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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5

       

        

        

        

        실전이 아니라 일종의 전투 시뮬레이션이라는 설정을 가지고 있는 에이펙스 프레데터는, 내 과거의 대부분을 각색하여 만들어진 여타 다른, 그리고 많은 다크 존의 컨텐츠와 다르게 내가 실제로 겪어본 적 없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애초에 가장 멀리 나아가봤자 뉴욕에서 캘리포니아, 그러니까 나라 반대편 정도까지만을 – 이것도 상당히 긴 거리긴 하지만 – 작전 반경으로 삼았던 나였기에, 실제로 이런 곳에 가본 적은 없었다.

        

        다르게 말하면, 에이펙스 프레데터에 발을 내딛으면서 내가 여태까지 행했던 모든 전투들은 하나같이 처음 겪는 것이라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걸어온 것은 발자취였고, 동시에 더 높은 곳으로 향하기 위한 주춧돌이었다. 이는 다르게 말해서, 내가 처음 맞닥뜨리는 상황에도 훌륭히 대처할 수 있는 기반이 갖춰짐을 의미했다.

        

        

        위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맞닥뜨리는 유저들의 수준은 눈에 띄게 높아졌다. 자랑처럼 말하고 싶지는 않으나, 내가 아닌 다른 이들이 1등을 하는 경우도 가끔 있었기 때문에….

        

        그러나 참여하는 인원들의 수는 언제나 동일했다. 아무리 위로 올라가더라도 백 명이라는 숫자는 결코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음을 의미했다.

        

        이는 그만큼 개별적인 인원에 대한 시선이 덜 쏠린다는 것을, 그리고 대놓고 눈에 띄지 않는 이상 사람들의 주목도가 빠르게 옮겨감을 의미했다.

        

        당장 나도 나와 마주쳐 죽은 사람들을 일일히 다 세기 어려울지언데, 흥미가 이보다도 빠르게 바뀌는 시청자들은 어떻겠는가.

        

        

        아무튼 그런 것과 관계없이, 나는 언제나 그런 부분을 신경쓰지 않고 임했다. 외부의 시선에 신경쓰는 것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사실 언제나 그랬지만.

        

        이를 다르게 말하면, 음. 매번 마지막인 것처럼 교전에 임한다고 해야 하려나. 아직 KSM도 시작하지 않았고 아시아 예선전은 한참이나 남았건만 벌써? – 하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반드시 그걸 한다는 보장은 없었다.

        

        만약의 이야기지만, 내가 다크 존에 대해서 품고 있는 궁금증들이 지금 당장 전부 해결된다면, 나는 최소한의 마무리 후 미련 없이 이 게임을 그만둘 것이었다. 그것으로 과거를 추억할 터였다.

        

        언젠가는 그렇게 되지 않을까.

        

        

        조금 쓸모없는 말이 길어졌다.

        

        아무튼 지금은 이 날만을 기다려오며 무수히 많은 노력을 해온 다른 유저들을 위해서라도, 그에 맞는 응대를 해줘야만 하지 않을까 – 사실 단순한 핑계긴 했지만서도.

        

        

        

       -[경고 : 현 지역은 3분 37초 후 침수됩니다.]

        

        

        

        잠시 감상에 빠져있었더니, 어느새 바닥이 물로 찰랑찰랑하다. 분명히 얼마 전에도 이런 광경을 본 적 있었던 것 같은데, 데자뷰인가.

        

        구역이 봉쇄되기까지는 앞으로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바닷물은 바깥쪽에서부터 차오르지만 시설 손상을 명목으로 접경 지역도 물이 스멀스멀 들이차는 것이다.

        

        찰박거리는 소리와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죽여줘요….”

        

       “아, 맞다.”

        

        

        

        퉁.

        

        익사하는 것보단 빠르게 로비로 사출되는 게 낫겠지.

        

        나는 한 발로 전투 불능에 빠진 상대방을 편하게 해주었고, 그는 그나마 웃는 표정으로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뭔가 이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게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물이 차오르는 공간을 뒤로 하고, 나는 저 너머로 사라졌다.

        

        오늘도 크게 다를 바 없는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아, 목소리 잘 나오나.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여느 곳이 안 그렇겠냐만은, 프로게이머들의 세계 역시도 하나로 뭉뚱그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했다. 스스로의 신변을 그다지 노출시키고 싶지 않아하는 이들부터 남들의 관심을 먹고 사는 이들, 그 외에도, 그 외에도….

        

        어찌 보면 당연하겠지만, 그 중에서는 시청자들, 또는 팬들과 자주 소통을 시도하는 이들도 충분하리만치 많은 편이었다. 자신들을 봐주는 이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프로게이머란 존재할 수 없는 직업이었으니까.

        

        그리고 여기, 아르카디아 게임즈의 1군, 에블러Evler 역시도 그 중의 한 명-을 넘어, 스트리밍을 통해 자신들의 팬 및 시청자들과 자주 소통하는 비교적 적은 부류의 한 명이었다.

        

        그런 그가, 목요일의 예선 랭크가 끝나자마자 방송을 켰다.

        

        

        시청자들이 하나둘씩 몰려들기 시작했다.

        

        프로게이머라는 것은 사람들에게 스트리머로서 어필할 수 있는 게임 실력이라는 강점을 소유하고 있단 소리였고, 그렇기에 그는 굳이 프로가 아니어도 독립이 충분히 가능한 어엿한 방송인 중 한 명이었다.

        

        에하 – 에블러 하이의 줄임말 – 을 외치며 하나둘씩 채팅창에 안착하는 시청자들. AP 솔로잉 경기의 개막 특수로 인해 평소보다 많은 숫자였다. 대략 2천 명을 넘어서고 나서야 그 수는 점차 안정화되고 있었다.

        

        충분히 시청자가 모이기 전까지 주변잡기에 가까운 이야기를 진행하던 그는,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더니 방제를 바꾸었다.

        

        

        

       -[방제 : 오늘 예선랭크 썰풀이 가자잇!]

        

        

        

        여기부터는 이제 자신의 말솜씨에 달렸다.

        

        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어 본격적인 소통 방송을 개시했다.

        

        

        

       “AP 프로게이머로 활동한 것도 벌써 1년 3개월이네요. 작년에도 AP 솔로잉…뭔가 뭉뚱그려 얘기하는 것 같네. 어쨌든 이걸 하면서 느끼는 건, 매 판마다 어디서 이렇게 잘하는 사람들이 쏟아질까 하는 거죠.”

        

        

        

       -이분도 1년 정도만에 1군 주차한 거 보면 재능충아님?

       -애들 싸우는거 보면 무섭긴 하더라 ㅋㅋ

       -매판매판이 레전드긴 해ㄷㄷ;ㅎ;;

       -대한민국 특전사들 죄다 긁어온게아닐까?

       -팩트)그런것치곤 이사람도 무난히 매판마다 상위권 고정이다

        

        

        

       “아이, 재능충이라뇨. 이 바닥에 재능충이란 건 거의 없어요. 다들 현실이었으면 온 몸에 골병들때까지 연습만 하는 사람들인데. 저도 당장 하루에 열두 시간씩 연습합니다. 가상현실 안 나왔으면 이러다 죽었을걸요?”

        

        

        

        재능충이라.

        

        도대체 저 단어는 어디서 나왔을까. 역사에 남은 유명한 피아니스트도 하루 연습을 빼먹으면 내가 알고, 3일을 빼먹으면 청중들이 안다는 말을 남긴 판에. 숨만 쉬다가 우수한 결과를 거머쥐는 사람이 어딨단 걸까.

        

        세상에 참으로 흔하게 퍼져있는 오해였다. 그러나 지금 단어의 정의 같은 것들을 두고 난상토론을 펼칠 때는 아니었다. 마음 속에 일어난 거스러미를 생각의 파도 속에 떠내려보냈다.

        

        저런 걸 일일히 신경쓰지 않아도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은 참으로 많았으니까.

        

        

        예선 랭크 한 판은…좀 웃기게 설명하면 랜덤 장애물 디펜스였다. 어떤 건 자신이 조금 수월하게 넘을 수도 있었지만, 어떤 건 필사적으로 임해야만 간신히 넘을 수 있었고, 어떤 건…글쎄다.

        

        그걸 넘으라고 만든 건가?

        

        그 의문은 자연스럽게 입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진짜…세상은 연습만으로는 안 되는 걸 매번 뼈저리게 체감하는 것 같습니다. 1등을 한 번이라도 해봤으면 시야가 좀 달라졌을까 싶기도 하고. 이번 4일 동안 최고 등수가 5등이었으니….”

        

        

        

       -그 많은 사람들 중 5등ㄷㄷ;;

       -KSM 충분히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100명이면 널널하지 않나

       -할뚜이따할뚜이따 ㅋㅋㅋㅋㅋㅋ

       -사실 셀렉션매치 이후가 더문제야ㅋㅋ

       -사람 많아서그런지 한판한판이 너무 살벌함….

        

        

        

        그 많은 사람 중 5등이라.

        

        듣기 좋은 말이긴 했지만, 예선 랭크 기간 동안 – 최상위권을 제외하면 – 한 명의 플레이어가 참여하는 평균 토탈 세션 수가 50회에서 65회 가량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한 판은 크게 의미가 없는 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지만, 대회라는 것은 모든 프로들에게 상당한 체력 및 정신력 소모를 강요했다. 특히나 지역 매치에서 아시아 예선전, 그 후 본선인 파이널 챔피언십으로 이어지는 4개월 가량의 강행군 – 원 어보브 올 매치는 더더욱.

        

        언제나 입으로 뱉을 수 있는 말과 그렇지 않은 생각의 양은 많은 차이가 있었다.

        

        

        자연스럽게, 주제는 다른 곳으로 흘러갔다.

        

        에블러의 소속은 아르카디아 게임즈였고, 그 내부에 소속되어있는 1부 및 2부 리그 중 자신처럼 소통을 즐기는 이들의 수는…그리 적지는 않았다. 아무튼 프로게이머란 소통할 수 있는 매체와 가장 가깝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니.

        

        민감한 주제만 아니라면, 그리고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대외적 이미지 향상에 도움이 된다면, 현재 돌아가고 있는 상황 정도는 알려줘도 괜찮았다.

        

        그리고 AP 경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미 알고 있기도 할거고.

        

        

        

       “그래도 아르카디아는 상당히 순항 중이죠. 특별히 부진한 사람도 없고, KSM에 나갈 사람들은 무난무난하게 다 나갈 것 같아요. 워낙 다들 잘 하는 분들이라 그런 것도 있고.”

        

        

        

        한 판당 몇 번이고 같은 프로게이머들을 만날 정도로 높은 수준의 게임이라고 하더라도, 예선 랭크는 결국 또 다른 시작이었다. 다른 나라에서 거르고 거른 인원들을 만나려면 드높은 벽을 두 개나 만나야만 했다.

        

        하나는 요 근래 몇 번이고 말했지만 – 예선 랭크였고, 그 다음은 KSM. 1600명은 고작해야 100명이 되고, 그 후 20명이 된다. 16명 중 한 명만이 살아남은 다음에도 20%만이 남는 것이었다.

        

        지금 누가 잘하고 못하고를 왈가왈부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고 해야 하나.

        

        

        이렇게 숫자의 벽을 실감하고 나면, 자신보다도 잘 하는 사람들이 부러워지기 마련이었다.

        

        프로의 세계에서도 실력의 우위는 갈리는 법이었다. 자신보다 조금 잘 하는 사람, 매번 우수한 성적을 뽑아내는 사람. 이 사람이라면 여유롭게 상위 100명 안에 뽑힐 수 있을 거라고 여겨지는 사람….

        

        그러나 그 중에는, 감히 쳐다보기조차 어렵고 부러워하는 것조차 아이러니로 느껴질 정도의 사람도 있었다.

        

        

        

       <룩ㄱ산난박 님이 까까사먹을 돈 1,000원 후원! 감사합니다!>

       -오늘 경기 돌리면서 뭐가 제일 인상에 남았었어요?

        

       “천 원 후원 감사합니다! 글쎄요. 뭐가 있더라….”

        

        

        

        그리고 도네이션의 내용은 자연스럽게 방금 전까지 생각하고 있던 그것과 화학반응을 일으켜, 그 가지를 사방으로 맹렬하게 뻗힌다.

        

        트리거가 당겨지면, 마치 그것을 실시간으로 다시 겪는 것마냥 – 있을 리 없는 촉감을 포함한 생생한 기억들이 플래시백되어 나타난다. 갑작스레 떠오른 수많은 언어의 파편들이 서로 결합되지 못한 채 필터로 쏟아졌다.

        

        그것을 간신히 추스려 문장으로 만들어 내뱉는 것은 자신의 몫이었다.

        

        

        

       “아, 맞다. 그러고 보니…제 플레이를 유심히 본 분들이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오늘 굉장히 처참하게 죽은 적이 한 번 있었습니다. 눈치가 빠르거나 요즘 AP 솔로잉 경기를 유심히 보는 분들은 뭔 소린지 바로 아실 거예요.”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당연한 수순이었다.

        

        

        

       -아 ㅋㅋㅋㅋㅋ ‘그사람’한테 당해부럿네

       -ㅅㅂㅋㅋㅋ 왜 아무런 지칭 안 해도 알거같지

       -‘꼬리살인마’

       -프로들의 악몽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치겠다 증말 ㅋㅋ

        

        

        

        그럼 그렇지.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대회 랭크가 무사히 종료를 맺은 후 Xi, 그리고 SSM 등에서나 일부 회자되던 그녀 – 유진에 대한 이야기는, 방금 설명했듯 프로계 일부에만 국한되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스크림조차 끝나고 본격적으로 예선 랭크가 막을 올리자, 그녀는…암암리에 돌아다니던 말도 안 되는 소문을 모두의 뇌리에 때려박겠다는 듯 그야말로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아니, 날아다닌다기보단…태풍이라고 해야 하나.

        

        그냥 존재 자체가 거대한 믹서기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어, 예…모르는 분이 없네, 없어. 맞아요. 그 분한테 당했어요. 아주 죽어라 당했죠. 차에 치였어도 그것보다는 몸이 성했을걸요. 이런 말해도 되려나? 제가 리퍼 인펙티드랑도 좀 친하게 지내는데, 거기 미카엘이 아주 호되게 당했잖아요.”

        

        

        

       <김디터민 님이 까까사먹을 돈 1,000원 후원! 감사합니다!>

       -방패와 함께 날아간 남자 미카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이게 사람인지 의심이 되지 않을 수가 없는 수많은 괴담은 하루 단위로 갱신되었고, 고작 한 번 벌어졌어도 올해 예선 랭크에서 벌어졌던 레전드 중 하나로 등극했을 그것은 일일히 세기조차 힘든 태피스트리의 긴 하위 목록 중 하나가 되었다.

        

        그렇게 유진에 대한 온갖 말말말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마치 물꼬를 틀듯 입이 뚫리자 거리낄 게 없어진 것이다.

        

        당연하게도 시청자들의 집중도는 높아졌다. 무릇 건너건너 듣는 것보다 재미있는 것은 당사자가 직접 풀어주는 썰이 아니겠는가. 자신이 아는 모든 걸 전부 털어놓는다. 호응이 없을 수가 없었다.

        

        시작은 어디서 마주쳤는지. 그때 당시 자신의 상황은 어떠했는지. 어떤 선택을 했고 어떻게 당했는지 등등…그렇게 열심히 침을 튀겨가며 일장연설을 퍼붓는다.

        

        

        그렇게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게 될 즈음,

        

        

        

       “…뭐야, 갑자기 사람 왜 이렇게 많아졌지?”

        

        

        

        4,558명.

        

        평균 시청자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인원들이 채팅창 위로 슬금슬금 모이고 있었다.

        

        물론, 그에게만 국한된 일은 아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팀 게임이었다면 어쩌면 이래저래 밸런스가 맞았을지도….

    AP라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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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I Have Returned, but I Cannot Lay down My Gun

귀환했지만, 총을 놓을 수는 없습니다
Score 4.1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Just the fact that I came back couldn’t be the end of ever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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