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95


   ​
   ​
   ***
   ​
   ​
   릴리는 다급한 손짓으로 팔에 붙은 거즈를 떼어냈다. 매끈한 팔이 드러나자, 릴리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
   ​
   “이, 이게 무슨… ”
   ​
   ​
   릴리는 손바닥으로 상처가 있던 곳을 쓸어내렸다. 매끈한 피부만 만져졌다. 상처가 있었던 게 꿈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
   ​
   ‘와, 이제 공격이랑 힐을 동시에 할 수 있네? 이거 완전… 사기캐 아닌가?’
   ​
   ​
   리안은 제 왼손을 내려다보며 기분 좋게 웃음 지었다.
   ​
   ​
   ‘아! 이 능력이라면…!’
   ​
   ​
   손등을 내려다보던 시선이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는 피아를 향했다.
   ​
   ​
   ‘피아의 상태도 좋아지지 않을까?’
   ​
   ​
   리안은 왼손을 피아의 머리 위로 가져갔다. 그대로 왼손에 힘을 집중하자.
   ​
   ​
   파아아앗!
   ​
   ​
   다시 한번 손에서 밝은 빛이 쏟아져 나왔다. 릴리 때와 달리 하얀 빛이 끝없이 피아의 몸으로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의 힘을 써야 상태 이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
   ​
   “흐아아앗..!”
   ​
   ​
   피아가 야릇한 신음을 흘리며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이내 자세가 흐트러지다 못해 바닥에 쓰러져 몸을 움찔거렸다.
   ​
   ​
   ‘이거..괜찮은 거겠지?’
   ​
   ​
   그런 의구심이 들었지만, 비명을 내지른 건 아니었기에 신성력을 더 강하게 밀어 넣었다. 피아가 몸을 움찔거리며 숨을 헐떡거렸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
   ​
   파아앗!
   ​
   ​
   피아의 왼쪽 손등이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리안의 손등에 새겨진 새하얀 줄기 같은 문양이 손등에 새겨졌다.
   ​
   ​
   다만 그 크기가 손등을 다 덮을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
   ​
   “어어? 이거 막 옮는 거였어?”
   ​
   ​
   당황한 리안이 그리 중얼거리며 신성력을 거둬들였다. 그러자 피아의 손등의 빛도 점차 줄어들었다.
   ​
   ​
   “핫,하앗….”
   ​
   ​
   피아는 바닥에 쓰러진 채 멍한 얼굴로 감전이라도 당한 것처럼 몸을 파들파들 떨었다.
   ​
   ​
   “피, 피아 괜찮아?”
   ​
   ​
   리안이 조심스럽게 피아에게 손을 내밀며 묻자, 피아의 눈동자가 천천히 굴러 리안을 향했다. 그녀의 눈동자에 감히 무게를 측정할 수 없는 무거운 감정이 아른거렸다.
   ​
   ​
   “아아…”
   ​
   ​
   피아는 감격에 젖은 목소리를 작게 흘리고는 비틀거리며 몸을 추슬렀다. 그리고는 다시 무릎을 꿇은 채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
   기도를 올리는 신도의 모습 그 자체였다.
   ​
   ​
   “저를, 저를 선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흐읏,흣… 리안님의 뜻과 영광을 세상에 널리, 널리 알리겠습니다.”
   ​
   ​
   리안은 뜻을 알 수 없는 말에 뭐라고 대답을 해줘야 하나 말을 고르다가, 이내 다른 사람에게 답을 찾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릴리 쪽을 바라보았다.
   ​
   ​
   “릴리, 피아가 왜 이러는지 혹시 알아?”
   ​
   ​
   머쓱하게 웃으며 릴리를 돌아보는 것과 동시에, 릴리에게 어깨를 덥석 붙잡혔다.
   ​
   ​
   릴리의 얼굴은 걱정과 당황이 뒤섞여 혼란 그 자체였다. 릴리는 치료 쪽을 공부하고 있기에 지금 일어난 일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인지 곧바로 눈치챘다.
   ​
   ​
   또한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도 알아차렸다.
   ​
   ​
   마왕의 땅엔 무수히 많은 흑마법사들이 활동하고 있고, 그들이 사용하는 마법은 항상 사용하는 힘에 걸맞은 대가가 필요하다.
   ​
   ​
   리안이 사용하는 힘이 흑마법처럼 보이진 않았지만, 그만한 힘을 아무런 대가도 없이 사용할 수 있을리 없었다.
   ​
   ​
   “오,오빠 어디 아프거나 한 건 아니야? 괜찮아?”
   “어? 괘, 괜찮지?”
   ​
   ​
   릴리가 다급하게 리안의 상태를 확인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리안은 릴리가 왜 이리 격하게 반응하는지 알 수 없어 눈만 도르륵 굴렸다. 
   ​
   ​
   할머니가 손자의 몸을 확인하는 것처럼 거침없이 몸을 이리저리 더듬어 본 릴리는 아무런 상처나 이상이 없다는 걸 알고 나서야 안도의 숨을 내뱉었다.
   ​
   ​
   “하아… 오빠 정말 괜찮은 거 맞지? 막 머리가 아프다거나. 아니면 수명을 끌어와 치료했다거나..”
   “으음, 자세히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식으로 사용되는 힘은 아닌 것 같아.”
   ​
   ​
   숨 쉬는 법을 따로 배우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것처럼, 리안 또한 이 힘을 사용하는 방법을 따로 배우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이 힘을 사용한 대가 또한 곧바로 눈치챈 상태였지만 굳이 입에 담지 않았다.
   ​
   ​
   ‘들키면 못 쓰게 할지도 몰라.’
   ​
   ​
   새로 얻은 능력은 어떤 상처라도 손쉽게 치유할 수 있지만, 상대의 상처를 그대로 제 몸에 가져와 치유해야 하는 능력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상처는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
   ​
   이는 원래 제 몸에 있던 개그 필터의 기능과 능력이 겹쳤다. 그래서 그런지 능력이 더욱 강화되어, 상처가 회복되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
   ​
   릴리의 상처 또한 리안의 몸으로 옮겨간 상태다. 이를 릴리가 눈치채지 못한 이유는, 상처의 위치를 리안이 직접 지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
   ​
   리안이 지정한 위치는 허벅지 위쪽.
   ​
   ​
   아무리 릴리라도 더듬기 쉽지 않은 곳에 상처를 옮긴 덕분에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거기다 안쪽에 속옷과 주머니가 자리 잡고 있어 핏물이 흡수되는 것도 늦었다. 하지만 그것도 들키기까진 시간문제였다.
   ​
   ​
   이대로 방치하면 바지가 붉게 물들어 티가 나기 시작할 것이다. 
   ​
   ​
   “그보다 릴리 피아를 먼저 챙겨야 하지 않을까? 아까부터 상태가 이상한데…”
   “아!”
   ​
   ​
   리안의 말을 듣고 나서야 릴리는 피아의 상태가 좋지 않음을 떠올렸다. 릴리의 손길이 피아를 향하고 나서야 리안은 안도의 숨을 내뱉었다.
   ​
   ​
   ‘우선 자리를 피해야겠다.’
   ​
   ​
   그리 생각하며 몸을 뒤로 슬슬 빼기 시작했다. 릴리는 피아의 어깨를 붙잡아 일으키며 “괜찮아 언니?”라고 말을 걸었지만, 피아는 몽롱한 표정으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뱉을 뿐이었다.
   ​
   ​
   “그, 릴리 내가 화장실이 급해서. 피아 좀 침대에 눕혀주고 있을래?”
   “여긴 나한테 맡기고 다녀와.”
   ​
   ​
   릴리의 배려 덕분에 리안은 허벅지에 생긴 상처를 숨길 수 있었다. 화장실과 욕실은 나란히 자리하고 있었는데, 바로 앞에 수납장이 있었다. 수납장 안에는 갈아입을 옷과 수건이 들어있었다.
   ​
   ​
   리안은 수건 하나와 바지, 속옷을 몰래 챙긴 후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 
   ​
   ​
   탁.
   ​
   ​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바지를 벗자 피로 젖은 허벅지가 훤히 드러났다.
   ​
   ​
   “이야…이거 진짜 사기네.”
   ​
   ​
   리안은 어느새 상처가 아물어 핏물만 남아있는 허벅지를 보며 감탄했다. 다크 판타지 세계의 주민에겐 끔찍한 능력일 수 있지만, 개그 세계의 주민인 리안에겐 그저 사기 같은 능력일 뿐이었다. 
   ​
   ​
   ‘가르간도아로 공격하고 이 힘으로 아군을 회복시켜주면.. 음음, 꽤 쓸만하겠어!’
   ​
   ​
   만족스럽게 웃은 후, 피에 젖은 옷을 손빨래하기 시작했다. 핏자국은 보통 찬물에서 잘 지워지기 때문에 얼음장같은 물로 씻을 수 밖에 없었다.
   ​
   ​
   피가 묻은 지 얼마 안 된 덕분에 찬물에 박박 문지르자 핏물이 전부 빠졌다. 허벅지까지 깔끔하게 씻은 후 냄새 날까 봐 비누칠까지 했다. 
   ​
   ​
   리안은 가져왔던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속옷과 바지를 입은 후, 축축하게 젖은 바지를 욕실 앞에 있는 빨래 바구니에 넣고 방 쪽으로 몸을 틀었다. 
   ​
   ​
   릴리가 피아를 침대에 눕힌 후 살펴보고 있었다. 피아는 여전히 헬렐레한 상태였다. 피아의 상태가 걱정되어 침대로 다가가자, 릴리가 애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
   “피아의 상태는 어때?”
   “끄응…. 겉으로 봐선 별문제 없어 보여. 마법의 흔적도 없고.”
   ​
   ​
   릴리는 그리 말하며 손에든 마도구를 내려다보았다. 리안의 건강을 파악할 때 사용했던 마도구 중 하나였다. 
   ​
   ​
   “우선 다른 마도구로 조사를 더 해봐야 할 것 같아.”
   “후우… 큰일이 아니면 좋겠는데.”
   “그러게 -…잠깐만. 오빠 발목에 있던 족쇄는 어디 갔어?”
   “앗.”
   ​
   ​
   갑작스럽게 각성한 엄청난 능력 때문에 반쯤 잊고 있던 족쇄의 존재가 그제야 떠올랐다. 리안이 주춤 뒤로 물러나자 당황한 얼굴로 리안을 바라보던 릴리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
   ​
   “아이리스에게 오빠가 강하다는 얘기를 듣기는 했지만… 설마 족쇄를 부숴버릴 정도로 강한 줄은 몰랐네.”
   “하핫… 다, 다시 채울까?”
   ​
   ​
   리안이 눈치를 살살 보며 그리 말하자 릴리가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
   ​
   “…밖이 워낙 어수선해서 가능하면 가둬두고 싶은 심정이지만.”
   ​
   ​
   릴리는 애처로운 리안의 표정을 바라보며 눈을 내리깔았다.
   ​
   ​
   “그건 우리의 욕심이겠지.”
   “응? 욕심?”
   ​
   ​
   리안은 족쇄를 찬 채 방에 가둬져 있던 일을 반쯤 벌 받는 거라고 생각했기에, 릴리의 ‘욕심’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
   ​
   릴리는 순진하게까지 느껴지는 리안의 모습에 또다시 한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
   ​
   ‘저 오빠는 풀어놓으면 어디 가서 사기만 당하고 올 것 같아..’
   ​
   ​
   풀어놓으면 사기를 당하는 게 아니라 재앙을 풀어놓는 리안이지만, 릴리에겐 세상 물정 모르는 순한 사람으로 보일 뿐이었다.
   ​
   ​
   “나는 다시 족쇄를 채울 생각 없으니까 안심해. 오빠.”
   “헉…고마워!”
   ​
   ​
   릴리는 ‘노아 언니에게 들키면 다시 족쇄가 채워질 것 같지만..’이라는 말을 꿀꺽 삼킨 채 기뻐하는 리안에게 마주 웃어주었다.
   ​
   ​
   이후 릴리는 다른 마도구를 챙겨와 피아의 상태를 검사하기 시작했고, 리안은 바쁜 본관 아이들의 손을 거들어주기 시작했다.
   ​
   ​
   처음에는 당황하며 리안을 방으로 돌려보내려 했지만, 리안이 다친 사람들을 하나둘 치료하는 모습을 보이자 어쩔 수 없이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정확히 설명하자면 -… 나중에 노아에게 어련히 끌려가겠거니 하고 넘긴 것이다.
   ​
   ​
   해가 저물어갈 때쯤 피아가 멀쩡한 상태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
   ​
   “언니 정말 괜찮아?”
   “아, 응. 미안해. 리안님을 뵈어서 너무 흥분해버렸던거 뿐이야.”
   “리안님…? 리안 오빠를 말하는 거야?”
   ​
   ​
   피아는 릴리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손등을 내려다보며 행복하게 웃어 보였다. 상태 자체는 괜찮아 보여 릴리는 한숨 돌릴 수 있었다.
   ​
   ​
   ‘이제 저 손등의 문양이 뭔지 알아봐야 할 것 같은데…’
   ​
   ​
   우웅.
   ​
   ​
   피아의 손등을 훔쳐보던 릴리가 통신구의 진동 소리를 듣곤 주머니에서 통신구를 꺼냈다. 
   ​
   ​
   ‘지금은 너무 바빠서 힘들어. 당장은 별문제 없어 보이니까 급한 불부터 끄자.’
   ​
   ​
   릴리는 피아와 함께 방을 빠져나와 밀린 일을 처리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피아는 리안의 뜻을 따르기 위해 본관 일을 돕기 시작했다.
   ​
   ​
   정신없는 하루가 흐르고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을 때, 식당에서 소란이 발생했다.
   ​
   ​
   ​
   ​
   ​
   ​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오늘도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3

노아가 자리를 비운 사이 자유를 얻은 리안..
노아가 여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군요!

추천과 선작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

릴리는 다급한 손짓으로 팔에 붙은 거즈를 떼어냈다. 매끈한 팔이 드러나자, 릴리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이, 이게 무슨… ”

릴리는 손바닥으로 상처가 있던 곳을 쓸어내렸다. 매끈한 피부만 만져졌다. 상처가 있었던 게 꿈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와, 이제 공격이랑 힐을 동시에 할 수 있네? 이거 완전… 사기캐 아닌가?’

리안은 제 왼손을 내려다보며 기분 좋게 웃음 지었다.

‘아! 이 능력이라면…!’

손등을 내려다보던 시선이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는 피아를 향했다.

‘피아의 상태도 좋아지지 않을까?’

리안은 왼손을 피아의 머리 위로 가져갔다. 그대로 왼손에 힘을 집중하자.

파아아앗!

다시 한번 손에서 밝은 빛이 쏟아져 나왔다. 릴리 때와 달리 하얀 빛이 끝없이 피아의 몸으로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의 힘을 써야 상태 이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흐아아앗..!”

피아가 야릇한 신음을 흘리며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이내 자세가 흐트러지다 못해 바닥에 쓰러져 몸을 움찔거렸다.

‘이거..괜찮은 거겠지?’

그런 의구심이 들었지만, 비명을 내지른 건 아니었기에 신성력을 더 강하게 밀어 넣었다. 피아가 몸을 움찔거리며 숨을 헐떡거렸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파아앗!

피아의 왼쪽 손등이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리안의 손등에 새겨진 새하얀 줄기 같은 문양이 손등에 새겨졌다.

다만 그 크기가 손등을 다 덮을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어어? 이거 막 옮는 거였어?”

당황한 리안이 그리 중얼거리며 신성력을 거둬들였다. 그러자 피아의 손등의 빛도 점차 줄어들었다.

“핫,하앗….”

피아는 바닥에 쓰러진 채 멍한 얼굴로 감전이라도 당한 것처럼 몸을 파들파들 떨었다.

“피, 피아 괜찮아?”

리안이 조심스럽게 피아에게 손을 내밀며 묻자, 피아의 눈동자가 천천히 굴러 리안을 향했다. 그녀의 눈동자에 감히 무게를 측정할 수 없는 무거운 감정이 아른거렸다.

“아아…”

피아는 감격에 젖은 목소리를 작게 흘리고는 비틀거리며 몸을 추슬렀다. 그리고는 다시 무릎을 꿇은 채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기도를 올리는 신도의 모습 그 자체였다.

“저를, 저를 선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흐읏,흣… 리안님의 뜻과 영광을 세상에 널리, 널리 알리겠습니다.”

리안은 뜻을 알 수 없는 말에 뭐라고 대답을 해줘야 하나 말을 고르다가, 이내 다른 사람에게 답을 찾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릴리 쪽을 바라보았다.

“릴리, 피아가 왜 이러는지 혹시 알아?”

머쓱하게 웃으며 릴리를 돌아보는 것과 동시에, 릴리에게 어깨를 덥석 붙잡혔다.

릴리의 얼굴은 걱정과 당황이 뒤섞여 혼란 그 자체였다. 릴리는 치료 쪽을 공부하고 있기에 지금 일어난 일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인지 곧바로 눈치챘다.

또한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도 알아차렸다.

마왕의 땅엔 무수히 많은 흑마법사들이 활동하고 있고, 그들이 사용하는 마법은 항상 사용하는 힘에 걸맞은 대가가 필요하다.

리안이 사용하는 힘이 흑마법처럼 보이진 않았지만, 그만한 힘을 아무런 대가도 없이 사용할 수 있을리 없었다.

“오,오빠 어디 아프거나 한 건 아니야? 괜찮아?”

“어? 괘, 괜찮지?”

릴리가 다급하게 리안의 상태를 확인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리안은 릴리가 왜 이리 격하게 반응하는지 알 수 없어 눈만 도르륵 굴렸다.

할머니가 손자의 몸을 확인하는 것처럼 거침없이 몸을 이리저리 더듬어 본 릴리는 아무런 상처나 이상이 없다는 걸 알고 나서야 안도의 숨을 내뱉었다.

“하아… 오빠 정말 괜찮은 거 맞지? 막 머리가 아프다거나. 아니면 수명을 끌어와 치료했다거나..”

“으음, 자세히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식으로 사용되는 힘은 아닌 것 같아.”

숨 쉬는 법을 따로 배우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것처럼, 리안 또한 이 힘을 사용하는 방법을 따로 배우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이 힘을 사용한 대가 또한 곧바로 눈치챈 상태였지만 굳이 입에 담지 않았다.

‘들키면 못 쓰게 할지도 몰라.’

새로 얻은 능력은 어떤 상처라도 손쉽게 치유할 수 있지만, 상대의 상처를 그대로 제 몸에 가져와 치유해야 하는 능력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상처는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이는 원래 제 몸에 있던 개그 필터의 기능과 능력이 겹쳤다. 그래서 그런지 능력이 더욱 강화되어, 상처가 회복되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릴리의 상처 또한 리안의 몸으로 옮겨간 상태다. 이를 릴리가 눈치채지 못한 이유는, 상처의 위치를 리안이 직접 지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리안이 지정한 위치는 허벅지 위쪽.

아무리 릴리라도 더듬기 쉽지 않은 곳에 상처를 옮긴 덕분에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거기다 안쪽에 속옷과 주머니가 자리 잡고 있어 핏물이 흡수되는 것도 늦었다. 하지만 그것도 들키기까진 시간문제였다.

이대로 방치하면 바지가 붉게 물들어 티가 나기 시작할 것이다.

“그보다 릴리 피아를 먼저 챙겨야 하지 않을까? 아까부터 상태가 이상한데…”

“아!”

리안의 말을 듣고 나서야 릴리는 피아의 상태가 좋지 않음을 떠올렸다. 릴리의 손길이 피아를 향하고 나서야 리안은 안도의 숨을 내뱉었다.

‘우선 자리를 피해야겠다.’

그리 생각하며 몸을 뒤로 슬슬 빼기 시작했다. 릴리는 피아의 어깨를 붙잡아 일으키며 “괜찮아 언니?”라고 말을 걸었지만, 피아는 몽롱한 표정으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뱉을 뿐이었다.

“그, 릴리 내가 화장실이 급해서. 피아 좀 침대에 눕혀주고 있을래?”

“여긴 나한테 맡기고 다녀와.”

릴리의 배려 덕분에 리안은 허벅지에 생긴 상처를 숨길 수 있었다. 화장실과 욕실은 나란히 자리하고 있었는데, 바로 앞에 수납장이 있었다. 수납장 안에는 갈아입을 옷과 수건이 들어있었다.

리안은 수건 하나와 바지, 속옷을 몰래 챙긴 후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

탁.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바지를 벗자 피로 젖은 허벅지가 훤히 드러났다.

“이야…이거 진짜 사기네.”

리안은 어느새 상처가 아물어 핏물만 남아있는 허벅지를 보며 감탄했다. 다크 판타지 세계의 주민에겐 끔찍한 능력일 수 있지만, 개그 세계의 주민인 리안에겐 그저 사기 같은 능력일 뿐이었다.

‘가르간도아로 공격하고 이 힘으로 아군을 회복시켜주면.. 음음, 꽤 쓸만하겠어!’

만족스럽게 웃은 후, 피에 젖은 옷을 손빨래하기 시작했다. 핏자국은 보통 찬물에서 잘 지워지기 때문에 얼음장같은 물로 씻을 수 밖에 없었다.

피가 묻은 지 얼마 안 된 덕분에 찬물에 박박 문지르자 핏물이 전부 빠졌다. 허벅지까지 깔끔하게 씻은 후 냄새 날까 봐 비누칠까지 했다.

리안은 가져왔던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속옷과 바지를 입은 후, 축축하게 젖은 바지를 욕실 앞에 있는 빨래 바구니에 넣고 방 쪽으로 몸을 틀었다.

릴리가 피아를 침대에 눕힌 후 살펴보고 있었다. 피아는 여전히 헬렐레한 상태였다. 피아의 상태가 걱정되어 침대로 다가가자, 릴리가 애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피아의 상태는 어때?”

“끄응…. 겉으로 봐선 별문제 없어 보여. 마법의 흔적도 없고.”

릴리는 그리 말하며 손에든 마도구를 내려다보았다. 리안의 건강을 파악할 때 사용했던 마도구 중 하나였다.

“우선 다른 마도구로 조사를 더 해봐야 할 것 같아.”

“후우… 큰일이 아니면 좋겠는데.”

“그러게 -…잠깐만. 오빠 발목에 있던 족쇄는 어디 갔어?”

“앗.”

갑작스럽게 각성한 엄청난 능력 때문에 반쯤 잊고 있던 족쇄의 존재가 그제야 떠올랐다. 리안이 주춤 뒤로 물러나자 당황한 얼굴로 리안을 바라보던 릴리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아이리스에게 오빠가 강하다는 얘기를 듣기는 했지만… 설마 족쇄를 부숴버릴 정도로 강한 줄은 몰랐네.”

“하핫… 다, 다시 채울까?”

리안이 눈치를 살살 보며 그리 말하자 릴리가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밖이 워낙 어수선해서 가능하면 가둬두고 싶은 심정이지만.”

릴리는 애처로운 리안의 표정을 바라보며 눈을 내리깔았다.

“그건 우리의 욕심이겠지.”

“응? 욕심?”

리안은 족쇄를 찬 채 방에 가둬져 있던 일을 반쯤 벌 받는 거라고 생각했기에, 릴리의 ‘욕심’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릴리는 순진하게까지 느껴지는 리안의 모습에 또다시 한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저 오빠는 풀어놓으면 어디 가서 사기만 당하고 올 것 같아..’

풀어놓으면 사기를 당하는 게 아니라 재앙을 풀어놓는 리안이지만, 릴리에겐 세상 물정 모르는 순한 사람으로 보일 뿐이었다.

“나는 다시 족쇄를 채울 생각 없으니까 안심해. 오빠.”

“헉…고마워!”

릴리는 ‘노아 언니에게 들키면 다시 족쇄가 채워질 것 같지만..’이라는 말을 꿀꺽 삼킨 채 기뻐하는 리안에게 마주 웃어주었다.

이후 릴리는 다른 마도구를 챙겨와 피아의 상태를 검사하기 시작했고, 리안은 바쁜 본관 아이들의 손을 거들어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당황하며 리안을 방으로 돌려보내려 했지만, 리안이 다친 사람들을 하나둘 치료하는 모습을 보이자 어쩔 수 없이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정확히 설명하자면 -… 나중에 노아에게 어련히 끌려가겠거니 하고 넘긴 것이다.

해가 저물어갈 때쯤 피아가 멀쩡한 상태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언니 정말 괜찮아?”

“아, 응. 미안해. 리안님을 뵈어서 너무 흥분해버렸던거 뿐이야.”

“리안님…? 리안 오빠를 말하는 거야?”

피아는 릴리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손등을 내려다보며 행복하게 웃어 보였다. 상태 자체는 괜찮아 보여 릴리는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이제 저 손등의 문양이 뭔지 알아봐야 할 것 같은데…’

우웅.

피아의 손등을 훔쳐보던 릴리가 통신구의 진동 소리를 듣곤 주머니에서 통신구를 꺼냈다.

‘지금은 너무 바빠서 힘들어. 당장은 별문제 없어 보이니까 급한 불부터 끄자.’

릴리는 피아와 함께 방을 빠져나와 밀린 일을 처리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피아는 리안의 뜻을 따르기 위해 본관 일을 돕기 시작했다.

정신없는 하루가 흐르고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을 때, 식당에서 소란이 발생했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