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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5

       팬드래건과 전쟁을 치른 적국들 중 트리스탄의 이름을 모르는 이들은 없다.

         

       강력한 백 인의 기사로 구성된 적혈수리 때문에 트리스탄을 기억하는가?

       아니다.

         

       수백 년 넘게 이어져온 전통 있는 가문이기 때문에?

       그것도 아니다.

         

       단지….

         

       – 망할! 뭐 저런 끔찍한 활잡이가 다 있느냔 말이다!

         

       트리스탄의 궁수들.

       명궁이나 신궁이라고 불리며, 때론 [마탄의 저격수]라고 불리는 트리스탄의 역대 가주들이 전장의 설 때마다 그들은 항상 기사단조차 압도하는 무훈을 쌓아 올리기 일쑤였다.

         

       적국의 지휘관은 항상 트리스탄의 화살에 의해 죽었고, 절대로 그들의 화살을 피할 수조차 없었다.

         

       마법으로 방어를 해도.

       병사를 대동하며 방패를 들고 다녀도.

       아무리 멀리 도망갈지라도….

         

       무수한 노력을 했지만, 트리스탄의 화살은 그 모든 것을 농락하며 기어이 지휘관을 비롯한 적장의 머리를 정확히 꿰뚫었다.

         

       하여 누군가는 말한다.

         

       트리스탄의 가주들은 모두 [신비]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아무리 투기법을 익힌다 한들, 신비도 없이 절대 저런 신기(神技)와 같은 궁술을 선보이는 게 말이 안 된다며.

         

       허나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트리스탄의 역대 가주들은 조소를 머금을 따름이었다.

         

       – 신비라, 흐음…. 딱히 없어도 가능하다만?

         

       트리스탄은 말한다.

       어릴 적부터 체계적인 수련을 통해 저 멀리서 풀잎 떨어지는 소리마저 잡아낼 오감을 키우고. 하루에도 수천 발, 수만 발이 넘는 화살을 쏘며 노력한다면 누구나 명사수가 될 수 있다, …고.

         

       그래, ‘노력’과 ‘약간의 재능’만 있다면 [신비]와 같은 재주를 누구나 익힐 수 있다고 말이다.

         

       다만.

         

       – 알려줘도 해내는 놈들이 없을 뿐이라서, 내 말을 안 믿더군.

         

       진실만을 내뱉었거늘, 믿어주는 사람이 없어 아쉬울 뿐이라며 어깨를 으쓱이는 그들이었다.

         

       한데…….

         

       ‘…저런 것은 대체 어찌 가능한 것일까?’

         

       트리스탄의 활을 상대했던 적들이 항상 이런 감정을 느꼈던 것일까?

         

       제니미아는 자신이 쏘아낸 ‘탄환’을 신묘, …아니, 기괴한 수단으로 막아낸 기사를 보며 눈을 끔뻑거렸고, 저도 모르게 되물었다.

         

       “그거, 어떻게 하는 건가?”

       “노력하면 돼.”

       “…노력으로 안 될 것 같은데.”

         

       그는 이로, 정확히는 입의 힘으로 제니미아의 일격을 막아냈다.

         

       교합력(咬合力).

       일명 무는 힘만으로 정확히 탄환을 잡아낸 그의 모습을 확인하며 놀라고야 마는 제니미아였고, 상대는 이렇게 말했다.

         

       “노력으로 안 되는 게 아니라, 노력이 부족해서 못 하는 것뿐이지, 뭐.”

       “…….”

         

       …늘, 자신이 타인에게 하던 말을 상대에게 듣고 있자니, 복잡 미묘한 기분을 느끼는 제니미아였다.

         

       * * *

         

       ‘와, 씨. 진짜 겨우 잡았네…!’

         

       잇몸이 욱신거린다.

       후작 앞에선 배짱을 부렸지만, 사실 이한은 절대 저 탄환을 이로 막아낼 마음이 없었다.

       원래는 회피하거나 손도끼로 막아낼 생각이었는데, 피하거나 튕겨낼 타이밍을 놓친 것이었다.

         

       – 무음궁시(無音弓矢).

         

       소리도 없으며, 그저 쏘아지는 과정만이 존재할 뿐인 화살이 아닐 수 없다.

         

       예민한 위기감지 능력으로 운 좋게 막아냈을 뿐.

       막아내지 못했더라면 아주 처참한 끝을 맞이했으리라.

         

       ‘미쳤네, 이거…. 이 나라는 왜 대귀족들이 다 괴물인 거야?’

         

       전날 만난 대공이나 공작도 그렇고….

       대귀족 놈들이 기사들보다 더 끔찍하고, 상대하다가 자칫 골로 가버릴 상대뿐이니, 원.

         

       후우…!

         

       이한은 등을 적셔오는 식은땀을 식힐 새도 없이 강제로라도 긴장감을 풀었다.

         

       그도 그럴 게 근육이 조금이라도 경직되어 있다간.

         

       파앙!

         

       파아아앙!

         

       퍼엉-!!

         

       저걸 피할 새도 없이 맞을 테니 말이다.

         

       후작의 탄환이 다시금 그를 향해 격발했다.

         

       “이번엔 피했군!”

       “사람을 실험 대상으로 삼지 마!”

         

       저 양반 신이 났다.

       그가 입으로 막는 재주가 여간 신기했던 것인지 쉴 틈도 없이 활시위를 당겼고, 그때마다 눈으로조차 따라잡을 수 없는 격발이 그를 향해 쏟아졌다.

         

       손은 눈보다 빠르다 했던가?

       그 말이 왜 존재하는지 알 것 같았다.

         

       저 양반, 연발 속도가 거의 총의 장전 속도보다 빨랐다.

         

       웬만한 여성의 평균 신장보다 거대한 각궁이다.

       저러한 각궁을 무슨 장난감처럼 다루는 것을 보면 장력(張力)에서만큼은 자신 못지 않은 것임이 분명했다.

         

       저 호리호리한 몸으로 저런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싶다!

         

       퍼어어어!!

         

       “!!?”

       “드디어 맞혔군. 한데 몸 단련을 대체 어떻게 한 건가? 웬만해선 뼈도 부러트리는데, …나도 늙은 것인가?”

       “…아니, 정정하시네.”

         

       금강을 가까스로 펼쳤다.

       습관처럼 금강을 펼치지 않았더라면 필시 살갗이 찢어지거나 뼈에 금이 갔으리라.

         

       무서운 인간이다.

         

       허나 긍정적인 사실은.

         

       ‘반응이 따라가고 있다.’

         

       신기에 가까운, 아니 신비나 마법에 뒤지지 않는 궁술을 그는 회피하고 반응하고 있다는 점이다.

       수십 발의 연격을 겪으며 그는 어느 순간부터 막거나 피하고, 혹은 튕겨내는 게 가능해졌다.

         

       이는 슬슬 반응속도가 올라왔다는 뜻이었다.

         

       즉, 이제 후작에게 반격을 가하는 것도…-.

         

       멈칫!

         

       “신기하군, 분명 온몸이 너덜너덜하거늘. 비범하기 이를 데 없는 감각과 신기한 기술을 통해 내 기술에 반응하고 있다니, 이 나이 즈음 되면 웬만한 신비나 기술도 다 보았다 자부하는데, 아무래도 나도 애송이었어, 허허!”

         

       “…….”

         

       ……이한은 반격이 아닌 뒤로 물러서며 숨을 몰아쉴 시간을 가지는 것을 선택했다.

         

       뭔지 모르겠지만, 더 다가갔다간 그의 숨통이 끊겼으리란 확신과 함께.

         

       “감이 좋군. 그래, 이런 잔재주를 이긴 것 가지고 기뻐하면 안 될 노릇이지, 암.”

         

       “그 잔재주 이제 얼마나 남았는지 좀 물어보자.”

         

       “아쉽게도 잔재주는 이 정도뿐이네. 하니, 이제 좀 진지하게 가보지.”

         

       “…….”

         

       솨아아아!

         

       와류가, 아니 주변의 모든 흐름이 후작에게 집약하듯 모여 든다.

       공기가, 바람이 빨려들어 가듯 한 점으로 모이며 자그마한 태풍의 눈을 형성하는 바.

         

       꽈아악!

         

       이한은 자칫 자신마저 빨려 들어갈까 싶어 있는 힘껏 땅에 발을 박으며 후작이 내뿜는 와류의 흐름을 견뎌냈다.

         

       ‘지랄! 이게 사람 새끼냐!?’

         

       자기가 할 말은 아니란 자각은 있지만, 저 인간을 보고 있자니 절로 앓는 소리가 나오고 만다.

         

       인력(引力).

       후작은 지금 저 자그마한 몸으로 인력을 발생시키고 있었다.

         

       일개 인간이 보일만한 재주가 아니었으며, 이게 마법이나 신비가 아니란 사실이 도리어 더 경악스럽다.

         

       하며 깨닫는다.

         

       ‘저 양반, 딱 한 걸음이 부족한 초인이다!’

         

       초인, 사람의 형상을 한 재앙 [오러 유저].

       그 경지 앞까지 다가간 사람.

         

       딱 한 걸음이 부족하기에, 어떠한 조건을 충족시키기 못했기에 올라서지 못했을 뿐, 후작은 초인의 경지를 앞둔 사람이 맞았다.

         

       하여 이한은 헛웃음이 났다.

         

       안 그래도 온몸이 너덜너덜한 상태이며, 체력도 언제 한계를 맞이할지 모를 상태.

       몸 상태가 정상이어도 이길지 말지 가늠이 안 가는 상대인데, 그런 사람을 상대로 싸워야 한다.

         

       절망적이다.

       지금 저것에 덤빈다는 것 자체가 자살행위와 다름없-.

         

       콰앙!

         

       “…….”

       “흐음, 내가 이 기술을 꺼냈을 때 반응은 둘 중 하나더군. 하나는 공포에 미쳐 살려달라고 빌거나, 아니면 도망치는 경우.”

       “현명한 것들이네. 나도 지금 딱 도망가고 싶어.”

       “허허, 그런 사람이 도망가지 않고 내 앞에 서 있나?”

       “…안 그래도 후회 중이야.”

         

       이한은 자신에게 스며드는 절망감을 발을 구르는 것으로 단숨에 털어냈고, 금방이라도 달려들 자세를 취하였다.

         

       후작은 눈을 빛내었다.

       이한의 눈 안에서 감도는 전의를 본 것이다.

         

       “-패배를 인정해도 된다. 강자 앞에서 겁을 먹은 것은, 패배를 선언하는 것이 부끄러운 게 아니야. 살아남는 게 중요하지.”

       “알아. 내 삶의 지론이 행복하게 오래오래 사는 거니까.”

       “허면 어째서 그렇게까지 하는 건가?”

       “…변명하기 싫어서.”

       “…….”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일까.

       그도 아니면 그의 얘기 정도는 가볍게 듣고 흘려버릴 50년 묵은 노괴를 앞에 두고 있기 때문일까.

       그는 제 속에 쌓여 있던, 진솔함을 표현했다.

         

       “난 이미 변명뿐인 삶을 살았었다.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되고. 이게 현실이니 포기만 하고 살았다. 항상 변명만 하고 살았지.”

         

       우우우웅!

         

       “근데 그런 못난 놈에게 새로운 기회가 왔고, 더는 변명하지 않는 삶을 살자고 약속했다. 이제 후회 없는 삶을 살겠다고!”

         

       그래, 그는 당장 기사단도 그만두고 은퇴하고 싶은 사람이다.

         

       안빈낙도하여 귀여운 강아지와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는 삶을 살고 싶다.

       권력이건 명예건, 그리고 기사조차 그에겐 큰 의미가 없을 따름이다.

       누군가 바보 같다 할지라도 전생과 다른 좋은 삶을 살고 싶은 것이다.

         

       한데 그렇다고 하여!

         

       ‘비겁하게, 변명하면서 사는 건 한 번이면 충분하다.’

         

       그는 행복한 삶을 살고 싶은 거지, 비겁한 삶을 살고 싶은 게 아니었다.

         

       과거를, 전생을 반복할 거면 환생이란 기적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남에게 고개 숙이며, 내 사람의 불행을 방관하며 속 답답한 삶을 살고 싶어 힘을 기른 게 아니란 말이다!”

         

       이한은 있는 힘껏 소리치며 자신의 각오를 되새겼다.

         

       행복하게 살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비겁하게 살지 않을 것이다.

         

       하여 그는 싸웠다.

         

       마법사와 싸웠고.

       천 년을 산 트롤과 싸웠으며.

       지금은 후작가와 싸운다.

         

       그리고….

         

       “난 빌어먹게 멋지게 살다 갈 거다. 일말의 후회도 없이!”

         

       화아아악!

         

       꽃이, 매화가 피어난다.

         

       그가 든 유일한 손도끼에서 피어난 매화가 아니었다.

         

       – 혈매화(血梅花).

         

       그의 기세가, 그가 흘리는 피를 제물 삼아 피어낸 매화의 꽃잎이었다.

         

       매화만개(梅花滿開).

         

       이한의 꽃잎은 후작가의 하늘을 뒤덮었다.

         

       “…강하군, 참으로 강해! 이렇게 강한 사람은 정말 오랜만이야!”

         

       제니미아는 제 생애서 이토록 타인을 찬사한 것이 처음이었다.

         

       아름다운 매화에 찬사를 보내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내뱉은 각오.

       그 각오는 충분히 찬사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했기에.

         

       말로만 최선을 다한다고 하지, 진정으로 저리, 하루를 평생처럼 사는 사람이 있던가?

         

       그 ‘선왕’조차 저렇게 살진 않았다.

         

       “한 발이다. 이 한 발을 막아낸다면 내 패배를 인정하마.”

         

       “…….”

         

       “무시하는 게 아니야. 원래 궁수는 말일세.”

         

         

       한 발로 승부를 보는 법이거든.

         

         

       콰아아아아!!

         

       대기를 찢는 듯한 소리와 함께 후작이 활시위를 놓았다.

         

         

         

         

       빠드드득!

         

       “크으윽!”

         

       이한은 온몸을 찢어발기려는 듯한 후작의 일격에 침음을 삼켰다.

         

       바람과 소리마저 삼키는 거대한 압력이 덮쳐온다.

         

       흐드러지게 핀 매화가 가까스로 막아내고 있지만, 얼마 가지 않아 뚫리리라.

         

       이한은 저항할 수 없는 거대한 흐름 앞에서 마치, 거인에게 짓눌려지는 벌레가 된 것 같았다.

         

       그저 닿는 것만으로도 죽는다.

         

       매화를 피워내며 체력은 이미 다 떨어진 지 오래다.

       시야가 흐릿했으며, 금방이라도 의식이 꺼질 것 같았다.

         

       ‘…죽나?’

         

       이한은 제 죽음을 떠올렸다.

       이게 죽음인가?

       자신의 한계를 실감하는 순간인가?

         

       ─아직이다.

         

       ‘아직은 아니야!’

         

       자신은 약속했다.

       늦지 않게 돌아가겠다고.

       그렇다면 살아서 돌아가야 한다.

         

       그 순박한 시녀님은 자신이 올때까지 그 자리에서 언제까지고 기다릴 것이 분명하니까!

         

       하니.

         

       ‘돌아가야 한다!’

         

       촤악!

         

       …쿵.

         

       이한은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제 몸이 기억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동작을 말이다.

         

       스으윽.

         

       주먹을 쥔다.

       그리고 허리는 약간 굽히며 왼쪽 발을 앞으로 내민다.

         

       백보신권?

         

       그게 아니었다.

         

       원리는 비슷하지만, 지금 지금 사용할 권법의 굳이 예시를 찾자면.

         

       – 그런 건 어떻게 하는 거야?

       – 바람의 결을 읽어내면 누구나 간단히 할 수 있는 수법이다. 주문쟁이 녀석들이 즐겨 쓰더군.

       – …주문 없이 마법을 쓸 수 있는 건 처음 알았는데.

       – 무(武)의 세계에는 끝이 없는 법. 노력하다 보면 주문쟁이들 수법쯤은 간단히 할 수 있게 되지.

       – 놀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아…….

         

       기억났다.

         

       어울리지도 않게 교관으로 부임하기 전, 그 양반과 대련을 했을 때.

       바람의 결을 보고 그걸 베어내는 묘기를 선보이더라.

       당시 어떻게 하나 싶었는데….

         

       ‘그거, 그다지 큰 힘은 별로 필요 없었지, 아마?’

         

       큰 힘은 필요하지 않았었다.

       그 양반은 무척이나 가벼운 손놀림으로 검을 휘둘렀고, 그가 펼친 전심전력의 몸통박치기마저 손쉽게 튕겨내더라.

         

       그리고 지금, 이한은 그때 봤던 기술을.

         

       ‘이렇게였나?’

         

       온몸의 체력이란 게 남아나지 않은, 너덜너덜한 상태이기에 따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화아악!

         

       이 가볍지만 무겁고, 무겁지만 자유로우면서도 경건한.

       그래, 마치 부처의 자비로운 주먹질과 같은바.

         

       ‘아라한….’

         

       아라한신권(阿羅漢神拳).

         

       이러한 이름이 잘 어울리지 않을까 싶었다.

         

         

       파아아앗-!

         

       *

       *

       *

         

       ─시녀는 여전히 나무에 기댄 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집으로 들어가 자면 될 것임에도 시녀는 들어갈 맘이 없는지 그저 묵묵히 자리를 지킬 따름이었다.

         

       그런 그녀의 주위로 다람쥐나 참새들이 모여들었다.

       사슴이나 늑대 등도 나타났는데, 먹이사슬의 관계가 모여 있음에도 웬일인지 그들은 도망가지도 잡아먹으려 들지 않았다.

         

       그저 꾸벅꾸벅 졸고 있는 시녀를 지킬 뿐.

         

       신비로운 광경이었다.

         

       마치 동화 속의 광경과 같았으니 말이다.

         

       허나 동화와 달리 동물들의 보호를 받는 시녀가 기다리는 건 그녀에게 호화로운 드레스를 입혀주거나, 왕관을 씌어줄 왕자가 아니었다.

         

       시녀가, 레이라 윈터가 기다리는 건.

         

       쫑긋!

         

       “……늦었습니다.”

         

       “…헤헤, 오셨어요.”

         

       투박하지만, 약속을 지킬 줄 아는 따스한 사내였지.

         

       언제 꾸벅꾸벅 잠들었냐는 듯, 레이라 윈터는 해맑은 웃음과 함께 사내를 반겼다.

         

       몰골은 엉망이었고, 이곳저곳 붕대를 대충 휘감으며 귀가한 사내.

         

       오늘 하루, 정말 최선을 다한 그를 향해 레이라는.

         

       “수고하셨어요.”

       “…….”

         

       늘 그렇듯, 웃으며 안아줄 따름이었다.

         

       “…저 지저분합니다만.”

       “씻으면 돼요.”

       “……거 참.”

         

       사내는 쓰게 웃었고, 레이라는 눈웃음을 지었다.

         

         

       약속을 지켜준 것이 기쁘다는 듯이.

         

       * * *

         

       휘이이잉.

         

       “……거 성격하곤.”

         

       여명이 밝아오는 새벽.

       그 어스름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제니미아는 고개를 저었다.

         

       “…치료나 제대로 받고 갈 것이지.”

         

       그는 아쉬웠다.

       차나 한 잔하며 대화나 해보고 싶었거늘, 무정하게 떠나버리더라.

         

       제니미아는 사내가 떠난 자리를 물끄러미 확인하며 아쉬움을 곱씹었다.

         

       하며.

         

       “…발타르 경이 재밌는 자를 찾았구나, 허허.”

         

       마지막 일격.

       그 일격은 분명 그의 것이었다.

       허나 완전히 비슷하진 않다.

         

       느낌상 얻어맞으며 제 것으로 만든 순박한 맛이 있는 바.

         

       ‘여전히 제자는 키우지 않지만, 알아서 배워가는 건 막지 않는다, 라. 특이한 사내들끼리 만났어.’

         

       그는 곧 유쾌하게, 또한 순수한 어린아이처럼 웃고 말았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선왕이 죽은 후 모든 의욕이 사라진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이거.

         

       “혼자서만 재미를 보고 있었군.”

         

       그는 제 복부를 매만졌다.

       아프지도 않고, 상처 하나 없는 복부.

       허나 그럼에도….

         

       “묵직하구먼.”

         

       묵직한 기운이, ‘의지’가 그의 복부에 남아 있었다.

         

       “아하하하!!”

         

       이토록 상쾌한 기분을 느끼는 것이 참으로 간만이라며 그는 호탕하게 웃었다.

         

       그러며 생각한다.

         

       새벽의 시원한 공기보다 속이 시원하다 못해 상쾌하기까지 한….

         

         

       참으로 보람찬 ‘패배’가 아닐 수 없다며.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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