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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6

    위쪽을 자세히 살펴보니 우리 머리 위에는 정말로 둥실둥실 날아다니는 푸딩이 떠 있었다.

    “날아다니는 푸딩?”

    지금 공장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푸딩이었다.

    사방에 널려 있는 슬픈 황금 사신이들.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흩어져 있는 조각난 시체. 

    바닥에 들러붙어 어둡게 응고된 피로 매끈하게 빛나는 피 웅덩이.

    악취미라고밖에 할 말이 없는 온갖 사람의 살점으로 만든 장식물들과 살점 푸딩.

    이런 흉흉한 분위기 위로 둥실둥실 떠다니는 푸딩이 나타난 것이다.

    희미한 공장 조명 아래에서 크리미한 커스터드 같은 질감으로 반짝이는 푸딩이었다.

    암울함 속에서 기괴한 경쾌감? 

    그 괴리감이 묘한 웃음을 짓게 만들어 주었다.

    디저트를 감싼 비눗방울은 빛을 반사하면서 무지개 빛깔로 반짝였다.

    그러면서도 이따금 공장 내부의 끔찍한 광경을 이리저리 비틀고 왜곡시켜서 비춰주고 있었다.

    나와 회색 사신이가 위쪽을 하염없이 올려다보고 있으니, 제임스도 우리를 따라서 고개를 들고 공중을 확인했다.

    “미처 회수하지 못한 푸딩이 있었군.”

    제임스는 익숙한 것을 보는 것처럼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 신기한 걸 보고 겨우 이런 반응이라니?

    그런 감정을 담아서 제임스를 쳐다보고 있으니, 반응이 돌아왔다.

    “아, 자네들은 처음 보겠군. 이 푸딩 공장에서 생산한 푸딩은 모두 저런 식으로 비눗방울에 싸인 채 생산된다네.”

    “도대체 왜 그런 짓을?”

    굳이 저런 식으로 생산할 필요가 있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저런 식으로 생산해야 할 필요는 절대로 없을 것 같은데.

    “아! 저런 식으로 푸딩이 튀어나오는 건 당연히 의도된 사항이 아니라네. 푸딩을 만드는 오브젝트가 멋대로 그렇게 하는 거야. 뭐, 오브젝트는 마음대로 설계가 안 된다는 점이 매력이니 어쩔 수 없지.”

    오브젝트가 제멋대로 저러는 거라면 어쩔 수 없지.

    오브젝트에 의도를 넣어서 기계를 설계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하긴 했다.

    한국은 격리하거나 제거하느라 급급한 실정인 것을 생각해 보면 꽤 격차가 있어 보였다.

    “뭐, 저런 식으로 거품 속에 담겨서 나오는 바람에 공장 직원 중 꽤 많은 수는 그물을 들고 저 푸딩들을 공중에서 건져 내리는 일을 했었지.”

    오브젝트로 푸딩을 만들어서 그런지, 제임스의 푸딩 공장은 뭔가 기묘한 공장이었다.

    회색 사신이는 아직도 푸딩을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먹고 싶은 건가? 

    회색 사신이는 어느새 황금 사신이를 손에 들고 있었는데, 손으로 말아쥐고 있는 모양새가 어쩐지 조금 불안했다.

    황금 사신이는 회색 사신이가 손 위에 올려줘서 마냥 기쁜지 회색 사신이를 바라보면서 방실방실 웃었다.

    왠지 푸딩을 쳐다보는 시선이랑 손을 쥔 모양새가 공을 던지려는 것처럼 보이는데?

    에이, 설마 아니겠지.

    ***

    닌자 푸딩이 공중에 떠있네.

    너무 높이 떠 있어서 손에 넣는 게 불가능해 보였다.

    유령화로 벽을 타고, 천장에 매달려서 가면 가능성은 있을 것 같은데….

    귀찮아.

    황금 사신을 집어 던지면 닿으려나?

    안타깝게도 내 근력으로는 무리겠지.

    내 손아귀 안쪽에서 나를 바라보면서 해맑게 웃고 있는 황금 사신이를 내 어깨에 올려두었다.

    남아 있는 토끼 오브젝트의 숫자가 생각보다 적었다.

    적어도 처음 죽인 토끼 인형의 열 배는 있어야 했는데, 비슷한 수준의 숫자라니.

    황금 사신 푸딩 대량 생산 계획은 실패.

    이제 희망은 거품에 담아서 푸딩을 생산한다는 기계뿐이었다.

    공중을 부유 중인 푸딩을 깔끔하게 단념하고, 푸딩을 생산하는 기계가 있다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둡고 피 냄새가 가득한 복도를 계속 걸어 나갔다.

    뚜방뚜방.

    조금 걷다 보니 어둑어둑한 건물의 출구가 보였다.

    저 너머에 보이는 공터를 넘어가면 바로 ‘아귀’가 있다는 건물.

    다만 점점 심해지는 악취 때문인지 기분이 나빠졌다.

    푸딩 공장의 중심부로 다가갈수록 악취가 심해졌는데, 저번에 사막에서 만났던 괴물보다 훨씬 심한 악취였다.

    내 뒤를 폴짝거리면서 쫓아오던 황금 사신들도 어느새 황금 사신 정원으로 도망쳐 버렸다.

    건물 출구에 위치한 넓은 공터에는 꽤 비싸 보이는 스포츠카가 한 대 놓여있었다.

    아귀의 이빨 자국이 잔뜩 남아 있는 공터에서 약간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광경이었다.

    그 광경을 보면서 제임스는 감탄하고, 소심한 남자는 기뻐했다.

    “예상외로 멀쩡하군. 당연히 아귀가 박살 냈을 줄 알았는데.”

    “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멀쩡한 스포츠카를 보더니 소심해 보이는 남자는 눈물을 흘리면서 신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있었다.

    “자네가 선불로 받은 연봉 전부를 투자한 스포츠카가 멀쩡히 남아 있어서 다행이군.”

    제임스는 하늘에 기도를 올리고 있는 남자의 어깨를 두들기면서 축하했다.

    “연봉을 전부 스포츠카에 쓴 거예요? 그것도 선불로 받은 연봉을요?”

    예린이는 약간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그냥 연봉이 아니지, 이 친구가 원래 받던 임금으로 치면 10년 연봉은 될걸?”

    “?”

    예린의 표정이 더욱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약간 풀어진 채 어수선하던 분위기는 묵직한 발걸음 소리에 다시 팽팽하게 조여졌다.

    쿵. 쿵.

    크고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불길한 음색으로 울려 퍼졌다.

    아귀의 발걸음 소리.

    괴물의 것이 분명한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지자, 일행들은 모두 입을 꾹 다물고 공터 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귀의 발걸음 소리라기에는 너무 묵직한 소리.

    아귀와 직접 싸워본 내 기억과 확연히 다른 발걸음 소리였다.

    그 ‘아귀’의 아종이라는 오브젝트는 강철 문 너머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무게와 힘이 강철 문을 뚫고 느껴졌다. 

    두터운 강철 문이 마치 반투명한 유리문처럼 느껴질 정도의 중량과 힘을 가진 괴물.

    쾅!

    엄청난 소리와 함께 강철 문이 폭발하듯이 흩날리고, 거대한 괴물이 그 신체를 드러냈다.

    붉게 빛나면서 번들거리는 눈알.

    아귀가 스테로이드를 맞은 것처럼 근육이 잔뜩 펌핑된 몸통.

    중앙 연구소에 있었던 아귀의 2배는 되어 보이는 몸집.

    피부를 뒤덮은 검은 진물. 

    이걸 아귀라고 봐도 되는 건가? 

    쿵. 쿵.

    아귀 아종이 발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근육이 파문을 일으키며 검은 점액을 사방으로 흩뿌렸다.

    아귀 아종은 금속을 긁는 것 같은 괴성을 지르면서 자신의 힘을 과시했다.

    과시의 대상은 어떤 차량이었다.

    “안!!!! 돼!!!!!”

    눈앞에 놓인 스포츠카를 갈기갈기 찢어버린 것이다.

    아귀 아종은 자신의 힘을 과시하듯이 스포츠카를 조각조각 분해하고 가루를 내버릴 것처럼 잘게 씹어 발겼다.

    “안 돼. 안 돼! 내 1년이! 내 드림카가!”

    마치, 부모님이 아귀에게 찢기는 장면을 목격한 것 같은 강렬한 감정을 뿜어내던 남자는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눈물을 흘리며, 손을 앞으로 뻗은 채로.

    극심한 정신적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기절해 버린 것이다.

    뚜방뚜방.

    나는 공터 중앙으로 걸음으로 옮겨서 아귀 아종과 마주 섰다.

    확실히 크네. 

    아귀도 징그러워서 싫었는데, 이 녀석은 심각한 악취까지 나서 2배로 싫은 녀석이 돼버렸다.

    아귀 아종의 두 눈에는 가소로움이 비쳤다. 

    처음 보자마자 이런 식으로 얕보는 오브젝트는 오랜만이네.

    그 크기와 힘, 그리고 위압적으로 펌핑된 신체 때문인지 다들 아귀보다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오히려 약해 보여.

    꽤 강하지만 강철탑이나 아귀에게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존재감.

    존재감이 부족하면 파괴 조건이 단순해지기 마련이지.

    아귀의 파괴 조건은 <시작의 오브젝트가 만든 돌.>.

    이거였는데, 이 녀석은 과연 어떤 조건을 가지고 있을까?

    <재생력을 고갈시킨다.>

    음, 간단하군.

    나는 살짝 미소를 띤 채, 아귀 아종에게 달려들었다.

    ***

    아귀는 쫓고 회색 사신은 도망치고.

    방송으로 봤던 회색 사신과 아귀의 싸움이 여기서 다시 한번 재현되었다.

    처음 봤을 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인간을 위해서 노력하는 오브젝트처럼 보였으니까.

    오브젝트들은 인간을 돕는 것처럼 보여도,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정설이었으니까.

    한국 방송에는 특급 오브젝트 간의 영역 다툼이라고 평가절하하는 것 같았지만 웃기지도 않는 소리였다.

    회색 사신은 명백하게 사람들이 없는 쪽으로 아귀를 유도했었다.

    그 방송에서의 싸움처럼 회색 사신은 능숙하게 아귀를 유도하면서 싸웠다.

    하지만 아귀보다 강력한 아귀 아종을 상대로 과연 회색 사신이 이길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송파구 때의 영상을 보면 회색 사신은 뛰어난 재생력과 민첩성이 우위.

    아귀는 커다란 덩치와 힘이 장점이었다.

    “큰일이군. 내 예상보다 더욱 이기기 힘들겠어.”

    하지만 아귀 아종은 아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재생력을 가지고 있었다.

    오히려 회색 사신보다 몇 배는 빠른 재생 속도를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내 옆에서 흥미진진하게 전투를 구경하고 있는 예린이라는 연구원은 전혀 걱정이 없어 보였다.

    도대체 왜?

    그리고 회색 사신의 행동도 조금 이해가 안 갔다.

    “도대체 왜 황금 사신을 소환하지 않는 거지? 설마 아귀 같은 강자에게는 별 소용이 없나?”

    두 눈을 반짝이며 회색 사신의 전투를 구경하던 예린이 대답했다.

    “아뇨. 그냥 변덕일 걸요? 표정이 즐거워 보이는 걸 보니, 사신이가 봐주고 있는 거 같네요.”

    즐거워 보인다고? 

    내가 보기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무표정처럼 보이는데….

    바쁘게 돌아다니던 회색 사신이 자리에 멈춰서더니, 전신에서 황금색 불꽃을 피워올렸다.

    설마? 싱크홀?

    밝게 타오르는 회색 사신이 박수를 두 번 짝짝 치고는 작은 발로 바닥을 콩콩콩 세 번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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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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