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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6

       자, 그러면 엘프와 드워프의 대표들이 오기 전에 짧막하게 이야기 해두고 넘어갈까.

       

       

       “뀨우?”

       

       

       지금 내 앞에서 귀여운 척을 하고 있는 이 작은 생쥐 같은 짐승에 대해서 말이다.

       

       나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짐승의 코 끝을 살짝 밀어 넘어트렸다.

       

       뭐, 겉모습은 확실히 귀엽긴 한데 말이지.

       

       이렇게 작고 귀여운 짐승이 자연발생한 신이라니. 정말로 기묘하기 짝이 없다니까.

       

       

       “끼이!”

       

       

       빼액 하고 화내는 짐승. 그래봤자 귀엽기만 하단 말이지.

       

       나는 화를 내고 있는 짐승의 머리를 검지 손가락으로 살살 긁듯이 쓰다듬자 기분이 좋아진 것인지 금방 화를 풀어낸다.

       

       이런 귀여운 모습으로 속이고 있지만, 예전에는 온갖 동물들의 모습으로 변하며 패악질을 부리던 이 짐승은…. 수인들의 믿음에서 태어난 신이었다.

       

       

       수인들은 어찌하여 다른 인간들과 다른 것인가? 어째서 신체의 일부가 동물의 모습인 것인가?

       

       그런 의문을 품은 수인들은 자신들의 기원을 알아내고 싶어했지만…. 수인들은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뭐, 알아내지 않는 편이 더 좋을지도 모르지. 자신들의 조상이 짐승에 박아댄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죽고 싶어지지 않겠는가.

       

       아무튼, 진실을 알아내지 못한 수인들은 상상했다.

       

       인간을 동경하고, 인간을 사랑하여, 인간을 덮쳐 아이를 품게 된 최초의 짐승을.

       

       그 결과 반인반수의 수인들을 낳게 된 조상신. 최초의 짐승을 상상한 것이었다.

       

       뭐, 결국 짐승박이에서 인간박이…. 아니 인간박힘이인가. 아무튼.

       

       사실과는 아주 약간 달라지게 된 수인의 기원 신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를 통해 형성된 원시적인 신화.

       

       그 결과물이 여기 있는 조그마한 짐승이었다.

       

       물론 제대로 기록되지 않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신화인지라 허술한 점은 셀 수 없이 많아서, 수인들의 종족이 다 제각각이라는 부분을 해명하기 위해, 최초의 짐승은 온갖 짐승으로 변할 수 있는 짐승신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게다가 구전설화에서 신비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만 강조해서인지, 지능은 짐승과 다를바 없는 빡대가리가 되어버렸고 말이지.

       

       덕분에, 몬스터 마냥 온갖 짐승으로 변하며 난동을 피우던 이 바보같은 짐승을 용사와 함께 때려잡게 되었단 말씀.

       

       명색이 신이었건만 몬스터들과 비교해서 약간 더 강한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던터라, 희미한 신성을 품고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려서 아차하면 용사를 신살자로 만들어버릴뻔 했지만…. 아슬아슬하게 늦지 않았으니 세이프.

       

       그렇게 말이 통하지 않는 짐승신에게 물리적인 설득을 행한 후, 길들여서 데리고 다니게 된 것이었다.

       

       뭐, 나중에 시간날때 수인의 신화를 정비해서 제대로 된 신으로 만들어줄 생각이지만 말이지. 일단은 용사의 탈것 겸 미끼 같은 느낌으로 활용되고 있지만.

       

       일단 애완동물로는 상당히 만족스러운 귀여움이었으니까. 응.

       

       

       “그 녀석을 상당히 귀여워 하시는군요.”

       

       “음. 태어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어린 신이지 않느냐. 귀여울 만 하지.”

       

       

       짐승의 본성만 꺼내지 않는다면 한없이 귀여우니까 말이지! 음…. 길들여진 짐승도 짐승이긴 했던가.

       

       

       – – – – – – – – – – – – – – – – – – – –

       

       

       뭐 아무튼, 그렇게 말 못하는 짐승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엘프와 드워프를 기다린 결과.

       

       엘프와 드워프가 각자 군대를 이끌고 대치하는 상황까지 와버렸다.

       

       음…. 난 분명 대표를 불러오라고 말했었는데, 왜 총력전 상황이 되어버린거지?

       

       게다가 양측의 분위기도 팽팽하고. 잠깐이라도 한눈을 팔면 화살이 날아다닐 것 같은 분위기고.

       

       정말이지, 말을 지독하게 안듣는 놈들이라니까.

       

       

       “양측. 거리를 벌려 물러서도록.”

       

       

       결국 상황을 정리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여기에서 붙어버리면 될 일 아닌가? 이 거리라면 그렇게 자랑하던 화살도 얼마 못쏠테고 말이지.”

       

       “재미있군. 엘프들은 활이 주무기이긴 하지만, 근접전투도 모자람이 없다는건 모르나보군.”

       

       

       엘프와 드워프들은 내 말을 들은체 하지 않고 서로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금속제 갑옷을 단단히 챙겨입고, 도끼와 방패까지 두 손에 든 중갑병의 드워프들과, 가벼운 옷차림에 활을 손에 든 엘프들.

       

       아, 앞쪽에 선 엘프들은 활에 걸린 실을 풀어서 활을 펼치기 시작한다. 길이가 상당한 활이라 그런지 실을 풀어내자 지팡이처럼 변하는구만.

       

       거기에 정령을 소환해서 지팡이에 깃들게 하는 엘프들. 과연. 쿼터스태프에 정령의 힘까지 사용해서 위력적인 무기로 휘두르는건가.

       

       저런 무기라면 중갑을 입고 있는 드워프들도 쉽사리 상대할 수 없겠는걸.

       

       하지만.

       

       

       “내 말이 말 같지 않은걸까.”

       

       

       나는 그런 엘프와 드워프들을 보며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금방이라도 싸움질을 시작하려는 모습의 두 종족을 보며, 나는 살짝 짜증을 부리며 두 종족의 군대와 대표까지 포함한 범위 내의 중력을 뻥튀기시킨다.

       

       

       “적당히 하거라. 이 멍청한 놈들.”

       

       “크윽?!”

       

       “뭐, 뭐야 이거!”

       

       “뭐긴 뭐야. 여신의 분노다. 어리석은 놈들아.”

       

       

       일정 지역의 중력을 추가하여 공기 자체가 무게추가 되어 몸뚱이를 짓누르는 가벼운 마법. 하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가볍지 않으리라.

       

       몸에 커다란 무게추 몇개를 휘감은 느낌일테니까. 제대로 움직이는 것도 쉽지 않겠지.

       

       

       “크, 크윽…. 당신은…!”

       

       “일단은, 생명의 여신을 대신하는 자. 여신의 대리인이다.”

       

       “여신의, 대리인…?”

       

       

       두 종족의 대표는 나름 힘이 있는 모양인지, 짓누르는 중력에도 견뎌내기 시작했다.

       

       호오. 제법이로고.

       

       

       “자, 이제 이야기를 할 준비가 되었나?”

       

       

       서있는 것이 고작인 두 종족의 대표. 그런 둘을 보며 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생명의 여신을 대신하여, 너희들이 벌이려는 싸움을 끝내러 왔다. 물론 양측의 신인 세계수 이그드라실과 성스러운 산 사가르마타와도 이야기가 끝난 상태니, 거부권은 없다.”

       

       

       나는 두 종족에게 통보한다.

       

       

       “종족 단위의 전쟁은 금지한다. 하지만 양측의 갈등을 없었던 것으로 할 순 없으니, 각 종족의 대표를 뽑아 생명을 빼앗지 않는 수준의 대결을 펼치도록 한다.”

       

       “생명을 빼앗지 않는 수준이라니, 어린애 장난도 아니고….”

       

       

       툴툴거리는 드워프의 대표. 나는 그 위에 중력을 조금 더 끼얹어둔다.

       

       그러자 간신히 서있던 드워프의 대표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땅바닥에 무릎을 꿇어버린다.

       

       

       “죽고 싶다면, 지금 당장 한줌의 핏물로 만들어 줄 수 있다만.”

       

       “크윽…!”

       

       

       그런데, 역시 드워프의 몸뚱이가 튼튼하긴 튼튼하네. 땅바닥에 엎드리게 만들 셈으로 중력을 더했는데 그걸 버티다니.

       

       짧지만 굵은 드워프 다운 튼튼함이구만.

       

       

       “그 뿔…. 그 은발…. 말도 안되는 힘…! 혹시…!”

       

       

       음? 엘프의 대표는 나를 보고서 무언가를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흐음…. 겉모습으로 보기에는 별로 나이가 많아보이지 않는데, 액면가보다 나이가 많은 편인건가?

       

       아무리 엘프라도 그정도로 시간이 지났는데, 좀 늙어야 하는게 정상 아닌가?

       

       

       “혹시, 저희 엘프들에게 정령술을 가르쳐주신 분이십니까?”

       

       

       흐음…. 진짜로 기억하고 있네? 기억력이 좋구만.

       

       수백년 전의 일을 아직도 기억하다니.

       

       하지만 지금은 생명의 여신이자 창세신룡이 아닌, 여신의 대리인으로 있으니까…. 저 질문에 정직하게 말해줄 순 없지.

       

       어디보자…. 그러니까….

       

       

       “같은 존재지만, 다른 사람이지.”

       

       “같은 존재? 다른 사람…?”

       

       “엘프들에게 정령술을 가르쳐 준 것은 나와 같은 생명의 여신을 대신하는 자. 여신의 대리인. 용의 무녀이지. 본질은 동일하지만, 필요에 따라 새롭게 태어난 다른 존재인 것이다.”

       

       

       음. 대충 이정도의 거짓말이면 충분할까? 아니, 모자라지.

       

       

       “어디까지나 이 육체는 인간의 육체이니까. 그대들 엘프처럼 수백년 넘게 살지는 못하거든.”

       

       

       거짓말에 거짓말을 쌓아올린다.

       

       

       “그러니 너희 엘프들에게 정령술을 가르쳐 준 것은…. 나로부터 몇대 이전의 용의 무녀지.”

       

       “용의 무녀…!”

       

       

       거짓말의 산을 쌓아올린다.

       

       직접적으로 활동한 것은 여신의 대리인. 용의 무녀.

       

       생명의 여신은 그저 드높은 하늘 위에서 세상을 굽어 살피며 은총을 내릴 뿐.

       

       일종의 역할분담이라고 할 수 있을테지.

       

       1인 2역이지만!

       

       이렇게 역할을 나누는 것으로, 자유롭게 움직이거나 세상에 개입해야 할 때는 용의 무녀로서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니.

       

       이 세상에 잔뜩 손을 댈 수 있으면서, 동시에 신으로서의 위엄도 유지하는 것이었다.

       

       뭐, 얄팍한 생각이지만 말이야!

       

       

       “전대 용의 무녀가 어떤 일을 했는지에 대한 지식은 있지만, 주관적인 기억은 온전히 이어지지 않아서 말이야. 본질은 동일하지만, 타인이 한 기록을 읽어보는 느낌이지.”

       

       “본질은 동일하지만 다른 존재…. 과연…. 알겠소. 지금까지의 무례함을 사과하겠소.”

       

       “음. 알면 됐어. 알면.”

       

       

       거짓말을 계속 덧칠해서 속여나간다.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을 속여넘길때까지.

       

       

       “잠깐. 그 용의 무녀라는 존재…. 아주 오래전부터 활동한 존재인건가?”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던 드워프의 대표가 입을 연다. 흐음. 꽤나 힘들어하면서도 용케 말할 기력이 있구만.

       

       

       “혹시, 드워프들에게 많은 것을 준 적이 있지 않나?”

       

       

       드워프 대표의 말에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드워프라는 종족의 이름을 지어준 것도 전대의 용의 무녀 중 한 사람이니까 말이지.”

       

       

       땅 속의 현자. 대충 그런 의미라고 속였으니까 말이야.

       

       

       “과연. 그런건가. 그렇다면 은빛의 예지叡智의 정체가 용의 무녀였단 말이로군.”

       

       “은빛의 예지?”

       

       “드워프에게 전해지는 말이오. 그저 순간적인 번뜩임을 일컫는 말이라고 생각했건만, 사실은 생명의 여신을 대리하는 존재라니….”

       

       

       음. 드워프들에게는 그런 식으로 전해지고 있었구나.

       

       

       “음…. 일단 겉으로 내세울 생각은 없으니까, 가능하면 비밀로 해주겠어?”

       

       

       나는 싱긋 웃으며 저들을 짓누르는 중력을 원래대로 되돌린다.

       

       뭐, 이런 식으로 비밀유지를 부탁하더라도…. 정말로 비밀유지가 될리는 없겠지만 말야!

       

       게다가 지금 여기에 모여있는 엘프와 드워프들의 숫자만 수천이 넘으니까. 절대로 비밀 유지는 안되겠지.

       

       그렇게, 용의 무녀라는 존재에 대한 소문이 조금씩 퍼져나가게 되리라.

       

       용사의 동행인이나 시종이 아니라! 용의 무녀로서 말이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TheMelalo님 103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앗… 어느새 조회수 100만… 세상에…!!
    100편도 채우지 않았는데 이렇게 조회수가 모일줄은 생각도 못했네요!
    앞으로도 열심히 쓸게요!

    크아악! 또 늦었다!!!

    역시… 비축분이 있어야겠어요… 끄윾…

    쥐어짜자. 한편만 더 쥐어짜면 여유가 생길거니까…!

    주인공이 용의 무녀를 이용하는건…. 유동분신술이라고 보면 됩니다(…).

    하지만 신이 직접 움직이면 곤란한걸요!

    나중에 들키거나 하면 곤란할 것 같지만!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다음화 보기


           


Whether You Call Me a Guardian Dragon or Not, I’m Going to Sleep

Whether You Call Me a Guardian Dragon or Not, I’m Going to Sleep

늬들이 날 수호룡이라 부르든 말든 난 잘거야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story of a human reincarnated as the Creator God of a new world, and her observation logs of the burgeoning new world and life. — Dragons, which have existed since before the birth of human civilization, became the guardian dragons of the empire. But whether you guys call me that or not, I’m going to sle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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