이 잔뜩 구겨지는 황제.

         

       “그자는 데카르트 공녀를 습격한 것도 모자라 로아크 남작령에서까지 횡포를 부렸다지.”

         

       아무래도 내가 한 사칭이 잘 통한 듯하다.

         

       “그렇습니다. 그의 움직임을 추측했을 때, 국경을 넘는 과정에서 방해되는 로아크 남작을 처리한 것 같습니다.”

         

       마약 밀수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군. 알아서 처리했다는 건가.

         

       “제국의 공작가를 친 것도 모자라 남작까지 죽였네. 이에 대한 대가는 톡톡히 치러야지.”

         

       그럼 이쯤에서 제안을 할까. 나는 프란체에게 조그맣게 속삭였다.

         

       “공녀님.”

       “왜?”

       “공녀님 차례입니다.”

       “뭐?”

         

       나는 프란체에게 내가 생각한 작전을 얘기했다. 그러자 토끼 눈이 되어 입을 뻐끔거렸다.

         

       “제정신이야?”

       “지극히 제정신입니다.”

       “페델리안 사자 패는…!”

       “제 이름값을 이용하시지요.”

         

       진 바렌베르크를 제국에서 제어할 수 있다. 이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특권으로 다가온다.

         

       페델리안 사자 패 정도야 하나 줄 수 있지. 그 어떤 전력보다 확실한 전력인데.

         

       “저를 믿으세요.”

       “…….”

         

       미간을 구긴 채 나를 응시하던 프란체는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겠어.”

         

       프란체가 손을 들었다.

         

       “제안할 게 있습니다.”

         

       에덴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이쪽을 바라봤다.

         

       “말해보게, 데카르트 공녀.”

       “제 호위기사를 보내 카아락의 처단과 모옥을 제거하겠습니다.”

         

       황제의 눈썹이 들썩였다.

         

       “확실히 진 바렌베르크라면 충분하겠군.”

       “그렇습니다. 그의 말을 들어보니 하루 만에 끝난다고 하더군요.”

         

       나 혼자만 가도 모옥을 초토화할 수 있다.

         

       “그래, 데카르트 공녀의 의견을 받아들이겠네. 진 바렌베르크를……”

         

       프란체가 “조건이 있습니다.”하고 황제의 말을 끊었다.

         

       “조건?”

       “그렇습니다.”

       “말해보게.”

         

       꿀꺽. 프란체의 울대가 넘어가며 긴장이 넘어가는 소리 들렸다.

         

       “페델리안 사자 패를 원합니다.”

         

       쿵! 잔잔한 호수에 거대한 바위를 던진 것처럼 모두가 철렁였다. 이를 알고 있었던 데카르트 공작만이 평안을 유지했다.

         

       “데카르트 공녀! 페델리안 사자 패를 요구하다니, 제정신인가!”

         

       라면 사리 황태자가 윽박질렀다. 그러나 프란체는 가뿐히 무시했다.

         

       “이는 페델리안 사자 패를 받아도 될 정도로 큰 공이라고 봅니다만. 태자 전하가 그리 좋아하시는 제국의 위용을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턱에 손을 짚고 미간을 찡그린 채 심히 고민하는 황제. 옆에 있던 에덴이 소리쳤다.

         

       “프란체 데카르트! 지금 네가 뭘 요구했는지 알고 있는 것이냐!”

       “맞소, 데카르트 공녀! 페델리안 사자 패는 쉽게 받을 수 있는 게 아니오!”

         

       질책하는 에덴과 삿대질까지 하는 황태자. 프란체의 얼굴에는 한치의 미동도 없었다.

         

       ‘그래, 이래야지.’

         

       프란체의 가면은 여기서도 통한다.

         

       “데카르트 공녀, 내 묻겠네. 그대가 페델리안 사자 패를 원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눈을 얕게 뜨고 이쪽을 응시하는 황제. 진의를 확인하고 싶은 건가.

         

       “제가 황실의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습니다. 저를 적으로 돌리면 황실도 같이 적으로 돌리는 거 아니겠습니까? 제가 원하는 건 그것뿐입니다.”

         

       미간에 힘을 준 채 천천히 고개를 주억이는 황제. 황태자와 에덴이 반발하려던 순간…….

         

       “받아들이겠네.”

         

       황제가 승낙했다.

         

       “폐하…!”

       “태자는 조용히 앉아있게.”

       “…….”

         

       쟤는 여기서 어째 찬밥 신세만 받고 있다. 이럴 거면 왜 데려온 건지.

         

       “정말 진 바렌베르크 혼자만 가도 되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흐음…….”

         

       잠시 고민의 시간을 더 가졌던 황제지만, 금방 입을 열었다.

         

       “좋네. 진 바렌베르크를 모옥 토벌대로 파견하지.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즉시 데카르트 공녀에게 페델리안 사자 패를 수여하지.”

         

       성공이다.

         

       데카르트 공작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에덴은 말을 잇지 못했다. 황태자는 눈을 부라린 채 이쪽을 쳐다봤다. 당장이라도 테이블을 엎을 기세인데.

         

       “별다른 지원은 필요 없는가?”

       “괜찮습니다.”

         

       황제는 재상에게 눈길을 주었다. 단번에 알아챈 재상은 즉시 서약서를 적었고, 황제는 거기에 도장까지 찍었다.

         

       “좋네. 이로써 오늘 회담을 마무리하지.”

         

         

       * * *

         

         

       회담이 끝나 공작저로 돌아왔다. 공작은 이미 알고 있었으니 넘어갔으나, 에덴은 달랐다.

         

       “프란체! 대체 무슨 생각으로 페델리안 사자 패를 요구한 것이냐! 반역이라도 꾀할 생각이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서 열불을 토해내는 에덴.

         

       “제 생각이고 폐하도 받아들이셨는데 문제라도?”

         

       그에 프란체는 심드렁한 얼굴로 받아쳤다.

         

       “…자칫하면 공작가 전체가 위험에 빠질 뻔했다. 폐하께서 너그럽게 받아주셔서 다행이지, 아니었다면…!”

         

       푸훗, 프란체가 조소를 터트렸다.

         

       “황제 폐하께서 받아주실 걸 알고 제안한 거예요.”

       “뭐? 그건 또 무슨……”

       “진 바렌베르크를 제국에서 제어할 수 있다. 이게 얼마나 큰 특권인지 모르세요?”

         

       프란체는 한껏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

         

       “후계를 위해 높은 교육을 받으신 소 공작님께서 이런 간단한 것도 모르셨다니, 저는 실망이랍니다.”

         

       이내 피식 웃고는 등을 돌린다.

         

       “저는 소 공작님과 다르게 모든 걸 계산하고 확신이 섰을 때 이행한답니다.”

         

       살살 긁는 걸 보니 그간 쌓인 걸 이렇게 푸나 본데.

         

       “그렇게 느슨해지시면 후계자 자리가 빼앗길지도 몰라요? 좀 더 분발하시길.”

         

       뿌득. 에덴이 주먹을 꽉 쥔 채 이를 악물었다. 분노로 인해 눈밑이 떨려오고 미간이 구겨진다.

         

       “프란체…!”

         

       눈을 부라리며 소리치지만, 에덴이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이 승부는 명백하게 프란체의 완승이었거든.

         

       ‘여기서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계획대로 페델리안 사자 패를 수여 받을 수 있다. 점점 힘이 강해져서 데카르트 가문의 후계를 이을 자격도 생기기 시작했다.

         

       이제 곧 데카르트 공작가에서 가장 뛰어난 건 프란체가 될 거다.

         

       내 컨설팅은 완벽했으니까.

         

       “저는 할 말 없으니 이만 가주셨으면 좋겠네요. 전에도 느꼈지만, 공작님도 말씀이 없으신 걸 혼자 지나치게 행동하시는 걸 보니 소 공작님께서는 오지랖이 심하세요.”

         

       마지막 타격까지 완벽했다.

         

       프란체는 나를 바라보고 윙크를 날렸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올뻔 했다.

         

       ‘진짜 웃긴 공녀님이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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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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