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Please report if you find any blank chapters. If you want the novel you're following to be updated, please let us know in the comments section.

EP.95

       지난 주말.

        

       나는 최나경 회장을 직접 만나겠다는 생각을, 내 방에 모여 있는 친구들을 향해서 풀어놓았다. 소희는 나의 메이드였기에 주말에도 같은 곳에서 지냈다. 다만 주말에는 메이드 일은 하지 않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어째서인지 주말에도 메이드 복을 입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소희에게, 미성년자를 주말에도 부렸다가는 여기서 더 이상 일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하자마자 바로 태세를 전환했다.

        

       지금은 메이드 복이 아닌, 잘 때 입는 커다란 셔츠와 돌핀 팬츠를 입고 있는 모습이었다.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겠지만, 나는 저 복장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다른 옷을 입으라고 하면 메이드 복을 입을 것이 분명하니 따로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본인이 쉴 때 편한 옷으로 입겠다는데 내가 뭐라고 하겠나.

        

       ……참고로, 어째서인지 아침만 되면 내 옆에서 자고 있는 잠버릇은 변하질 않았다. 그나마 ‘옆에서 자고 있을 뿐’ 뭔가 대단히 불편한 일을 겪은 적은 아니라 다행이긴 하지만. 조심성이 없다고 뭐라고 하려고 해도, 지금 당장 나 자신이 여자인 상태라 씨알이나 먹힐지 모르겠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옆에서 헐렁한 와이셔츠만 입고 있는 여자애가 자고 있다는 것은 그대로 여전히 부담스럽긴 했지만.

        

       아침 이야기를 해서 말인데, 수아도 여전히 저택에서 함께 지내고 있었다.

        

       거의 일주일이 다 되어가는데도 여전히 집에 돌아가지 않는 수아가 걱정되어서 집에 연락은 하지 않냐고 물었더니,

        

       “매일 부모님께 문자 드리고 있으니 괜찮아.”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니, 별로 안 괜찮아 보이는데.

        

       그런 생각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꾹 참았다. 내가 돌아가라고 해도 단호한 표정으로 ‘싫어’라고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수아의 부모님은, 나중에 내가 직접 만나 봐야 할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너무 걱정하시면 안 되니까.

        

       그리고 내 저택에서 함께 지내는 것은 아니지만, 하늘이도 와 있었다.

        

       요즘 하늘이는 자고 가지만 않았지, 방과 후에도 저택에 함께 와서 꽤 늦은 시간까지 있다가 갔다. 한밤중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여자애 혼자 너무 밤에 돌아다니는 것이 아닌가 걱정했더니,

        

       “혜인 언니랑 같이 가서 괜찮아.”

        

       라고 대답했다.

        

       그 대답을 들었을 때는 양혜인이 옆에 없긴 했지만, 나중에 확인해보니 정말로 그런 것 같았다. 하긴, 대놓고 ‘언니’라고 표현할 정도라면 그만큼 가까워질 시간이 있었다는 뜻이겠지.

        

       아니면 하늘이 특유의 친화력으로 먼저 그렇게 부르고 있다거나…… 아니, 생각해보면 여고생이 ‘양혜인 씨’라고 딱 잘라서 부르는 것도 이상하다. 무슨 직장 동료도 아니고. 수아는 양혜인을 부르거나 둘이 대화하는 것을 본 적이 없으니 모르겠지만, 소희는 그냥 편하게 ‘선배’라고 부르는 걸로 봐서 그냥 평범하게 어울리는 호칭을 자연스럽게 붙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매일같이 우리 집을 오가는 친구를 그렇게 배웅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었다. 당장은 별일이 없었더라도, 내가 딱 한 번 최나경을 보고 느낀 단면만으로도 어떤 위험한 짓을 벌일지 모르는 여자 같았으니까.

        

       후에 남다운에게 지나가던 말처럼 들었던 내용을 그저 ‘소문’이라고 취급한다고 해도 그랬다. 최나경은 내가 생각하기에 여전히 위험한 인물이었다.

        

       여자 둘이기는 해도, 어두침침할 때 같이 걸어주는 어른이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어느 정도 안전은 보장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은 아무래도 확실하게 자고 갈 생각인 모양이었다. 토요일, 아침을 먹기도 전인 이른 아침에 찾아온 하늘이의 등에는 이것저것 많이 들어있는 가방이 매여 있었으니까.

        

       지난 3주간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던 나의 일상 패턴은 이제야 이런 식으로 거의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전생의 나라면 상상도 못 했을 일이라고 하고 싶지만, 사실 악역 영애의 몸에 들어와서 그 삶을 대신 살게 된다는 이야기 자체가 보통은 상상도 해보지 않았을 일이다.

        

       아니, 나는 게임 방송으로 봤었으니 상상 정도는 해봤다고 할 수 있을까.

        

       ……뭐,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내가 최나경에게 연락하겠다고 말하자, 친구 두 명은 바로 우려가 가득한 반응을 보였다.

        

       “…… 진짜로 할 생각이야? 왜?”

        

       나의 진지한 표정을 보고 내가 농담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소희가 엄청 진지한 표정으로 그렇게 물었다. 덤으로 그러면서 내 쪽으로 상체를 살짝 숙였는데, 침대 위 가까운 곳에서 양반다리를 하고 앉은 소희가 그렇게 행동하자, 단추가 세 개는 열린 가슴 부분이 너무 확연하게 보여서 당황스러웠다.

        

       “…….”

        

       나는 하늘이 쪽을 슬쩍 보았다. 하늘이는 ‘우려하는 반응을 보인 두 사람’중에는 속하지 않았다. 마치 내가 그런 말을 꺼내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그저 묵묵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다.

        

       “……나는 별로 좋은 생각은 아니라고 봐.”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잠시 고민하던 수아가 조심스럽게 그런 말을 내놓았다.

        

       “그 사람, 정상이 아니었어. 분명히 이번에 만나면 무슨 일을 벌일 테니까…….”

        

       조금은 절박하게 말하는 수아를 보고 순간 마음이 흔들릴 뻔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건 꼭 필요한 일이야. 앞으로를 위해서라도.”

        

       “어째서?”

        

       소희가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며 되물었다.

        

       첫인상은 알 것 다 아는 금발 태닝 여고생이었지만, 사실 소희는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어딘가 순수해 보이는 구석이 있었다. 다짜고짜 들어와서 메이드를 하고 싶다고 하질 않나, 얻어먹었으니 갚겠다고 하지 않나……

        

       음, 생각해보니 순수한 것이 아니라 단순한 걸지도.

        

       ……아무튼, 그런 솔직함과 단순함 때문인지, 나에게 무언가 물어보는 소희는 정말로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 같아 보였다. 저 순진한 표정은 일부러 꾸며서 나올 수는 없는 표정이었다.

        

       “…….”

        

       나는 다시 한번 하늘이 쪽을 보았다. 나를 향해서 하늘이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작게 숨을 내쉰 뒤,

        

       “사실, 기억 때문이야.”

        

       ““기억?””

        

       내 말에, 소희와 수아가 동시에 되물었다.

        

       *

        

       이 세 명이 예사라가 쓴 유서를 읽었다는 것은 하늘이를 통해 들었기에, 나는 부연 설명 없이 바로 기억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예사라’가 자살 시도를 한 것을 알고는 있지만, 대체 언제 어떻게 시도했는지는 모른다. 아마 그 시도를 한 시점에서 더 과거의 기억이 사라진 모양이다, 그런데 최나경의 얼굴을 봤더니 과거의 감정이 떠올랐다……

        

       그렇기에, 나는 기억을 찾을 방법이 최나경을 다시 만나보는 것이라고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

        

       물론 ‘예사라’가 한 행동은 모두 ‘내’가 한 행동으로 바꾸어 설명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둘의 반응은 꽤 상반되었다.

        

       “음…….”

        

       소희는 팔짱을 낀 채 눈을 감고 한동안 생각하다가,

        

       “네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그렇게 반응했다.

        

       “나는 너의 메이드니까. 주인이 가자고 하는 길이 있으면 같이 가야 하지 않겠어?”

        

       그리고 그렇게, 다소 낯간지러운 말도 했다.

        

       ……생긴 건 진짜 친구 많게 생긴, 반에 한 명쯤 있는 오타쿠 괴롭힐 것 같은 외모였으면서, 가끔 그런 만화 속에나 나올법한 대사를 하는 것이 조금 웃겼다.

        

       내가 피식 웃자, “뭐, 왜?”라면서 당황하는 것이 조금 귀여웠다.

        

       “나는…….”

        

       잠깐 고민하던 수아는, 내 손을 꼭 잡더니 말했다.

        

       “응, 나도 그 말에는 동의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기억이 있더라도 사라는 사라니까.”

        

       “……그래.”

        

       얼굴을 살짝 붉히고, 양손으로 내 손을 잡은 채 촉촉한 눈으로 그렇게 말하는 수아를 보고 있으니 이상하게 부끄러워져서, 나는 눈을 피하며 대답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하늘이를 보았다. 그때까지도 말없이 나를 보고 있던 하늘이는 빙긋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나에게 보여주었던 그 미소와 같은, 환한 미소였다.

        

       *

        

       무엇이 잘못된 걸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그녀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그런 생각뿐이었다.

        

       해야 할 일이 많았는데도 손에 일이 잡히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사업에 관련된 일 보다는, 떨어져 있는 사라에 관한 생각이 먼저 났다.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다. 차를 타고 가면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 거리였으니.

        

       언제라도 달려갈 수 있다. 마음만 먹는다면 사라를 품에 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 두었으니.

        

       ……아니, 그렇게 ‘만들어진 게’, 맞을까?

        

       “후우…….”

        

       숨을 길게 내쉬면서, 그녀는 손에 쥐고 있던 펜을 놓았다. 눈앞에 있는 서류는 그리 많지 않았다. 어차피 이곳까지 올라오는 서류는 그 양도 많지 않고, 불필요한 것은 모두 쳐내고 최대한 줄이고 줄여서 올라오는 서류였다. 회사가 큰 만큼 유능한 부하들도 많았고, 그렇기에 전문적인 경제교육을 받지 않은 그녀도 어느 정도 운영해나갈 수는 있었다.

        

       물론, 초기에는 잡음이 크기는 했지만.

        

       ‘그 사건’은, 지금도 그녀에게 있어서 큰 약점으로 남아있었다. 초기의 좋지 않던 그녀의 이미지와 겹쳐서 역으로 상대가 지레 겁먹어 그냥 넘어가게 되었을 뿐이지, 만약 나중에 또 큰 문제가 일어나면 반드시 누군가가 그 이야기를 꺼내리라.

        

       덕분에 사라 주변에 날아다니던 파리 하나를 멀리 떨어뜨려 놓을 수는 있었지만.

        

       ……하지만, 적어도 거기 따라다니는 의혹들은 후에 제대로 정리해야 했다.

        

       정리한 뒤에는, 사라를 감싸고 있는 껍데기에 금이 가기 시작할 거고.

        

       아니, 금은 지금도 가고 있었다. 조금씩이지만 확실하게.

        

       “…….”

        

       사라는 자신의 어머니를 닮았을 줄 알았는데.

        

       새장 속에 갇혀서 그저 창밖을 바라보는 가련한 여인.

        

       ……바라보고 있으면, 나서서 구해주고 싶어지는……

        

       하지만, 그녀가 잡은 손은 최나경의 손이 아니었다. 최나경이 손을 뻗어보기도 전에 이미 다른 사람이 그녀의 손을 잡고 있었다.

        

       손을 잡고, 입을 맞추고, 그리고—

        

       “…….”

        

       최나경은 얼굴을 쓸어내렸다.

        

       보고 싶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를 닮은 그 아이라도, 그녀만을 사랑하게 하고 싶었는데.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까.”

        

       최나경은 중얼거렸다.

        

       마음 같아서는, 자신에게 도는 소문과도 같은 일을 그 방해꾼들에게 똑같이 행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비현실적인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녀가 별다른 연줄도 없이 재혼하여 그 자리를 얻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소문이 진실인 것처럼 퍼져나갔던가.

        

       만약 그 소문 중에서 ‘하나라도’ 실제로 행하는 순간, 그녀는 지금 가지고 있는 힘을 모두 잃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사라마저도.

        

       위잉—

        

       그녀가 상념에 빠져있는데, 책상 위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

        

       손을 움직여 핸드폰을 잡았다.

        

       화면에 떠 있는 이름은, ‘저택’이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일까.

        

       전속 사용인이 비어있는 동안, 그녀는 다른 사용인들에게 사라를 철저하게 감시하라고 지시해 둔 상태였다. 그동안 보고는 아직 들어온 적이 없었다.

        

       그렇다는 건, 드디어 방해꾼이 움직였다는 뜻일까.

        

       그녀는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전화 너머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회장님, 그동안 안녕하셨는지요.]

        

       적어도, 듣고 나서 절대로 안녕하지는 못할 목소리였다.

       

    다음화 보기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