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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5

        

         해봐야 손에 꼽을 정도 인원과의 전투긴 해도 나는 황무지에서도 해악만 끼치는 떨거지들과 교전 경력이 있었다.

         

         딱히 용병스럽게 몇 놈을 해치웠느니~ 손맛이 어땠냐느니, 자랑하려거나 그런 건 아니고 써먹을 만한 경험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각각 쓰러트리면서 얻은 데이터를 취합해보자 나온 결론은 실망스러웠다.

         

         “…과대평가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얕보지도 마. 외부 갱단 놈들은 뭐가 들었을 지 모를 깜짝 상자라고 생각해.”

         

         그래프에 편차가 말도 안 되게 어긋난 점만 마구 찍힌 상태라 보면 된다.

         

         평균적으로 무장은 구려 터졌지만, 통일성이 전혀 없어서 난데없이 수류탄 같은 게 튀어나올 수도 있었고.

         임무 도중에도 엉뚱한 일에 한눈파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빈틈을 노려오는 날카로운 살인귀도 있었다.

         

         도적으로 영락하는데 자격 요건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니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지만 상대하는 입장에서 짜증난다는 사실은 변함없었다.

         

         – 확인했습니다. –

         

         어쨌거나 정보는 정보.

         자신 있는 대답과 동시에 제로가 복도로 먼저 진입했다.

         

         쾅!!

         

         바닥을 두들기는 쇳소리와 사나운 관절 구동음이 청각을 점령한다.

         

         벽 너머로 들리는 소란을 제외하면 이곳은 고요했다.

         승무원 씨의 말마따나 아직 이 앞쪽 칸까지는 도달하지 못했거나… 화물칸이 목적이기에 오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거 어쩌나, 나는 그쪽에 볼일이 생겨버렸는데.”

         

         오랜만에 경험하게 될 총격전에 대비하라는 의미로 내 몸에 들려줄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거침없이 방을 클리어링하는 제로를 따라 의료실과 바를 지나쳐 예의 보안문 앞에 도착하자 머뭇거릴 틈이 없다는 건 명백해졌다.  

         

         갑자기 주어진 것치고는 좀 과한 업무량이라 생각한다.

         

         얼마나 중무장을 했는지도 모르는 갱들을 뚫고 지나간 후, 저 난장판 한복판에 있을 로잘린과 아시프의 상태 확인도 확인해야 했고, 바로 갱단이 타고 온 장난감 자동차도 압류해서 폐차를 진행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끊임없이 계속 들리는 아득한 총성이 조급함을 부추겼다.

         

         이 새끼들은… 방아쇠가 너무 가볍다.

         대부분은 위협용 사격이라고 생각하지만, 만일 뒤 칸에 도착했는데 엄한 사람들의 시체로 피바다라도 생겨 있기라도 하면….

         

         우득!

         

         “…야, 야! 변상하라고 하면 어떡하게. 난 책임 못 진다?”  

         

         – 이런 상황이 온 시점이라면, 표 값에 포함된 여행자 보험이 자동으로 발효되기 때문에 인명 피해가 아닌 이상 아샤님이 지실 책임은 전무합니다. 오히려 청구할 보상금 내역서를 미리 작성하셔야 합니다. –

         

         “……그딴 걸 끼워 파는 거였구나?!”

         

         지식이 늘었다.

         어쩐지 무슨 편도 티켓이 인당 이십만 크레딧이 넘어가나 했더니, 기본적으로 패키지 상품이었나 보다. 진짜 지독한 인간들.

         

         속으로 투덜거리며, 제로가 해킹하기 쉽도록 뚜껑을 뜯어 내준 보안문의 집적 회로판에 손을 가져다 댔다.

         

         개폐 장치 접근권한 확인(Authorization Confirm), 등록된 인증 정보 목록 불러오기(Load Verification List).

         …기존 우선순위 기각(Override), 익명의 손님을 추가(add Anonymus Guest) 후 개방.

         

         삐릭.

         

         요란한 스파크나 복잡한 연산과정도 생략. 비록 뚜껑이 내팽개쳐지긴 했지만 카드키를 인식시킨 것처럼 부드럽게 문이 열린다.

         찾는 것도, 조작하는 대상도 명확하니 시야를 뒤바꿀 필요도 없이 순식간에 해킹이 끝났다.

         

         나날이 능숙해지고 있다는 보람도 잠시.

         옆으로 철문이 밀려나고, 당연히 상자로 가득 찬 화물칸을 예상하며 발을 내디뎠지만… 나보다 훨씬 서두른 선객들이 계셨다.

         

         “어…?”

         ““뭐……?””

         

         양측 모두 서로의 등장을 예상하지 못했기에, 기묘한 정적이 형성되었다.

         

         재빨리 눈을 굴려 상황 판단에 필요한 정보들만 골라낸다.

         

         일단 해킹(물리)을 통해 뜯어낸 게 분명한 반대편 보안문은 찌그러진 채 구석에 처박혀 있었고, 일렬로 선 인간들은 하역-약탈- 작업이 한창인 듯 양손으로 상자를 든 채 여기를 멍하니 주시 중.

         

         뙤약볕에 그을리고 씻지도 않아서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피부와 흑사회처럼 확고한 이미지가 없는 모양인지 제멋대로 껴입은 모래투성이 옷가지들.

         

         그리고 화룡점정으로 이쪽을 향해 들이밀어진 산탄총 총구와 그 방아쇠에 걸린 두툼한 손가락…?

         

         

         투캉—!!

         

         

         “미친?!”

         

         머리 바로 옆 문틀에 불꽃이 튄다.

         내가 기적적으로 피한 것도, 상대방이 더럽게 못 쏴서 빗나간 것도 아니다. 애당초 그런 새끼들을 위한 게 샷건이라는 총기였으니까.

         

         난 그저 대신 반응해서 막아줄 제로가 있었을 뿐이다.

         진짜 방아쇠들 한 번 존나게 가벼우시다. 하마터면 뒤질 뻔했네 씹…!!

         

         – 내부를 더 관측하실 요량이라면 제가 가로막겠습니다. –

         

         “아니?! 사양할게…!!”

         

         탕! 타당! 탕탕!!

         드가가가각—!!

         

         빗발치기 시작한 총알 세례로 엄폐한 위치 옆의 내부 강판에 폭죽이 터지고 있거늘, 태연하게 저걸 몸으로 가로막아서 차단하겠다는 제로를 만류했다.

         

         진짜 허접 조무래기들이라도 총알을 살살 쏘는 건 아니라는 게 너무 짜증난다.

         

         가볍게 팔을 털자 상완부 장갑에 틀어박혔던 찌그러진 탄환이 후두둑 떨어지는 걸 보면 그냥 얘보고 돌입하라고 하는 것도 분명 방법이겠지만, 위험 요소는 확실히 짚고 넘어가는 게 좋아 보였다.

         

         운 좋게 빗겨 맞은 게 싸구려 탄약이었다고 나머지 그럴 거라는 보장은 없었으니까.

         

         “뭐였어, 씨발! 방금 그 씨꺼먼 쇳덩어리 뭐였냐고!!”

         “애미! 건너편 문 뒤에는 기관사 밖에 없으니까, 전혀 신경 안 써도 된대매?!”

         “형니임! 드로이드가 있슴다! 전기 충격기든 화염 방사기던 남는 새끼 없슴까??”

         

         얼핏 모습을 보인 게 공포감을 조성했는지 바락바락 악을 쓰는 적들 때문에 내 골이 다 울렸다.

         정작 아이 컨택을 했던 나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긴 했는데… 아무튼.

         

         손만 살짝 내밀어서 응사해봤지만 탄 튀는 금속음만 울리는 게 저들도 다 몸을 숨긴 것 같았다. 겨우 권총 한 자루로 깔짝대는 게 화를 돋궜는지 탄약 소모가 더 빨라지기는 했다.

         

         허나 무작정 소모전을 가기엔….

         

         “…이것들이 버틸 이유가 있나?”

         

         시간을 끌면 못 챙긴 물건 정도는 버려 두고 도망갈 놈들이다.

         결국 아쉬운 우리가 밀어붙여서 무너트려야 한다는 건데.

         

         으… 입구가 너무 비좁아서 순간적으로 화망이 집중될 게 뻔한데, 그래도 제로를 믿고 뚫어 달라고 해야 하나?

         

         피잉…!

         

         고민을 거듭하던 찰나, 쨍그랑! 하는 소음과 함께 이쪽 칸을 환하게 밝히던 조명이 부서진다.

         의도한 건 아니고 무차별적으로 견제 사격을 하다가 실수로 깨어버린 건지, 쏟아지던 탄막의 밀도가 잠시 옅어진다.

         

         “…쓰읍.”

         

         지금인가…? 지금이 기회인가?

         

         적은 만들어도, 원수는 만들고 싶지 않았다.

         과보호 케어봇 덕분에 안전하다는 느낌이 강해지긴 했지만 쥐도 새도 모르게 기습당하거나, 관련도 없는 문제에 휘말려서 위협당하는 걸 상정하면 난 스트레스로 제 명에 못 죽을 것이다.

         

         그렇지만 만약 상대방이 아무 이유 없이 나를 존나 싫어한다면… 싫어할 이유를 만들어주기 보다는 다시는 못 싫어하게 침묵시키는 게 속 편한 결정이었다.

         

         암전한 시야 속에서 고 잠깐 사이 말라붙은 입술을 핥고 권총 그립을 확인하니, 내 의도를 알아챈 제로의 몸체가 당겨진 활시위처럼 맥동한다.

         

         본디 각 연결부에 전원이 제대로 들어왔는지 표시해주기 위해 존재하는 센서 등燈이 전투 화장 마냥 형형하게 빛났다.

         

         “중화기 가진 애들은 지금 다 뒤편 화물칸 뚫으러 갔다는데!”

         “씹, 그럼 여기 물건들은 그냥 버려?!”

         

         “…얼씨구?”

         

         반응이 없어진 걸 본 놈들이 멋대로 쑥덕거린다.

         아니, 그런 중요한 내부 정보를 급하다고 막 흘려버리신다고요?

         

         이럼 얼추 됐다. 힘으로 밀고 들어가면서 내가 적당히 원호하면 된다.

         

         대략적인 작전도 세웠겠다. 얼핏 확인한 화물칸 구조와 저것들이 은엄폐했을 만한 위치를 떠올리다 보니, 사람이 있으나 없으나 저기가 다른 구획보다 더 칙칙하게 보였던 이유를 눈치챘다.

         

         ……화물칸은 보안 문제 때문인지 별도의 창문이 없었다.

         

         “….”

         

         어두워진 이쪽을 한 번, 광원의 유무에 아무 영향이 없는 케어봇을 한 번. 마지막으로 저쪽의 조명 위치를 떠올렸다.

         

         좋은 아이디어 제공, 아주 감사합니다…!

         

         철컥, 타다당!!

         

         “어엇?!”

         “니미. 불, 불 좀 켜봐!”

         

         쪼개진 유리 파편이 쏟아지고 저들도 어둠에 휩싸이는 걸 보자마자 다시금 머리를 숨기고 등을 벽에 바짝 붙였다.

         

         더 기다리는 건 사치다. 전장도 갖춰줬으니 내 대전사(Champion)를 내보내야지.

         

         “제로, 마음껏 해버려.”

         

         – 섬멸 모드, 돌입합니다. –

         

         시끄러운 욕설과 폭언으로 난잡해진 방 안에 돌연 도깨비불이 떠오른다.

         정신없는 와중이라 눈치채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고 봤는데, 인간은 본능적으로 죽음의 위기를 알아채는 모양이다.

         

         너도 나도 꽥꽥대던 돼지 멱따는 소리가 사라지고 긴장된 숨소리만 남은 암흑천지.

         거기서 과연 귀신 같은 그의 모습이 어떻게 비춰졌을 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그들의 반응으로 추측할 뿐.

         

         “바… 발사!! 가진 거 다 쏴 버려! 붙으면 좆 된…?!”

         

         비명, 그리고 거기서부터 전염되는 공포.

         그렇게 최초의 격발이 이루어지자 전황은 급속도로 기울어졌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밀실 공포 게임 시작.

    이걸 한 번에 다 못 쓰다니…! 면목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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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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