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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5

   알른 가문의 여식이 어찌 우리 아들에 대한 것을 알고 있는 거지?

   

   뉴먼 가문은 뒷세계를 기반으로 하는 귀족 가문답게 이 쪽에서 일을 하는 이들이 누구인지 대개 기억하고 있다.

   

   그 중에 알른 가문의 이름은 없다.

   

   명성 높은 기사 가문인 알른 가문이 왜 뒷세계를 건드리겠는가.

   

   그들에겐 그럴 이유도 필요도 없는데.

   

   조금 바꾸어서 말을 하자면 알른 가문의 정보망이 그리 넓지 못하다는 소리다.

   

   수면 위로 떠오른 소문 정도야 듣겠지만 그 뿐.

   

   자신들의 무력만을 믿는 근육 돼지들이 수면 아래에 감춰진 것을 찾을 수 있을 리가 없다고 커즈는 생각했다.

   

   허나 달랐다.

   

   루시 알른은 수면 아래로 들어갈 수단을 지니고 있었다.

   

   어떻게?

   

   미간을 찌푸린 채 그런 고민을 하던 커즈는 침음성을 흘리다 이내 이런 고민이 무의미함을 깨달았다.

   

   그의 아들이 아그라의 저주에 걸렸다는 건 추측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가 여태까지 아들을 구하기 위해 해 온 일들이 있으니까.

   

   그 행적의 뒤를 밟기만 하면 얼마든 추측할 수 있지.

   

   “이 정보를 알아낸 게 알른 가문의 것인지 아니면 알른 가문의 여식이 지닌 건지는 알아봐야겠지만 그 뿐.”

   

   아들을 언급한 부분에서 잠시 평정을 잃었던 커즈지만 그는 이내 침착함을 되찾고 눈동자를 아래로 내렸다.

   

   ‘안 건강하다고요? 알고 있었답니다. 그냥 물어보면 화나실 거 같아서 여쭤봤어요. 화나셨나요? 좆밥 당주님? 그랬으면 좋겠는데.’

   “빌어먹을 년이.”

   

   허나 다음 문장을 읽자마자 커즈는 이빨을 아득하고 씹었다.

   

   건방지군. 너무도 건방져.

   

   루시 알른이 이런 사람이라는 건 진즉에 알고 있었다.

   

   제국의 3왕자인 아서에게 불쌍 왕자라는 별명을 붙이는 괴인이다.

   

   예의도 뭣도 모르는 자만과 오만의 덩어리인 게 분명했지.

   

   허나 그를 멀리서 구경하는 것과 그 앞에 서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만일 어중간한 인간이 이런 짓을 저질렀다면 커즈는 뉴먼 가문의 힘을 이용해 그 자를 묻어버렸으리라.

   

   아 물론 그 전에 적절한 협상을 통해 원하는 것도 얻을 테고.

   

   그렇지만 이 자는 알른 가문의 여식이었다.

   

   대륙에서 손에 꼽을 정도의 무력을 지닌 기사 가문인 알른 가의 여식이란 말이다.

   

   지금이야 뒷방의 늙은이마냥 자신의 영지만을 지키고 있지만 과거에는 왕국 이외에 모든 나라를 두려움에 떨게 했던 악몽의 가문.

   

   자신의 딸을 사랑하는 베네딕 알른이 눈이 돌아가 뉴먼 가문을 습격한다면 뉴먼 가문이란 이름은 재가 되어 사라져 버리겠지.

   

   그러니 건드릴 수 없다.

   

   강요할 수도 없다.

   

   커즈 뉴먼은 아버지이기 이전에 뉴먼 가문의 당주이니까.

   

   ‘다급하신 좆밥 당주님이 뭘 원하는 지는 아주 잘 알고 있답니다.’

   ‘그런데 있잖아요. 그건 좆밥 당주님이 급한거지 제가 급한 게 아니잖아요?’

   ‘어쩌실래요? 자식 목숨을 가지고 줄다리기를 할 자신이 있으신가요? 제가 생각하기에 좆밥 당주님은 그럴 수 없는 허접처럼 보이는데.’

   ‘대화를 나누고 싶으시다면 직접 기어 나와 주세요. 음침한 좆밥 가문의 당주님.’

   

   편지의 첫장을 마지막까지 읽어내린 커즈는 심호흡을 하며 최선을 다해 냉정을 유지하려 했다.

   

   침착하자. 상대의 도발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그리 속으로 다짐하며 다음 장을 넘겨 본 그는

   

   ‘내용이 더 있을 거라고 생각하셨나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기대하셨나요? 하핫. 바보같아라.’

   

   ‘어린 여자애한테 놀아나는 허접이시네요~’

   

   편지지를 책상에 집어 던졌다.

   

   뒷세계에서 일을 하며 어지간한 일을 모두 겪어 본 커즈다.

   

   이런 식으로 어린 것에게 무시를 당해본 경험이야 수도 없이 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이 편지를 읽고 있으면 마음 속 깊은 곳 어딘가가 망가지는 느낌이 들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당주님?”

   “닥쳐봐.”

   “옙!”

   

   빌어먹을. 이래서야 상대에게 우위를 차지하기는 글렀군.

   

   루시 알른 이 년은 부서질 지언정 남에게 고개를 숙일 위인이 아니다.

   

   한 귀족 가문의 당주에게 이런 편지를 보내는 것을 봐라.

   

   이 정도로 오만에 가득 찬 인간이 다른 사람에게 굽힐 리 없다.

   

   보통 이런 인간을 상대하는 제일 쉬운 방법은 부셔버리는 거지만 이 뒤에 베네딕 알른이 기다리고 있는 게 너무도 악질적이다.

   

   “굽힐 수 없는 상대라면… 내가 숙이고 들어가는 수밖에 없는가.”

   

   고민 끝에 그런 결론에 도달한 커즈는 자기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고개를 숙이는 거야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만약 루시 알른에게 아그라의 저주를 치료해 줄 방법이 있고 협상에 따라서 자신의 아들을 치료해 줄 수 있다면 고개 숙이는 것쯤이야 가볍지.

   

   허나 문제는 확신이 없다는 것이었다.

   

   루시 알른이 정말 아그라의 저주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들고 있는가?

   

   만일 그 방법이 있다 하더라도 악신의 분노를 살 걸 각오하고 그의 아들을 치료해 줄 수 있는 사람일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 고지를 선점하고 상대에게서 서서히 정보를 캐낼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이야.

   

   루시 알른은 영악한 것일까 아니면 자기 성격을 못이겨 되는 대로 행동을 한 것일까.

   

   모르겠군.

   

   그렇지만 하나 확실한 건 직접 루시 알른을 만나지 않는다면 그 무엇도 확인할 수 없단 거겠지.

   

   “당장은 속아넘어가야겠군.”

   

   커즈는 아무렇게나 내던졌던 편지를 치워버리고는 서랍에서 새로운 편지지를 꺼냈다.

   

   그리고는 자신의 만년필로 순식간에 문장 몇 개를 적고는 그를 자신의 심복에게 건넸다.

   

   “이걸 루시 알른에게 전달해라.”

   “예. 알겠습니다.”

   

   소울 아카데미를 졸업한 후에 다시금 그 곳에 찾아갈 일이 생길 줄이야.

   

   *

   

   어제 내가 해 준 이야기를 모두 들은 후 할배는 이렇게 말했다.

   

   <고민하는 게 이해가 안 되는 구나. 상대에게 너는 대체할 수 없는 자원이란 소리 아닌가. 그렇다면 그냥 불러내서 원하는 걸 요구해라.>

   ‘그러다 협박이라도 당하면 어떡해요.’

   

   뉴먼 가문은 뒷세계 쪽 인물들이란 말야.

   

   평판과 무력이 낮은 나는 잘못하다간 그대로 게임오버를 당할 수가 있다고!

   여기에 세이브로드가 있었으면 하다 좆되면 다시 키지 뭐. 라고 생각했겠지만 여긴 게임이 아니잖아!

   

   나 무섭다고!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 버리는 걸 몸으로 체험하고 싶지 않아!

   

   <정 그게 무서우면 네 기사를 데리고 가면 된다. 그 녀석이라면 어지간한 위기에서도 널 구해주겠지.

   그 후는 너무도 쉽다. 상대가 네게 명분을 준 것 아니냐. 아카데미와 네 가문에 이야기해 압박하면 자연스레 해결될 것이다.>

   

   할배는 정답이 정해져 있는 데 대체 뭘 고민하냐는 듯이 그리 이야기를 했고 거기에 설득된 나도 할배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그렇게 커즈 뉴먼을 불러내기 위한 편지를 쓰던 나는 또 다른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

   

   ‘좆밥 가문인 뉴먼 당주님께.’

   

   편지를 내 마음대로 쓸 수가 없었다.

   

   내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은 메스가키 스킬의 통제를 받는다.

   

   내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메스가키 스킬에 의해 번역이 되고,

   

   움직이는 것도 눈앞의 상대를 열받게 하기 위해 움직이지.

   

   그나마 행동이 강제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게 다행이지만 이런 글을 쓸 때는 예외다.

   

   이 때는 손가락 움직이는 것 하나하나가 제어당하거든.

   

   지난번에 시험 답안을 메스가키 어로 써야 했을 때 얼마나 당혹스러웠는지 알아?

   

   다행히 그건 별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이번은 다르다.

   

   귀족 가문의 영애가 다른 귀족 가문의 당주한테 편지를 쓰는데 이딴 식으로 적으면 안 되는 거잖아!

   

   왜 친애하는 뉴먼 가문의 당주님께라고 쓰는데 그게 좆밥 가문으로 바뀌는 거냐고!

   

   몇 번이나 편지를 찢고서 새로 쓰기를 반복하던 나는 현실의 벽 앞에 부딪혀 절망했다.

   

   그 때에 할배가 의견을 냈다.

   

   <어차피 이렇게 될 거면 그냥 도발을 하자꾸나. 상대가 열받아서 오지 않을 수 없도록.>

   ‘…그래도 되나요?’

   <말했잖느냐. 상대가 시비를 건다면 이득이래도?>

   

   어차피 정중하게 보낼 수 없다면 그냥 도발을 해버리자.

   

   다른 방법이 없었던 나는 할배의 의견을 받아들여 메스가키 어가 담긴 편지를 썼고 그를 알새틴을 통해 뉴먼 가문의 당주에게 보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난 지금.

   

   나는 칼을 데리고서 거리에 나와 있었다. 커즈 뉴먼을 만나기 위해서.

   

   처음엔 편지가 왔다갔다 하면서 만나게 될 때까지 몇 주가 걸릴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상대가 여유를 주질 않네.

   

   메스가키 스킬의 도발에 제대로 넘어온 걸까?

   

   커즈 뉴먼이 약속장소로 지적한 소울 아카데미의 레스토랑 중 하나에 발을 들인 순간 카운터를 지키던 종업원 하나가 내게 다가왔다.

   

   “알른 가문의 영애님이시지요?”

   

   ‘네. 맞아요.’

   “맞아. 들러리.”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그 뒤를 따라가자 레스토랑의 개인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종업원이 방 하나의 문을 열자 빈 식탁 너머로 한 중년 남성의 모습이 보였다.

   

   희끄무레하게 물든 머리카락은 뒤로 넘겼고,

   

   거친 삶을 살아온 듯 얼굴에 여러 자잘한 상처가 새겨져 있었으며,

   

   청색의 사나운 눈동자는 냉엄하다.

   

   나이가 꽤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이 잡혀 있는 중년에게서는 한치의 어긋남도 보이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반갑습니다. 알른 가문의 영애님.”

   

   웃음기 하나 없이 내밀어진 딱딱한 인사.

   

   본래라면 저기에 예를 표하는 게 정상이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대신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의자에 앉아서는 남자에게 물었다.

   

   ‘당주님은 어디에 계시나요?’

   “뉴먼 가문의 허접한 강아지야. 너희 주인님은 어딨니?”

   

   “무례하군. 알른 영애.”

   

   눈썹을 내리며 내는 목소리에는 강한 힘이 담겨있었다.

   

   할배가 갑자기 왜 이러냐고 물을 정도로.

   

   그렇지만 난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이거 게임에서 만날 커즈 뉴먼이 하는 짓거리거든.

   

   처음에 자기 대타를 내보내고서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하게 만듬으로써 그 사람의 능력을 파악하는 거.

   

   원래 게임에서는 눈썰미와 관련된 스킬을 일정 이상 올려야 이를 지적할 수 있다.

   

   그래서 눈앞에 있는 게 뉴먼 가문의 당주가 아니라 가짜라는 걸 알고 있어도 스킬이 부족하면 강제로 속아야했지.

   

   근데 지금은 게임이 아니잖아?

   

   커맨드로 내 말을 지정해야 하는 세상이 아니라면 스킬이 없더라도 진짜 커즈 뉴먼을 불러낼 수 있다고.

   

   ‘다 알고 있으니까 연기 그만 하세요.’

   “푸훗. 허접한 강아지야. 내가 너한테 속아 넘어갈 것 같아? 역시 좆밥 가문의 강아지네. 멍청해라~”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쿡쿡 대는 웃음소리에 중년 남성이 느릿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내 앞으로 다가오려고 했다.

   

   허나 그는 목적을 이룰 수 없었다.

   

   나와 중년 남성의 사이를 칼이 가로 막았으니까.

   

   “비켜라.”

   “싫군. 내가 왜 뉴먼 가문의 개가 하는 명령을 들어야 하지?”

   “하. 정신이 나가버리겠군. 내가 커즈 뉴먼이 아니라고?”

   “그래. 아가씨께서 그리 말씀하셨으니까.”

   “내 아들의 목숨이 걸린 일에 내가 장난을 치리라 생각하는가?!”

   

   처음에는 이 자가 가짜일 거라 확신한 나였지만 중년남성이 소리를 치는 것을 듣고서 살짝 움찔했다.

   

   혹시나 저 사람이 진짜 커즈 뉴먼이면 어떡하지?

   

   게임에선 만날 처음 만날 때마다 자기 대역을 세워놓고 시험하던 사람이었지만 현실에선 다를 수도 있잖아.

   

   기선제압을 하려고 냅다 던진건데 만약 이게 정말 무례를 저지른 거라면 어떻게 수습해야 하지?

   

   확신과 의심 사이에서 스멀스멀 불안감이 차오를 즈음에 뒤편에서 문이 열렸다.

   

   “그만해라. 이미 다 알아차리신 듯 하니.”

   

   …휴우.

   

   다행이다.

   

   좆 되는 줄 알았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루시의 강아지는 주인의 말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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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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