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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96

    <96 – 친구를 소중히 여기는 아이>

     

    월요일 2교시.

    브론즈 교수의 안목키우기 강의실.

     

    “선배님들!”

    “뭣좀 물어봐도 돼요?”

     

    신입생들은 지난 강의 이후로 의외로 실력이 있음을 알게 된 선배들에게 달려갔다.

     

    “웬일이야? 후배들이 이렇게 잘 따르고.”

    “지도교수님한테 듣기로는 선배님들이 교내에 침입한 자이언트 킹크랩을 대신 잡아줄 거라는데 사실인가요?”

    “1층 휴게실에 들어온 킹크랩 좀 빨리 잡아주세요… 앉아서 과제할 곳이 없어요…”

     

    신입생들의 하소연에 빅스톤은 식은땀을 흘렸다.

     

    “어? 어어, 배고프면 잡긴 하겠지. 근데 난 지금 딱히 배가 안 고파서.”

    “거짓말 치지 마. 포인트 아낀다고 아침부터 굶고 있었잖…”

    “으와아악! 조용히 해, 리즈나!”

     

    모처럼 모여든 후배들 앞에서 잘난 체는 하고 싶고 자이언트 크랩과 영혼의 맞다이를 뜨기는 무서운 빅스톤에게 동기 모스도 한 소리 했다.

     

    “더 망신당하기 전에 못하겠다고 해라.”

    “모스. 넌 후배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도 없어? 1년 내내 굴욕과 무시만 당하던 우리가 선배라는 알량한 직함으로 누군가의 위에 설 기회라고!”

    “빅스톤. 너 지금 진짜 쓰레기처럼 보인다.”

     

    모스의 말대로 신입생들의 얼굴에는 아무리 급해도 이 선배한테는 의지하지 말아야겠구나, 왜 하필 이 사람한테 말을 걸었을까, 하는 후회가 떠올랐다.

     

    “자기 능력 이상으로 뽐내려고 하다간 큰 코 다쳐. 쟤들도 막막하니까 하소연하러 왔을 뿐이지 큰 걸 기대하진 않을 걸. 그냥 솔직하게 말하지 그래?”

     

    묵묵히 제 할 일만 하는 재수 없는 모스와 달리, 잘 꾸미지는 않아도 은근 예쁘고 옷에서 좋은 향기가 나는 리즈나는 빅스톤이 연모하는 여자동기였다.

    그녀로부터 진심어린 충고를 받으니 빅스톤도 괜한 자존심을 내려놓고 솔직하게 답했다.

     

    “자이언트 킹크랩은 무진장 강한 몬스터야. 거대한 앞발은 물리내성이 엄청난데다가 평범한 금속무기도 발톱에 찝히면 바로 동강 나.”

    “에에. 그럼 선배님도 못 잡아요?”

    “당연히 못 잡지! 저거 잡을 수 있는 건 2학년 사이에서도 상급반 학생이나 실력 좋은 소수뿐이라고. 3학년부터는 하급반도 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실망스럽긴 해도 덕분에 신입생들은 냉혹한 현실을 파악했다.

    킹크랩 먹겠다고 까불다간 킹크랩의 한 끼 식사로 전락할 수도 있겠구나!

     

    “알았으면 너희는 절대로 저거 잡을 생각은 꿈도 꾸지 마라. 보이면 무조건 도망치고. 특히 근처에 물이 있으면 굉장히 빨라지니까 당장 물 밖으로 튀어.”

    “네에.”

     

    처음엔 못미더운가 싶었지만 이어지는 빅스톤의 진솔한 충고와 격려에 신입생들은 의외로 말을 걸기를 잘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빅스톤도 뿌듯했다.

    진심은 통한다더니, 리즈나와 모스의 충고대로 솔직하게 조언을 하자 오히려 신입생의 존경을 받았다.

    그래, 대단한 실력이 꼭 필요한 건 아니다.

    진심만 있어도 마음이 전해질 때가 있으니까!

     

    덜컹.

     

    “으, 너무 무거워.”

     

    학생들 사이에 섞여서 빅스톤의 충고를 듣던 티토소가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오크노디? 뒤에 그거 자이언트 킹크랩이잖아! 어떻게 잡은 거야?!”

    “아 이거요? 겁도 없이 복도를 막고 있어서 잡았어요. 식당에서는 벌써 잔뜩 생포해서 판다고 제값 받기도 힘들 텐데 저녁에 요리나 해먹으려구요.”

    “그거 물리내성 엄청 높다고 들었는데.”

    “그럼 뒤집으면 되잖아요.”

    “뒤집어…?”

    “게는 육지에서 한 번 뒤집히면 자기 힘으로는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걸요. 집게발이나 등껍질이랑 다르게 배딱지는 칼도 잘 박히고 쉽게 부서지고요.”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어리둥절한 신입생들에게 오크노디는 가볍게 시범을 보여주었다.

     

    “끙차!”

     

    ① 자이언트 킹크랩의 뒷다리를 잡는다.

    ② 번쩍 들어 패대기친다.

    ③ 배딱지로 칼을 쑥 쑤셔 넣으면 끝!

     

    “자, 쉽죠?”

     

    그게 뒤집혀지냐고.

    접근은 어떻게 하는 건데.

    망연자실한 학생들 사이로 빅스톤은 조용히 책상에 앉아 고개를 푹 숙였다.

     

    “찜통이랑 조리용 강력가위는 내가 빌릴 수 있어. 식당에서 조리 도구를 빌린 적도 많으니까.”

    “와아! 오크노디 짱이다!”

    “이사벨은 커서 세계제일의 요리사가 될 거야! 우리가 꼭 응원할게!”

    “아니, 난 탐험대장이 될 건데…”

    “방학 되면 우리 가문에 꼭 놀러와. 3성급 셰프에게만 허락되는 요리사용 보검을 구경시켜줄게!”

     

    빅스톤이 누렸던 인기를 순식간에 뺏어간 후배들.

    리즈나는 가엾은 동기의 어깨를 토닥였다.

     

    “힘내. 쟤들은 재능충 상급반이잖아.”

    “크흑. 나 강해질 거야. 엄청 노력해서 더러운 상급반 녀석들보다 훨씬 더 강해질 거라구!”

    “아. 선배님들도 저녁에 요리할 때 오실래요? 워낙 크기가 커서 저희가 다 먹기엔 부족할 것 같은데.”

    “미안. 빅스톤은 지금 마음에 상처를 입어서…”

    “당연히 가야지!”

    “…빅스톤?”

    “…강해지려면 배는 채워야지!”

     

    허기짐 앞에서는 체면도 없었다.

     

     

    * *

     

     

    자이언트 킹크랩에 한눈이 팔린 채로 모두가 어서 저녁시간이 되기만을 바라며 시작된 <안목키우기> 강의, 그 세 번째 시간이었건만.

    학생들의 관심사는 저녁식사로도, 자신들을 가르치는 정의심 주머니가 커다란 의적 교수에게도 향하지 않았다.

     

    쏴아아아아아!!

     

    여기가 아카데미인지 인공강후를 뿌리는 레이니 컨셉 카페인지 모를 정도로 미친 듯이 쏟아지는 호우.

    귀갓길이 막막해지는 빗소리에 정신이 팔렸다.

    솔직히 나도 좀 쫄린다.

     

    ‘고인물이고 뭐고 저거에 휩쓸리면 진짜 바로 익사하겠네!’

     

    어수선한 분위기를 고려해서 이번 강의는 집중력을 요하는 실습보다는 평범한 이론강의가 되었다.

     

    “덤으로 다음 과제시간에는 귀족 수강생들이 아주 좋아할 재산평가에 대한 안목을 키우는 강의를 진행할 예정이니 관련서적이나 공문을 조사해두게.”

    “교수님. 서적이나 공문은 어디서 구하나요?”

    “서적은 도서관에, 공문은 아카데미 행정실에 가면 구할 수 있네. 외부인 반출 및 대여는 원칙 상 어려우나 내 강의를 듣고 있음을 증빙하면 가능할 걸세.”

     

    아카데미 수강생에게 도서관 이용과 행정실 방문 및 협조를 구하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하는 것은 제법 귀중한 기회이다.

    괴상한 강의로 매번 학생들을 시험하는 교수님이지만 의외로 강의에는 학생들의 아카데미 적응을 돕는 은근한 배려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것뿐이라면 의욕이 나지 않을 수도 있겠지. 그러니 가산점을 더하지.”

     

    물론 교수님이 착하기만 하면 기프트 아카데미의 교수라고 할 수 없다.

    브론즈 교수는 사악한 본색을 드러냈다.

     

    “다음 강의에 가져온 관련서적과 공문이 가장 적절한 학생을 각 부분별로 세 명씩 골라서 가산점을 줄 생각이니 부지런히 노력해보게.”

     

    티토소가가 조명대의 버튼을 눌러 하얀 빛을 반짝반짝 뿜었다.

     

    “교수님! 질문이요!”

    “정신 사납군. 그것 좀 끄고 말하게.”

    “앗, 네.”

     

    조명을 끈 티토소가가 물었다.

     

    “강의를 듣는 2학년 선배가 세 분인데 각 부문 당 세 명만 뽑아서는 가산점 경쟁에서 1학년들이 너무 불리하지 않을까요?”

    “그렇겠지.”

     

    교수는 순순히 동의했다.

     

    “그래서?”

    “예?”

    “2학년이 유리한 가산점 경쟁이니 1학년을 배려해서 1학년 전용 가산점 티오라도 늘려 달라 이건가?”

     

    티오Table of Organization.

    조직구성표를 뜻하는 이 말은 흔히 티오가 났다, 조직구성표에 빈자리가 생겼다, 취업자리가 하나 열렸다 등의 의미로 쓰인다.

    지금은 가산점을 받을 수 있는 자리 내지 기회를 늘려달라는 뜻으로 쓰인 말이다.

     

    “아, 저러면 안 좋은데.”

     

    교수의 입가에 잔혹한 미소가 어렸다.

     

    “좋네. 일학년 전용 자리 셋을 늘려주지.”

    “와!”

    “고마워, 티토소가!”

    “티토소가 덕분에 가산점 받을 기회가 늘었어!”

    “교수님! 같은 서적을 준비한 학생이 여럿이면 다같이 가산점을 받나요?”

    “그렇게 해주지. 정확히 같은 준비를 했다면 모두 칭찬 받아 마땅한 일이니.”

     

    5교시 모험가의 야간행동 강의에서는 최약체 쫄보에 불과했던 티토소가가 2교시 안목키우기 강의에서는 동기들의 인정과 감사를 받는 우등생?

    그런 이세계 체험 같은 평가는 교수의 이어지는 말에 싹 뒤집혔다.

     

    “대신 기프트 아카데미의 학업성적 처리 규정에 따르면 기준치를 넘어서는 가산점의 양만큼 벌점도 늘어나야 한다네.”

    “그러니 이렇게 하지. 준비가 미흡했던 하위 3명은 상위 3명이 받는 점수만큼 벌점을 받기로.”

     

    얼음장처럼 싸늘해진 강의실.

    교수의 언어폭력은 멈추지 않았다.

     

    “물론 공동가산점이 있는 만큼 공동벌점도 있어야겠지? 준비가 일절 없는 학생들은 다 같이 벌점을 받을 걸세. 포인트를 미리 넉넉히 준비하길 바라지.”

    “티토소가 이 쓰레기 새끼야!”

    “니가 그러고도 사람이야?”

    “이 악당!”

    “교수의 앞잡이!”

    “벌점을 부르는 종말의 악마야!”

    “너 같은 건 오크노디의 자이언트 킹크랩 속살을 먹을 자격도 없어!”

     

    조명대를 반짝반짝 빛내며 “쟤 귀엽지 않아?” “집에 두고 온 여동생 같아.” 같은 소리를 듣던 티토소가는 졸지에 대역죄인이 되었다.

     

    “오, 오해에요.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 마세요. 저는 모두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

     

    티토소가의 변명에도 매도는 멈추지 않았다.

    “나이도 헛먹은 놈!”

    “장난감이나 들고 다니는 멍청이!”

     

    급기야 나름 챠밍포인트로 급부상했던 조명대까지 인신공격의 대상이 되자 티토소가의 눈에 또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으아앙!”

     

    울음을 터뜨리며 강의실을 뛰쳐나가는 티토소가.

     

    “저런. 불쌍하게 됐네.”

    “으휴. 그러게 너무 나선다 싶더라니. 저 잠깐 티토소가 좀 달래러 갈게요.”

    “아, 오크노디 학생. 지난 번 얘기에 대한 결정은 내렸나?”

    “티토소가 때문에 나중에 답변 드릴게요!”

     

    오크노디는 친구를 소중히 여기는 아이.

    교수님의 수제자 겸 대학원생이 되지 않겠냐는 제안에 대답하는 것보다는 친구를 위로하는 것이 더 중요해!

    결코 대학원생이 되기 싫어서 답변을 미루고 도망치는 게 아니야!

     

    “앗, 잠깐, 잠깐만! 오크노디, 혼자 가버리면 자이언트 킹크랩은 나보고 어떻게 가져가라고!”

     

    오크노디는 친구를 소중히 여기는 아이.

    저녁에 쪄먹을 자이언트 킹크랩을 낑낑 거리며 힘들게 운반하는 것보다도 친구를 위로하는 것이 더 중요해!

    결코 자이언트 킹크랩이 생각보다 너무 무거워서 도망치는 것도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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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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